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56
“아, 그날 그건⋯.”
초원은 현우가 필요 없는 해명, 어쩌면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말을 잘랐다.
“선배의 마음속에서 연주 씨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는데 그제야 깨달았죠.”
고개를 들고 현우를 바라보는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난 남의 자리를 대신 채우고 싶진 않다는 걸요.”
“남의 자리라니⋯.”
다시 방 안에 씁쓸한 적막이 감돌았다. 현우가 반박할 말을 고르는 사이 초원은 어떻게 전해야 현우가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렇잖아요. 내가 선배랑 만났어도⋯.”
고민을 먼저 끝낸 건 초원이었다.
“⋯선배 마음속의 1순위는 항상 연주 씨였을 거예요. 난 그걸 보며 앓았을 거고 선배랑 나는 불행한 연애를 했겠죠.”
“왜 그렇게 단정해요? 나도 확실히 정리했을 텐데.”
“그래도 난 혼자서 불안해했을 거예요.”
달리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입속으로 감도는 쓴맛은 커피 탓일 거라고 현우는 자신을 속였다.
두 사람은 말없이 커피 병만 기울이며 조금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는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다.
초원의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누구인지는 안 물어도 뻔했다.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고 핸드폰 화면 위로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는 그녀를 현우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하필 팀장님이에요? 다른 남자들한테는 꿈쩍도 않더니⋯.”
“팀장님은 다르니까요.”
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돌아보는 초원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웃어도 나 때문이고 화를 내도 나 때문이고.”
바보같이 웃는 얼굴도, 그보다 더 바보같이 화내는 얼굴도 하나같이 귀여웠다. 그 의외의 매력을 항상 무표정한 가면 속에 숨기고 다니다가 자신과 있을 때만 벗어던지고 발산하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 앞에서 초원은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가 된 우쭐함마저 느끼곤 했다.
“사랑인지 아닌지 의심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얼굴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이 남자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절절하게 느껴지니까.”
초원은 손에 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야식 사다 줄게요.] [멀고 피곤하잖아요. 얼른 집에 가서 자요.] [뭐 먹고 싶은지 얘기해요. 안 그럼 빈손으로 갈 거예요.]떨어져 있는 지금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차가운 기계와 일견 차가워 보이는 말투 너머로 따뜻한 애정이 진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치킨! 치킨! 반반 무 많이! +_+]초원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함께 있는 순간마다 내가 얼마나 운 좋은 여자인지 감탄하게 된달까⋯.”
초원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우에 대한 지난 마음을 고백할 때 씁쓸하고도 담담하던 그 눈빛은 승준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자취를 감췄다는걸. 꿈꾸는 열아홉 소녀처럼 반짝이는 저 눈빛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여자의 눈이었다.
“내가 보기엔 팀장님이 운 좋은 남자네요.”
저 눈빛이 자신을 향했던 적도 있었을까? 현우는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커피를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난 항상 잡히지 않는 것만 쫓는 바보고요.”
더는 커피 탓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씁쓸함에 현우의 심장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나도 사랑해요
초원은 황금 같은 토요일을 침대에서 다 보낼 셈인 모양이었다. 승준이 사다 준 치킨으로 버틴 당직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내내 기절한 듯 자더니 집에 와서는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쓰러졌다.
점심때가 한참 지나도 일어날 기미가 없어 생존 확인을 하러 2층으로 올라갔던 승준도 결국엔 침대 신세가 됐다.
‘이 여자 잠 깨우러 왔다가 엉뚱한 것만 깨웠네.’
힘이 빠지는지 초원의 엉덩이가 자꾸 아래로 무너졌다. 그와 반대로 목이 아파 보일 정도로 위로 들린 머리에서는 가쁜 숨소리와 자지러지는 신음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승준은 엎드려 누운 여자의 벌거벗은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 뜨거운 손길이 훑고 지나갈 때마다 절정의 여운에 푹 젖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거칠던 숨소리가 점점 제 리듬을 찾아가고, 이만큼 기다렸으면 됐다 싶었던 그는 그녀의 골반을 단단히 잡고 엉덩이를 위로 들어 올렸다.
