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66
‘아, 씨. 이 망할 놈의 섬, 떠나고 싶다.’
이동현 주임은 사무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회색 바위틈으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의 꺾인 자태와 그 너머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회 한 접시와 소주를 부를 정도로 운치 있었지만, 그러면 뭐 하나? 그 앞을 떡하니 높은 담벼락과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는 흉물스러운 광경이라니.
‘내가 격리를 하는 건지 격리를 당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렇다고 확 관두고 떠나 버리기엔 지금까지 버틴 세월이 아까웠다. 반년만 더 버티면 다른 지방으로 발령이 날 테니까. 어디로 갈지는 몰라도 이 후진 곳에 비하면 천국일 게 분명했다.
사무실 문밖에서 발뒤꿈치를 질질 끄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윗대가리들에게 불려갔다 온 팀장에게 무참히 쪼일 각오를 하며 동현은 모니터에 뜬 게임 창을 내렸다.
“오셨습니까?”
“어, 이 주임.”
썩은 감자 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10년 묵은 변비라도 해결한 듯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얘기가 잘됐나?’
못 찾으면 징계네, 본청에서 알면 쫓겨나네, 저번 주 내내 앓는 소리를 내던 양반이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그놈, 그냥 사망으로 처리하세요.”
“네?”
“더 수색 안 해도 된다고.”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 소장님이 정년이 얼마 안 남으셔서⋯.”
“아⋯.”
“그 양반 가시는 길에 똥 뿌리지 말고 쉬쉬하라는 거지.”
“근데 혹시 육지로 탈출했으면⋯.”
“그럴 리가 있나. 우리 몰래 배를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헤엄쳐서 가면 고기밥 신세지.”
“아, 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어도 섬 밖으로 나갈 땐 무조건 신분증이며 지문을 대조하게 되어 있었고, 저 거친 바다를 헤엄쳐 육지까지 간다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뭐,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동현은 브라우저 창을 띄우고 사내 시스템에 접속했다. 몇 번의 클릭과 타이핑이면 충분했다. 3분도 채 되지 않아 일을 끝낸 그는 사무실 안을 힐끔거리다 다시 게임 창을 열었다.
그렇게 2944번 개체는 격리 중 자연사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
‘진짜, 이 세상 피곤함이 아니네.’
초원은 팀장실 쪽을 곁눈질했다. 병훈과 으뜸이 미팅을 하러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으니 지금 한창 정신없을 게 분명했다.
‘이 틈에 몰래 커피 한잔해야지.’
머그잔을 들고 재빠르게 복도로 나갔다.
요즘 학생주임과 사는 기분이었다. 도끼눈을 뜨고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하는 통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제는 원룸 주차장에서 못 보던 노랑 고양이가 알짱거리며 울길래 참치 캔을 가져와 까 주려 했다가 톡소플라즈마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일장 연설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 했다.
“앗!”
모퉁이를 휙 돌던 초원은 벽에 등을 기대어 서 있던 여자와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갈색 숏컷 머리에 정장을 세련되게 빼입은 여자는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다. 노트북 가방과 핸드백을 들고 있는 거로 봐선 어디 지청에서 온 직원인가 싶었지만 목에 사원증이 걸려 있지 않았다.
‘대체 코너에는 왜 서 있는 거야?’
여자의 번지르르한 미소가 어쩐지 불편했다. 예의상 멋쩍게 웃은 초원은 다시 탕비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 향기 끝내준다.”
커피 머신이 멈추고 머그잔을 집어 든 그녀는 가까운 테이블로 가 앉았다. 여기서 다 마시고 가면 완전 범죄였다.
커피가 식기를 기다리며 고소한 향을 만끽하던 초원은 허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허리도, 배도 콕콕 쑤셨다.
‘곧 시작하겠네.’
이렇게 싸하게 배가 아프다가 오늘 밤이나 내일 터질 게 분명했다. 그런데 멋모르는 승준은 어느새 생리가 늦는 걸 눈치채곤 혼자 김칫국을 마시면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 왔다.
테스트기를 받아 든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이렇게라도 임신이 아닌 걸 증명하면 숨 막히는 간섭이 잦아들지도 몰랐다.
‘오늘 집에 가서 써 보고 한 줄 나오는 거 보여 줄랬는데⋯.’
그런데 생리가 터져 버리면 굳이 그럴 필요 없으니 잘된 셈이었다.
아직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생각에 잠겨 있던 초원은 탕비실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아니네⋯.’
학생주임일 줄 알고 긴장했던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까 복도에서 부딪힐 뻔했던 여자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들어오더니 탕비실 안을 어슬렁거렸다.
신경이 쓰였다. 탕비실에 왔으면 뭘 마시든지 먹든지 할 것이지, 왜 자꾸 초원이 앉아 있는 쪽을 힐끔거리는지 말이다.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아닌 척하면서도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아뇨, 제가 아니라 우리 선생님이 필요한 게 많아 보여서⋯.”
“네?”
