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0)
한유준
경기서부 인포시 인포경찰서 강력계 마약 전담수사반 3팀
“유준아. 항상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의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항상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착하고 바르게, 너를 이렇게 있게 해 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감사해라. 늘 애국심을 가지고 남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살아라. 거의 세뇌에 가까운 가르침이었다.
그런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자라왔지만, 하지만 마음속에는 뒤틀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모친을 일찍 여의고 부친의 강압적인 행동은 점점 심해졌다. 그것은 집착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망치듯 군에 입대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던 그는 항상 자신의 그림자처럼 맴돌았던 부친의 부고 소식에 휴가를 나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쾅!
큰 소리와 함께 스탠드 샌드백이 쓰러져 멀리 굴러갔다. 액션 스쿨의 사람들이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때야 정신 차린 유연서는 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아, 이런.”
차기작에서 연기할 캐릭터 생각하느라 힘 조절을 잊었다. 그는 샌드백으로 모여든 수강생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우와, 미친!”
“이거 엄청 무겁지 않냐?”
“어떻게 하신 거예요?”
샌드백 안을 채운 헝겊 조각이 마치 내장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연서는 주먹이 아픈 척 손을 털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모르겠는데, 원래 약한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는데······ 저거 얼마 안 된 거거든요.”
“감독님은 스케쥴 있다면서, 안 가세요?”
“아직 시간이 남아서요.”
무술 감독, 박성진도 샌드백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두 명이 달라붙어 낑낑대서야 샌드백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그만큼 무거운 건데, 유연서는 이걸 넘어뜨린 건가?
“이야, 이건 못 쓰겠네.”
“어떻게 이렇게 찢어지지?”
감독들과 수강생들이 샌드백을 두고 수군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유연서를 쳐다봤다. 시선이 지목당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제가 발로 쳤어요.”
“발로 쳐도 저게 그렇게 쉽게 넘어갈 무게는 아닌데.”
“저 놀라게 하려고 이상한 장치 같은 거 단 것 아니고요?”
“그럴 리가요. 아깝잖아요.”
“그런데 왜 그러지?”
유연서가 뻔뻔하게 나오자, 다시 질문하기도 애매해진 박성진은 일단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어떻게 된 거지? 저건 나도 넘어뜨리기 쉽지 않은데.
“어디 다치신 데는 없고요?”
“아프긴 하네요.”
“······혹시 모르니까 병원 가 보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유연서를 보고 고개를 기우뚱했다. 아프다고 말하기에는 얼굴이 지나치게 평온했다.
“아무튼, 망가진 건 변상할게요.”
“괜찮아요. 다 연서 씨가 바꿔준 거라.”
“······슬슬 가 봐야겠네요.”
이대로 있다간 계속 의심받을 게 뻔하니 자리를 빨리 뜨는 게 낫다. 유연서는 다음에 또 오라고 환호하는 수강생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밴으로 향했다. 운전석에서 게임을 하며 대기 중인 이태겸이 의외인 듯 그를 바라봤다.
“오늘은 일찍 나왔네?”
“그럴만한 일이 있어서.”
“집으로 가?”
“어.”
자동차 시트에 몸을 파묻은 그가 ‘스네이크’의 시놉시스를 펼쳤다. 그가 맡을 배역, 한유준의 교통사고 그 이후를 찾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사고 이후 병원에서 눈을 뜬 그는 갑작스러운 소리의 증폭에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다. 환자, 간호사와 의사의 속마음은 물론이고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도 소리가 들렸다. 퇴원하고도 사라지지 않는 환청에 병원을 찾았지만, 치료는 효과가 없었다.
소리를 가려들을 수 없는 탓에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군에서 나와 방황한다.
계속되는 소리의 범람에 두통은 끊이지 않았다.
과연 내가 듣는 이 목소리가 저 사람의 속마음이 맞을까? 아니면 내가 미친 걸까?
