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35
‘아, 진짜 이 남자는 또 왜 저래⋯. 신경 쓰이게스리⋯.’
나는 한숨을 쉬며 문으로 향했다.
“팀장님은 여기 계세요. 저는 나가서 선배 깨어났다고 얘기하고 올게요.”
분주하게 움직이던 의사와 간호사가 하나둘씩 병실 밖으로 나갔다. 팀장님과 나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 선배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네⋯.”
살 것 같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빈 물잔을 병상 옆 테이블에 놓던 선배가 흰 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걸로 선배 살린 거예요.”
“아⋯.”
그 말에 꽃을 집어 든 선배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이런 거 처음 보는데⋯. 이거 뭐예요?”
“혼살이꽃이래요. 서천꽃밭에 피는⋯.”
“서천꽃밭? 이걸 어떻게 구했어요?”
거기 아무나 못 가는 걸 선배도 알고 있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팀장님이 구해 오셨어요.”
이제는 입까지 쩍 벌리며 놀란 선배가 팀장님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팀장님은 무덤덤하게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선배, 또 장산범인지 뭔지 쫓아다니기만⋯.”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이고, 우리 아들!”
현우 선배 어머님이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셨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어머님의 목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아버님과 함께 걸어 들어오는 젊은 여자를 보고 멈칫했다.
‘아⋯.’
앙증맞아 보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를 본 선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이고, 우리 현우. 연주 오니까 깨어난 것 좀 봐. 연주 덕에 살았네.”
‘이 아줌마가 진짜 뭐라는 거야?’
“응? 연주야. 현우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으면 네가 한국 땅 밟자마자 깨어난 것 좀 봐라.”
우리 팀장님이 기껏 고생해서 현우 선배 살려 놨는데 저 여자가 대체 한 게 뭐 있다고⋯. 이 아줌마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지 못해 아줌마와 현우 선배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이글거리는 내 시선을 눈치챈 선배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현우야, 너 진짜⋯.”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던 여자가 병상으로 다가가더니 선배의 품에 안겼다. 선배는 깁스를 하지 않은 팔을 들어 감싸 안더니 그녀의 머리에 고개를 묻었다.
어? 이상하다.
이거 마음이 아파야 하는 장면 아닌가? 이상하리만치 홀가분했다.
‘그렇구나⋯.’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애초에 저 자리는 내 자리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내 자리가 될 수 없으며 이제는 준다 해도 싫다는 것을.
현우 선배에게 연주 씨가 아닌 여자는 아무 의미 없듯, 나 아닌 여자는 아무 의미 없다는 남자가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것을.
갑자기 등 한가운데로 손이 와 닿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리 없는 팀장은 내가 마음 아파한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본인의 아픈 마음이나 살필 것이지⋯. 이 바보 같은 남자는 걱정 어린 눈길로 내 눈치를 살피며 등을 달래듯 쓰다듬고 있었다.
‘이럴 필요 없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손을 붙잡아 단단히 깍지를 꼈다.
“우리는 이제 가요.”
귓가에 속삭이며 문을 향해 손을 잡아끌었다.
팀장님과 손을 잡고 나란히 병원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
내 사전에서 ‘우리’라는 말은 이제부터 조승준이라는 남자와 나로 정의하기로 했다.
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집 앞에 차가 멈춰서고 엔진 소리가 잦아들었다. 가로등 불 아래, 텅 빈 골목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팀장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팀장님.”
“네?”
“이 빚을 어떻게 갚죠?”
“갚을 필요 없어요.”
팀장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뭘 바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초원 씨가 빚진 것도 아니고.”
이 남자는 진짜⋯. 고생해서 구해 왔을 게 뻔한데 생색도 실컷 내고 자기 몫 좀 챙길 것이지. 그것도 좋아하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를 살리겠다고 미련하게 이 짓을⋯.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왜, 왜 울어요?”
내가 훌쩍이며 눈가를 훔치기 시작하자 당황한 듯 팀장이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붙들었다.
“팀장님⋯.”
“왜 그래요?”
“현우 선배가 대체 뭐라고 한심한 짓 다 하고 다닌 저도 참 바보 같은데⋯.”
마주 보는 팀장님의 입꼬리가 잔뜩 아래로 처졌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사서 고생하시는 팀장님은 더 바보 같아요.”
그 말을 내뱉고 나니 울음이 더 터져 나왔다.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 팀장이 나를 끌어당겨 단단히 안았다. 나는 두 팔로 그의 목을 휘감았다.
“그럼 바보 하지, 뭐. 초원 씨밖에 모르는 바보.”