어리둥절한 초원의 맞은편에 여자는 묻지도 않고 떡하니 앉았다. 그러더니 노트북 가방에서 빳빳한 브로슈어를 여러 개 꺼내 펼치기 시작했다. 브로슈어 귀퉁이에 적힌 보험사 이름을 본 초원은 기가 막혀 코웃음을 쳤다.
‘아, 뭐야? 잡상인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보안 끝내주네, 진짜.’
초원의 떨떠름한 표정이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는 건지, 여자는 묻지도 않은 보험 상품을 설명하며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휴, 걱정이 참 많으시죠? 마침 저한테 선생님 고민을 딱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품이 있는데 한 1분만 시간을 내주시면⋯.”
초면인 사람의 고민을 훤히 안다는 듯 구는 여자의 말이 기분 나빴다. 밖으로 나가 경비 인원을 부르려 일어서는 순간, 여자가 초원의 손목을 붙잡았다.
“지금의 행복이 평생 갈 것 같죠?”
“네? 경비 부르기 전에 당장 나가세요.”
무슨 보험 영업을 이딴 식으로 하는 걸까? 초원은 화가 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남자 친구분이 불임인 거 알고 떠나는 건 아닐까⋯.”
이 이상한 여자에게서 벗어나려 한 걸음 옆으로 내디디던 초원은 우뚝 멈춰 섰다.
“⋯남자 친구분이 먼저 세상을 뜨시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건 차라리 행복한 고민일 거예요.”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이 여자, 분명 초면인데 다 안다는 듯 구는 게 아니라 정말 다 알고 있었다.
“정체가 뭐야?”
“선생님이 먼저 사망하시는 경우는 생각 못 해 보셨죠?”
초원의 매서운 시선에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끔찍한 소리를 지껄였다.
“남자 친구분은 가족도 없으시네요. 제 말이 맞죠?”
여자는 마음 아픈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웃고 있었다.
“선생님이랑 결혼해서 살다가 자식도 하나 못 보고 선생님도 먼저 가시고, 그럼 챙겨 줄 사람도 없잖아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했다. 승준이 또다시 혼자가 될 거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돈이라도 넉넉히 드리고 가야 마음이 편하지 않으시겠어요?”
엉거주춤 서 있던 초원은 다리의 힘이 빠져 다시 의자 위로 주저앉았다.
“요즘 고독사 기사도 많은데 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숨이 막혔다. 깊은 바닷속에 잠기기라도 한 듯. 가쁜 숨을 몰아쉬는 초원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그만⋯.”
“선생님 먼저 가시고 나면 남자 친구분은 살 의욕을 잃고 폐인이 되실 텐데⋯.”
눈앞에 빤히 보인다는 듯 여자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주저도 없었다.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 걸까? 초원의 두 눈동자 속에 짙은 두려움이 울렁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쓸쓸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으면 마음이 참 아프시잖아요, 그렇죠?”
“그, 그렇게 될걸⋯.”
목이 메 나머지 말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어떻게 장담하느냐고 물어서 뭐 할까?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다. 예지 능력이 없어도 불 보듯 뻔한 일, 장밋빛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느라 놓친 건 제 잘못이었다.
“흑⋯.”
초원은 무릎을 끌어 올려 얼굴을 묻었다. 여자는 앞에 앉은 사람이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든지 말든지 온갖 보험 상품을 늘어놓으며 쉴 새 없이 조잘대고 있었다. 초원은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미꾸라지도 아니고⋯. 또 그새 빠져나가선⋯.’
분명 몰래 커피를 마시고 있을 초원에게 할 잔소리를 일발 장전하고 탕비실 문을 벌컥 연 승준은 눈앞의 광경에 멈칫했다.
“⋯남자 친구분 이름으로는 연금 보험을⋯.”
“당신 뭐야?”
승준은 곧장 걸어 들어가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는 초원을 감싸 안았다.
“초원 씨, 왜 그래? 이 여자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초원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흐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대체 초원 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의 험악한 태도에도 여자는 반가운 사람이라도 본 듯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마침 잘 오셨네요. 여자 친구분이랑 같이⋯.”
미친 여자였다. 승준은 망설임 없이 벽에 달린 빨간 버튼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곧바로 사무실 전체에 고막을 찢을 기세로 비상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텅 빈 집에 혼자 계시는 거 참 싫으시죠?”
“닥쳐!”
그 순간 초원의 흐느낌이 사이렌 소리를 가르고 들릴 정도로 거세졌다. 승준은 흔들리는 작은 몸을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초원 씨, 괜찮아. 괜찮아.”
문이 벌컥 열렸다. 승준은 긴장한 얼굴로 들어오는 경비 인원들에게 외치며 여자를 가리켰다.
“우리 직원 위협했으니 당장 격리 조치하세요.”
“능력은⋯.”
경비 인원 중 하나가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개체의 성격을 모르니 섣불리 대응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담당자 누구야? 누군데 관리를 이딴 식으로 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이 썩을 곳에 환멸이 난 승준은 복도에 서서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거친 분노를 터트렸다.
