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28
“그건 안 되지. 시장 질서 무너지게. 여기 마침 의사 선생님 계시네.”
병훈이 칸막이 너머로 초원을 흘끗 보며 으뜸에게 핀잔을 주었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턱이 없는 초원은 무시하고 제 할 일만 했다.
“여튼 간에 경남지청에 다시 재촉해 봐야지.”
수화기 달칵거리는 소리와 버튼 누르는 소리가 칸막이를 넘어왔다.
“흠⋯. 어, 김 주임님! 본청 생물3팀 박병훈입니다. 오늘은 외근 안 나가셨나 봐요? 자리에 있으시네. 아니, 다름이 아니고⋯. 그 치유 능력자 꼬맹이 일 때문에⋯.”
초원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병훈이 수화기를 귀에 댄 채로 뭐 하냐는 듯 올려다보았다. 으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홍 주임님, 왜 그러십니까?”
“자, 이게 그 꼬맹이 자료야.”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넘겨준 병훈이 현우의 의자를 끌고 와 옆에 앉았다. 초원은 서류철을 열어 첫 장을 재빨리 확인했다.
‘송시온, 7세 남아, 치유 능력자⋯.’
“확실한 거예요? 아무 부작용 없대요?”
병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기록이나 있었던 일을 보면 확실한 것 같은데?”
초원은 기대에 차 떨리는 손으로 자료를 넘기며 급하게 사례 기록을 확인해 보았다.
“얘 능력이 처음 발현된 게, 돌 즈음 같던데. 얘네 할머니 집에서 암 걸려 오늘내일하던 강아지가 어느 날부터 멀쩡하더란 거야. 병원 데려갔더니 암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례 기록 가장 첫 장에 있는 동물병원 검진 기록을 넘기며 초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도 얘네 부모는 얘가 한 일인 줄 몰랐는데 얘 엄마가 꽃게탕 하려고 죽은 꽃게를 사 왔는데 그걸 다 살렸다네?”
“죽은 것도 살려요?”
“응, 근데 너무 상태가 안 좋으면 어렵고. 아, 그러고 없는 건 못 만들어 준대. 근데 차 주임 상태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초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꽃게와 암 말기 강아지도 살리는 애인데 혼수상태인 사람은 충분히 깨우고도 남겠지.
“얘 지금 어디 있는데요?”
“아⋯, 그게 문젠데⋯.”
병훈이 서류철을 다시 가져가 마구 넘기더니 지도 하나를 펴서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손가락을 짚은 곳은 남해 위 어딘가였다. 초원이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자 그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여기 작은 섬이 하나 있는데 사이비 종교 단체 하나가 기도원을 지어 놨거든. 얘 엄마가 종교에 미쳐 가지고 자기 아들이 제2의 메시아라면서 애 아빠 몰래 데려가 버렸대.”
“그럼 어떻게 데려오려고요? 법적으로는 방법이 없대요?”
“여기가 폐쇄적인 데라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데다가 애 아빠가 경찰에 신고도 하고 소송도 걸고 할 거 다 해 봤는데 안 되더래. 그래서 우리한테까지 온 건데⋯. 마침 경찰에서 여길 수사하고 있어서 국정원이라고 뻥 치고 자료를 좀 얻었지.”
병훈은 자료를 넘겨 건물 도면과 기도원 영내가 그려진 지도를 보여 주었다.
“밤에 몰래 들어가서 빼 오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우리 둘만으론 안 되거든.”
그가 으뜸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경남지청에 지원 요청했는데 거기도 요즘 바쁘다네.”
“그럼 내가 가면 되죠. 셋이면 할 만해요?”
“그럼 할 만하지. 몸 작고 가벼운 사람 있으면 눈에도 덜 띄고 애도 우리같이 시커먼 아저씨들보다는 예쁜 누나가 가자고 하면 잘 따라오겠지.”
“그럼 내가 갈게요.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보트랑 장비도 섭외해야 하고 작전도 짜야 하고 2~3일은 최소 걸릴 텐데. 그전에 팀장님 허락부터 받아야지.”
“1~2일로 줄여서 이번 주 내로 갈 수 있을까요?”
