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ture differenc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RAW novel - chapter 67
아기의 보드라운 살결이며 달짝지근한 젖 냄새며 초원은 그 모든 게 꿈에서 깬 지금도 생생했다.
“⋯아기가 힘이 없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약하게 태어난 것도 모자라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을 앓았던 딸이었다. 승준은 다신 안아줄 수 없는 딸 대신 초원을 끌어안고 아이를 어르듯 몸을 흔들었다.
“다 내 잘못인 것 같아서.”
“아냐, 초원 씨 잘못 아니야.”
안쓰러워 가슴이 미어졌다. 기억을 억제당하고 꿈인 줄 아는 지금조차도 그 죄책감만은 가슴 깊은 곳에서 상처가 되어 남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남자애는 뭘 하고 있었는데?”
“남자애는 승준 씨랑 벽난로 앞에서 팽이를 가지고 놀고 있었어요.”
언제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를 되짚어 보는 그의 얼굴에 애틋한 미소가 번졌다.
“애가 잘 안 돌아간다고 짜증 내니까 승준 씨가 팽이 촉을 쇠로 바꿔 준다고 그랬는데 내가 위험하니까 안 된다고 했어요.”
꿈에서 본 장면을 설명하는 초원의 목소리가 제법 밝아졌다. 가만히 듣던 승준은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에는 “귀찮으니까 팀장님 마음대로 하세요.”를 입에 달고 살던 여자가 아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순식간에 잔소리 대마왕으로 변했었다.
“좋을 때였네.”
좋을 때라 생이별을 하게 됐다. 삶에는 모순이 넘쳤지만 그의 인생에서 이렇게 잔인한 모순은 여태껏 없었다. 정해진 해피엔딩을 이뤄 냈다는 죄 아닌 죄로 두 사람은 처절한 새드엔딩을 맞이해야 했다.
“그냥, 너무 평화로웠어요.”
그 말대로였다. 길고 긴 몸부림 끝에 얻은 짧디짧은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이렇게 초원의 목소리로 되살아보다니, 홀로 기억하는 쓸쓸함이 조금이나마 옅어졌다. 그래도 그는 초원이 기억을 되찾지 않길, 신기하고도 좋은 꿈이었다고만 철석같이 믿어 주길 바랐다.
“아직도 생생해요. 아기의 감촉이랑 남자애가 까르르 웃던 소리랑⋯.”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초원에게 말해 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승준은 아무도 불러 주지 않을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남자애가 나보고 엄마라고 불렀어요.”
평생 못 들을 줄 알았던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면서도 어째서인지 미어졌다.
“승준 씨가 아빠라고 불리는 것도 좋았어요.”
이런 벅찬 행복을 제 몸으론 이뤄줄 수 없다 생각하니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승준 씨는 정말 좋은 아빠가 될 거예요.”
“초원 씨도 좋은 엄마가 될 거야.”
이미 좋은 엄마였던 그녀였다. 승준의 미소에 어째선지 초원은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다시 꿈속으로 가서 안 나오고 싶어요.”
“왜? 여기서, 현실에서 그렇게 하면 되잖아.”
그가 앗아간 행복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제가 앗아간 것을 현실에서 꼭 되돌려 주고 싶었다.
초원이 눈물을 닦아 낸 차가운 손으로 승준의 두 뺨을 붙들었다.
“승준 씨도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죠? 집에 오면 애들이 반겨 주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두 눈에서 간절한 열망을 본 초원은 입술을 아프도록 깨물었다.
“근데, 난 그렇게⋯ 해 줄 수가 없어요.”
단어 사이사이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온 힘을 다해 억눌렀다. 이번엔 꼭 말해야 했다.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쉰 그녀는 혀끝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던 말을 내쉬는 숨에 쏟아 냈다.
“나 아기 못 만들어요.”
승준의 두 눈에 당혹감이 어리기 시작하자 초원은 눈을 꼬옥 감았다.