다디단 꿈도 이룰 수 없다면 악몽이다
초원은 벽을 보고 누워 있었다. 회사에서부터 자취방에 온 지금까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조용해서 자는가 싶다가도 이따금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면 승준은 머리맡에 놓아둔 티슈를 뽑아 손에 쥐여 주었다.
몇 시간 째 이렇게 초원의 옆에 누워 등을 토닥여 주고 있었다. 대체 무슨 소릴 들었는지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배 안 고파요?”
벌써 저녁 시간은 훌쩍 넘겼는데 초원은 대답 없이 고개만 저었다. 먹는 거 그렇게 좋아하는 여자가 배가 안 고프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아⋯, 그 여자가 무슨 소릴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 말 신경 쓸 것 없어요.”
맛있는 냄새라도 풍기면 식욕이 돌지도 몰랐다. 승준은 저녁을 준비하려고 몸을 일으키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멈췄다.
“그 여자⋯, 예지 능력자죠?”
“아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듯한 한숨이 초원의 작은 입술 사이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럼요?”
“사람들이 뭘 두려워하는지를 읽을 수 있대요.”
“아⋯.”
“그걸로 보험을 팔고 다니는 건 기발한 생각인데, 실적은 안 좋대요. 고소도 많이 당하고.”
승준은 티슈 뭉치를 꼭 쥐고 있는 작은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긴 느닷없이 누가 와서 ‘선생님, 이거 이거 무서우시죠?’하고 아픈 데를 찌르면 누가 기분 좋게 보험을 들어주겠어.”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는 초원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저녁 차리면 먹을 거죠?”
초원은 가스레인지 앞에 선 남자의 너른 등을 멍한 눈으로 응시했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와 고소한 계란말이 냄새가 그의 품만큼이나 포근해서 치열하게 하던 고민도 잠시 잊을 정도였다.
요리를 하는 그는 언제나 조금 들떠 있었다. 왜 그런지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초원도 늘 그랬으니까.
서로의 허기를 채우는 것. 그것이 두 사람의 사랑법이었다.
처음 이 자취방에 데려와 라면을 끓여 줬을 때도 그랬다. 잘 먹는 걸 보니 얼마나 뿌듯했던가. 그때는 그게 사랑인지 미처 몰랐다.
승준이 늦게 집에 오는 날, 손에 뭐라도 들고 오면 초원은 너무나 행복했다. 뭘 들고 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남자가 그 피로에 찌든 일과의 끝에서 그녀를 떠올렸다는 것. 그 사랑받는 느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지금의 행복이 평생 갈 것 같죠?’
무섭다. 언젠가 이 남자가 지친 하루의 끝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 와도 더는 반겨 줄 사람이 없는 날이 올까 봐.
그의 뒷모습이 흐릿해졌다. 질끈 감은 눈가로 후회 가득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피곤했던 듯 저녁을 먹자마자 곤히 잠든 초원을 바라보다 그도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다. 흐느끼는 소리에 잠이 깬 승준은 번쩍 눈을 떴다.
“왜 그래요?”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벽에 등을 기대고 웅크려 앉은 초원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나쁜 꿈이라도 꿨어요?”
“아뇨, 흑⋯. 정말⋯.”
승준은 숨넘어갈 듯 들썩이는 몸을 품으로 깊이 끌어당겼다.
“⋯정말 행복한 꿈, 이었어요.”
“그런데 왜 울어요?”
“이룰 수가 없어서요.”
그 말을 끝으로 초원은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대체 무슨 꿈이었길래 이렇게 슬퍼하는 걸까?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었다. 영문 모르는 승준의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꿈이길래 그래요? 응? 말 좀 해 봐요.”
지친 듯, 울음은 흐느낌으로 잦아들었고 초원은 눈물 젖은 얼굴을 승준의 가슴팍에 기대고 있었다.
“우리한테⋯.”
“응.”
“⋯아이가 있었어요.”
승준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설마 억제된 기억을 찾아가는 걸까?
“어떤 애들?”
초원은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초원은 ‘아이’라고만 했을 뿐인데 꿈 내용을 전혀 모를 승준이 ‘애들’이라고 되물은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으니.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랑 갓난아기처럼 보이는 여자아이요.”
“어떻게 생겼는데?”
“남자애는 날 많이 닮았고 여자애는 아빠를, 승준 씨를 닮은 것 같았어요.”
“예뻤겠네, 그렇죠?”
물어보는 목소리에 어느새 물기가 어려 있었다.
“네, 진짜⋯. 너무 예뻤, 흑⋯.”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초원을 끌어안고 달래는 승준의 뺨에도 눈물 자국이 길게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우린 뭐 하고 있었어요?”
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추워서 벽난로 앞에 있었어요.”
그땐 그게 일상이었다. 온종일 햇볕 한 번 쬘 수 없었던 지독한 안개와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해 벽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그때. 문득 그리운 나날이 떠오른 승준은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난 소파에 앉아서 아기한테 젖을 먹이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