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ymbiotic Relationship Between the Rabbit and the Black Panther RAW novel - Chapter (4)
토끼와 흑표범의 공생관계 4화(4/75)
쿠션에 자리한 나와 맞은편에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은 이브린이 묘한 대치를 이뤘다. 그는 언사야 어떻든 태도만은 꽤나 공손했다.
예의만 지키면 뭐 하나. 비상식량이라 운운한 작자인 만큼 절대로 방심할 수 없었다. 귀를 세운 나는 여차하면 뒷발차기를 날릴 수 있게끔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러한 경계를 느꼈는지, 가슴에 손을 얹은 이브린이 먼저 말문을 뗐다.
“소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토끼님을 이 저택으로 데려온 아힌 님의 수족, 러드 이브린이라고 합니다.”
정중한 인사를 마주하자 새삼 고민이 밀려들었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단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러나 이런 식으로 소개까지 하는 걸 보아, 이미 이브린은 내가 말을 알아듣는단 전제를 깔아 둔 모양이었다.
“고귀하신 아힌 님께서 토끼님을 거둔 것엔 깊은 뜻이 있겠지요. 저는 그 뜻을 따를 뿐입니다. 대륙어를 알아듣는 신통한 동물이라니, 처음엔 신수(神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외양은 평범해 보이지만.”
“…….”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한 새끼 토끼로 보인단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할 필요까진 없는데. 매사에 진지한 표정으로 저러니 별거 아닌 언사에도 괜히 화가 치밀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당장 잡아먹거나 해를 끼칠 느낌은 아니란 것 정도. 그나저나….
‘그 아힌이란 흑표범은 왜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래?’
맹수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의문을 갖기 무섭게 침실 바깥에서 거수경례 소리가 울렸다. 경비 기사들의 갑옷이 마찰하는 소음이 괜히 섬뜩하게 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낮에 마주친 은발의 남자가 들어섰다. 전체적으로 느슨한 움직임이, 마치 먹이를 궁지에 몰아붙인 오만한 맹수처럼 느껴졌다.
잠깐 넋을 놓은 나를 조심스레 안아 든 이브린이 몸을 일으켜 묵례했다.
“오셨습니까.”
“이브린, 네가 왜 여기?”
“토끼님을 보좌하라 먼저 보내셨지 않습니까.”
느릿하게 옮겨진 붉은 눈동자가 이브린의 품에 있는 내게 꽂혔다.
“아, 맞다.”
‘아, 맞다.’라니. 대답하기 직전의 미묘한 정적까지 미뤄 보아, 누가 들어도 잊고 있었던 게 자명한 한마디였다.
이유가 못내 궁금했던지 나를 조금 앞으로 내민 이브린이 물었다.
“아힌 님, 이분은 도대체 어디서···?”
“토끼 영토랑 이어진 경계의 숲에서 주웠어. 함부로 경계를 넘은 자들이 있던데. 수인인지는 확인을 거쳤나?”
“의관의 소견으론 불가능한 가설이라고 합니다.”
“그래?”
설명을 들으며 크라바트를 풀던 아힌의 눈길이 재차 내게 머물렀다. 이브린의 무던함과는 또 다르게,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감흥 없는 시선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예상조차 어려웠다.
“뭐, 수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지.”
“사유를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내일 잡아먹을 거라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기겁한 나는 얼른 이브린을 올려다봤다. 고귀하신 아힌 님이 나를 거둔 깊-은 뜻이 있을 거라며. 얘기가 다르잖아!
덩달아 나를 내려다본 이브린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으로 드실 거면 구이가 좋겠군요, 조리장에게 미리 알려 두겠습니다.”
‘야, 야!’
그렇게 몇 초 만에 배신을 당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나름 유대를 쌓는 척을 하더니, 천하의 배신자가 따로 없었다.
“이런, 벌써 밤이 늦었군요.”
사색이 된 나를 침대에 내려 둔 이브린은 태연히 테라스로 걸어가 커튼을 쳤다. 차르륵, 붉은 커튼이 캄캄한 밤하늘을 완전히 가렸다.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편히 쉬시길.”
네 마음대로 물러나지 마. 거기 서, 이브린! 침대 위에서 최선을 다해 으르렁거렸지만, 배신자의 뒷모습은 멀어져만 갔다.
그가 침실을 완전히 나설 때까지 씩씩거리던 나는 등에 오싹한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뒤통수에 꽂힌 시선 덕분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탓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웃음기가 사라진 아힌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낮에 본 끔찍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아아아악!’
‘컥!’
숲에 퍼진 자욱한 피 냄새와 흙바닥을 구르던 두 수인의 머리. 그 광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렸다.
‘…저런 흑표범이랑 단둘이 있으라고?’
절대 못 해. 나는 밤이 내린 창밖처럼 눈앞이 깜깜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