“뭐? 그런⋯.”
그런 소리, 전에는 안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려던 승준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함께 긴 시간 산전수전을 겪으며 아이까지 낳은 사이였다. 이 여자라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왜 여태껏 말하지 않았던 걸까? 그렇게나 자신을 못 믿었던 것인가 싶어 섭섭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난임 정도가 아니에요. 병원에서도 안 된다 그러고 삼신할매도 안 된다고 그랬어요.”
“삼신할머니는 그런 말 안 했어.”
“나한테는 그랬다고요.”
대체 뭐가 맞는 걸까? 분명 그에게는 아이를 점지해 주겠다고 흔쾌히 약속했었다. 승준은 혼란스러워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해요, 미리 말했어야 하는데.”
“사과하지 마. 그게 초원 씨 의무도 아니고. 당연하게 생각한 내가 미안하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움츠러드는 작은 어깨를 보자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그래도 미리 알았으면 이렇게까지⋯.”
“미리 알았어도 바뀔 건 없어.”
승준은 두 팔로 그 힘없는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그럼 이것 때문에 결혼 안 하겠다고 했던 거예요?”
그의 가슴팍에 파묻힌 머리가 작게 두어 번 끄덕거렸다.
“고작 이게 뭐라고 혼자 앓고⋯.”
그때, 조승준과 홍초원으로 다시 결혼하자고 했을 때에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제 와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초원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을 잃으면서 그에 대한 믿음도 잃은 그녀이니 시간이 더 필요한 건 줄 알았는데 이런 이유였다니. 알고 나니 승준은 아이를 못 가지는 게 아쉽기는커녕 묵은 체증이 풀린 듯 속이 후련했다.
“난 초원 씨만 있으면 돼. 그럼 이젠 나랑 결혼해 줄 거죠?”
드디어 원하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곧바로 무참히 깨졌다. 초원은 고개를 들더니 단호하게 저었다.
“못 해요.”
“대체 왜? 난 초원 씨만 있으면 된다니까?”
이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데도 왜 아직도 고집을 꺾지 않는 걸까? 승준은 막막해졌다.
초원은 눈물 가득한 눈으로 승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그 얼굴을 쓰다듬어 보았다. 매끈한 뺨부터 그새 수염이 자라 거친 턱, 그리고 그 따뜻하고 다정한 입술까지.
입술 위에서 손길이 떨어지질 않자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던 승준이 고개를 기울이며 불쑥 다가왔다. 초원은 그 입술을 손으로 가로막았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죠?”
무언가를 예감한 건지, 고개를 끄덕이는 승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초원 씨도 알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는 초원이 신기루가 되어 사라지기라도 할 듯 두 팔을 꼭 붙들고 물었다. 이내 젖은 얼굴에 어렴풋한 미소를 띤 채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승준은 안도해 손을 풀었다.
“그러니까 우리⋯ 헤어져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모두 빠져나간 듯 눈앞이 아찔해졌다.
“뭐?”
“여기까지만 해요.”
“사랑한다며 어떻게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가 있어?”
“사랑하니까 하는 말이에요.”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것. 오늘이 오기 전까진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 닥칠 난관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는 걸 감추는 이기적이고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고 비웃었다.
‘하긴, 비겁한 변명 맞지. 나도 겁쟁이니까.’
초원은 승준이 자신을 위해 서슴없이 커다란 행복을 포기해 버리는 걸 편히 지켜볼 만큼 강한 사람이 못 되었다.
“나도 승준 씨랑 결혼해서 애 낳고 알콩달콩 살고 싶다고요. 근데 난 그럴 능력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애는 됐고 나랑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면 될 거 아냐.”
“승준 씨라도 아빠 돼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단 말이에요.”
“초원 씨만 있으면 된다고 내가 그랬잖아.”