“한번 해 보지, 뭐. 차 주임 일인데.”
“팀장님 허락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밀린 일 처리하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 팀장실로 가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초원을 병훈이 팔을 들어 막았다.
“왜요?”
“어, 팀장님 외근 가셔서 아직 안 오셨어.”
“아, 왜 하필 지금⋯.”
“기다리면 오시겠지. 너무 조급해하지 마.”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길이 없었다.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현우를 살리라고 하늘이 내린 기회.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을 꾸역꾸역하며 사무실 입구만 계속 힐끔거렸다. 그렇게 수백 번은 했을 즈음 5시가 넘어 승준이 피곤한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초원은 벌떡 일어나 팀장실로 향했다. 평소라면 팀장이 피곤한 얼굴일 때는 눈치부터 살폈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똑똑.
“네.”
“팀장님.”
문을 살짝 여는데 초원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팀장의 허락만 받으면 착착 준비해서 꼬마를 현우에게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나올 수밖에. 그 얼굴을 보고 의아한 듯 눈썹을 살짝 올린 승준이 책상 앞 의자를 가리켰다.
“들어와요.”
초원은 자리에 앉아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어떻게 운을 떼야 좋을까 고민하는데 승준이 먼저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그러는 그도 조금 전보다는 훨씬 표정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아뇨, 별일 없습니다.”
처음부터 대놓고 작전을 승인해 달라고 온 목적이 현우라고 밝히면 좋을 게 없었다.
“그럼 무슨 일입니까?”
“아, 그 치유 능력자 아이 건 때문인데요.”
승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박 주임이랑 이으뜸 씨가 맡고 있는 거 아닌가?”
“네, 오늘 박 주임님이랑 으뜸 씨가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구출을 못 하고 있다고 들어서요.”
“그래서요?”
어쩐지 그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굳은 것 같은 건 초원의 착각일까?
“굳이 경남지청 지원 기다릴 필요 없이 제가 같이 가면⋯.”
“안 됩니다.”
승준은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딱 잘라 거부했다. 초원은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왜 제대로 생각도 안 해 보고 무조건 안 된다는 걸까?
“어째서죠?”
그는 한참 입을 다물고 초원의 얼굴만 응시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위험하니까.”
고작 그게 이유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저희가 하는 일이 원래 위험한 거 아닌가요?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승준은 또다시 한숨을 크게 쉬더니 의자에 기대며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고는 또 한참을 초원의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차현우 주임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닙니까?”
속내를 들킨 초원은 시선을 내리깔고 보일락 말락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안 된다는 말만은 하지 말았으면⋯.’
“기다리세요, 경남지청에서 지원해 줄 때까지. 그럼 차 주임한테 데려갈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그러다 너무 늦으면 어쩌려고요.”
아무리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애라지만 도박을 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경남지청에 다시 전화해 볼 테니까 홍 주임은 얌전히 기다리세요.”
‘얌전히’라는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초원도 힘든 훈련 다 받고 까다로운 테스트도 다 통과한 요원인데 얌전히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라니.
“설마 제가 여자라서 그러시는 건가요? 박 주임님이나 으뜸 씨한테는 맡기셨잖아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뭔가요?”
“초원 씨, 저번에 울릉도에서 있었던 일 기억 안 납니까?”
그제야 배에서 얼마나 멀미를 했으며 물에 빠져 죽을 뻔하고 결국에는 팀장에게 매달려 울기까지 했다는 게 생각나 초원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육로 작전이면 몰라도 이건 해로 작전입니다.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승준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섬이 육지에서 울릉도만큼 먼 것도 아니었고 저번에 바다에 빠진 건 불운한 사건에 불과했다.
“아무 일이 안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럴 가능성이 100%라면 허락하겠지만 아닌 이상 절대 안 됩니다.”
절대 안 된다니⋯. 남들한텐 잘만 맡길 거면서.
“팀장님, 왜 이렇게 저 과보호하세요? 그게 제 기회를 빼앗아가는 길이라곤 생각 안 하세요?”
“언제는 챙겨 줘서 고맙다더니, 이제는 내가 걸림돌이라는 건가?”
