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12
‘여기가 정말 외진 곳은 외진 곳이구나.’
또 한참을 걸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으려는 찰나 현우가 멈춰 섰다.
“여기예요?”
“그런 것 같아요.”
현우가 확인해 달라는 듯 지도를 내밀자 초원은 그걸 받아 들고 휴대폰을 열었다. 다행히 신호가 잡혔다.
현우는 벌써 주변을 둘러보며 범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초원은 지도 앱을 열어 여기가 맞는지 확인했다.
“맞네요.”
초원은 배낭을 내려놓고 현우가 이미 확인을 끝낸 바위에 걸터앉았다. 간만의 산행이라 발이 얼얼했다.
‘이러고 모레 하이힐 신고 출근이라니⋯.’
얼른 신발을 벗고 쉬고 싶었다. 파트너를 보니 어느샌가 배낭도 벗어 놓고 우거진 수풀 사이로 들어가 있었다. 도와주면 빨리 텐트를 치고 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초원은 그저 현우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해가 붉어지고 있었다.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선배, 해 지기 전에 텐트부터 쳐요.”
이미 저 멀리 가 있던 현우가 계속 바닥에 시선을 박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걸어가니 텐트를 칠 만한 작은 공터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텐트를 쳤다. 안에 매트를 깔고 침낭을 펴고 나니 드디어 초원은 신발을 벗고 앉을 수 있었다. 갑갑한 신발 속에서 탈출한 발가락들이 신나게 비명을 질렀다.
그새 적외선 카메라를 텐트 주변에 설치하고 온 현우는 지치지도 않는지 다시 근처를 살피고 있었다. 초원은 텐트 안에 앉아 가방에 넣어 둔 마취 총과 손전등을 꺼내 확인했다.
장비 확인을 끝내고 짐까지 푼 다음에 한참 지는 노을을 내려다보는데 현우가 텐트로 돌아왔다.
“뭐 좀 찾았어요?”
“아뇨, 별거 없네요.”
“그래도 또 모르죠. 오늘 밤은 운이 좋아서 딱 눈앞에 나타날지도⋯.”
초원은 조금 풀이 죽은 듯한 현우에게 웃어 주고 산에 오르기 전에 사 둔 김밥을 내밀었다. 둘은 말없이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었다.
“내일 점심은 내려가서 석쇠에 구운 염소 고기랑 막걸리 사 줄게요.”
초원은 그의 느닷없는 말에 풋 웃었다.
“장산범 찾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선배도 대단하지만, 염소 고기랑 막걸리 얻어먹겠다고 여기까지 따라오는 나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네요.”
현우는 노을이 붉게 물든 얼굴로 초원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어 깜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산 아래에선 불이 하나둘씩 켜지며 도시의 밤을 밝혔다. 도로를 따라 바삐 움직이는 헤드라이트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산이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보이는 건 산 아래의 휘황찬란한 도시뿐. 발치의 돌멩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초원은 밤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신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볼 때 이런 느낌일까? 저 속의 수많은 고뇌가 이렇게 내려다볼 땐 얼마나 하찮아 보일까?
“이제 가요.”
둘은 마취 총과 손전등을 챙겨 일어났다. 초원은 혹시 몰라 허리춤에 찬 권총도 확인했다. 텐트를 단단히 단속하고 왔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갔다. 현우와는 두 발짝 정도 거리를 두고 걸으며 초원은 넘어지지 않게 손전등으로 발밑을 계속 밝혔다.
산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혹시나 물소리나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기대하면서. 근처에 사람은 둘뿐이고 계곡이나 샘도 없으니 소리가 나면 장산범일 게 분명했다.
꼭 이럴 때 공포 영화의 클리셰가 떠오른다. 초원은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현우의 뒷모습만 쫓았다.
그렇게 십 분 정도 걸었지만 작은 산짐승이 놀라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아무 수확 없이 다시 텐트로 돌아와야 했다.
“이따 자기 전에 한 번 더 나가 봐요. 혹시 나 잠들면 깨우고요.”
초원은 권총을 넣어 둔 홀스터를 풀고 침낭에 들어가며 말했다. 아직 시간이 일러 잠들 것 같진 않았지만, 피곤했던 주말이라 또 모를 일이었다.
