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17
“들어 오이소.”
겨우 배에서 내렸는데 또 배라니⋯.
요트가 항구를 빠져나가 거친 파도를 가르고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초원의 속이 또 울렁거렸다.
“아이고, 요트가 참 좋네요.”
지청장이 요트를 모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뽑은 지 한 2년 됐나? 그것밖에 안 됐습니다.”
“4호라 돼 있던데. 몇 척이나 더 있습니까?”
“요런 크루즈 요트는 지금 5척 있네예.”
“아이고야, 이거 꽤나 값 나갈낀데⋯.”
“마, 우리 용왕님이 장비병이 좀 있으셔가지고요. 잘 타시지도 않는데⋯.”
“거, 덕분에 우린 이렇게 좋은 배도 타보고 안 좋십니까?”
‘좋긴 뭐가 좋아⋯.’
초원은 멀미를 참으며 속으로 말대꾸를 했다.
“홍 주임, 괜찮아요?”
맞은편에 앉은 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초원은 입을 열었다가 토할 것 같아 고개만 가로저었다.
“멀미 때문이면 누워서 가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선실에 누울 데 있습니까? 우리 요원이 멀미를 하는 것 같은데⋯.”
“저짝에 문으로 들어가서 계단 내려가면 누울 데 있어요.”
초원은 팀장의 부축을 받고 선실로 내려가 소파에 누웠다. 그가 어디선가 담요를 하나 찾아오더니 덮어 줬다. 고마운데 여전히 입을 열면 토할 것 같아서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그렇게 누워서 한 시간쯤 더 갔을까? 요트가 천천히 멈춰 섰다. 초원은 요트가 다시 움직이지 않을까 싶어 잠시 기다리다가 밖에서 나는 낯선 목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켰다.
선실 밖으로 나가자 못 보던 중년의 남자와 젊은 남자 하나가 물에 흠뻑 젖은 채로 검은 옷을 입고 갑판에 서 있었다. 초원은 젊은 남자에게 눈인사를 했다. 코가 유난히 긴 남자는 예전에 청에서 본적이 있었다. 본 모습은 천년 묵은 자라라고 했던가.
초원은 보트 뒤쪽에 서 있는 팀장 옆으로 갔다. 여기가 어디길래 인계 장소로 잡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망망대해뿐이었다.
“아이고 부장님, 오랜만입니다.”
특관청 실장이 중년의 남자와 악수를 했다. 남자들은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하긴, 바닷속에 사는데⋯.’
인어는 젊은 남자와 눈짓으로 대화를 나누더니, 신나게 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초원은 민망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도 민망해서 고개를 돌린 모양이었다. 하필 이럴 때 눈이 마주친 게 더 민망해 초원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순간 요트 옆으로 희끄무레한 게 휙 지나갔다. 자세히 보니 바닷속에서 사람을 닮은 허연 동물 여러 마리가 요트 주변을 둥글게 돌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풍덩 소리가 들려 앞쪽을 보니 인어는 이미 바닷속에서 세상 편한 표정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무사히 일을 마쳤단 생각에 긴장이 풀린 초원은 인어를 향해 미소 지었다.
“참,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로 뵙게 돼서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청 쪽에선 최선을 다해 해결했으니까 용왕님께도 잘 좀 전해 주십쇼.”
실장이 부장이라는 사람의 손을 붙들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순간 미끄덩한 게 초원의 발목을 감았다.
“앗!”
초원은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다의 냉기가 날카롭게 피부 속으로 파고들었다. 팔다리를 허우적댔지만 조금도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무언가 육중한 게 그녀를 당기는 느낌이 들어 시린 눈을 억지로 떴다. 아래를 내려다보다 놀란 초원의 입가로 아까운 숨이 터져 나왔다.
수컷 인어였다. 초원의 발목을 꽉 붙들고 있는 수컷 인어 하나. 그 얼굴에 새겨진 비열한 웃음을 보자 겁이 덜컥 났다. 제 식구가 당한 만큼 갚아 주겠다는 뜻인가?
