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18
“죄송해요. 저 오늘 좀 제정신이 아니네요.”
“괜찮아요. 힘든 하루였잖아요.”
얼굴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뜨거운 손가락이 쓸어 넘기더니 물기 어린 뺨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초원 씨 잠들 때까지 있어 줄게요.”
눈을 질끈 감았지만 잠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귓속을 울렸다. 등을 애틋하게 쓰다듬고 있는 저 손까지 그 울림이 퍼지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아, 팀장님!”
느닷없는 아름의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초원은 나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회의실을 조심스레 훑어보았지만, 다행히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곧 생일이신데 케이크는 어떤 거로 사드릴까요?”
3팀은 생일인 사람이 원하는 케이크를 사서 다 같이 축하하는 식으로 생일을 챙겼다.
“난 상관없으니까 여러분 먹고 싶은 거로 사세요.”
팀장은 아름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대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도 차 장난 아니다⋯.’
그날 밤과 오늘의 팀장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이 집 잘하네.”
갓 튀겨 나온 돈가스를 한입 베어 문 현우가 감탄했다. 돈가스 귀신인 그가 근처 백화점에 새로 생긴 집에 가 보고 싶다고 해 오늘 저녁은 돈가스였다.
“새우튀김 한 입 먹을래요?”
현우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새우튀김을 집어 내밀었다. 귀하디 귀한 새우튀김의 첫입을 허락하다니.
‘이거, 사랑인가?’
그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풋 웃으며 초원은 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새우튀김을 현우가 망설임 없이 입에 무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초원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또 사소한 행동에 의미 부여하기는⋯.’
초원은 고개를 숙이고 눈앞의 돈가스에나 집중하기 시작했다.
“근데 아까 회의 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했어요?”
초원이 회의 때 멍 때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오늘따라 물어보는 이유가 뭘까? 가끔 이 남자는 이상하게 촉이 좋을 때가 있었다.
“시계요.”
“시계?”
“손목시계.”
“지름신 강림했구나, 하하.”
여기까진 촉이 발달 안 해서 다행이네.
돈가스를 다 먹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 현우가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시계 있는데.”
초원은 그가 가리킨 쇼윈도로 향했다. 진열장 조명 아래로 은빛 손목시계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거 좀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건 남자 시계고 여자 시계는 이쪽인데.”
진열장 반대편을 가리키는 현우에게 초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선물하려고요.”
“아, 초원 씨 아버님 사 드리려고?”
초원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속에서 올라오는 웃음을 참았다.
‘오피스 대디도 아빠는 아빠지.’
몸은 딴소리를 하겠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챙겨 주고 보살펴 주는 팀장은 듬직한 아빠 같은 느낌이었다. 차가워 보여도 부하 직원을 아껴야 할 땐 또 철저히 아끼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마도 그날 밤 팀장이 초원에게 묘한 행동을 한 건 다 팀의 리더로서 부하 직원을 보듬어 준 것뿐일 거다. 그래야만 했다. 그 잘난 팀장이 말단 직원인 데다 가진 것 없는 제게 사적인 흥미를 품고 있을 리가 있나. 규정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분인데 본인의 커리어에 흠만 될 일을 그 완벽하신 분이 할 리가 없지. 초원은 확실한 근거와 논리로 뒷받침된 가장 쉬운 답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만 했다.
‘그러니까 사 드려도 오해는 안 하실 거야.’
마침 팀장의 생일도 다가오니 괜찮을 것 같았다.
‘이걸로 사 드릴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초원은 노란 조명 아래 반짝이는 은빛 시계를 가만히 응시했다.
‘근데 취향에 안 맞으면 어쩌지? 쓰시던 거에 비하면 싸구련데⋯.’
초원의 자그마하고 귀여운 통장 잔고로는 그가 원래 쓰던 브랜드는 시곗줄도 못 살 게 분명했다.
“가요.”
초원은 제 속내를 모른 채 쓸데없이 이 시계 저 시계 비교해 주던 현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초원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 상자에 담긴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히 샀나?’
며칠을 고민하다 팀장의 생일 하루 전인 오늘 ‘에라, 모르겠다.’하고 지른 시계였다. 과감하게 카드를 긁긴 했는데 사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어려운 일일 줄이야.
‘안 좋아하시면 어쩌지? 내가 마음 있다고 생각하셔도 곤란한데.’
초원은 머릿속으로 10,328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보았다.
[경우의 수 #1,046]똑똑, 팀장실 문을 두드리고 살짝 열었다.
“팀장님.”
“네.”
“바쁘세요?”
“네, 지금 좀 바쁜데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오세요.”
“⋯네.”
‘흠, 이거 좀 가능성 있지.’
[경우의 수 #4,391]똑똑, 팀장실 문을 두드리고 살짝 열었다.
“팀장님.”
“네.”
“바쁘세요?”
“아뇨, 무슨 일이죠?”
초원은 책상 앞으로 다가가 선물 상자가 담긴 종이 백을 내밀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아, 안 그래도 괜찮은데.”
“저 때문에 시계 망가진 게 죄송해서요.”
팀장은 말없이 종이 백에 찍힌 브랜드명을 응시하더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흠, 뭐 일단 생각해서 사 준 거니까 고맙게 받을게요. 그런데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세요.”
‘아⋯, 역시 팀장님 수준에 안 맞게 너무 싸구려였구나.’
초원은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으아아아, 이거 최악이다.’
[경우의 수 #9,390]똑똑, 팀장실 문을 두드리고 살짝 열었다.