둘은 그렇게 나란히 누워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속삭였다.
“선배, 장산범 잡으면 뭐 할 거예요?”
“글쎄, 생각 안 해 봤는데⋯.”
“선배는 장산범을 잡는 게 아니라 잡는 과정을 즐기는 게 목적인 것 같네요. 안 그래요?”
현우가 갑자기 초원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초원 씨, 우리 결혼할래요? 날 너무 잘 아는데?”
이젠 안 속는다. 초원은 순도 1,200% 농담일 게 분명한 그 말에 눈을 흘기며 웃기만 했다.
“초원 씨 말이 맞아요. 사실 안 잡혔으면 싶기도 해요. 어릴 적부터 이게 유일한 탈출구였는데, 물론 연주도 있었지만 이젠 없고⋯.”
이젠 없다는 말이 시렸다.
“흠, 선배가 장산범을 포기하면 돌아오지 않을까요?”
“글쎄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 연주를 위하는 길인지는 모르겠어요.”
“어째서요?”
“음⋯, 연주는 거침없이 자유롭게 살 때가 가장 예뻐요. 지금처럼요. 근데 나랑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면 그 반짝반짝한 빛이 다 사라질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해요.”
이 남자는 알까? 그녀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그도 유난히 반짝거린다는 걸.
초원은 마음 한편이 아리는 걸 애써 무시했다.
“연주가 한국에 있을 땐 위염을 달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독일로 가고 난 다음부턴 멀쩡하대요. 나랑 결혼하면 다시 아프겠죠. 딸,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 온갖 의무에 시달리면서⋯.”
“선배가 잘해도요? 잘할 것 같은데⋯.”
“그런가⋯. 흠, 나 이 말 아무한테도 안 했는데, 사실 우리 형 결혼한 지 2년 만에 이혼소송 중이에요.”
초원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눈만 깜빡였다.
“웃기죠. 그렇게 고르고 골라 마음에 드는 며느릿감을 찾아 놓곤 괴롭히는 게⋯. 형도 그렇게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아내가 그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다니⋯.”
현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연주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장산범은 그냥 핑계겠죠.”
“그러니까 선배는 잃음으로써 잃지 않겠다는 거네요.”
“그런가? 그거 되게 철학적인데, 하하.”
몇 년을 안 사이지만 그녀에 대한 현우의 솔직한 생각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이제 내 얘긴 충분히 했으니까 초원 씨 얘길 해 봐요.”
현우가 초원을 향해 돌아누우며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기대하는 듯 눈을 반짝였다.
“네? 무슨 얘기요?”
“그렇게 연애 안 한다고 외칠 땐 언제고 왜 갑자기 소개팅을 했는지.”
“아⋯, 하하하. 뭐 별거 없어요. 내가 연애 안 한다니까 누가 그러더라고요.”
초원은 밸런타인데이 때 횟집에서 팀장이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게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아니라고.”
“요즘 철학책 읽어요?”
“아뇨, 하하. 누가 해 준 말이라니까요.”
“누가? 남자가? 남자가 그랬으면 그거 초원 씨한테 관심 있어서 한 말 아닌가?”
“에이, 그럴 리가. 여튼 그래서 난 결혼 전제 없이 가벼운 연애만이라도 해 볼까 했죠.”
“가벼운 연애라⋯.”
“나도 알아요. 말도 안 되는 거.”
“아니, 뜻이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말이 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은 그 뜻이 아니었던 거죠.”
“그건 그렇다 쳐도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꾸역꾸역 만났어요?”
“네?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어젯밤에야 겨우 깨달았는데⋯.”
“다 티 나던데. 그때 데이트하다 합정에 불려왔을 때도 남들 다 귀찮은 얼굴일 때 혼자서만 살았다는 표정이었는데. 나는 마음도 없으면서 왜 억지로 만나나 싶어 가지고⋯.”
현우의 날카로운 관찰력이 저를 향하고 있을 줄 초원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마음은 만나다 보면 생기는 건 줄 알았죠. 그럼 그래서 어제 계속 훼방 놓은 거예요?”
“훼방? 내가 무슨? 내가 뭘 했는데요?”
