The Symbiotic Relationship Between the Rabbit and the Black Panther RAW novel - Chapter (10)
토끼와 흑표범의 공생관계 10화(10/75)
아힌의 침실로 돌아온 나는 비장한 얼굴을 했다.
뭔가 있다. 이쯤 되면 절대 그냥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아힌도, 심지어 그의 어머니까지도.
‘페로몬 향이 나.’
‘방금 네게서 아주 미세한 페로몬이 느껴졌단다.’
맹수는 초식계 수인보다 오감이 훨씬 발달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그들이 대뜸 내게 페로몬 향이 난다 일렀으면 그것은 착각이 아닐지도 몰랐다.
페로몬은 인간화가 진행된 후에 나타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수인임에도 여태껏 새끼 토끼 형태인 나를 미뤄 보면 보편적인 경우로 판단해선 안 됐다.
‘그렇다 쳐도….’
그러나 도무지 어떻게 인간화에 이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종종 가문 시녀들이 나를 살피며 했던 말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인간이 되어 있을 거라나 뭐라나.
‘비비 님, 뿅 하고 변하는 거랍니다!’
말이 되냐고. 몇 시간 동안의 열병을 거치고 나면 인간으로 변한다고들 하는데, 직접 본 적도, 겪은 적도 없기에 막연한 상상일 뿐이었다.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자 지난날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수치스럽기 짝이 없구나. 너 때문에 내 뒤를 따르는 추문이 어찌나···!’
‘누나, 이제 그만 포기해. 내가 나중에 실한 토끼 하나 잡아서 우리에 같이 넣어 줄 테니까.’
‘대충 해 두려무나, 어차피 비비 님은 알리지도 못하시니. 말을 할 수나 있나.’
인간화. 장장 열여덟, 오랜 세월 갈망과 실망을 반복하던 단 한 가지 바람에 또다시 불이 지펴졌다.
지그시 눈을 감은 나는 몸속의 페로몬을 느끼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 *
오늘따라 일찍 침실로 들어선 아힌은 환복도 하지 않고 대뜸 나를 침대 위로 올렸다.
그리곤 저도 엎드려 누운 채 나와 지그시 마주했다. 잠시간 껄끄러운 침묵이 오갔다.
“…야.”
‘왜!’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
여느 때처럼 속으로만 불만을 뱉은 내가 조심스레 엉덩이를 뒤로 뺐다. 미려한 얼굴이 너무 가까워 부담스러운 탓이었다.
그러기 무섭게 내 목덜미를 잡아 움직임을 봉한 그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오늘 머저리… 아니, 늑대 일족이 또 습격을 해 오더군.”
순간 바로 앞에서 보이는 송곳니에 아찔해진 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서 다쳤어.”
‘다쳤다고?’
혹여 그때처럼 큰 상처인가 싶어 나는 살짝 눈을 떴다.
그러나 그날과 달리 은색 견장이 장식된 군청색 의복에는 별다른 핏자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이 혈향도 느껴지지 않고.
의아하게 살피자, 비스듬히 고개를 튼 아힌은 왼쪽 뺨을 가리켰다.
“여기.”
새하얀 뺨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루 이틀이면 금세 사라질, 상처라 부르기도 애매한 긁힌 자국이었다.
이런 걸 무슨 거나한 상처라도 입은 것처럼 말한대. 어이가 없어진 내가 코웃음을 치자 그가 붉은 눈을 깜박였다.
“치료 안 해 줘?”
‘내가 왜?’
하물며 새끼 토끼더러 어떻게 상처를 치료하란 말인지. 터무니없는 요구를 비웃은 나는 앞발을 내저었다.
“안 해 줘?”
‘안 해 줘.’
계속해서 무시하니 아힌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곧이어 몸을 일으킨 그는 내 뒷덜미를 낚아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치료도 못 하는 토끼는 필요가 없지. 아-”
이 돌아 버린 맹수가! 아힌은 정말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고개를 꺾은 채 입을 벌렸다.
‘엄마야!’
바로 아래서 송곳니가 아른거리자 사색이 된 내가 온몸을 버둥거렸다.
자칫하면 뒷다리가 입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기어코 입술 부근까지 내 몸을 가져간 아힌이 눈가를 둥글게 휘었다.
“이제 치료할 마음이 좀 생겼어?”
물론.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나를 침대에 내려 줬다. 재차 몸을 숙여 엎드린 아힌이 뺨을 내밀었다.
이걸 어떻게 치료하라는 건지. 붉은 자국을 당황스럽게 바라보자 아힌의 눈썹이 못마땅한 듯 일그러졌다. 무언의 재촉과 다름없었다.
‘고칠게, 고쳐 볼게!’