“유준아. 네 능력껏 어려운 사람을 돕도록 해라. 약자를 그냥 지나치지 마라.”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정신을 붙든 건 부친의 세뇌에 가까운 가르침이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니고 정말 만물의 소리를 읽을 수 있는 거라면, 그리고 이 능력을 살릴 수만 있다면······ 다시 일어선 그는 능력을 살리기 위해 경찰 시험에 지원한다.
“너, 뭐가 들리냐?”
그리고 제 부친과 조금 닮은 상사, 손진호를 만난다.
“참······ 신기하네.”
“뭐가?”
유연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태겸도 쟤 또 저러네, 싶어서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나랑 언뜻 닮았어.’
한유준은 교통사고를 당했고, 우연히 얻은 특이한 능력이 만물의 소리를 듣는 거다. 그건 마치 환청과도 같아서 반쯤 미쳐 버린다.
전에 했던 작품들도 그렇고, ‘스네이크’도 그렇고······ 묘하게 자신과 닮았다. 우연인 건지 아니면 연기하기 쉬우니 무의식적으로 이런 캐릭터만 고른 건지······.
“나 오늘 뭐 없냐?”
“없지. 아! 오늘 한국영화상 하는 날이다.”
“아.”
그건 꼭 봐야지. 액션 스쿨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집으로 돌아온 유연서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었다. 마침 광고가 끝나고 시상식이 시작하고 있었다.
‘이 감독이야 당연히 수상하겠지.’
‘다만’은 올해 흥행작 Top10 안에 들 정도로 선방했다. 경력 때문에 감독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신인감독상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인기상과 후원사 이름을 딴 특별상을 시상하고, 스태프 부문까지 수상하는 것을 심드렁한 얼굴로 보던 유연서는 수상 후보에 아는 얼굴이 나오자 티비 소리를 키웠다.
(······한국영화상 신인감독상은.)
(‘다만’의 이정훈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이정훈이 어정쩡하게 일어섰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울컥했는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무대 위로 올라가 상을 받고 마이크 앞에 섰을 때는 이미 눈물을 쏟고 있었다.
(어······.)
(감독님이 너무 기쁘셔서 잠시 숨을 고르고 계시죠?)
(감독님을 위해 박수 부탁드립니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이정훈을 보고 한국영화상을 몇 년 동안 진행했던 배우가 긴장을 풀어줬다. 관객들과 수상 후보들이 손뼉을 치고 그를 응원했다.
그것에 또 눈물이 쏟아져나올 뻔한 이정훈은 더는 미룰 수 없어 눈을 부릅뜨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을 즐겁게 봐주신 관객 여러분, 그리고 고생하신 스태프분들 그리고 배우분들······ 감사드리고요.)
짧게 심호흡한 이정훈이 제 손에 들린 금빛 트로피를 애정 어린 손으로 쓰다듬었다.
(자기 믿고 진행해보라며 투자와 제작까지 맡아주고 지지해주신 유연서 씨. 연서 씨 아니었으면 ‘다만’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유연서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해 준 게 좀 많지. 저 말이 더 늦게 나왔으면 섭섭할 뻔했다. 그 뒤로도 유연서에 대해 감사 인사를 두 번이나 한 이정훈이 뒤로 물러섰다.
앞에서 머뭇거린 탓에 그에게 남은 수상소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무대 아래로 내려가려던 그가 아차차! 다시 돌아와 황급히 말했다.
(아! 그리고 도움 많이 주신 천성민 감독님도 감사합니다.)
아끼는 제자를 위해 조연출을 자처하는 감독들은 여럿 있었다. 천 감독도 ‘다만’의 촬영에 큰 도움을 줬었다. 그는 한사코 사양했지만, 결국 엔딩 크레딧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
‘이거 보시고 삐치시겠는데.’
처음에는 하도 거장이라 소문나서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냥 고급 와인에 미친 감독으로 전락했다. 이정훈의 행동에 관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뭐, 잘됐네.’
이정훈은 화려한 감독 데뷔를 했고, 천 감독의 영화도 국제 영화제 출품을 위해 준비 중이었다. ‘비속 살해’도 내년 영화제 출품을 위해 후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고 하니, 잘만하면 두 작품으로 해외 영화제에 설 수도 있겠다.