놀라서 동그래진 눈으로 묻는 현우는 진심으로 모르는 눈치였다.
“모르면 됐어요. 다음에 진짜 좋아하는 남자 생겨도 선배한테는 소개 안 시켜 줄 거예요.”
“왜? 나한테 뺏길까 봐?”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작은 텐트를 가득 채웠다.
“근데 초원 씨, 이렇게 사는 것도 좋지 않아요?”
“이게 어떻게 사는 건데요?”
“아무 데도 매이지 않고 특이생물3팀의 저주를 이어 나가면서⋯.”
“하하⋯.”
“우리가 결혼하고 애도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럼 여기 이렇게 와서 나란히 앉아 노을이랑 야경도 보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겠냔 말이죠.”
초원은 현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선배도 나랑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좋은 걸까?’
같은 마음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선배 돈으로 염소 고기도 먹고요.”
“하하, 그치. 그걸 빼놓으면 안 되지. 근데 진심으로 평생 이렇게 살아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그렇지, 이것도 나쁘지 않다.
“글쎄요, 꼬부랑 할머니 되면 여기까지 못 올라올 것 같은데.”
“내가 업고 올라오면 되지.”
“선배도 그땐 꼬부랑 할아버지거든요.”
순간 텐트 밖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텐트 입구 쪽에 있던 현우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전등을 챙겨 나갔다. 초원은 마취 총을 집어 들고 따라나섰다.
“뭐예요?”
현우는 텐트 뒤로 손전등을 비춘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손전등이 향한 곳에는 푸른 안광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장산범인가? 초원은 마취 총을 들어 올려 조준했다.
순간 다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푸른 눈의 짐승이 뒤돌아 껑충껑충 뛰어갔다.
“아, 뭐야. 고라니잖아요.”
“와, 깜놀했네.”
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그날 밤도 장산범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날 점심, 초원은 현우의 지갑을 탈탈 털 기세로 염소 고기에 막걸리를 실컷 마시고 돌아오는 내내 차에서 기절한 듯 잤다.
화요일에 출근하자 아름은 단발머리가 되어 있었고 다이어트를 한다며 늘 오던 회식에 오지 않기 시작했다.
특이생물3팀의 홍 주임과 회계과 오 사무관의 썸이 끝났다는 소문은 썸을 탄다는 소문보다 느리게 퍼졌다. 초원은 한동안 사무실 복도로 나갈 때 마주치지 않길 바라며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그때가 차라리 좋을 때였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로부터 3주 후에 생긴 사건 때문에 ‘누구든 쓸데없이 말 걸거나 쳐다보면 죽여 버린다.’는 표정으로 복도를 오가야 했기 때문이다.
초원은 아홉수를 온몸으로 치르고 있었다.
만지지 마세요, 팀장님!
일련번호: KAC-W-004245
안전 등급: 경고(W)
[개체 특징 개요]외형: 인간형 27세 남성. 키 172cm, 체중 65kg, 뿔테 안경 착용
성명: 최은재
거주지: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능력: 여성과의 신체 접촉으로 성적 흥분 및 각인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함
[발견 경위]20XX년 4월 10일 오전 8시경, 마포 대교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남성이 경찰에 의해 진압됨. 남성은 전 여자 친구들의 극심한 스토킹으로 직장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도 불가능하다며 ‘저주받은 몸으로 살 바에야 죽겠다’고 자살 소동을 벌임. 남성은 키스를 한 여성은 홀린 듯 자신에게 빠지고 성관계를 가진 후에는 집착으로까지 변한다며 자신에게 이상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함.
이를 보고 받은 마포경찰서 김영욱 경위가 같은 날 오전 11:30경, 본청 특이생물관리3팀 조승준 팀장에게 인계 신청함. 오후 1시, 3팀 요원 두 명(차현우 주무관, 홍초원 주무관)이 마포경찰서에서 개체를 인계해 옴.
여기까지 타이핑을 마친 초원은 고개를 들어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의 녹음 앱이 제대로 켜져 있는지 확인했다. 테이블 맞은편에는 자신을 인간 최음제라고 주장하는 남자와 현우가 나란히 앉아 면담을 시작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발현된 거죠?”
