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4)
경주에 다녀오고 다음 날, 유연서는 JSENM 본사에 있는 제 사무실을 찾았다.
(명단 확보하는 대로 이쪽으로 보내줘, 내가 먼저 확인해볼 테니까.)
“네 형.”
(고생해라.)
백서준과의 통화를 끊은 유연서가 후우, 한숨을 쉬었다.
‘역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편하네······.’
혼자 조사하는 것보다 진척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범인을 찾는 일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형도 바쁘고 그도 벌려놓은 일이 있었기에 일단 잠시 미뤄뒀다.
“필름의 밤 보고서는 어떻게 됐어요?”
“정리해서 책상에 올려뒀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에 몰두해야 그를 옥죄는 감정의 격류를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오후에는 천 감독이 직접 참관하는 오디션에 갈 예정이었다. 더 늦게 깨어났더라면 약속도 못 지킬 뻔했다.
“저······ 이사님.”
“네?”
조심스레 건네는 말에 유연서가 고개를 돌렸다. JSENM에서 유연서의 비서를 맡은 차윤호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괜찮으니까 일 보세요.”
쩔쩔매는 것을 보아하니 어머니가 지시한 것 같은데······ 유연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입구에서부터 안부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 인터넷에 떴었나? 사람이 가끔 아플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큰일도 아니지 않나?
-아ㅠㅠㅠㅠ주성도 그렇고 소속사도 공식입장 왜 안냄ㅠㅠ
-설마 막 심각한 건 아니겠지?
-근데 실려간 사람 진짜 유연서맞아?
└맞음 내친구가 주성병원 간호사인데 응급실 왔다고했음
-소속사 입장뜸 ㄱㄱ
└엥 머야
└단순 과로? 응급실 갈정도가 단순 과로임?
└아니 현장에 비서랑 형이있었는데 119부를 정도면 심각했다는거 아냐?
└정확히 해명해라
└근데 정확히 밝혀야할 의무는 없지않아? 경주 목격담 뜬거보니까 멀쩡해보이던데
└공지쓰는거봐라ㅋㅋ 일 개못하네
└└헤일로미디어 정도면 배우소속사치고 일잘하는거 맞지ㅋㅋ
음······ 큰일인가?
그는 의자에 앉으면서 뒤따라온 임승현을 쳐다봤다.
“임승현 씨.”
“네.”
“혹시 동생분이 내 걱정 많이 하던가요?”
임승현의 목격담이 뜨자마자 임혜주에게서 전화와 톡 메시지가 쏟아졌다. 당시 사태를 수습하느라 바쁜 그는 100개가 넘게 쌓인 메시지를 보고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내 배우가 한 다리 건너 있지만, 그저 팬과 배우로 거리를 두겠다고 자제했던 임혜주는 그날로 폭주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연락을 시도했다. 그가 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집요하게 연락하는 것에 시달려서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다행히 어제 경주 목격담이 뜬 이후로 조용해졌다.
“팬이라면 누구나 걱정하지 않을까요.”
한숨 쉬듯 대답하는 음성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가······ 유연서는 잠시 고민 끝에 뒤로 젖혔던 의자를 바로 세웠다.
“음······ 사진이라도 올려 볼까?”
“그러면 좋지. 지금 딱 좋네.”
이태겸이 대신 대답했다. 마침 고급스러운 사무실 인테리어와 ‘사내이사 유연서’가 유려하게 새겨진 명패, 그리고 단정한 정장 차림. 딱 봐도 팬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가 있었다.
“다리 꼬고, 무릎에 손깍지 껴서 올려놔 봐.”
“뭐야, 네가 포토그래퍼냐?”
“이런 건 연출이 중요하다고.”
막상 결과물이 좋게 나와서 뭐라 못 하겠다. 그는 이태겸이 보내준 사진을 SNS에 올리고 한참을 고민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구구절절 나 아픈 거 다 나았고 지금은 괜찮다고 말하기 싫었다. 그냥 멀쩡한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Y__Yeonseo
사무실 공개
└이사님ㅠㅜㅠㅜㅠㅜㅠ
└오빠 보고싶었어요ㅠㅠㅠㅠㅠ
└몸은 괜찮아요?