‘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난 도와주러 왔다고요!’
말이 통하지 않는 초원의 속마음이 인어에게 들릴 리 없었다. 숨이 점점 막혔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무슨 수를 써서든 위로 올라가야 했다.
놈의 팔뚝을 다른 발로 밀어 떨어트리려는 순간, 뒤에서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초원의 허리를 감고 끌어 올렸다. 아래에선 코가 긴 자라가 나타나더니 인어의 귀를 깨물었다. 그 고통에 몸부림을 치던 놈의 손아귀가 느슨해졌다.
“하아, 하아.”
초원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리를 감았던 팔은 이제 훨씬 위로 올라와 있었다. 당장 요트 위로 돌아가는 게 더 중요했던 그녀는 힘을 빼고 팔뚝의 주인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잔뜩 젖은 셔츠 아래로 은색 시계가 비쳤다.
‘팀장님 시계 다 망가졌겠네.’
팀장의 걱정 어린 눈길을 내려다보았다. 감사하다고, 죄송하다고 하고 싶은데 초원은 이가 달달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담요를 있는 대로 둘렀는데도 몸이 덜덜 떨렸다. 추워서 떠는 게 아니었으니까.
“초원 씨⋯.”
초원을 선실 소파에 앉혀 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은 팀장에게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초원은 담요 하나를 걷어 그에게 내밀었다.
“아니, 난 괜찮으니까 초원 씨 덮어요.”
그렇게 말하며 담요를 다시 덮어 주는 팀장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거라도 좀 쓰면 나을라나?”
선장이 등유 난로를 어디선가 꺼내와 켰다.
“감사합니다.”
입이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초원을 대신해 팀장이 인사를 했다.
“가방에 갈아입을 옷 있죠?”
고개를 끄덕이자 팀장이 몸을 일으키더니 선실 밖으로 나갔다.
초원은 바닥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제야 제가 맨발이란 걸 눈치챘다.
‘구두 큰맘 먹고 산 건데⋯. 아직 할부도 남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주인 없이 외로이 바닷속을 헤맬 빨간 구두 생각에 눈물이 터졌다.
눈물을 훔치다가 가방을 들고 선실로 돌아오던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초원의 옆으로 와 앉았다.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던 팀장은 우두커니 앉아만 있더니 두꺼운 담요 위로 초원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초원은 진정이 되기는커녕 더 눈물이 터졌다.
등을 쓰다듬던 손이 어깨에 감기고 초원의 몸을 그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밀어낼 기운이 없었던 그녀를 안고 그는 아이를 어르듯 몸을 흔들었다.
초원은 소금기에 젖은 옷을 벗어 호텔 침대 위로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 안으로 들어가 샤워기를 최대한 뜨겁게 틀자 욕실 안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며 욕조에 웅크리고 앉았다.
자꾸 무겁게 눈앞으로 늘어지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던 왼손가락 끝에 울퉁불퉁한 흉터가 닿았다. 20년 가까이 지나도 흉터의 무뎌진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또 한 번 죽음의 문턱 가까이 다가갔구나.
화가 났다. 왜 나는지도 모르고, 받아 줄 사람도 없는데 초원은 욕조에 홀로 앉아 벽을 보고 화를 냈다.
이내 스스로 한심하단 생각이 들어 샤워기를 끄고 욕조 밖으로 나왔다. 타월로 대충 물기를 닦는데 이마가 아렸다. 김이 서린 거울을 문지르고 들여다봤더니 이마에 작은 혹이 나 있었다. 요트에서 떨어질 때 부딪혔나 보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나와 잠옷을 꺼내 입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유리창 너머로 검은 바다가 거칠게 출렁이고 있었다. 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자 초원은 등을 돌리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려 했지만 속에서 출렁이는 온갖 감정에 휩쓸리기만 했다. 짜증스럽게 이불을 뒤집어쓰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하⋯.”