“아! 승준 씨.”
초원이 손을 불쑥 뒤로 뻗더니 골반을 감싼 손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왜?”
먹을 만큼 먹었다는 듯 자신을 툭 뱉어 낸 이 여우 같은 아랫입에 성이 날 대로 난 분신을 다시 물려 주던 그는 마지못해 움직임을 멈췄다.
“나 죽을 것 같은데⋯.”
입가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승준은 간절한 애원을 가볍게 무시하고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럼 텀을 좀 늘려 볼까?’
각도를 틀어 예민한 곳을 피해 가며 분신을 속살에 스쳤다. 아무리 피한다 해도 이 자세는 한계가 있었다. 뒤로 할수록 잘 느끼는 여자인지라 배 속은 지치지도 않는지 다시 찌릿찌릿 불꽃을 튀기며 달아올랐다.
“하아, 나 지금 몇 번이나 느낀 줄 알아요?”
“글쎄? 몇 번인데?”
“몰라요. 일곱 번째부터 세다가 말았어요.”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린 승준은 상체를 앞으로 숙여 가녀린 어깨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그 바람에 각도가 달라진 그의 물건이 예민하게 부풀어 오른 곳을 꾸욱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자극의 포화에 긴장한 초원의 등이 뻣뻣하게 굳었다.
몸을 들어 올린 승준은 그 작은 등에 도드라지는 뼈의 윤곽을 달래듯 손으로 훑었다.
“하아, 진짜⋯. 안 좋아요? 아님 참는 거예요?”
오늘따라 유독 오래 가는 이 남자 때문에 잠으로 겨우 비축한 에너지가 깬 지 1시간도 안 돼 다 방전될 참이었다.
“좋아 미칠 것 같은데⋯.”
그 말을 몸으로 보여 주겠다는 듯 그는 단단히 붙들고 있던 고삐를 놓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속살을 단단한 것이 마구잡이로 치고 들어오자 초원의 하체는 또 힘을 잃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승준은 골반을 받쳐 든 두 손에 더욱 힘을 실었다.
“아흣⋯.”
아랫배가 아플 정도로 그의 몸을 비틀어 쥐고, 초원은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베개 끄트머리를 꼬옥 그러쥐었다.
벼랑 끝에서 겨우겨우 이성을 부여잡고 버티던 그녀는 벌어진 꽃잎 사이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돌기에 뜨거운 손가락이 와 닿는 순간, 더는 참지 못하고 거센 쾌락 속으로 몸을 던졌다.
“흑, 승준 씨⋯. 진짜⋯.”
초원은 여전히 승준의 분신이 깊숙이 박힌 채로 온몸을 바들거리며 흐느꼈다.
“아, 진짜 이대로 더 하면 다음번은 귀접이에요.”
등 뒤로 낮은 웃음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축 늘어진 몸을 침대 위로 내려놓은 승준은 그녀의 매끈한 등에 가슴을 포갰다.
“그만할까?”
“아직 안 끝났어요?”
물어 뭐 할까? 다리 사이에 파묻힌 짐승은 여전히 건재한 듯 속살을 톡톡 건드리며 불끈대고 있었다.
“그냥 참지 말고 끝내요.”
“왜?”
“아, 이놈의 ‘왜?’”
초원은 엉덩이를 비틀어 박힌 물건을 밀어냈다.
“내가 위로 올라갈래요.”
이대로 하면 이 남자는 작정하고 그녀의 절정 버튼을 눌러댈 테니, 그가 정상에 오를 때까지 초원은 수도 없이 산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런 하극상은 언제나 환영이지.”
팀장 위의 주임. 그 싫을 리 없는 하극상에 승준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벌러덩 몸을 뒤집어 바로 누운 그의 위로 초원이 올라왔다.