“저한테 잘해 주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승준이 눈을 부릅뜨며 초원을 노려보았다. 못지않게 화가 난 그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은 해야 했다.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사적인 감정 때문에 이러시는 거라면 공사를 구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려보는 승준의 눈빛이 치명상을 입은 맹수의 눈빛 같았다. 초원은 속에서 울컥하는 무언가를 억누르며 그 두 눈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쩐지 그녀의 심장에도 비수가 꽂히는 기분이었다.
“지금 공사 구분 못 하고 관리 대상을 빼돌려 달라는 건 홍 주임 아닌가?”
너무나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정곡을 제대로 찔렸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초원은 말없이 그의 차가운 얼굴을 응시했다.
“마음대로 해요.”
승준이 한숨처럼 말을 내뱉고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초원은 뻔뻔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팀장이 화났을 때의 고정 멘트였던 “나가 봐요.”가 들리지 않았다.
팀장실에서 나오며 문을 닫다가 멈칫했다. 승준은 등을 돌린 채로 허리에 손을 짚고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넓은 등이 오늘따라 외로워 보였다.
초원은 벌써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꼭 가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문을 닫지 못하고 망설였다.
‘죄송해요.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이 현우 선배가 아니라 팀장님이었어도 이랬을 거예요.’
속으로 되뇌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랬다가 이 아슬아슬한 관계가 빠져나오지 못할 수렁으로 곤두박질칠까 두려웠다.
솔직해지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등 뒤로 꽂히는 팀원들의 시선이 느껴져 조용히 문을 닫았다.
현우는 오늘도 약속을 어겼다. 병실은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오늘은 초원이 울지 않았다는 것.
“선배, 며칠만 더 버텨요. 선배 깨울 방법 찾았으니까 며칠만 더 버텨 줘요.”
다시 그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내가 꼭 선배 살려 줄게요.”
***
고무보트에 오른 지 40분이 넘어가자 슬슬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괜찮길래 멀미약이 효과가 있나 싶었더니⋯.
초원은 찬 바닷바람을 들이마시며 검은 바다와 밤하늘이 만날 법한 곳을 응시했다. 달빛이 밝지 않아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검게 울렁이는 바다를 보고 있으니 속에서 멀미와는 다른 무언가가 꾸물대기 시작했다. 숨이 막힐 것 같더니 보트 옆 핸들을 붙든 손이 식은땀에 젖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저기 보이네!”
마주 앉은 병훈이 앞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수평선 위로 듬성듬성 불빛을 밝힌 섬이 그 고개를 드러내고 있었다.
초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곧 단단한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을 테니.
섬 가까이 다가간 보트는 가장 외진 곳으로 향했다. 누군가 모터 소리를 듣거나 보트를 발견하면 이 작전은 끝이었다.
기도원 단지의 반대편에는 험준한 바위 해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리 위성 사진으로 확인해 둔 자갈 해변에 으뜸이 고무보트를 댔다.
초원은 보트가 멈추기 무섭게 구명조끼를 벗고 해변으로 뛰어내렸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뒤이어 으뜸이 따라 내리고 두 사람은 총이며 손전등 같은 장비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조심해. 무슨 일 있음 바로 무전 치고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빠져나오는 거 알지?”
보트에 앉은 채로 병훈이 당부했다. 퇴로는 이 보트 하나뿐이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보트가 발각되면 이 셋은 꼼짝 없이 이 흉흉한 곳에 갇힌 신세가 되는 거였다. 그래서 병훈은 보트를 근처에 띄운 채로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가요.”
병훈이 멀어지는 걸 본 초원과 으뜸은 눈앞에 날카롭게 솟은 바위로 향했다. 다행히도 암벽 등반 수준은 아니어서 둘 다 쉽게 오를 수 있었다.
둘은 작은 손전등 빛에 의존해 우거진 수풀을 지났다. 자정을 넘긴 시각, 숲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수풀을 넘자 기도원 건물이 하나둘씩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영내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어 손전등은 필요 없었지만 그만큼 들킬 위험도 컸다. 아이가 있는 전원주택 건물은 여기서 300m 떨어져 있었다. 두 요원은 눈을 피해 숲속에서 건물을 따라 걸었다.