초원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문을 열자 팀장이 하얀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초원은 표정을 풀었지만 가라앉은 기분이 자꾸만 입꼬리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배 안 고파요? 새벽에 밥 먹고 거의 먹은 게 없을 텐데.”
“별로 입맛이 없어서요.”
“그럴까 봐 전복죽 사 왔는데 한술이라도 떠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내미는 봉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초원은 방문을 조금 더 열었다.
“들어오실래요?”
초원은 팀장이 사다 준 연고를 혹 위에 얇게 바르고 욕실을 나왔다. 그는 창문가 테이블에 음식을 펼쳐 놓고 종이컵에 소주를 따르고 있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자리에 앉으며 빈 종이컵을 내밀었다. 전복죽에 소주라니 생각도 못 해 본 조합이다. 곧바로 컵을 비우고 죽을 한술 떠 입에 넣었다.
“아, 맞다. 잘 먹겠습니다.”
아직도 넋이 나갔는지 염치없이 감사 인사도 까먹었다.
“뭘⋯. 먹을 만해요?”
“맛있네요.”
사실 여전히 입맛이 없었다.
“나는 물회 사 왔는데. 덜어 줄까요?”
“아뇨. 괜찮아요. 오늘은 회가 별로 안 땡기네요.”
씁쓸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역시나 씁쓸하지만 웃음기 없는 표정의 그가 마주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요?”
“근처 횟집에 있다던데⋯.”
“팀장님은 안 가세요?”
“별로⋯. 지금 윗사람 비위 맞춰 줄 기분도 아니라서⋯.”
초원에겐 하늘 같은 윗사람인 팀장도 누군가에겐 아랫사람이긴 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사람은 여기서 아랫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그냥 팀장님이 누군가의 아랫사람이란 게 안 와 닿네요.”
팀장이 피식 웃더니 소주를 들이켰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새삼 어색했다.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 날 때부터 슈트를 입고 태어났을 것 같은데.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팀장이 당황한 듯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초원은 그제야 깨달았다. 얇은 잠옷 아래로 속옷은 하나도 입지 않았다는걸.
평소 같으면 부끄러워서 당장 뭐라도 더 걸쳐 입었겠지만, 오늘은 모든 게 의미 없었다.
‘알 게 뭐야. 팀장님도 성인인데 여자 가슴 이렇게 생긴 거 모를까 봐.’
초원은 전복죽이나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두 사람은 별말 없이 계속 소주를 마셨다. 술기운이 오르니까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더 울적해져 초원은 저도 모르게 푹 한숨을 쉬었다.
“뭍이나 바다나 다 똑같나 봐요. 제일 만만해 보이는 상대한테 분풀이하는 건⋯.”
팀장은 말없이 종이컵만 만지작거렸다. 하긴, 여기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미안해요, 초원 씨. 내가 옆에 있었는데 막지도 못하고⋯.”
문득 기시감이 든 초원은 풋 하고 웃었다.
“차 주임님도 전에 그 소리 했는데.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팀장은 말이 없었다.
“팀장님도 그렇고, 차 주임님도 그렇고 왜 본인 잘못이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제게 일어난 불행에 타인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싫었다. 그런 사람은 하나로도 버거웠다. 다 내 잘못이어서 네가 아픈 것도 모자라 꿈도, 평범한 행복도 포기해야 했다며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지고 사는 엄마만으로도 버거웠다.
“그게 팀장과 파트너의 의무니까. 초원 씨도 차 주임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책하지 않겠어요?”
“그거야 그렇겠죠. 하아, 제 말은⋯. 제가 너무 까칠하게 말했는데, 여튼 제 말은 팀장님 잘못 아니니까 미안해하실 필요 없다는 거였어요.”
이 말마저 까칠했다. 사실은 구해 줘서 고맙다고, 힘들 때마다 이렇게 챙겨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나 진짜 못났다.’
은인 앞에서 쓸데없이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객기나 부리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초원은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초원 씨 피곤한 것 같은데 쉬어요. 난 가 볼게요.”