어서 삼켜 달라고 애걸하는 그의 분신을 손에 쥔 그녀는 다리를 한껏 벌리고 끈적하게 젖은 속살 깊숙이 분신을 머금었다. 허리를 살살 돌리며 분신의 뿌리부터 머리끝까지 자극하던 초원이 얼굴을 찡그리더니 치렁치렁한 머리를 쓸어 올리기 시작했다.
협탁에 있는 머리끈을 집어다 줄까 했던 승준은 1초도 안 돼 마음을 바꿨다. 두 팔을 머리 뒤로 올리고 머리카락을 틀어쥔 채로 허리를 흔드는 여자의 야릇한 모습이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대학생이던 시절, 이탈리아의 어떤 박물관에서 보았던 대리석 조각을 떠올렸다. 당장 살아 움직일 듯 매끄러운 살결과 육감적인 자태를 자랑하던 걸작품이 지금 그의 아랫배에 앉아 있었다.
어깨가 뒤로 젖혀지며 뽀얀 가슴이 탐스럽게 부풀어 올랐다. 승준은 한층 도드라진 몸의 곡선을 손으로 훑으며 올라가다 물결치듯 흔들리며 그를 유혹하는 젖가슴을 두 손 가득 움켜쥐었다.
“아⋯.”
줄곧 감고 있던 눈을 뜬 초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얼굴에는 바보 같은 미소를 잔뜩 머금고 경이에 찬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 앞에서 초원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민망하게⋯.”
“민망한 사람치고는 허리가 아주 잘 돌아가는데?”
초원은 머리를 틀어쥐고 있던 손 하나를 내려 승준의 젖꼭지를 꼬집었다.
“아!”
“집중해요.”
“내가 집중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줄까?”
초원의 골반을 덥석 잡은 승준은 예고도 없이 재빠르게 허리를 위로 쳐올렸다.
“아, 아!”
그가 사정없이 치고 있는 건 속살만이 아니었다. 치골이 세차게 부딪힐 때마다 초원의 몸은 벼락이 내리치는 듯 움찔댔다.
“자, 잠깐만! 아, 안 돼요.”
초원은 숨을 헐떡이며 두 손으로 그의 아랫배를 눌러 내렸다.
“왜?”
“내가, 내가 하기로 했잖아요.”
“그래요, 그럼.”
눈가가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한 그녀와는 달리 승준은 여유만만하게 깍지 낀 두 손을 뒤통수에 대고 누웠다.
한 손으론 머리카락을, 다른 손으론 승준의 허리를 잡은 채로 초원은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초원 씨, 하아⋯ 참 야한 여자야.”
“아흑⋯.”
초원의 리듬에 맞춰 승준이 가볍게 엉덩이를 튕기고, 붉은 입술 사이로 신음은 속절없이 새어 나갔다.
“평소에 회사에선 남직원들한테 그렇게 쌀쌀맞으면서⋯.”
“아, 승준 씨⋯.”
“내 위에 이렇게 올라타서 격하게 허리를 흔들고 있을 줄 누가 알겠어.”
“아흣⋯.”
뜨겁고도 보드라운 속살이 그의 분신을 꽉 물더니 초원의 허벅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보내 준다더니 왜 혼자 가고 있어?”
절정의 물결에 휩쓸려 힘을 잃고 뒤로 쓰러지는 그녀를 승준은 몸을 벌떡 일으켜 붙잡았다.
“하아⋯ 느껴지는 걸 어떡해요.”
주인 잃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축 늘어진 몸을 끌어안고 그는 목덜미부터 어깨까지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이젠, 더 못 해요.”
“사실 난 아까 끝났는데.”
“뭐야? 말을 해야죠!”
복수랍시고 맨 어깨 위로 이를 잘근대는 여자를 끌어안고 승준은 속삭였다.
“귀여워 죽겠네.”
달아올랐던 몸이 다 식고도 두 사람은 끌어안은 채 침대를 벗어날 줄을 몰랐다.
“저녁 뭐 먹을래요?”