팀장님의 어깨에 매달려 울던 나는 그 말에 풋 웃음을 터트렸다.
‘나밖에 모르는 바보라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네.’
나는 그의 품에 기댄 채로 계속 훌쩍였다. 내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던 팀장이 고개를 기울여 머리에 입을 맞췄다.
“울지 마요. 초원 씨 울지 말라고 한 일인데 이렇게 울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
그제야 고개를 들고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런 나를 팀장이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괜찮다는 듯 씨익 웃은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두 뺨을 감쌌다.
“팀장님, 약속해 주세요.”
“응?”
“다시는 이런 일 안 한다고요. 저 때문에 희생하지도 말고 말없이 사라지지도 말고요, 네?”
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팀장은 손을 들어 내 눈가를 훔치며 되물었다.
“왜?”
“하, 왜라뇨⋯.”
“난 희생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
“진짜, 팀장님⋯.”
이 바보 같은 남자 정말 어쩌면 좋을까.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삼켰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맞췄다. 여전히 걱정 어린 그 시선이 여과 없이 내 심장에 박히고,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를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 주 내내 팀장님 생각밖에 안 났어요.”
바보같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뜨거워지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걸 꾸욱 참고 한숨처럼 진심을 토해 냈다.
“걱정돼서 죽을 것 같았어요. 너무 보고 싶어서 잠도 못 잤어요.”
내 목소리만큼이나 팀장님의 눈동자도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신 안 이런다고 약속해 주세요.”
팀장은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내 얼굴이 점점 다가가는 만큼 그의 입꼬리도 점점 올라갔다.
살포시 맞댄 내 입술을 그의 입술이 포근하게 감싸고 나는 그 부드러운 감촉에 매달려 모든 걸 잊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 나와 이 남자, 우리 둘뿐이었다.
숨이 가빠 마지못해 입술을 뗐을 때 팀장이 열에 달뜬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웃었다.
“이런 일 다신 없을 거라더니 작심 사일이네.”
“키스는 그런 일로 안 치거든요.”
우리는 마주 보고 피식 웃었다. 코끝이 부드럽게 서로를 스치기 시작했다.
“흠, 그렇다는 건 키스는 마음껏 해도 된다는 뜻인가?”
“제 마음껏이요. 팀장님 마음껏 말고⋯.”
“치사하게 그런 법이 어딨나?”
이번에는 팀장이 내 얼굴을 움켜쥐고 입술을 겹쳐 왔다.
“흠, 홍 주임.”
손을 흔들어 주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느닷없이 팀장이 나를 ‘홍 주임’이라고 불렀다.
“네?”
“상사가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라면 먹고 갈래요?’ 뭐 이렇게 묻는 게 예의 아닌가?”
팀장은 팔짱을 끼고 능글맞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 은근하고도 노골적인 말에 웃음부터 터트린 나는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눈을 흘겼다.
“내기 아직 안 끝났거든요?”
이제 시작한 지 겨우 4일째인데 내가 그렇게 쉽게 질 줄 알고?
“그게 아니고⋯. 나 진짜 배고픈데 라면 두 개만 끓여 주면 안 되나?”
순식간에 전략을 바꿨는지 능글맞은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불쌍한 표정이 얼굴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아 진짜, 이런 거에 마음 약해지면 안 되는데⋯.’
못 믿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팀장은 정말 허기진 사람처럼 배를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진짠데⋯. 나 저녁도 못 먹었거든.”
정말, 이게 뭐라고 끼니까지 거르면서⋯. 나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진짜 라면만 먹을 거죠?”
“먹는 김에 후식으로 초원 씨도⋯.”
“안 됩니다, 팀장님.”
평소의 팀장답지 않게 아랫입술을 비죽 내미는 그를 보고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밀었다. 뿌듯하게 웃으며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그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이 남자 은근히 귀엽네.’
회사에서는 농담 비슷한 것조차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고 무뚝뚝, 노잼 그 자체이던 남자인데⋯. 거대한 빙산 같은 이 남자, 수면 아래에는 어떤 모습이 더 숨어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랑 타령은 퇴근 후에
승준은 작은 투명 케이스에 든 물건을 말없이 응시했다.
‘겨우 100원?’
고작 100원짜리를 가지고 서로 멱살 잡고 싸우다 집에 불을 지르다니. 세상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천지였다.
고개를 들고 회의실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화분을 바라보았다. 30cm 정도 높이의 식물, 아니 식물이라기에는 기괴한 회색빛인 생물에는 콩깍지 같은 게 열 개 정도 달려 있었다. 깍지 하나에 100원짜리 세 개니까 저 돈 나무 하나에 30개, 겨우 3,000원이었다.
