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8)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오래 걸린 것뿐이지, 실행은 빨랐다. 황대식은 천천히 유서를 준비했다.
나 없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살 거라 믿는다. 너는 내가 필요 없다.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가라.
막힘없이 그것을 완성한 그는 종이를 구기고 휴지통 깊숙이 집어넣었다. 이윽고 곤히 잠든 손자의 옆에 앉았다.
황민재는 밖에서 한참을 돌아다녔는지 금세 잠들었다. 황대식은 손자에게로 향했던 손을 멈칫했다.
‘미안하다.’
한참을 얼굴 위에서 맴돌던 손바닥이 조심스럽게 손자의 이마에 내려앉는다. 그는 서툴게 손자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밖은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지 비가 거세게 내렸다.
다음날, 황민재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컨디션이 이렇게 좋은 날이 있었던가? 그는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하는 할아버지를 도와드렸다. 몸이 가벼우니 기분도 좋았다.
“뭐 이런 걸 다 하세요.”
“학교 끝나고 그거 하려면 밥 많이 먹어야지.”
반찬 가짓수가 평소보다 많았다. 황민재는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상에 앉아 맛있게 밥을 퍼먹었다.
“그거 잘 될 거 같아요.”
“그래?”
그가 시위하고 있는 회사 쪽과도 얘기가 잘 풀렸다. 그쪽은 상장 때문에 잡음이 없기를 원했고, 황민재는 할아버지의 치료비만 필요했지,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오늘 병원 꼭 다녀오세요.”
“그래.”
“다음 주부터 방학이니까 저랑 같이 가요.”
“알았다. 어여 가.”
황대식은 토 달지 않고 여상히 대답했다.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인 황민재가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정을 주지 않으려 툴툴대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제는 입가의 미소가 자연스러웠다.
“······다녀오겠습니다.”
별일 아니겠지······ 생각한 황민재는 집 앞을 나섰다.
손자가 나가자마자 황대식은 평소와 같이 상을 치웠다. 그리고 오늘 이후로 필요 없어질 제 물건들을 하나둘씩 치우고 버렸다.
그는 전날 밤에 썼다가 버린 유서 대신 새로운 편지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몇 번을 망설이던 그가 짤막한 글귀를 남기고 펜을 내려놓았다.
굳이 길게 쓸 필요가 있을까? 결국 혼자 두고 떠나는 못난 할애비인데······.
나가기 전, 잠시 집안을 훑어본 황대식이 제 어깨를 가볍게 털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형의 짐을 털어내듯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들과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 메꾼 것은 손자였다.
“어디 가셔?”
“어, 어어······ 저 앞에.”
“손자 오니까 얼굴 폈네. 보기 좋아.”
걱정하며 음식물을 나누어줬던 그들은 이제 황대식을 걱정하지 않았다. 조손이 서로 의지하고 산다며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황대식은 그들의 인사를 웃으며 받아줬다. 홀가분해서 그런지 표정이 밝았다.
그는 헤매는 것 없이 마을 입구의 다리를 건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들과 딸 그리고 사별한 아내와 함께 여기를 건넌 적이 있었다.
황대식이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살폈다. 강물이 꽤 많이 불어나 있었다. 이 정도면 그때처럼 응급실에서 깨어나지 않겠지.
“아차······.”
신발은 두고 가야지. 누가 사준 건데. 휩쓸려 가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혹시 헤질까 봐 조심스럽게 신고 다니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미련 없이 세상에서 발을 뗐다.
할아버지를 혼자 병원에 보내는 게 마음에 걸린 황민재는 학교에서 조퇴했다. 그리고 책상 위 간결하게 쓰인 편지를 발견한다.
그것을 보자마자 그는 자리를 박차고 뛰었다. 골목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혹시 할아버지 못 봤냐고 물었다.
‘어디지?’
물어물어 마을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선 그가 세차게 숨을 쉬었다. 마치 미아가 되어 부모를 찾듯 사방을 쳐다봤다.
“허억, 허억······.”
숨과 함께 울음이 새어 나갔다. 그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계속 뛰었다.
(여기서 네 아빠랑 잘 놀았었지······.)
마침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마을 어귀의 다리. 하필 어제 폭우가 쏟아져서 강물이 많이 불어났을 텐데······ 설마.
‘제발······.’
뛰어가면서도 옷소매로 눈물을 대충 훔쳤다. 숨이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늦으면 할아버지를 놓칠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뛴 끝에 강변에 다다랐다. 다리 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
다리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중앙에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아, 안돼······.”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 한 켤레, 멀리서 봐도 확실했다. 그건 자신이 선물했던 신발이었다. 그는 뛰어가는 도중에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마음이 급해서 일어서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갔다. 마치 할아버지에게 가지 말라고 붙잡았던 것처럼.
“하, 할아버지······.”
황민재는 떨리는 손으로 그 신발을 매만졌다. 황대식이 혹시 닳을까 봐 일할 때는 전혀 신지 않고 잠시 마실 나갈 때만 고이 모셔만 놓던 신발이었다.
강물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데, 황민재는 오열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서 엎드렸다가 다시 상체를 들어 올렸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강변을 쳐다보려 했다. 하지만 차마 볼 수는 없어서 상체를 숙이고 꺽꺽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다.
“컷! 오케이!”
감독은 배우의 감정선을 위해 촬영 시기를 최대한 순서대로 정했다. 황민재의 다리 위 오열 장면을 끝으로 ‘비속 살해’는 촬영이 종료됐다.
엎드려 있는 유연서를 보고 스태프들이 숨죽여 그를 바라봤다. 누군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태겸과 임승현이 나서려고 했을 때, 그는 무릎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며 일어났다.
“연서 씨. 안 힘들어요?”
“괜찮아요.”