└SO GORGEOUS, WILL U MARRY ME
└와 미쳤다 진짜ㅠㅠㅠ
└MINE
└WE MISSED U
하트 수와 댓글 수가 새로 고칠 때마다 급속도로 올라갔다. 유연서는 그걸 몇 번이나 새로 고치다가 미련 넘치는 손짓으로 화면을 껐다.
***
오전에는 ‘필름의 밤’에서 나왔던 시놉과 피칭을 훑어보고, 오후에는 드디어 천 감독이 직접 보는 오디션 현장에 도착했다. 워낙 이름값이 높은 감독이라서, 오디션 장소도 대형 홀을 빌려 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렸다.
물론 감독의 이름값 상관없이 이런 오디션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다들 부나방처럼 뛰어들었다.
“와, 무슨 사람이······.”
이태겸이 뒤에서 중얼거렸다. 유연서의 모습을 흘끔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긴장되고 초조한 얼굴로 대본을 달달 외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이거 하나 보려고 온 사람들인가.’
주연도 아니고 비중이 약한 조연 역할인데도 지원자는 거르고 걸러서 이 정도였다. 이 많은 사람을 다 보려면 오늘 안에 다 끝나려나?
그는 이 몸에 온 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저렇게 밑에서부터 올라와 단기간에 다양한 배역을 맡을 자신이 없었다.
“왔구먼. 몸은?”
“괜찮습니다.”
천 감독은 유연서를 위아래로 살짝 훑다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뭐 안색이 안 좋다, 살이 빠진 거 같다 이런 소리를 하겠지. 그는 먼저 선수를 쳤다.
“근데 오디션 대본은 감독님이 직접 쓰신 건가요?”
“아니, 내 각색 작가가.”
단순 오디션용 대본이라기에는 완성도가 너무 좋은데. 그는 오디션용 대본을 다시 훑어보며 말했다.
“이분, 각색 말고 시나리오 쓰실 생각은 없나요?”
“있지. 그래서 내 밑에서 연출도 배우고 있고······ 곧 제작사랑 계약할 거 같더군.”
작가의 힘이 센 드라마에 비해 영화에서 오리지널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는 작가는 힘이 약했다. 고료를 떼먹히는 경우가 꽤 많았고, 감독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아서 아직도 영화계에 해결 못 한 숙제 중 하나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보통 이런 작가들은 연출까지 배워서 아예 감독으로 진출한다.
“아쉽네요. 그럼 드라마는 생각 없으신 거죠?”
“아마 그럴 거야.”
“하긴, 감독님 밑에서 배우는 거면 굳이 드라마까지 갈 필요는 없겠죠.”
아직도 업계 인식이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더 높게 쳐 주니까. 하지만 작가의 힘이 센 쪽은 드라마다. 유연서는 그래도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고 말하고는 작게 기침을 했다.
“감독님은 이 오디션에서 뭐부터 먼저 볼 거예요?”
“마스크, 분위기.”
“네. 감독님 작품에 어울리는 얼굴이요.”
천 감독은 오디션 공고를 냈을 때 외모 조건을 까다롭게 기재했다. 쌍꺼풀이 옅거나 없었으면 좋겠고 피부는 하얀 편이어야 하고 등등 굉장히 세세했다.
특이한 건, 성별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 시나리오도 중성적으로 표현됐는데, 아예 캐스팅될 배우에게 맞출 건지 공백이 꽤 많았다.
“연기력은 안 보시나요?”
“연기력은 아주 못하지만 않으면 돼. 대사만 잘 칠 수 있다면야······.”
감독마다 선호하는 배우상이 다르겠지만, 천 감독은 부족한 연기 정도야 자신의 디렉팅으로 언제든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부럽네요.”
무의식적으로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지만, 부끄럽진 않았다. 이렇게 어필하려고 천 감독 영화 제작에 투자했으니까.
천 감독은 작게 웃었다.
“그러니 연기에 대한 건 자네가 한 번 봐주게나.”
“제가요?”
“기본만 하면 돼. 기본만.”
내가 누굴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나? 유연서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첫 번째 지원자가 들어오자마자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 이 사람은 탈락이다.’
오디션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저렇게 자신 없는 행동한다니. 천 감독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프로필을 보지 않고 옆으로 넘겼다.
“네, 프로필 보고 있으니까 인사 생략하고요. 지정 연기부터 봅시다.”
지원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하려다가 유연서의 말 끊음에 거의 울상이 되었다. 막상 연기를 시작하면 나아질까 했지만, 역시 자신 없는 태도가 보이는 연기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이요.”