승준은 초원의 두 손을 꼭 감싸 쥐었지만 그녀는 손을 비틀어 빼려 안간힘을 썼다. 그 말을 믿어 주고 싶어도 초원은 믿을 수 없었다.
“애를 그렇게 원해 놓고는!”
그렇게 아빠가 되고 싶어 해 놓고 이젠 그녀만 있으면 된다고 말을 바꾸다니. 초원의 눈에 비치는 승준은 말과 행동이 달랐다.
“초원 씨랑 내 아이니까!”
불가능할 줄 알면서도 그가 원한 건 사라져 버린 ‘그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갖고 싶었던 거지 누가 아무 여자랑 애 낳고 살고 싶대?”
눈물로 얼룩진 초원의 얼굴 앞에서 승준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가 멋모르고 아이 소리를 하며 간섭하고 압박을 줄 때마다 벼랑 끝에 홀로 선 기분을 느꼈을 그녀였다. 매사 철두철미, 실수를 모르는 그였지만 어째서인지 이 여자 앞에서는 실수, 그것도 항상 엄청난 실수만 저질렀다. 그 죄책감에 쓰라린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미안해. 몰라서 그랬어. 그게 초원 씨 아픈 덴 줄 알았으면 절대 안 건드렸을 거야.”
이 남자, 바보였다. 왜 숨겼냐고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미안하다고 매달리고, 제 뺨을 적시는 눈물 따위 한 번 닦지도 않으면서 초원의 눈가에 맺히는 물기는 훔쳐내는 남자가 마음이 아릴 정도로 바보 같았다.
“제발 내 생각은 그만하고 본인 생각부터 해요.”
초원은 모진 말을 내뱉으면서도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그의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냈다.
“자식도, 손주도 보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거 아니에요.”
“내 행복은 여기 있는데 무슨 소리야?”
끌어안으려 가까이 다가오는 가슴팍을 초원은 단호하게 밀어냈다.
“이렇게 나랑 살다가 내가 일찍 죽어 버리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끔찍한 소릴 왜 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밀어닥칠 수 있다는 것, 초원은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한 바였다.
“난 승준 씨가 나 때문에 혼자 쓸쓸하게 살다 죽는 꼴 못 봐요.”
그럴 용기가 없었다. 벌써 죄책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헛소리 좀 하지 마. 자식 있는 사람들은 안 그럴 것 같아?”
“아닐 수도 있잖아요.”
“하, 아직 살날 많은데 왜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고 혼자 결론을 내리는 거야?”
“제발 승준 씨도 거기까지 생각해 봐요. 너무 늦어서 후회만 남기 전에.”
“나 후회 안 한다니까.”
“내가 후회해요! 벌써 후회한다고요.”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모자랄 것 하나 없어 아깝디아까운 남자가 그녀에게 한눈팔지 않게 차갑게 밀어냈어야 했다.
“그래, 그럼 내가 초원 씨랑 헤어지고 딴 여자랑 애 낳고 산다고 쳐.”
이렇게 말만 들어도 속이 아리는 걸 초원은 애써 모른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대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게 왜 의미가⋯.”
“초원 씨가 없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데.”
초원의 입가가 떨리더니 고개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아까 초원 씨 생각 그만하고 내 생각이나 하라고 했지?”
승준은 초원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들어 올렸다. 그의 완고한 눈빛이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에 여과 없이 맺혔다.
“나 내 생각밖에 안 하는 놈이야. 더럽게 이기적이어서 초원 씨가 밀어내도 마음 열 때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린 거라고.”
그렇게 어렵게 되찾은 여자이니 쉽게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미안한데 난 여전히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라 오늘 초원 씨가 한 말 못 들은 거로 할게.”
“승준 씨, 제발⋯.”
승준은 애원하는 그녀를 억지로 침대에 눕혔다. 이불을 빈틈없이 덮어 주는 손길이 다정했다. 더는 딴소리 말라는 듯 매서운 눈을 한 사람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초원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이마에 뜨거운 입술이 와 닿고 팔 하나가 그녀의 몸을 단단히 휘감았다.