이정훈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축하 공연이 시작되자 유연서는 미련 없이 티비를 꺼 버렸다.
‘이제 내 일이나 해볼까.’
그가 다시 시놉시스를 펼쳤을 때,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정현식 형) 연서야 시간 되냐?
***
정현식의 연락을 받아 약속장소로 향한 유연서는 입구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이 형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스타일은 아닌데.’
약속을 잡아도 몇 주 전에 잡았다. 유연서가 워낙 바쁜 몸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오늘 아니면 안 된다며 갑자기 불러내는 게 영 심상치 않다.
게다가 약속장소도 개인적인 공간이 마련돼서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다던 요리주점이었다. 원래 정현식은 왁자지껄한 포차나 횟집을 선호했다. 사람 냄새가 난다며 좋아했기 때문이다.
“형, 오랜만이네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구석진 곳 방의 미닫이문을 연 그가 반갑게 말했다.
“일찍 왔······.”
유연서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몸을 뻣뻣하게 경직시켰다. 정현식의 분위기와 표정에서 단번에 그가 뭘 하려는지 읽었기 때문이다.
“앉아.”
“······네.”
그의 손짓에 유연서는 조심스럽게 맞은 편에 앉았다. 마치 상관과 부하가 된 느낌, 정현식은 지금 ‘스네이크’ 속 손진호를 연기 중이었다. 그렇다면 그도 한유준으로 받아쳐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정현식이 허공에 대고 손짓했다. 가상의 파일철을 열고, 종이를 뒤로 넘긴다. 마치 인사 기록을 읽는 것 같았다. 유연서가 군기 잡힌 음성으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왜 하필 경찰이지?”
유연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면접이다. 손진호가 팀장으로 발령 날 마약 전담수사반 3팀에 들어가기 위한.
“제 능력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능력을 살릴 거면 경찰특공대가 더 낫지 않겠어?”
아직 대본의 완성본은 받지 않았다. 하지만 캐릭터 시놉시스를 닳도록 읽었다. 그가 연기할 한유준 뿐만 아니라 조연까지 모조리. 그러니 캐릭터 자체가 되어 대응해야 한다.
“저는 머리도 잘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시험도 한 번에 패스했다지? 머리 좋네. 나라면 못 할 텐데.”
등받이에 몸을 기댄 정현식이 숨을 편안히 내쉬었다. 유연서도 긴장이 풀려서 작게 숨을 토해냈다.
“감사합니다.”
“근데 너 서에서 괴짜로 불린다며.”
하지만 정현식이 다시 숨을 멈추고 유연서를 바라봤다. 호흡을 잡아서 긴장감을 높이는 연기 수법이었다.
정현식이 ‘스네이크’에서 연기할 손진호는 강력계의 베테랑 형사였다. 만물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을 십분 활용해 범인 검거율 100%의 에이스로 불렸다. 그리고 한유준이 휘말린 교통사고의 피해자기도 했다.
그러니까, 둘이 동시에 당한 사고 이후로 만물의 소리를 읽는 능력이 손진호에서 한유준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리고 손진호는 한유준의 특이한 이력과 소문으로 그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증거도 없는데 심증만으로 잡아들였는데, 그게 희한하게 다 맞는다지?”
“······제가 감이 좋습니다.”
“그게 과연 감이 좋다고 다 해결될 일일까?”
등받이에서 상체를 뗀 정현식이 두 팔꿈치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손깍지를 꼈다. 그는 강렬한 눈빛으로 유연서를 응시했다. 그게 강압적인 부친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유연서는 눈동자를 굴리며 피했다.
“너, 뭐가 들리냐?”
그리고 정현식은 마음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한유준이 고통받게끔.
정현식의 목에 핏대가 선 것을 본 유연서는 본능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제 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마치 그가 속으로 친 고함 때문에 고통스러운 듯.
“으윽······!”
한유준은 아직 능력 사용이 미숙하다. 유연서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고통받아 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정현식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많이 늘었구나.”
누가 할 소리를. 유연서는 본체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