곧바로 다음 지원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아까보다 자신감은 좀 괜찮네. 유연서는 지원자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름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 게 보였지만, 그래서 대체 뭘 보여주고 싶은지 모르겠다.
차라리 자신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를 집어서 보여주면 좋았을 텐데······ 가령 볼에 있는 점이라거나······.
“네, 잘 봤습니다.”
유연서가 프로필 사진에 시선을 둔 채로 무심하게 대답하자, 상대의 표정이 변했다.
음······ 탈락.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안 되지. 그는 점점 오디션에 재미를 붙였다. 남을 평가하는 게 이렇게 재밌었나?
그리고 그가 이런 오디션을 보는 일은 없겠지만, 만약 생긴다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혹시 시력이 많이 낮아요?”
“네?”
“안경 벗어 보세요. 눈빛을 보고 싶은데.”
유연서의 지시에 지원자는 군말 없이 안경을 벗었다. 천 감독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유연서가 알아서 지시하니 편했다. 그만큼 둘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소리였다.
“끝났습니까?”
“네.”
“대사 칠 때 눈 과하게 깜빡이는 버릇 있는 거 본인도 알고 계시죠?”
“어······.”
“고치는 게 좋겠네요. 잘 봤습니다.”
때로는 조언을 툭 던져주기도 했다. 물론 오디션을 보는 사람은 유연서와 비슷한 연령대에다가 경력이 꽤 있는 사람도 있어서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디션 본 적 있나?”
“아뇨.”
“자신 없어 하더니 잘 하는구먼. 이렇게만 하게.”
다음 지원자가 들어오기 전, 천 감독이 껄껄 웃으며 유연서의 등을 팡팡 쳤다.
‘이거 말려든 거 같은데······.’
자잘한 건 그가 다 해 버리니 천 감독은 팔짱을 낀 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천 감독의 시험임을 그는 알지 못했다.
이어서 다음 지원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 저 사람은······ 천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극단 무대에서 연습하던 그 사람이었다. 마침 지원자와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는 묘한 표정으로 유연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구면이지?”
“저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렇지. 연습 잘 봤네.”
지원자의 연기가 끝나고, 유연서가 뭐라 입을 떼기 전에 천 감독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꽤 촉이 좋은 유연서는 이게 천 감독의 합격 사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부럽네.’
나도 가능하면 제작보다는 연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야. 그는 다음 지원자의 프로필을 넘기다가 익숙한 얼굴에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드리밍’에서 호흡을 맞췄던 홍민아였다. 그녀는 딱히 아는 체를 하지 않고 오디션에 집중했다. 천 감독은 팔짱을 풀고 턱을 괬다.
“우리 구면이지?”
“네?”
“드라마 잘 봤네.”
“감사합니다!”
홍민아도 합격이군. 유연서는 다음 지원자의 프로필로 넘겼다.
“목소리가 좋더군.”
“네, 귀에 잘 들어오죠.”
“자네는 자네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돌발 질문에 유연서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얼굴이죠.”
“그 얼굴이 다양한 배역 선택에 지장을 준다고 해도?”
“이렇게 태어난 거 어쩌겠어요. 배역은 돈으로 사죠. 뭐.”
“그래도 안 되는 게 있다면 어떻게 하겠나?”
“최대한 마음에 들려고 노력해야죠. 일단 연기를 잘 해야겠네요.”
그렇게 말하던 유연서가 잠시 멈칫했다.
‘연기······ 연기라······.’
마음이 약한 유연서와 강진후의 건강한 멘탈이 충돌하는 게 피를 토하는 것의 원인이라면, 내가 만약 유연서를 제대로 연기해낼 수만 있으면 적어도 피를 토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손수건을 입에 대고 기침을 했다.
“핸드폰이 울리는데.”
“아, 죄송합니다.”
무음으로 해 놨는데 진동이 울린다는 것은 중요한 메시지가 왔다는 소리였다.
(임승현) 도련님, 시간 되면 잠시 나와보셔야겠습니다.
‘설마 할머니가 벌써 사람을 보냈나?’
충격 요법이 잘 먹혔나 보다. 그는 가슴이 쿡쿡 아픈 것을 애써 무시했다. 이 통증은 본체가 느끼는 죄책감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