“팀장님.”
“네.”
“바쁘세요?”
“아뇨, 들어와요.”
팀장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이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종이 백을 내밀었다. 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 나 주는 거예요?”
예상외로 들뜬 반응에 초원은 얼떨떨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종이 백을 받아 든 팀장은 바로 선물을 풀어 보더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시계를 어루만졌다.
“고마워요.”
“마음에 드세요?”
“초원 씨가 사 준 건데 당연하죠.”
애틋한 눈빛으로 초원을 바라보던 팀장이 책상 서랍을 열고 뒤지기 시작했다.
“초원 씨가 날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네.”
서랍 밖으로 나온 손에는 민트색 반지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헐⋯.’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초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초원 씨⋯.”
“자, 잠시만요, 팀장님.”
말리려고 손을 내저었는데 왼손이 덥석 잡혔다.
“초원 씨, 이렇게 회사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어요. 김 차사가 따라오라고 하는 그날까지 하루의 시작과 마지막을 초원 씨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 저기 팀장님⋯.”
“저와 결혼해 주세요.”
반지 케이스가 열리고 거대한 에메랄드 컷 다이아몬드가 그 눈부신 위용을 드러냈다. 초원은 그 반짝임에 눈이 멀어 2캐럿 다이아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약을 했길래 이런 생각을 하냐, 홍초원?’
[경우의 수 #10,328]똑똑, 팀장실 문을 두드리고 살짝 열었다.
“팀장님.”
“네.”
“바쁘세요?”
“아뇨, 들어와요.”
초원은 종이 백을 내밀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팀장이 얼떨떨하지만 기쁜 얼굴로 선물을 받아 들었다.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었다. 상자를 연 팀장이 가만히 시계를 어루만졌다.
“저 때문에 시계 못 쓰게 됐잖아요. 그게 마음에 걸려서⋯.”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대더니 팔짱을 꼈다.
“이거 못 받겠는데?”
“왜요? 김영란법 때문에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다른 거로 바꿔 드릴 수도 있는데.”
“그러죠, 그럼. 사실 내가 받고 싶은 건 따로 있거든.”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초원의 허리를 휘감고 끌어당겼다.
“앗, 팀장님.”
맞닿은 아랫배를 단단한 무언가가 짓눌렀다.
“시계 대신 홍 주임 몸을 가져도 될까?”
“아, 저기⋯.”
“대답은 필요 없어.”
예고 없이 저돌적으로 변한 팀장의 태도에 덜컥 겁이 난 그녀는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썼다. 그는 놔주기는커녕 초원의 몸부림이 더 자극이 되는지 점점 눈빛이 야수의 그것으로 변해 갔다.
“팀장님, 제⋯.”
‘발’은 팀장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모든 게 거칠었다. 초원의 여린 입술을 집어삼키는 입도, 블라우스와 브라를 잡아 뜯고 연한 젖가슴을 움켜쥔 오른손도, 스커트 속을 파고 들어가 스타킹을 찢고 팬티를 아래로 끌어 내리는 왼손도⋯.
도저히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했다고 볼 수 없는 꼴이 된 그녀를 팀장이 책상 끄트머리에 앉히더니 무릎을 꿇었다. 곧 일어날 일이 두려웠던 초원은 허벅지를 힘주어 닫았다.
“벌려요, 홍 주임.”
그의 위압적인 명령에 초원은 숨을 몰아쉬며 애원하듯 고개를 저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팀장 말이 우습나?”
팀장의 두 손이 그녀의 종아리를 우악스럽게 틀어잡고 억지로 벌렸다. 은밀한 치부를 상사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수치심에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곳을 눈빛으로 희롱하던 팀장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젖었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뜨거운 입술이 계곡의 초입을 베어 물듯 삼키더니 축축한 혀가 부풀어 오른 살점을 훑었다. 팀장의 어깨에 걸쳐진 허벅지가 파들파들 떨기 시작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보고만 있었을까?”
얼굴을 든 그가 번들번들하게 젖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틈에 잠시 숨을 고르던 초원은 굵고 긴 손가락 하나가 예고도 없이 숨겨진 속살을 찌르고 들어오자 놀라 허리를 비틀었다.
“하아, 읍⋯.”
입술 사이로 신음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커다란 손이 그녀의 입을 거칠게 틀어막았다.
초원은 자취방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아 눈치 없이 가빠진 숨을 골랐다.
‘음란마귀야 썩 물럿거라!’
언행 불일치의 아이콘인 그녀는 서랍을 열고 검은 천 주머니를 꺼냈다. 결국 선물 상자는 서랍 깊숙이 봉인된 신세로 전락했다.
인사과에 불려가는 지름길
“와, 사무실은 찜통인데 여기만 냉동고네요. 치사해라.”
초원은 소름이 돋은 팔뚝을 연신 문질렀다.
“카디건 가져올걸⋯.”
본청은 전력난이네 뭐네 하며 28도 이하면 에어컨을 못 틀게 하면서 일산 연구소는 펑펑 틀어대고 있었다.
“벗어 줄까요?”
현우가 정장 재킷을 살짝 열며 물었다.
“아뇨, 됐어요. 내가 선배 옷 입고 다니는 것도 웃기잖아요.”
“하긴, 아빠 옷 입은 것 같겠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닌데⋯.’
코너를 돌아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습관적으로 버튼을 누르고 보니 엘리베이터는 6층에 있었다.
‘이거 느린데. 지하 3층까지 오려면 반나절은 걸릴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