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14
초원은 놀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어째 현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거 말고, 초원 씨 빈 자리가 눈물 나게 슬펐어요.”
“내가 좀 존재감이 어마어마하죠.”
초원은 오해하기 쉬운 그 말을 여느 때처럼 장난스럽게 웃어넘기고 차돌박이를 양념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걱정 마요. 내일 출근할 거니까.”
“더 안 쉬고?”
“아픈 것도 아닌데 뭐 하러요.”
현우는 멍하니 맥주잔을 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 팀장님이 나 한 번만 더 문제 일으키면 지방으로 보낸대요.”
“하하하!”
초원은 한참 먹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 아닌 것 같던데⋯.”
“당연히 농담 아니죠. 그동안 팀장님이 많이 참으시긴 참으셨지.”
“와, 초원 씨는 내 파트너면서 왜 팀장님 편을 들어요? 섭섭하다.”
현우가 풀이 죽은 척 흘겨봤다. 초원은 그것보단 팀장님 편을 들었다는 말이 더 뜨끔했다. 다시 기억의 수면 위로 떠 오르는 망측한 실수를 격렬히 내리누르며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흠, 내가 팀장님이었으면 현우 선배는 이미⋯.”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현우가 코를 찡그리며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초원은 고기 몇 점을 집어 현우의 앞 접시에 놓았다.
“얼른 먹어요. 선배가 사는 거니까.”
초원이 다시 장난스럽게 씨익 웃자 현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 웃더니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팀장님이 나 진짜 지방으로 보내면 초원 씨도 같이 갈래요?”
팀장이 현우를 지방으로 보내겠다고 한 건 초원과 떨어트려 놓겠다는 뜻인 걸 두 사람은 꿈에도 몰랐다.
“사고를 안 치면 되지 왜 벌써 지방으로 쫓겨 갈 생각을 해요?”
내심 좋으면서도 아닌 척하며 고기를 뒤적였다.
“혹시 모르는 거니까⋯. 나랑 같이 갈래요?”
초원은 같이 가자는 그 말이 너무나 달콤해서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유배지에 따라오라니⋯. 나는 참 파트너 복도 지지리 없지.”
“약속한 거예요.”
현우가 활짝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초원이 풋 웃기만 하자 그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잡아 자신의 손가락에 걸었다.
두 사람은 차돌박이가 타는 줄도 모르고 눈을 마주한 채 거울처럼 미소를 지었다.
초원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그래, 지방이 대수인가? 저승이라 하더라도 같이 가야지.’
팀장님, 제발 꿈에서 나가주세요
4월 23일 04:21
울릉도 동북방 43km 해상
종덕은 연신 주름진 손을 비볐다. 4월 말 새벽 바다의 바람이 매서워서가 아니었다. 평생 어부로 살아온 그에게 이쯤은 산들바람이었다.
“아, 거 김 씨 빨랑빨랑 쫌 안 하고⋯.”
선원을 재촉하던 종덕은 남쪽으로 멀어지는 오징어잡이 배 두 척을 흘끗 쳐다봤다.
그물 인양기 돌아가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이윽고 바닷속에 잠겨 있던 그물이 그 묵직한 모습을 드러냈다.
4월 말에 이 정도라니⋯. 겨울에야 잘 잡힐까 말까 하던 오징어가 갑자기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한 건 2주 전 즈음부터였다.
울릉도 어부들 사이에선 중국 어선이 들어와 씨를 말리기 전에 철모르는 오징어를 낚기 위한 몸부림이 격해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법 없이 사는 남자였던 종덕은 해경이 단속을 하건 말건 오징어잡이 배와 손을 잡고 자신의 트롤 어선으로 오징어를 싹쓸이하고 있었다.
선원 하나가 배 위로 끌어 올린 그물 끝의 끈을 당기자 갑작스레 열린 틈으로 오징어와 온갖 생선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오늘도 만선이네.”
“거, 빨리빨리 정리들 하소. 해 뜨기 전에 들어가야지.”
선원들은 갑판 위로 흩어진 어획물을 분주하게 보관 탱크로 쓸어 담기 시작했다.
“어라, 저게 뭐꼬?”
종덕은 김 씨의 손가락이 향한 곳으로 눈을 돌렸다.
오징어 더미 사이로 창백한 팔다리가 뻗어 나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은 머리카락도 미역 줄기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종덕은 장화로 걸리적거리는 오징어를 툭툭 밀치며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 재수 좋은 날인 줄 알았드만 시체가 걸리고 난리고. 바다에 도로 던지삐야지.’
