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ymbiotic Relationship Between the Rabbit and the Black Panther RAW novel - Chapter (75)
토끼와 흑표범의 공생관계 <에필로그>(75/75)
<에필로그>
인형 구매를 위해 들른 토끼 영토 시장. 이디스는 결국 바닥에 드러누운 떼쟁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힌, 일어나야지. 옷이 더러워지잖아.”
탁, 커다란 손을 쳐 낸 아힌이 완강하게 말했다.
“안 가. 난 여기서 토끼가 되기로 결심했어.”
대자로 펼친 몸은 곧 죽어도 흑표범 영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었다.
“두 분 다 왜 그러세요?”
이유를 모르는 이브린은 기 싸움을 벌이는 아힌과 이디스를 어리둥절하게 번갈아 봤다.
“아힌 님은 왜 토끼가 되려고 그러시는 거죠? 누구보다 흑표범다우시면서.”
“이브린, 입.”
“네에.”
권력 구도를 가늠하기도 잠시, 이디스 쪽으로 저울을 기울인 이브린이 아힌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상관의 일탈을 막는 것 또한 새싹 보좌관의 임무였다.
“자, 토끼가 되고 싶은 아힌 님. 어서 흑표범 영토로 돌아갑시다. 송곳니도 있으시면서 토끼가 웬 말이래요.”
“굳이 지적하지 마!”
“앗!”
아힌에게 뻥 차인 이브린이 종이 인형처럼 엎어졌다.
난감하게 머리를 털던 이디스는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행인들이 힐끔거리며 이디스 일행을 피해 가고 있었다.
그들의 보라색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은 맹수계 수인을 향한 두려움이었다.
눈치를 살핀 이디스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장난감 노점을 향해 발길을 틀었다.
“아힌이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토끼 인형은 아빠만 사야겠다. 이브린은 갖고 싶은 장난감 없어?”
“저는 장난감보다는 발렌스 수장님의 보좌관이 되고 싶어요. 첫 단추를 잘 꿰어야지요.”
“상당히… 진취적인 인재네.”
“훌륭한 가정교육의 일환이랍니다.”
이디스는 벌써부터 야망이 대단한 이브린을 상대하며 노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안 가 조용해진 아힌이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서 옵쇼.”
막상 노점에 도착한 아힌과 이브린은 장난감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성숙한 척해도 아직은 네 살배기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픽 웃던 이디스는 노점 끄트머리에 자리한 흑표범 인형에 시선이 닿았다.
자연스레 흑표범 인형을 집어 든 이디스가 고뇌에 잠겼다. 인형답지 않게 거만한 표정을 한 것이, 그가 아는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엄마는 인형 별로 안 좋아하잖아.”
어느덧 다가온 아힌이 훈수를 뒀다.
“특히 그렇게 못난 인형을 주면 벽난로에 던져 버릴 게 분명해.”
“역시 그렇겠지?”
“그래도 아빠 선물이면 기뻐할지도. 엄마가 아빠 엄청 좋아하니까.”
일순 멈칫한 이디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걸. 내가 발렌스를 훨씬 더 좋아해.”
“아냐. 저번에 아빠가 그랬잖아, 좋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엄마는 나한테는 표정 관리하라고 하면서 아빠만 보면 뒤돌아서 몰래 웃던데?”
“그랬던가….”
“응, 어깨를 막 떨어.”
그거 아마 비웃음일걸. 애매하게 말끝을 흐린 이디스가 귓불을 살짝 붉혔다. 아힌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 단숨에 가슴께를 술렁였다.
발렌스는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속을 읽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몇 년간 지내 오며 신뢰가 좀 쌓였나 싶다가도,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이면 언제든 이디스를 내칠 수 있을 듯한 태도를 취했다. 정말 뼛속까지 수장다운 여자였다.
틈만 나면 머릿속을 점령하는 발렌스를 지운 그는 아힌이 품에 든 토끼 인형으로 주의를 돌렸다.
“그걸로 하게?”
“얘면 됐어, 이제 흑표범 영토로 돌아가자. 생각해 보니까 저택에서 만난 토끼랑은 따로 약속해 둔 게 있어.”
“약속? 무슨 약속?”
“나중에 또 만나기로. 걔도 그러고 싶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떼쓰던 아힌의 태도가 지나치게 담담했다. 묘하게 불안해진 이디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토끼를 꼭 다시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응. 그때는 잡아먹… 아니, 잡아갈 거야, 우리 집으로.”
“너 방금 잡아먹을 거라고 말하려 했지.”
“아니래도. 약해서 다칠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아힌은 손수 토끼 인형을 제 베스트 속에 꼼꼼히 집어넣었다.
볼록해진 아힌의 배를 마주한 이디스는 할 말을 잃은 채 입술만 달싹였다.
토끼가 다칠 걸 염려하기에 앞서 잡아간다는 전제부터가 문제 아닐까. 복잡한 심정이었다.
“아힌, 다시 말하지만 절대 잡아먹는 건 안 돼. 약속해, 새끼손가락 걸어.”
“…….”
“…발가락 올리지 마.”
이디스는 무언가 굉장히 잘못되어 가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제발 토끼가 아힌이라는 거대한 함정을 잘 피해 가기를 바랄 뿐.
그런 그의 심정은 꿈에도 모르는 아힌이 토끼 인형을 높이 들어 올렸다.
“못 만나면 내가 찾아가지 뭐.”
그로부터 오랜 시간 후, 흑표범 영토 경계의 숲.
바구니 속, 한 입 거리도 안 되어 보이는 하얀 솜뭉치를 집어 든 아힌은 눈썹을 까딱였다. 어째서 엄한 얼굴로 새끼손가락을 내밀던 이디스가 겹쳐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뭐 어떤가. 대수롭지 않게 넘긴 아힌이 첫 마디를 뗐다.
“새끼 토끼?”
<토끼와 흑표범의 공생관계 : 본작, 외전1, 외전2, 에필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