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09)
(감독님, 정말 간섭 안 할까요?)
“에이, 이 사람아. 나 못 믿어?”
(감독님 사람 보는 눈이야 저도 잘 알죠.)
천성민 감독의 통화 상대는 그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던 각색 작가였다. 드라마에서 작가의 힘이 세다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감독이 쓰는 경우가 많았고, 영화 쪽에서는 오리지널 창작 능력이 있는 작가보다는 유명 감독이 직접 데리고 다니는 각색 작가가 그나마 더 힘이 있을 정도로 작가의 힘은 약했다.
(근데 며칠째 연락도 안 받는다면서요.)
“사람이 바쁘면 연락 몇 번 안 받을 수도 있지 뭘.”
(와, 우리 감독님 진짜 맘에 드셨나 보네.)
유연서는 아직도 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돈을 쥐고 제작사나 휘두를 줄 아는 놈이 배급권까지 쥐었다. 아무리 고생해서 만들어도 극장 에서 안 틀어주면 그냥 망하는 거다. 배급권이 가장 막강한 권력이나 마찬가지다.
이게 과연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지, 아니면 예전 버릇 못 감추고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을 관객 얼마 없는 지방 영화관에 조조 심야로 보내버릴지 다들 유연서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다.
“직접 보니 괜찮은 친구더구먼.”
유연서가 ‘비상’ 때 감독과 충돌한 사건은 업계 사람들에게 꽤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천 감독도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유연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거 봤나? 하면 그거 봤죠. 하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별로였던 장면을 줄줄 말하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그 감독님의 ‘하울링’이라는 작품이······.] [귀에 익지 않은 작품이군, 혹시 최근 작품인가?] [아, 아닙니다.]그게 지금 나올 시기가 아니구나······ 중얼거리면서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는 사람이 실권을 쥘 바에는 이쪽을 잘 아는 사람이 더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의 어머니인 최유진만 해도 시장을 흔드는 황소개구리라 불려도 영화 산업에 대한 애정이 넘치기로 유명했다. 빈틈없는 일 처리로도 유명하니 설마 후계자 교육을 소홀하게 할까.
[배급사에도 한 발 걸친 자네는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저는······ 글쎄요.]그리고 천 감독이 그를 특히 마음에 들어 한 게 있었다.
[사실 저한테 붙은 ‘신인의 희망’이라는 수식어가 낯간지럽긴 해도 긍정적인 이미지인 건 맞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그거 계속하려고요. 감독님처럼 흥행과 수상이 검증된 작품에 무한한 돈을 태우는 것도 좋지만······ 감독님 같은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키워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은데······.]이름을 알만한 유명 감독들은 선호하는 배우들이 이미 있었다. 그러니 떡잎부터 키워서 내가 페르소나가 되는 것도 좋겠지.
다소 순수하지 못한 생각이지만, 천 감독은 그의 생각을 알 길이 없으니 그 대답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어쨌든 영화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역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군.] [감사합니다.]취향도 잘 맞고, 손발도 맞으면서 게다가 JSENM은 국내 최대 투자제작사이자 배급사이기도 하니 소문만 믿고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궁금해지네요.)
“그럼 언제 같이 한번 밥이나 먹자고.”
(네, 감독님.)
각색 작가와의 통화를 끊은 천 감독이 영화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발신인은 유연서였다.
“자네.”
(감독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무슨 일 있었나? 그동안 연락도 안 받고······.”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저런, 지금은 괜찮은가?”
(네. 그래도 감독님 작품 관련한 거는 문제 없이 처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몸이 안 좋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유연서의 목소리가 피곤으로 갈라지는 듯했다.
(곧 뵙겠네요. 재능 있는 배우들이 많이 오겠죠?)
“이러다가 소속사도 차리겠구먼.”
(그거 괜찮네요.)
오디션의 캐스팅 권한도 천 감독의 손에 맡겨뒀다. 유연서가 의견 정도는 줄 수 있지만, 배우들을 평가하는 건 아니었다. 발견되지 않은 원석들의 연기를 보면서 자극을 받기 위함이었다. 천 감독이 배우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천 감독과의 통화를 끊은 유연서가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친인척이 모인 설날 식사 자리에서 또 환영을 본 그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급한 일이 있다며 일찍 빠져나왔다.