종덕은 장갑을 낀 손으로 창백한 손목을 들어 올렸다. 그때 시체가 꼬물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이익, 이게 뭐꼬?”
60해 넘게 살면서 볼 꼴 못 볼 꼴 다 봐서 더는 놀랄 게 없을 줄 알았던 종덕도 소리를 질렀다.
시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선의 불빛 아래로 연분홍빛 피부가 번들거렸다. 앙증맞게 솟아오른 젖가슴과 둥그런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검은 머리. ‘여자구나.’라고 누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노란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종덕은 어릴 적 할배가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느 날 그물에 인어가 딸려 올라왔다는 이야기. 종덕은 술주정뱅이 노인네의 헛소리라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인어 고기가 불로장생약으로 비싸게 팔린다는 건 한 번 들어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암컷 인어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 재수 좋은 날 맞고만.’
***
“팀장님⋯.”
초원은 대리기사를 부르려 핸드폰을 꺼내는 그의 손을 슬쩍 잡았다.
“우리 잠깐만 이렇게 있으면 안 될까요?”
간절한 눈빛을 본 팀장이 핸드폰을 다시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린 채로 무언가 고민하는 듯 아랫입술을 물었다.
어두운 주차장에 귀뚜라미만 가늘게 울고 있었다.
초원은 가죽 시트를 짚고 있는 팀장의 구릿빛 왼손을 손끝으로 천천히 훑었다. 그의 몸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짧게 자른 손톱부터 은빛 시계를 찬 손목까지, 초원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마디 하나하나 움찔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시트를 굳게 짚고 있던 손의 힘이 풀리자 초원은 그 손을 끌어당겨 두 손으로 감싸듯 쥐었다. 커다란 손바닥을 손끝만으로 원을 그리듯이 간질이자 그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팀장의 반응을 본 초원은 대담해졌다.
옆으로 바짝 다가가 붙들고 있던 손을 제 허리에 감았다. 망설이는 듯하던 손이 허리께를 천천히 더듬기 시작하고, 초원은 오른손을 그의 단단한 허벅지 위로 올렸다. 사타구니에 닿을락 말락 정장 바지 위로 허벅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팀장이 드디어 얼굴을 돌려 초원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의 굳은 표정 그대로였지만, 초원은 똑똑히 보았다. 두 눈 속에서 이글거리는 욕망을.
애타는 얼굴로 팀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가 손을 들어 초원의 뺨을 쓰다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손길은 입술 위를 떠날 줄 몰랐다.
이 뜨거운 손길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이 남자는 알까? 초원은 눈물 글썽글썽한 눈으로 입술을 벌렸다.
“팀장님, 저⋯.”
미처 두 번째 단어를 제대로 뱉기도 전에 팀장의 뜨거운 입술이 초원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단어는 신음이 되어 그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입술을 부드럽게 빨던 그가 아슬아슬하게 닫힌 입술 사이를 혀로 살짝 핥았다. 애가 탄 초원은 망설임 없이 입술을 벌렸다. 입술 너머로 들어온 혀가 초원의 혀에 부드럽게 얽혀 들고 그 짜릿한 전율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야릇했다.
‘팀장님은 키스도 잘하시네. 이 남자 대체 못하는 게 뭘까?’
그 야릇함에 몽롱하게 취해 밭은 숨만 뱉는 그녀에게 그의 입술이 두 번 더 살포시 와 닿았다. 욕정이 아니라 애정처럼 느껴지는 그 키스가 의아했다. 멍하니 가쁜 숨을 고르는 사이 그 뜨거운 입술은 초원의 목덜미에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내일 회사 사람들이 볼 텐데⋯.”
팀장이 입술을 떼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내가 남겼다고 해요. 초원 씨가 누구 건지 똑똑히 알게.”
아찔한 그 말에 초원이 숨을 격하게 들이쉬고, 그는 다시 영역 표시에 몰두했다.
초원은 그런 그의 목덜미를 간질이듯 손끝으로 쓰다듬다가 너른 어깨를 덮고 있는 정장 재킷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순간 그가 고개를 불쑥 들더니 재킷을 휙 벗어 앞좌석으로 던졌다. 거칠게 넥타이도 풀어 던진 그는 초원이 입은 라운드넥 셔츠의 끄트머리를 잡고 위로 거침없이 끌어 올렸다.
속살이 드러나자 부끄러웠다. 가슴골을 가리려던 두 손을 팀장이 한 손으로 휙 낚아채더니, 다른 손으론 엉덩이를 감싸 올렸다.
초원은 순식간에 양손이 묶인 채로 팀장의 허벅지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꼴이 됐다.