‘만 원짜리면 이해하겠는데⋯.’
이걸 갖겠다고 싸운 발견자들도 이해가 안 되지만 이걸 맡겠다고 싸우려 드는 특이물체1팀 팀장은 더 이해가 안 됐다.
‘마누라 몰래 비상금이라도 챙길 생각인가⋯.’
“아니, 씨앗은 물체죠.”
식물은 생물이니까 이쪽에서 맡는다는 특이생물관리과 과장 말에 특이물체1팀 팀장이 열을 내며 우기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서로 맡기 싫어서 싸우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서로 맡겠다고 난리라니.
“그러니까 우리 쪽에서 100원짜리 다 수거해서 처리할 테니까⋯. 거, 조승준 팀장 쪽에서 남은 식물은 폐기하든가 연구소 갖다 주면 조 팀장도 편하고 좋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항상 일손은 부족하고 일은 넘치는 3팀이었다. 이렇게 귀찮은 일을 안 맡을 수 있으면 좋은 거지만, 저 빤히 보이는 속셈이 괘씸해서 순순히 넘어가 줄 순 없었다.
승준은 핸드폰으로 검색해 둔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씨앗은 생물입니다. 겨울잠 같은 깊은 휴면 상태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생장할 수 있고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식물의 씨앗은 동물의 배아에 해당합니다.”
1팀 팀장이 한숨을 쉬더니 못마땅한 듯 인상을 구겼다.
“정 팀장님 말씀대로 이 씨앗이 물체면⋯.”
승준은 손에 든 투명 케이스를 살짝 흔들었다.
“그럼 겨울잠 자는 곰은 앞으로 물체팀에서 맡으실 겁니까?”
“그래서 우리 팀에서 맡게 됐으니까 한동안 수고 좀 해 주세요.”
승준은 회의실에 앉아 3팀 팀원들을 둘러보며 당부했다.
“이거 그냥 연구소에 가서 맡기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 팀장님?”
‘한동안’이라는 말에 희경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좋겠지만 발견자들이 이미 써 버린 동전이 많아서⋯.”
회의실 테이블 양쪽에서 동시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걸 다 어느 세월에 수거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돈 나무 뺏기고 발견자들 속 좀 쓰리겠는데요.”
병훈이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화분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뭐, 그 사람들은 이미 연구소에서 기억 억제술을 받았으니까⋯.”
사회 안정을 위해 일반 시민들은 초자연 현상을 몰라야만 했다. 그래서 현상에 노출된 일반인은 기억 억제술을 받는 게 원칙이었다. 가끔은 특관청 직원들도 받아야 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리고 위폐 유통으로 처벌 안 받는 것만 해도 다행이죠.”
이 건에 사법 절차를 진행한다는 건 대중들에게 ‘여러분, 돈 나무가 진짜 있습니다!’라고 떠벌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럼 수거는 어떤 식으로 하나요?”
초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승준은 입술을 한층 굳게 다물었다. 망할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흠흠, 그건 한국은행에 가서 직접 분류해서 수거하면 됩니다.”
“직접요?”
아직 누가 맡을지 말도 안 했는데 나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초원의 입꼬리가 축 늘어졌다. 그 슬픈 강아지 같은 눈을 깜빡이는 그녀를 보며 승준은 속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금은 안 돼.’
초원이 저렇게 큰 눈을 깜빡이며 쳐다볼 때마다 얼굴을 움켜쥐고 키스를 퍼붓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그녀는 알 턱이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고 테이블 위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장비를 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방사선 노출 문제도 있고⋯. 여기 불임 되고 싶은 사람 없잖아요?”
순간 펜을 놀리던 초원의 손가락이 멈췄지만 승준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 하필 가장 아픈 곳을 찌르고 들어왔다.
“수작업이 귀찮기는 하지만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으니까⋯.”
승준은 앞에 놓인 투명 케이스를 열어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들었다.
“씨앗은 전부 1998년도가 찍혀 있고 여기 가장자리를 보면 꼬투리에서 떼어 낸 자국이 있습니다.”
팀원들이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호기심이 인 현우는 깁스를 하지 않은 손으로 지갑을 꺼내 동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거 참고삼아서 분류 작업하세요.”
승준은 씨앗을 다시 케이스에 넣고 희경을 향해 밀었다. 희경이 이걸 왜 자신에게 주냐는 듯 눈썹을 꿈틀거리며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타 부처에 요원만 보내기도 그렇고 둘보다는 셋이 나을 테니 안 사무관이 맡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