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ymbiotic Relationship Between the Rabbit and the Black Panther RAW novel - Chapter (45)
토끼와 흑표범의 공생관계 4화(45/75)
단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하고, 영토 경계선을 넘을 필요가 없는 새 수인은 유일하게 신분과 영토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일족이었다.
덧붙여 새 수인은 종에 관련 없이 모두가 물빛 눈동자를 지닌다는 예외를 갖고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반나절 이상 본모습으로 지낼 수 없는 수인의 제한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 대신 맹수계임에도 뛰어난 페로몬을 갖진 못하는 일족이었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예부터 새 수인들은 탐욕의 대상이 되었다. 전령 새, 감시 등 아래에 둔다면 더없이 유용한 역할을 해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새 수인들은 더더욱 반항적인 성향을 띠며, 정착을 꺼리고 자유를 추구한다고들 한다. 고로 그들은 누군가의 권속이 되지 않은 채 살아간다고,
‘…분명히 그랬는데.’
수인 백과 저자가 그랬단 말이야. 그렇기에 아힌의 전령 새인 퀸이 수인일 거라곤 감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이마를 짚고 있던 나는 내게 꽂힌 사나운 물색 눈동자를 흘겼다. 마차에 마주 앉은 우리는 근 삼십 분가량 눈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망할 토끼란 말을 끝으로 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나운 눈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망할 토끼, 감히 이 몸이 저택을 뒤지게 만들다니, 그도 모자라 사자와 밀회를 즐겨? 등등. 매 모습인 퀸과 치고받으며 몸의 대화를 나눈 게 태반이기에 쉽게 읽어 낼 수 있었다.
‘잘 이용해 보라고? …저 퀸을?’
베개 너머에서 능청스럽게 말한 아힌을 떠올린 내가 부드득 이를 갈았다.
이건 마치 동물이 하루아침에 사람으로 변모하여 그간의 쌓인 울분을 쏟아 내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면 애쉬가 사람이 되어선 식간이 부실하다며 따져 묻는 듯한.
한편, 마차로 배웅 나온 러셀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쁜 새.”
얌전하던 러셀은 살벌한 시선을 보다 못해 퀸의 다리를 퉁 때렸다. 그는 안 그래도 험하게 찢어진 눈을 형형하게 부릅떴다. 속으로 응원을 보낸 나는 용맹한 러셀을 당겨 안았다.
“러셀, 그냥 참새 수준이 아니라… 맹금류야.”
저래 봬도 부리로 쪼면 피부가 뚫리는 수준이니. 새삼 휘어진 부리를 떠올린 내가 부르르 떨었다.
“용사님.”
러셀은 무언가를 속삭일 요량인지 내 귀를 살짝 잡아당겼다. 퀸의 기운을 읽은 모양이었다.
‘새는 심술쟁이야.’
이다지도 정확할 수 있나. 큰 인물이 될 거라는 아힌의 평가가 순 엉터리는 아닌 듯했다.
“권속을 자처한 새 수인은 오랜만에 보는구먼. 노인네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러게요, 특히 매는 새 수인 중에서도 성향이 까다로운 걸로 아는데 말이죠.”
이 또한 문제였다. 마차 창으로 고개만 들인 지난나 교수와 정체 모를 노인은 아까부터 퀸을 보며 웅성웅성 떠들고 있었다.
특히 노인의 컵에 담긴 코코아 때문에 마차 내부가 달짝지근한 냄새로 가득 찼다. 다행히 퀸은 아니꼽게 눈썹만 꿈틀거릴 뿐 침묵을 유지했다.
마침 시선이 마주친 지난나 교수가 노인을 가리켰다.
“아, 비비 님. 이분은 수-,”
“수십 년을 이 저택에서 일해 온 자라오. 이거 참, 실례라면 내 제대로 인사하겠소.”
풍채 좋은 노인은 창문을 통해 악수를 건넸다. 한 저택에서 수십 년이라면 최소 시녀장의 자리에 앉은 분이 아닐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할머… 님.”
“오랜만에 들어 보는 호칭이라 기분이 꽤 좋구먼.”
코코아를 호로록 마신 노인의 관심이 퀸에게서 나로 옮겨졌다. 그녀의 얄팍한 눈이 나를 흥미롭게 훑었다.
“피부색이 볕을 거의 쬐지 않은 것처럼 투명하군.”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요.”
좋아하지 않긴 무슨, 산책마다 애쉬와 배를 드러낸 채 낮잠을 즐기는데. 그러나 인간의 모습으론 볕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는 게 맞았다. 어머니를 닮은 걸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창백한 피부였다.