‘이것 봐. 팀장님도 내가 얼마나 한심하시겠어.’
대답도 못 하고 고개도 못 들고 있었다. 그런데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초원의 손이 제멋대로 그의 손목을 덥석 붙들었다.
“가지 마세요⋯.”
또 바보 같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
“안전 교육 아직 안 받은 사람들은 상반기 끝나기 전까지 완료해 주세요.”
팀장이 회의실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네.”
초원도 교육 아직 안 받은 사람이지만 팀장의 왼손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하는 걸 까먹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목 위의 시계를 바라보다가.
팀장을 처음 만난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손목을 차지하고 있던, 그래서 팀장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던 은색 시계가 울릉도에서의 그날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
초원은 손목 위의 갈색 가죽 밴드를 언짢은 마음으로 응시했다. 다른 시계를 차고 있으니 팀장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못 고친 건가?’
어두운 호텔 방,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창밖의 검은 바다를 응시하던 그의 실루엣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따금 서로 말이 없어지면 옆에 누운 초원의 머리를 쓰다듬던 다정한 손도.
“팀장님⋯.”
“네?”
“죄송해요. 시계 못 쓰게 됐겠네요.”
초원은 허전해 보이는 그의 손목에 손을 조심스레 얹었다.
“괜찮아요. 고치면 되니까.”
그 손을 커다란 손이 덮더니 어르듯 토닥였다.
“수리비는⋯.”
“됐어요. 비싼 것도 아니고.”
초원을 내려다보며 슬며시 웃은 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넘기기 시작했다.
‘비싸 보이던데⋯.’
평소의 그녀라면 타인의 손길이 사적인 부위에 와 닿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마음에 균열이 간 그녀는 작고 나약한 동물처럼 웅크리고 팀장의 따뜻한 손길에 몸을 내맡겼다. 내일이면 타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을 후회하게 될 걸 알면서도.
그의 손길이 왼쪽 귀 뒤편에 닿자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파요?”
“아뇨, 그냥⋯.”
“울퉁불퉁한데, 아까 다친 거예요?”
초원을 내려다보는 두 눈에 진심 어린 걱정이 새겨져 있었다. 어쩐지 그게 마음에 들어 괜히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졌다.
“어릴 때 수술한 자국이에요.”
“수술?”
“뇌종양 때문에⋯.”
“그랬구나. 몰랐네.”
팀장의 입꼬리가 더욱 처졌다. 수술 자국을 덮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더없이 부드러웠다.
“지금은 괜찮아요?”
초원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동정이 아니라 아픔을 느끼는 얼굴이었다. 남들과는 다른 반응에 초원은 울컥했다.
힘들었다. 암에 걸린 후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인생을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려 아등바등 살아왔다. 그 20년을 두고 한마디 소감을 밝히라면 ‘힘들었다.’라고 답할 것이다.
지금까지 ‘힘내.’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힘들었겠다.’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그랬다 할지라도 누가 ‘힘내.’라고 하면 채찍으로 후려쳐진 느낌이었다. 지금도 젖먹던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데 겨우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
그 속을 들여다본 듯한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말에 초원은 또 바보같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나 오늘 정말 왜 이러니.’
들썩이는 어깨에 단단한 팔이 감기더니 흉터 위에 살포시 입술이 닿았다.
‘헉, 팀장님 왜 이러시지?’
오늘 평소 같지 않은 사람은 초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 이건 좀 위험한데⋯.’
빨간 불이 깜빡이는 머릿속과는 달리 몸은 쨍쨍한 그린 라이트였다. 고개를 돌려 입술을 포개고 싶어 하는 몸과 이건 아니라며 팀장을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팀장은 얼굴을 감싼 초원의 손에 입술을 지그시 누르더니 등을 쓰다듬었다.
묘한 행동이 계속 이어지자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갔다. 얼굴을 묻었던 손을 천천히 떼고 눈물을 훔쳤다. 겨우 한 뼘 떨어진 거리에서 팀장이 턱을 괸 채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일 것 같아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