푸드덕 고개를 저은 내가 앞발과 붉은 자국을 번갈아 봤다.
이 비비 님을 한입에 삼키려 들다니, 마음 같아선 앞발을 확 날려 긁힌 상처를 하나 더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난감하네.’
이 또라이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킨담. 고민해 봤자 네발 달린 새끼 토끼의 몸으론 약을 발라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념에 잠겼던 나는 아힌의 눈썹이 또다시 꿈틀거리자 얼른 다가가 상처를 살짝 핥았다.
당연히 상처가 치료될 리는 없으나 지금의 모습으론 이게 최선이었다.
돌발 행동에 일순 멍한 표정을 지은 그가 고개를 바로 했다.
“이게 치료라고?”
그럼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건데. 진짜 앞발로 맞고 싶기라도 하니?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자 아힌의 얼굴이 점점 미묘해졌다. 어쩐지 서로 의사소통이 엇갈린 느낌이었다.
곧 엎드렸던 자세를 바로 한 그가 불만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뭐….”
천천히 옮겨진 붉은 눈이 내게 박혔다. 잠깐 나를 응시하던 아힌은 비뚜름하게 웃으며 긁힌 부위를 매만졌다.
“이것도 나쁘진 않네.”
영문 모를 말을 흘린 그는 몸을 일으켜 욕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대뜸 상처를 고치라더니, 이젠 볼일이 없어졌나.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있던 나는 건방진 흑표범의 뒷모습에 뒷발차기를 날렸다.
‘괘씸한 맹수!’
이런 소심한 복수라도 하지 않으면 화병이 도질 것만 같았다.
* * *
장미 정원에서 마주친 그날 이후, 아힌의 어머니는 내가 정원 산책을 나서는 시간에 맞춰 늘 티타임을 가졌다.
덕분에 이젠 정원 산책이 아닌 그녀와의 묘한 티타임이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날씨가 좋군.”
‘그러게요.’
나는 불어오는 미풍을 맞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고, 바람에 흐트러진 장미 내음이 평화로운 공기를 만들었다.
처음엔 가주에다 송곳니까지 지닌 아힌의 어머니가 무척 불편했지만, 만남이 지속될수록 딱히 어려운 시간은 아니었다.
내민 건초를 씹기만 해도 장하다, 멋지구나 등등 그녀의 찬사가 따랐으니.
더욱이 종종 이어지는 그녀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 덕분에 꽤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아힌이 올해 성인식을 치렀다는 등의. 늘 송곳니를 피해 시선을 돌리기 바빴으나, 떠올려 보면 그는 딱 소년과 청년 사이쯤의 오묘한 외모였다.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긴 새 계속해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여워라, 입이 오물거리는 모양이 몹시 귀엽구나.”
“아가, 앞발을 내밀어다오.”
“이걸 먹으려무나.”
이러한 그녀의 공로로 인해 하루가 달리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중이었다.
티타임의 존재를 알고 있는 아힌은 내 몸을 뒤집으며 돼지 토끼라는 망발까지 지껄였었지.
아힌의 어머니는 자신을 발렌스 그레이스라 소개하며, 발렌스 님이라고 칭하라 명했다. 물론 말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한데도 불구하고.
‘그레이스?’
그레이스란 성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으나, 위세 높은 흑표범 영토의 귀족이라면 어디선가 스치듯 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이것도 먹어 보려무나.”
주방장의 회심작, 수제 건초를 먹는 나를 보던 발렌스 님의 표정이 일순 미묘해졌다.
곧장 손을 뻗은 그녀는 난데없이 내 몸을 벌러덩 뒤집었다.
“…아가.”
평소보다 사뭇 낮아진 목소리라 나는 흠칫 그녀를 바라봤다. 손가락으로 내 목덜미 부근을 매만진 발렌스 님이 재차 입을 열었다.
“잠깐 숨을 멈춘 후, 몸속의 혈관을 누른다고 생각해 보거라.”
숨을 멈추고 혈관을 누른다고?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표정이 워낙 엄격해 지시대로 숨을 멈췄다. 가만히 정신을 집중하고 있자니, 몸속에서 기이한 기운이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뭐, 뭐야, 이거?’
난생처음 접해 보는 생경한 느낌이었다. 이 기운을 내리누르라는 말인가. 아리송한 말을 되새긴 나는 그냥 얼굴에 피가 몰릴 만큼 힘을 줘 봤다.
잠깐의 시간 후, 다소 너그러워진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영특하구나. 잘 갈무리했다.”
뻗어진 검지가 가만가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칭찬 어린 손길을 받던 나는 방금 전 느꼈던 몸속 기운을 곱씹어 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