“내 이곳 사용인들을 대표하여 무지하게 묻고픈 게 하나 있소만.”
“……?”
“흑표범이랑 사자는 어떻게 구슬렸소?”
“아이참, 그런 걸 물으시면 어쩌나요.”
지난나 교수마저 은근히 궁금한 모양인지 건성으로 노인을 만류했다.
아힌과 룬을 절절매게 만든 무용수에 대한 소문을 언급하고 있는 거겠지. 차라리 거울을 본 두 사람이 본인과 사랑에 빠져 버렸다는 소문이 더 신빙성 있지 않을까.
새삼 부끄러워진 내가 마차에 구비된 물병을 집어 벌컥 들이켰다. 목이 탔다.
“다행이지 뭐야. 나는 멀쩡한 두 청춘이 염문 하나 없기에 의아했지 뭐요. 둘을 따르는 소문 중에 구실을 못 한다는 종류도 있었지 아마.”
‘구-, 뭐요?’
주르륵, 당황을 수습 못 한 내 턱으로 마시던 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 러셀이 입가를 콕콕 찍어 물기를 닦아 줬다.
“그래서. 흑표범이요, 사자요?”
예전에도 들은 기억이 있는 질문인 것 같은데. 손등으로 턱의 물기를 쓸던 나는 옆얼굴로 지긋한 눈길을 느꼈다.
퀸의 물빛 눈동자는 흑표범이 아니면 토끼 구이로 만들어 주겠다는 의사를 담고 있었다. 이쯤이면 호위 기사인지 암살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수준이었다.
“두, 둘 다 딱히.”
“그레이스가(家)의 마차에 오른 걸 보면 흑표범인가 보오.”
자체적으로 결론 내린 노인과 지난나 교수가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그래, 행복하면 됐지, 뭐. 반쯤 체념한 나는 무릎에 앉은 러셀의 머리칼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이번에 헤어지면 영영 못 볼지도 모르겠지.
“이런, 너무 시간을 끌었구먼. 조금 있으면 고 성질 사나운 흑표범이 오겠어.”
“러셀, 이리 나오렴. 어제부터 배웅은 충분히 했잖니.”
올 게 왔구나 싶은 침통한 얼굴을 한 러셀이 품에서 빳빳한 종이를 꺼내어 건넸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힌 서간지였다.
[벨헬름 중립 구역, 트린 로드 B-613, 러셀 지난나]편지를 부치라는 말이구나. 혹여 토끼로 돌아가면 쪽지를 잃어버릴지도 모르기에, 제대로 외운 나는 러셀의 이마에 친애의 입맞춤을 했다.
“꼭 다시 만나자, 러셀.”
결국 으앵 울음을 터뜨린 러셀을 안아 든 지난나 교수가 등을 두드리며 달랬다.
“얘가 낯설게 정말 왜 이러나. 나름 비비 님과 특이한 공통점이 있답시고 이러는 걸까요?”
농담조로 말한 그녀는 퀸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귓속말했다.
‘비비 님이 아직 새끼 토끼인 건 제대로 된 인간화를 치르지 못해서일 거예요. 확인했는데 열꽃 자국이 없었잖아요. 러셀도 수인열 후에 자연스레 새끼 카피바라에서 성수(成獸)가 되었으니, 그 부분은 너무 염려 말아요.’
지난나 교수의 언질대로 다음에 만날 땐 성수(成獸)가 되어 있으면 좋겠는데. 멀어지는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 준 내가 벌떡 일어나 마차에서 내렸다.
퀸을 용기 내어 밀친 나는 지난나 교수와 반대편으로 향하는 노인을 따라갔다. 목소리가 들릴 만큼 거리를 좁힌 내가 급히 입을 열었다.
“-수장님.”
“호. 지난나 교수가 알려줬소?”
우회적인 긍정을 미뤄, 역시 별로 숨길 의도는 없어 보였다.
“…아뇨, 보통 시녀장이라도 타 영토의 귀부인에게 말을 편히 하진 않잖아요. 지난나 교수님이 수장님과 친분이 있다고 하기도 했고요.”
토끼 영토의 아몬 수장은 푸짐한 덩치의 노인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으니. 그리고 아힌은 가끔 아침잠을 깨기 위해 코코아를 마시는데, 얼핏 토끼 영토 수장을 만나면 술도 아닌 코코아를 진탕 마셔야 한다며 혀를 찬 적이 있었다.
“생김새처럼 똘똘한 여아구먼. 흑표범과 사자가 별로면 내 손주 중에 반반한 녀석이 하나 있는데, 만나 보는 게 어떻소? 애늙은이처럼 고지식하긴 하지만.”