“정확히는 모르겠고요. 23살 때 모태솔로 탈출을 했는데, 그때 알았어요.”
“그전에는 여성과 신체 접촉을 한 일이 없었나요?”
“제가 남중, 남고, 공대를 나와서요⋯.”
“아⋯.”
“처음엔 되게 좋았는데⋯. 짝사랑했던 여자애들이 키스 한 번만 하면 막 넘어오니까⋯.”
초원은 타이핑을 하다 말고 노트북 화면 너머로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얘들이 절 놔줄 줄 모르더라고요. 지나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점점 수만 많아지더니, 이젠 안 만나 주면 죽을 거라고 협박을 하질 않나.”
남자는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우리 집에도 쳐들어오고⋯. 부모님한테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고 엄청 혼났거든요.”
남자는 부모님 생각이 난 듯 한숨을 푹 쉬더니 오렌지주스로 목을 축였다.
“그러더니 이젠 취직하니까 회사까지 와서 난리를 피우고⋯. 진짜 어렵게 취직했는데, 회사에서 맨날 다른 여자가 와서 뒤집어엎으니까 감당이 안 된다면서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한강으로 가신 건가요?”
“네⋯. 회사도 잘리고 더는 길이 안 보여서. 경찰에 스토킹 신고도 했는데 경찰이 인기 많아 좋겠다며 그냥 웃어넘기고⋯.”
진심으로 우울해 보이는 남자 뒤로 저 멀리 책상에 앉은 병훈이 숨죽여 낄낄댔다. 초원은 조용히 하라는 듯 병훈에게 눈을 흘겼다.
“그런데 그 능력이란 건 어떻게 작용하는 거예요? 그냥 피부 접촉만으로 발현이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만지는 것만으론 안 되거든요. 잘 모르긴 하지만 체액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페로몬 같은 건가요?”
“그건 저도 알 길이 없죠.”
“여자분들이 그 효과를 어떻게 묘사하던가요?”
“그게⋯. 살다 살다 이런 오르⋯, 절정은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남자가 머뭇머뭇 대답하자 저 멀리서 다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흠, 저희가 등록을 하고 최은재 씨가 원하시는 것처럼 여자분들을 피해 숨어 살게 해 드리려면 증거가 필요하거든요.”
“증거요?”
“네, 특이 능력이 있으신 분들은 능력을 증명해 주셔야 등록이 돼요.”
“그러면 증명을 할 때까진 집에 가야 하는 건가요?”
“음, 얼마나 걸리냐에 따라 다른데, 일단 검사부터 받으시고 여자분들 연락처도 좀⋯.”
“그럴 것까지 있나요?”
남자는 벌떡 일어서더니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던 초원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무슨 일인지 깨닫기도 전에 남자의 축축한 입술이 초원의 입에 닿았다.
“웁, 미친⋯.”
초원은 반사적으로 남자를 밀치고 일어나 정강이로 다리 사이를 힘껏 걷어찼다.
“억⋯.”
호신술 수업을 열심히 들은 보람이 있는지 남자는 사타구니를 양손으로 쥐고 바닥에 쓰러졌다.
놀란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현우는 쓰러져 신음하는 남자의 양손을 억지로 등 뒤로 꺾어 붙들었다.
“이 미친놈이⋯.”
밖의 소란에 팀장실 문을 열었던 승준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와 놀란 눈으로 입을 감싸고 서 있는 초원을 보고 팀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초원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무릎이 후들거렸다. 온몸으로 간질간질한 느낌이 퍼지더니 다리 사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리의 힘이 풀려 저도 모르게 주저앉는 순간, 승준이 손을 뻗어 초원의 허리를 잡았지만 실크 블라우스에 손이 미끄러졌다.
“홍 주임, 괜찮습니까? 다쳤어요?”
바닥에 주저앉은 초원은 여전히 입술을 감싸고 있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곳이 아프지도 않은지 앓는 신음 하나 없이, 초점 없는 멍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런데 입술은 대체 왜 감싸고 있는 걸까?
‘물리기라도 한 건가?’
걱정이 된 승준은 초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감싸고 다른 손으로 고개를 살짝 드는 순간, 초원의 몸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