“늦었으니까 자요. 내일 회사에서 졸고 있으면 내 마음대로 사직 처리할 거니까.”
하지만 억지로 눕혀진 여자도, 억지로 눕힌 남자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몸을 짓누르는 피로감에 초원은 알람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는 가벼운 입맞춤에 잠이 깬 그녀는 무거운 눈꺼풀을 마지못해 들어 올렸다.
“잘 잤어요?”
이미 답을 아는 질문을 하는 남자의 퀭한 얼굴에는 잘 못 잔 기색이 역력했다.
“먼저 씻어요. 밥은 내가 차릴 테니까.”
그 말에 습관처럼 몸을 일으키던 초원은 다시 풀썩 침대 위로 쓰러졌다. 느닷없이 머리가 핑 돌았다.
“그러니까 일찍 잤어야지.”
게으름을 피우려는 줄 알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는 승준을 밀어내고 초원은 얼굴을 찡그렸다.
“어지러워요.”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이내 승준의 얼굴에 걱정이 번지고,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평소보다 열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추워⋯.”
초원이 몸을 웅크리더니 오들오들 떨기 시작하자 승준은 걷었던 이불을 다시 꼼꼼히 덮어 주었다.
“감긴가?”
꽃샘추위가 한창인데 방심한 모양이었다.
“회사 가지 말고 푹 쉬어요.”
코밑까지 이불을 바짝 끌어 올려준 그는 출근 준비를 위해 일어섰다.
책상 위에 놓아둔 시계를 집어 들어 손목에 차는 남자의 뒷모습을 초원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재킷을 걸쳐 입은 그가 다가오더니 입술을 내밀었다.
“감기 옮아요.”
입술을 이불 아래로 숨기자 그의 뜨거운 입술이 이마에 길게 와 닿았다.
“이따가 감기약 사다 줄게요.”
“됐어요. 감기약 별 도움도 안 되는데.”
몸살은 그저 한숨 푹 자면 나을 수준이었다.
“사과는 먹고 자요.”
초원은 현관에서 구두를 신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거 있으면 문자하고.”
또 고개를 끄덕이자 승준은 손을 살짝 흔들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다시 베개에 고개를 묻은 초원은 서랍 위를 멍하니 응시했다. 예쁘게 깎여 한입 크기로 잘려 있는 사과 옆에는 유자차가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그녀의 멍한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베개 위로 떨어졌다.
[지금은 어때요?] [괜찮아요. 이제 살 만해요.]한숨 자고 나니 몸은 괜찮았다. 마음은 딱히 살 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누워서 쉬어요. 죽 사다 줄까?] [저녁 남은 거로 밥 먹었어요. 승준 씨도 점심 맛있는 거 먹어요.] [응, 이따 저녁 때 봐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초원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저녁 때 볼 일은 없을 거다.
택시가 멈춰 섰다. 기사의 도움을 받아 캐리어 두 개를 트렁크에서 내린 그녀는 승준의 아파트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알아. 나 못됐고 잔인한 거⋯.’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영영 끝나지 않을 씨름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건물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던 초원은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긴 생머리의 여자가 마침 들어가려던 길이었는지 기다리고 서 있었다.
여자와 살짝 눈인사를 나눈 초원은 문이 열리자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아, 감사합니다.”
이어 초원이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자 여자가 뒤돌아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무거워 보이는데 제가 하나 들어드릴까요?”
여자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친절하게 짐을 들어 준 건 고마웠는데 쓸데없는 질문이 너무 많았다.
“여행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아뇨.”
모르는 사람과 수다를 떨 기분이 아니었던 초원은 여자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길 바랐지만, 여자는 승준이 사는 층 바로 아래인 20층을 눌렀다.
“저는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