한 절반쯤 갔을까, 멀리 건물 뒤편에서 웅얼웅얼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던 그들은 말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길에서 떨어져 숨기로 했다. 경사진 땅이 부드러워 발아래로 푹푹 꺼졌다. 겨우 위로 올라가 수풀 뒤에 숨자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길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목사님. 이 늦은 밤까지⋯. 그래도 장사 잘돼서 좋으시겠어요.”
‘장사?’
종교 단체라 하지 않았나? 하긴 사이비라면 신도들 착취하는 걸 장사라 부를 만도 했다.
“쓰읍, 이 사람아. 장사라니. 사역이지.”
“아, 그렇죠. 다 목사님 덕분에 수두룩한 사람들이 명줄 늘리는 거 아닙⋯.”
후두둑.
땅이 무너지면서 밟고 있던 돌멩이가 비탈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같이 미끄러지던 초원은 으뜸이 순발력 있게 잡아 준 덕분에 돌멩이와 같이 굴러가는 신세를 면했다.
“뭐야?”
안도한 것도 잠시, 두 사람이 이쪽으로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숲으로 더 들어가기엔 너무 늦었다. 두 사람은 이미 비탈 아래 길가로 와 있었다.
“누가 있나?”
“산짐승 아닐까요?”
달리 방법이 없었던 초원과 으뜸은 몸을 더욱 숙였다. 목사라 불린 남자가 수풀 쪽을 응시하더니 비탈 바로 아래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초원의 머릿속으로 들켰을 때를 대비한 온갖 대처법이 떠올랐지만 적당한 게 없었다.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귓가를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욱 숨을 죽였다.
“캬아옹!”
느닷없이 남자의 옆으로 검은 고양이 하나가 나타나더니 길을 가로질러 주차된 트럭 아래로 사라졌다.
“와 씨,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떨어지면 주워서 냉큼 팔아야지.”
“하하하, 목사님도 참.”
남자들은 허허 웃으며 길 저 아래로 사라졌다.
두 사람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 더 걷다 보니 저 멀리 조그만 밭과 그 옆의 전원주택이 보였다.
계속 숲을 따라 밭을 돌아 주택 뒤편으로 갔다. 높은 담이 주택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다행히 CCTV나 철조망 같은 건 없었다. 담 너머로 아무도, 심지어는 그 흔한 집 지키는 개도 없는 걸 확인하고 둘은 담을 넘었다.
2층짜리 전원주택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현관 근처 1층 한구석만 제외하면.
이 기도원에 있다가 탈출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메시아라고 불리는 아이는 작은 발코니가 있는 방을 쓴다. 이 주택에 발코니는 두 개. 그중 작은 쪽으로 향했다.
초원이 위로 올라가기로 하고 으뜸의 목말을 탔다.
‘으, 이럴 줄 알았음 다이어트 좀 할걸⋯.’
그래도 으뜸의 체력이 좋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초원은 난간을 붙잡았다.
유리문 너머 동태를 살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작은 침대나 옷장 같은 가구가 있었고 바닥에는 장난감이 마구 흐트러져 있었다.
‘이 방 맞구나.’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걸 확인한 후 난간을 붙들고 발코니 위로 몸을 끌어 올렸다.
유리 너머로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한쪽에 놓인 침대에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자료에서 본 그 얼굴이 맞는 듯했다.
미닫이 유리문을 살짝 밀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옅게 한숨을 쉰 초원은 잠시 고민했다. 밖에서 잠금장치를 열 방법이 있긴 했지만 시간이 걸렸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인적은 조금도 없었다. 아래층에 불이 켜져 있긴 했지만 이곳과는 멀었다.
초원은 ‘예쁜 누나’ 작전이 먹히길 간절히 바라며 유리를 살짝 두드렸다.
네 번쯤 두드렸을 때 아이가 뒤척이더니 눈을 떴다. 그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에게 최대한 무해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한쪽 팔에 강아지 인형을 끌어안은 채로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유리문 앞에 서서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는 아이에게 속삭였다.
“안녕. 이모 추운데 문 좀 열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