‘이제 좀 버틸 만할 거 같은데······.’
그리고 한동안 그를 괴롭히는 환영과 환청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 있었다. 피를 뱉어내긴 하지만, 정신은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아······.”
그는 손에 울리는 진동음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임승현이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오늘은 최유진이 열어 준다는 JSENM ‘필름의 밤’이 있는 날이었다.
“도련님.”
임승현은 할 말이 꽤 많아 보였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요즘 건강 어떠냐 살이 좀 빠진 거 같다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도련님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일축해 버릴 거라는 것을 그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필름의 밤’은 JS 호텔에서 성대하게 치러진다. 최유진의 말을 듣고 흥미가 생긴 큰고모, 유민정이 흔쾌히 호텔의 가장 큰 홀을 내어줬기 때문인데, 입구에서부터 사람이 북적거렸다.
막상 ‘필름의 밤’을 개최한 최유진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부회장급의 높은 사람이 이런 행사에 오면 눈치 보는 사람이 많아서 불참한 것 같았다. 졸지에 호스트가 되어 버린 그도 상황을 봐서 중간에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이사님, 오셨습니까?”
“오늘 잘 부탁해요.”
JSENM 측 비서가 그의 뒤에 붙었다. 현장에도 JSENM 직원이 상주해서 그가 중간에 빠져나오면 ‘필름의 밤’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보고서로 작성할 예정이었다.
“연서 씨, 안녕하세요.”
행사장에 들어가려던 그가 한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관찰하니, 명찰에 헤일로 미디어가 적혀 있었다.
“같은 소속사지만 처음 뵙겠습니다. 제작팀의 한나경이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오늘 연서 씨는 헤일로 미디어 소속 배우가 아니라 JSENM 이사님으로 참석하시는 거죠?”
“네.”
“그럼 행사장에서 뵙겠습니다.”
모든 영화 제작사에 초대권을 몇 장 뿌렸댔으니, 같은 소속사 직원을 마주쳐도 이상하진 않다. 게다가 헤일로 미디어는 꽤 이름 있는 제작사였으니······.
“연서야.”
“어? 형도 오셨네요.”
“소속사에서 티켓을 줘서.”
그와 함께 ‘게스트 하우스에 어서 오세요’에 나왔던 박승환도 ‘필름의 밤’에 참여했다. 몇몇 제작사는 배우 소속사를 겸하고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웬만한 배우도 아니고 트리플 천만을 달성한 탑 배우였다.
“이사님 됐다는 소식은 들었다. 축하한다. 이야, 진짜 대기업 이사 다 됐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깔끔한 정장 차림의 유연서와 뒤에 붙은 비서를 보고 크으, 감탄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들을 슬쩍 쳐다보고 갔다.
“아, 형 장난치지 마세요.”
“그나저나 너 준영이 도와줬다며?”
“그냥 제가 맘에 안 들어서 뭐라 한 거뿐인데요.”
“준영이가 엄청 좋아하던데?”
박주현 까버린 게 그렇게 좋았나. 유연서는 실없이 웃으며 최준영을 따라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대화를 멈추고 유연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중에 보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박승환이 황급히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에 눈치를 보던 관계자들은 유연서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안녕하세요. 연서 씨.”
“이런 행사에서 처음 뵙죠? 안녕하세요. 저는······.”
“연서 씨, 안녕하세요.”
그들의 인사를 대충 받아주고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유연서는 행사장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행사장은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업계 관계자들이 샴페인 잔을 들고 저마다 대화를 하고, 나중에는 춤을 출 수 있는 자리도 있었다. 박승환 외에 몇몇 배우도 눈에 띄었다. 다들 영화계에서 한가락 하는 탑 배우들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각 제작사의 피칭이 시작되었다.
“저희 시나리오는 요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들을 꼬집는······.”
“안녕하세요, 저희 제작사는 요즘 이런 작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6년 동안 투자자가 붙지 않았던 작품이 피칭에서 카피 라인을 살짝 변형해 발표했고, 그에 반응이 좋아 투자자가 많이 붙었다는 일화는 영화계에서 꽤 유명했다. 그 정도로 피칭은 비즈니스에서 중요했다.