툭-
팀장의 능숙한 손길에 브라마저 힘없이 풀렸다. 그제야 그는 손을 놓았다. 손목이 얼얼하다고 느끼는 순간, 커다란 손이 어깨끈을 아래로 젖혔다.
팀장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의 적나라한 시선에 초원은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그가 다시 초원의 손목을 잡아 올렸다.
“왜? 이렇게 예쁜데⋯.”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워요?”
초원은 말없이 수줍게 고개만 끄덕였다.
팀장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초원의 목덜미를 끌어당기더니 입술에 끈적한 키스를 퍼부었다. 커다란 손이 작은 어깨와 등줄기를 집어삼킬 듯 어루만지더니 서서히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뜨거운 손이 가슴을 움켜쥐는 순간 초원은 입술을 떼고 신음을 내질렀다.
“아앗⋯.”
허리를 젖히는 동시에 팀장의 입술이 젖꼭지를 감쌌다. 민감한 돌기가 뜨거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부드럽고 촉촉한 혀가 그 위를 스치자 초원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아, 아흣⋯.”
그의 손과 입이 주는 강렬한 자극에 이성을 잃고 신음하던 그녀는 다리 사이가 젖어 드는 걸 느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엉덩이를 들어 올려 스타킹과 팬티를 아래로 내렸다. 그 모습을 본 팀장이 손을 내려 벨트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그 와중에도 뜨거운 혀가 초원의 살을 빨고 맛보고 있었다.
A라인 스커트 하나만 입은 채로 다시 팀장의 무릎 위에 앉았다. 이제 두 사람의 사이에는 그의 단단한 그곳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적나라하게 그녀를 원하는 상사의 분신을 내려다보던 초원은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다 스커트 아래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아흣⋯.”
스커트 속에서 꼬물거리는 손을 지켜보는 그의 눈빛이 점점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끈적히 젖은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분신을 손에 쥐자 그의 입술 사이로 기분 좋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초원은 손이 델 듯 뜨거운 물건을 잡고 천천히 위아래로 손을 움직였다.
팀장이 눈을 감더니 고개를 뒤로 젖혔다. 초원은 제 손길을 따라 움찔거리는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었다.
팀장은 정신이 없는지 조금 전보다 입술이 느렸다. 초원은 아래와는 달리 점점 힘을 잃는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기분 좋아요?”
그는 몽롱한 눈을 겨우 뜨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손을 멈추자 팀장의 얼굴에 아쉬움이 진하게 새겨졌다.
초원은 살짝 웃어 보이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시트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다.
분신을 세워 잡고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마주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그가 긴장한 얼굴로 꿀꺽 침을 삼켰다. 초원의 허리를 잡은 두 손이 살짝 떨리는 것 같은 건 그녀만의 착각일까?
“흣⋯.”
앙다문 작은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갔다. 잔뜩 젖어 있어서 쉽게 들어갈 거란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머리 굵은 팀장에게 초원은 너무 속 좁은 여자였다.
아픔은 곧 쾌락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리를 한껏 벌리고 엉덩이를 천천히 내렸다. 머리가 겨우 들어오자 초원은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괜찮아요?”
두 손을 내려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초원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그의 조각 같은 얼굴을 어루만졌다.
“곧 익숙해지겠죠.”
그 말에 그는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초원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초원은 두 팔로 그의 목을 감고 서서히 몸을 아래로 내렸다. 이 남자의 뜨거운 분신이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속살을 가르고 들어왔다.
그제야 초원은 그가 아직도 셔츠를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굳게 여며진 옷깃 사이에 손가락을 걸고 이게 뭐냐는 듯 당겼다.
급하게 단추를 풀어 내리는 팀장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평소의 평정심은 어디로 갔는지 안달이 나 서두르는 모습을 보자 괜히 짓궂게 굴고 싶어졌다. 굵은 페니스를 감싼 속살을 강하게 조였다 풀었다.
팀장이 셔츠를 벗다 말고 고개를 들더니 진짜 그럴 거냐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초원은 생긋 웃으며 이너 셔츠를 그의 머리 위로 끌어 올렸다.
둘 사이에 좁은 틈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기세로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맨살에 맞닿는 그의 단단한 몸이 한 여름철 태양처럼 뜨거웠다. 굵은 팔뚝이 초원을 다시는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감싸 안았다.
그렇게 팀장의 단단한 분신에 매달린 채로 초원은 허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꽉 맞물린 몸이 마찰열로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 야릇한 느낌에 몸을 내맡기며 눈을 감았다.
띠띠띠띠, 띠띠띠띠.
눈을 떴다. 보이는 건 팀장의 쾌락에 취한 얼굴이 아니라 익숙한 천장이었다.