몰려든 구경꾼 때문에 달리는 장면에서 자꾸 NG가 났다.
카메라 레일이 그의 속도를 못 따라가서 잠시 멈춘 적도 있었다. 유연서는 그때 짜증이 치밀어 올랐었다. 당장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이 빌어먹을 카메라가 자꾸 나를 멈추게 한다.
‘아······ 좀만 더하면 알 거 같았는데.’
그만큼 황민재와 배우 본체의 경계가 흐릿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잠깐이었지만, 꽤 황홀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저번처럼 과거의 기억이 개입해서 했던 연기와는 달랐다. 그때는 상황이 절묘해서 명장면이 탄생한 거였지, 오늘은 온전한 ‘황민재’가 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는 이런 걸 메소드 연기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팔을 옆으로 뻗었다.
“야, 물.”
“여기.”
유연서는 깊게 숨을 토해냈다. 순간적으로 빠른 속도를 내니 당연히 숨이 찼다. 다만, 혼의 영향 때문인지 숨을 고르게 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장 모니터 앞에 선 유연서가 화면 속 황민재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나는 더 찍을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그냥 정신없이 뛰어가는 장면임에도 황민재만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감독의 말에 유연서는 아쉽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물이 꽤 좋았다. 게다가 이미 황민재의 감각은 다 날아가 버렸고, 너무 울어서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눈가가 따끔거렸다. 조연출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끝났다!”
스태프의 환호성이 들렸다. 오늘 촬영이 아닌 배우들도 나와 있었다.
“뒤풀이 가자 뒤풀이.”
“연서야, 가자.”
유연서는 그들을 따라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황대식과 황민재가 살았던 마을, 기분이 이상해서 한참을 눈에 담았다.
***
“야, 졸업도 했는데 뭐 할 거냐? 애들이랑 놀러 가자.”
“안 돼. 나 알바하러 가야 해.”
“뭐? 너 보상금 받은 거 아니었어?”
“걔네가 제때 주겠냐? 그리고 그건 학비 내야지. 서울 가서 살려면 그것도 빠듯해.”
“에이, 재미없는 새끼.”
박지우가 손을 휘저었고, 황민재는 몸을 홱 돌려 피했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어둡고 위축된 분위기는 없었다.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웃음이 머물러 있었다.
“간다. 나중에 봐.”
“그래. 가라.”
황민재는 뒤돌아서 걸었다. 할아버지가 선물한 롱 패딩을 입고. 춥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고, 오르막길이긴 했지만 그렇게 경사진 길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갔을 때의 구불구불 좁고 경사진 허름한 동네가 아니었다. 대로변의 길은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그때와 달리 주소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아서 헤매지 않았다.
이제 막 홀로서기를 시작한 황민재는 막힘없이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
‘최남윤이 죽으면 안 됐는데······.’
일기장은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으나, 약하다. 게다가 유연서가 한 말이 걸린다.
[공범 무조건 있어. 찾아봐.]‘말은 쉽지······.’
백서준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의자 등받이에 몸무게를 실었다. 의자가 위태롭게 삐걱거렸다.
“백 경위, 뭐 하느라 내 말 씹어?”
“그럴 일이 있어서요.”
그러는 너는 내 말 맨날 씹잖아. 백서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건성건성 대답하는 말에 옆자리에 앉은 곽치훈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찰나였다.
“너 요즘 주성의 유 전무랑 붙어 다니는 것 같더라?”
“······그걸 곽 경위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백서준이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곽치훈을 노려봤다. 그 눈빛에 쫄았다는 게 자존심 상해서 곽치훈은 이를 악물었다.
“아니, 그 사람이 워낙 인기가 많잖아. 사진에 찍혀 있던데?”
하긴, 유은호 그 자식도 준 연예인이지. 어쩐지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백서준이 한숨을 쉬었다. 두 형제랑 다니면 알게 모르게 주목받을 일이 꼭 생긴다.
“걔랑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흠, 그래? 친한가 봐?”
“친하죠. 십년지기인데.”
원래라면 무시했을 사람이 옆에서 계속 알짱거리길래 대충 대답했는데, 그걸 듣자마자 곽치훈의 눈빛이 변했다.
“뭐, 내가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봐. 나 은근 인맥 많다?”
백서준은 곽치훈의 눈동자에서 탐욕을 읽었다. 그가 피식 웃었다. 청장 아들 배경으로도 안 통하는 게 주성의 장손과 친해서 이렇게 통하는 게 우습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마침, 그의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들렸다. 백서준이 벌떡 일어났다.
“어, 기록 뽑았어?”
(너 나한테 밥 사라.)
“당연하지, 빨리 보내 줘.”
오매불망 기다리던 최남윤의 통화 기록이었다. 굳이 곽치훈이 도와주지 않아도 인맥은 많았다.
‘문제 되면 그 형제가 알아서 커버 쳐 주겠지.’
게다가,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냐? 부디 단서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백서준이 작게 웃었다.
밖으로 뛰쳐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곽치훈이 작게 욕을 내뱉었다.
“개새끼······.”
빽 좀 있다고 무시하는 꼴이 너무도 싫었다.
“한 기자라고 했나······.”
주머니 속 명함을 만지작거리던 곽치훈이 명함 속 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했다.
[요즘 동료분이 주성 쪽 자제들과 자주 만나시던데······ 유 전무랑 유연서요.] [아이, 제가 거창한 거 원하는 건 아니고요. 설마 스파이짓 하라고 그러겠습니까?] [그냥 그분이 일 외에 갑자기 밖에 나간다거나 그런 상황일 때 있잖아요? 그때 저한테 연락 한 번 주시면 됩니다.]통화 버튼에서 잠시 망설이던 곽치훈은 이내 엄지를 꾸욱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