“떡볶이⋯.”
“뭐 넣고?”
떡볶이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뭘 넣으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초원이 고민하는 사이, 협탁 위에 놓인 승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네.”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벌떡 몸을 일으키고 엉겁결에 초원도 일어나 앉았다.
“그럼 당장 격리 조치 들어가 주세요. 위험 등급이니 작전 주의해서 해 주시고요.”
전화를 끊은 승준은 걱정 어린 얼굴로 바라보는 초원에게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떡볶이는 사 먹어야겠는데?”
“왜요? 일 터졌어요?”
“응.”
“주말인데⋯.”
넓은 어깨를 안쓰럽다는 듯 쓰다듬던 그녀는 묘한 그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했다.
“뱀파이어 도주 중이라는데 담당자는 집에 있으려고?”
웃음을 터트리며 일어선 승준은 볼을 잔뜩 부풀린 초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물어보자마자 현우는 후회했다. 초원의 촉촉한 머리카락에서 진한 사과 향이 풍겨 왔다.
“미안해요. 길이 막혀서⋯.”
시간 없으니 같이 샤워하자고 할 때 말렸어야 했다. 샤워는 같이 하면 더 오래 걸린다는 걸 잠시 잊었다.
격리부대는 이미 격리 작전을 끝내고 일산 연구소로 개체 수송까지 마쳤다. 두 사람은 지하 3층 위험 등급 격리 구역 복도에 기대어 서서 승준이 나오길 기다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승준이 면담실 문을 열고 나오고 두 사람은 자세를 바로 고쳤다.
“혹시 생물1팀 박 팀장님이랑 최 사무관 못 봤습니까?”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서 있는 동안 지나간 사람이라곤 격리부대원 몇 명과 면담실 안으로 들어간 연구원들뿐이었다.
“아직 안 오셨나⋯.”
예전에 한국에 왔다 추방당했던 일본 뱀파이어들과 연관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그 건을 맡았던 두 사람이 필요했다. 언제쯤 도착하는지 물어보려 핸드폰을 꺼내 드는 승준에게 초원이 물었다.
“팀장님, 그럼 취조는 더 기다렸다 시작하나요?”
급하게 나오는 길에 초코바 하나 집어 먹은 게 다였던지라 1팀 사람이 오길 기다리는 사이에 편의점이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어, 그건 나랑 1팀 쪽에서 할 테니까, 두 사람은 주지가 데리고 있던 애를 맡아 주세요.”
승준은 손을 들어 아이가 있는 면담실을 가리켰다. 수사는 둘이서 거의 다 했는데 갑자기 취조는 빠지고 애나 보라는 말에 초원과 현우는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아이 면담해 보고, 보호 기관에 넘겨야 하는데 우리가 직접 할 순 없으니 김영욱 경위한테 전화해서 부탁해 보세요.”
승준은 두 사람의 눈빛을 모른 체하며 아이가 있는 면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요?”
“주말인데요.”
“두 사람이 그럼 월요일 아침까지 여기서 애 보고 있을 겁니까?”
답답해서 못 들어 주겠다는 듯 면담실 문을 휙 열어젖히는 그를 보며 초원은 이 남자 참 공사 구분 끝내준다고 속으로 빈정거렸다.
‘아까 눈 반짝이며 쳐다보던 남자 어디 갔어?’
승준은 면담실에 있던 군인 두 명에게 눈인사를 했다.
“여긴 우리 요원들이 맡을 테니 가 보셔도 됩니다.”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군인들이 나가고 두 사람은 마지못해 면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문을 닫고 나가든 잔소리를 더 하든 할 줄 알았던 승준이 조용하자 초원은 자리에 앉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문손잡이를 붙잡은 채로 아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손장난만 치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는 그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따로 자리 비우지 말고 항상 둘이 같이 움직이세요.”
“네.”
그래도 못 미더운 듯 승준은 세 사람에게 번갈아 가며 매서운 눈빛을 던지다 문을 닫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