“아아아악!”
초원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러다 정말 대머리가 될 지경이었다.
어쩜 하루걸러 한 번씩 이럴까? 그날 이후로 팀장이 나오는 꿈을 수도 없이 꿨다. 매번 장소도, 시간대도 달랐지만, 결말은 항상 똑같았다.
조 팀장과 홍 주임의 번식 활동.
정말 왜 이럴까? 나 홀로 타임도 자주 가지고, 안 하던 요가와 명상도 하고, 지쳐 쓰러질 정도로 한강을 따라 달려보기도 했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오죽하면 정신과 약이라도 먹어 성욕을 감퇴시켜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역효과 나서 더 생생한 꿈을 꿀까 봐 단념했지만.
‘혹시 팀장님이 인큐버스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팀장이 이렇게 초원의 꿈속을 자꾸 벗고 들락날락하는 게 설명이 안 됐다. 아무리 그놈의 페로몬이 강력해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몸에서 다 씻겨 나갔을 거다. 연구소의 보고서에서도 페로몬의 반감기는 5시간밖에 안 된다고 했고. 하지만 초원은 보름 가까이 이 상태였다.
‘이 망할 몸뚱이. 왜 하필 팀장님일까?’
보고서에 따르면 애초에 그 페로몬은 각인 효과도 없단다. 그저 그 압도적인 효과에 집착하게 될 뿐이지.
그럼 대체 초원이 겪는 이 현상은 뭘까? 팀장의 손이 닿는 순간 느낀 그 절정이 그렇게 좋았나 보다. 그걸 또 느끼고 싶었으면 그 망할 개체를 찾아갈 생각이 들어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놈은 생각할수록 역겹기만 하고 팀장은 생각할수록 몸만 달아올랐다. 마음은 여전히 미적지근했지만 말이다.
‘생리 전 주도 아닌데 이게 뭐야.’
초원은 벌떡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옷을 벗어 던지고 찬물을 틀었다. 벗은 몸을 내려다보자 꿈속의 팀장이 한 이런 야한 짓 저런 야한 짓이 떠올랐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머릿속에서 아주 HD로 재방송되고 있었다.
“아아아아, 제발!”
원래 꿈이란 의식이 돌아오면 올수록 흐릿해져야 정상인데, 이건 어째선지 하루 종일 생생했다.
회사에 가서 팀장의 얼굴을 보는 게 민망하고 미안해 죽을 것만 같았다. 부하 직원이 본인을 두고 이런 부적절한 상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경멸할까?
이마가 얼얼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초원은 욕실 벽에 이마를 콩콩 박고 있었다.
초원은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요즘 회사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하는 의식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특관청 직원 몇 명이 곁눈질하는 게 느껴졌다. 평소에 안면을 트고 지내던 남직원 하나가 고개를 까딱했다. 초원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평소였다면 ‘어, 홍 주임님!’, ‘아, 강 주임님!’하고 인사했을 사이였지만, 그 사건 이후로 초원은 입을 다물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출근해서 마주한 건 사람들의 불순한 호기심이었다. 모두가 팀장과 현우의 수준으로 매너가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이상한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는 사람, 뒤에서 키득대는 사람, 평소에 말 한 번 섞어 보지 않아 놓고 괜히 말 거는 사람 등등⋯.
그러고 며칠 뒤에는 연구소에서 메일이 왔다.
4245번 개체 연구의 일환으로 개체에 노출된 초원을 조사하려고 하니 응해 달라는 메일이었다. 심지어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장소와 일시까지 적혀 있었다.
초원은 책상을 뒤집어엎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고 조용히 전달 버튼을 눌렀다. 받는 사람에는 팀장의 메일 주소를 쓰고.
팀장은 메일을 보낸 연구원의 상사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불같이 화냈다. 그다음 날 초원은 그 연구원의 상사의 상사에게서 정중한 사과 메일을 받았다.
칼 같고 무서운 팀장이지만 자기편일 땐 또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그 든든한⋯, 단단한⋯. 하⋯, 왜 또 이러니.
초원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뭐 해요?”
어깨를 두드리는 손의 저 끝에는 현우의 얼굴이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차례를 기다려 안으로 들어갔다. 이 비좁은 공간에 어색하게 껴 있으려니 통조림 속의 꽁치가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아 홍 주임, 오늘 회의 몇 시라 그랬죠?”
“11시요.”
“아, 그 전에 PPT 마무리해야 하는데⋯.”
“아직 다 안 했어요?”
“그냥 마지막 세 장 정도?”
“아, 맞다. 참고 자료 복사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