반반한 녀석은 아힌과 룬, 이브린만으로도 벅찼다. 예를 올려야 하나. 엉거주춤하게 자세를 잡자, 다행히 그녀는 손을 들어 인사를 생략했다.
“됐네. 굳이 쫓아온 걸 보아 노인네한테 궁금한 게 있어 보이는군.”
질문을 망설이는 나를 살핀 아몬 수장은 지레짐작으로 말했다.
“화재와 관련된 거라면 문제없네. 애초에 자네가 흑표범 영토로 돌아가는 것을 승낙한 것도 나니까.”
역시나, 아힌의 입김이 작용한 모양이었다.
“또 남았나?”
수장 가문쯤 되는 사람들의 페로몬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막상 지배계 페로몬에 대해 묻자니, 마냥 믿을 순 없는 사람이었기에 함부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고개를 젓자, 기다려 주던 그녀가 씩 웃었다.
“못다 한 질문은 릴리언 그 영감탱이한테 가서 물어보시오. 꼴에 벨헬름 아카데미의 학장이랍시고 자잘하게 아는 게 많거든. 아마 이 노인네보단 좋은 대답을 해 줄 거요.”
다시 몸을 튼 수장이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선 그녀가 비스듬히 몸을 틀었다.
“맹수가 목에 잇자국을 내는 게 무슨 의민지는 아는감?”
“…네?”
반사적으로 목을 짚은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왕이면 릴리언 영감한테는 보이지 말게. 꽉 막힌 영감이라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날뛸 걸세.”
낄낄 조소하던 그녀는 어느새 나타난 보좌관에게 이끌려 자리를 떴다. 말이 좋아 이끌린 거지, 추격전에 가까웠다.
그렇게만 알려 주고 떠나시면 어떡하나요. 목을 짚은 손을 떼지 못한 나는 가련하게 바람을 맞았다. 의문을 해결하러 왔다가 되레 의문을 얻어 가는 실정이었다.
* * *
어쩜 이런 조합이 있을 수 있나. 애쉬를 데리고 마차에 오른 이브린을 본 나는 죽상이 되었다.
부리만 있으면 쪼아 버릴 기세로 노려보는 퀸도 모자라 이브린의 합류라니. 지옥의 귀갓길이었다.
불평도 못 한 내가 창틀에 턱을 걸치고 있자, 코앞에 가슴팍이 나타났다.
“비 맞은 개 같아.”
욕인지 칭찬인지 가늠도 못 하겠는 말을 던진 아힌이 눈을 해사하게 휘었다. 따질 기력도 빠진 내가 다급히 자세를 바로 했다.
“아힌도 같이 가.”
미쳤어? 어떻게 이 둘을 나한테 붙이는 잔혹한 짓거리를 벌일 수가 있어.
“말했잖아, 일이 남았다고. 조금 늦을 거야.”
“늦는 게 언젠데?”
꼬치꼬치 캐물은 탓인지 아힌의 입매가 일자로 굳었다. 너무 닦달했나. 보기 힘든 광경이라 나도 덩달아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곧 무거운 바위에 짓눌리기라도 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일.”
“내일…?”
“응, 가능하면 새벽에라도 돌아갈게.”
“그렇게 힘들게 올 필요까진 없어, 지금 같이 가고 싶었던 거지.”
이어진 답변에 새빨간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일순이지만 낯선 표정을 보인 그가 시선을 내 뒤편으로 옮겼다. 마차에 나란히 앉은 퀸과 이브린을 둘러본 아힌은 기가 찬 듯이 물었다.
“…설마 같이 가고 싶은 이유가 두 사람과 있는 게 싫어서였어?”
창틀을 짚은 내 손이 흠칫 떨렸다. 그 이유가 반절 이상이었던 탓에, 순간적으로 표정 위로 진심이 드러나고 말았다.
“토끼님, 그런 거면 정말 속상합,”
서운함을 토로하던 이브린이 애쉬의 꼬리에 맞아 얌전해졌다.
소란스러운 뒤편을 돌아본 내가 다시금 아힌을 마주했을 때, 그의 미소는 어딘지 시린 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비, 정수리에 귀 튀어나왔는데.”
“뭐?!”
수인은 반수인화 따위는 절대 불가능한 걸로 아는데. 설마 불완전한 인간화 때문이라든가.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소스라친 내가 머리 위를 더듬었다. 그러나 머리카락만 손가락에 엉겨들지, 토끼 귀로 추정되는 굴곡은 없었다.