‘뭐지?’
근데 몇몇 제작사는 유연서 쪽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며 피칭하기도 했다.
“또한 아직 배우 캐스팅 단계에 있어서······.”
“아직 주연 배우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만, 시나리오에 맞는 잘생긴 분을 캐스팅할 예정입니다.”
마치 우리 시나리오 좋지? 투자도 하면서 주연 맡아줄래? 같은 뉘앙스였다. 그가 피식 웃었다. 이런 자리 마련하니 좋네. 내가 찾지 않아도 알아서 시나리오를 갖다주니. 하지만 이렇게 간절한 눈빛을 보이는 제작사 작품 중에 끌리는 건 없었다.
그리고 꽤 재밌는 피칭도 있었다.
“저희가 기획하고 있는 작품의 주연 배우는 진수호 씨가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동네 산책 나오듯 휘적휘적 단상에 올라온 남자는 이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다시 내려갔다. 몇몇 사람들이 손뼉 치고 환호했다. 마치 ‘주연 진수호 한마디로 우리 영화는 종결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탑 배우가 붙으면 투자자도 많이 붙고 상영까지 무리 없이 이어지니까.
“저거 ‘백호함’때 저희도 했던 거예요.”
유연서의 옆에 다가온 헤일로 미디어의 한나경이 넌지시 말했다.
“······주연 배우에 저 나온다고 발표했다고요?”
“네, 우리 영화에는 연서 씨가 참여하고 투자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했죠. 그래서 남은 투자 자리에 연락 많이 왔었어요.”
알고 보니 ‘백호함’은 ‘백호함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제작 업계에서 유명했다. 보통 영화 제작 기간은 각본 개발부터 시작해서 길면 5년, 짧으면 3년이다.
그리고 ‘백호함’도 이런 자리를 오래 떠돌던 시나리오였다. 괴물 특수 효과에 제작비도 많이 들고, 시놉에 흥미를 보인 탑배우도 붙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상을 털고 일어난 유연서가 ‘나 이거 할래’ 하니까 제작부터 상영까지 몇 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성적도 좋게 나왔었고.
“아마 그런 사람들이 연서 씨 많이 찾을 거예요.”
“정보 감사합니다.”
“뭘요. 대표님이 연서 씨 많이 챙겨주라 하셨거든요.”
어쩐지 뭐 하나 말해주고 싶어서 안달하더니 한 대표가 뒤에 있었나. 유연서는 작게 웃으면서 각 제작사의 피칭을 듣고 영화업계 관계자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DJ가 음악을 틀고, 중앙에는 춤판이 벌어졌다.
“승환 씨랑 연서 씨 두 분을 모시면 재밌겠다.”
“그거 괜찮네요. 근데 제작비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
“연서 씨가 투자해 주신다면야 가능하죠.”
“그러면 굳이 제작을 그쪽에서 해야 하나요? 제가 하지.”
“에이, 한 번만 해 주세요.”
한 제작사 관계자의 농담 섞인 말을 듣고 그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하얀 치마 속 두 다리가 박승환의 뒤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
“연서 씨?”
그걸 뚫어져라 쳐다본 유연서는 핸드폰을 들어 통화를 걸었다.
“······임승현 씨. 차 대기시키세요.”
축제는 끝났다.
***
도망치듯 집으로 온 유연서가 비틀거리며 거실 소파에 누웠다.
“하······.”
이제 좀 그만 보고 싶다. 과연 진범을 잡는다고 이게 끝날 수 있을까.
하지만 유일한 실마리는 그것밖에 없었다. 한참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그가 벌떡 일어났다.
“베타.”
생각해보면 결정적인 단서는 전처럼 기억 동기화를 한계까지 밀어붙였을 때 나왔다. 그렇다면 지금도 혹시······.
“기억 동기화, 한계까지.”
“시작해.”
“시작하라고.”
어차피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 전에 해봐서 안다.
갈라지듯 나오는 목소리가 위협적이었다. 설득이 먹힐 것 같지 않자, 베타는 잠시 정적 끝에 말했다.
시야가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