그러고도 몇 번 더 머리를 문질러 확인한 나는 혐오 서린 눈으로 아힌을 흘겼다.
‘거짓말이구나.’
시치미를 뚝 뗀 그는 재차 소곤소곤 말했다.
“혹시 알아? 꼬리가 나왔을지도 몰라.”
“갑자기 왜 이렇게 심술이야?”
이 이상 속진 않을 거라 다짐한 내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뇌를 거스른 손은 창밖의 아힌 몰래 엉덩이 부근을 슬 문질렀다.
예리하게도, 그 미약한 움직임을 파악한 그는 마차 벽에 이마를 묻고 부들부들 떨었다.
되먹지 못한 흑표범. 씨근거린 나는 아힌의 배웅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창문을 닫았다.
여닫이창이 반쯤 닫혔을 때, 턱, 커다란 손이 도로 창을 열어버렸다.
“페레니움은, 잘 챙겼고?”
한껏 비뚤어질 예정인 나는 대답 대신 손목에 팔찌처럼 감은 회중시계를 들어 보였다. 직접 회중시계를 한 번 더 단단히 감아 준 그가 말했다.
“같이 못 돌아가서 미안해.”
후드득, 일순 뒤편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브린이 들고 있던 서류를 죄다 떨어뜨려 버린 소리였고, 퀸은 턱이 빠질까 걱정될 만큼 입을 벌린 채 아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만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몸을 굽힌 이브린이 주섬주섬 서류를 모으며 말했다.
“서류에 문제라도….”
“신경 꺼. 따로 할 말은 없어?”
아니, 저 장면을 어떻게 신경 안 쓰는데.
입을 여닫던 나는 문득 토끼 영토 수장의 말을 상기했다. 눈을 데굴 굴린 내가 슬그머니 망토 아래 감춰진 목의 상처를 짚었다.
“이거.”
아힌은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인지 얼굴을 가까이 기울였다. 말갛게 깜박이는 적안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아래로 내린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그때, 페로몬을 확실히 흘려 넣기 위해 만든 상처잖아.”
“갑자기 그건 왜?”
“…다른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어서.”
“그럼 비비는 그것도 모르고 내 목을 두 번이나 물었어?”
“……?”
되레 돌아온 영문 모를 질문으로 인해 내 표정이 무아지경으로 일그러졌다.
두 번이나 물다니. 내 기억상으로 목을 문 건 아힌이 페로몬 발작에 시달렸을 때가 유일했다.
그는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크라바트를 느슨하게 풀기 시작했다.
“아마 약하게 물었던 거라서 자국이 사라졌을,”
“잠깐만!”
이브린과 퀸을 의식하고 있던 나는 그만 아힌의 입을 찰싹 때려 버리고 말았다.
입술을 때리는 찰진 소리에, 눈을 커다랗게 뜬 아힌이 입을 문질렀다. 나 또한 만행을 저질러 버린 손을 파들파들 떨었다.
후드득, 또다시 들린 서류 떨어지는 소음은 이브린의 경악을 의미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침 주변을 지나던 기사도, 고용인도, 말을 정비하던 마부까지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차기 수장의 입을 때려 버리다니.
“괘, 괜찮….”
일종의 반역에,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죄를 인지한 내가 떠듬떠듬 손을 뻗었다. 발발 떨리는 손목을 그러쥔 아힌은 한층 붉어진 입술을 뗐다.
“또 때려 줘.”
박자 느린 저음은 흔들린 이성을 바로잡는 능력이 있었다. 무너진 표정을 관리한 나는 침착하게 손목을 잡은 아힌의 손을 떼어 냈다.
탁, 창문을 완전히 닫아 버린 내가 의자에 곧은 자세로 착석했다.
“괜찮은가 봐. 이만 출발하자.”
“아힌 님을 손짓으로 호령하다니, 대단하십니다. 저는 토끼님이 연무장을 구를 때부터 흑표범 영토의 기사단장감임을 알아봤습니다.”
“…이브린, 나는 아힌만큼 너도 싫어.”
“너무하십니다. 그래도 감격스럽군요, 이왕 세 대만 더 때려 주시면 좋았을 텐데요.”
덜컹, 흔들린 마차가 저택의 정문을 벗어났다.
애쉬의 도움을 빌려 이브린의 입을 세 대 때려준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제자리에 서 있는 아힌을 바라보던 시선이 돔형의 저택으로 옮겨졌다.
바람을 맞은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려 저택을 여러 갈래로 분산시켰다. 유난히 고단한, 이별과 만남이 잦았던 듯한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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