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00)
“도련님, 최미리 씨가 찾아오셨습니다.”
주성 일가의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난리인 와중에, 유연서는 웬만한 가정집만큼 넓은 병실에서 한량처럼 보냈다. 그의 근황을 묻는 사람들이 귀찮게 해서 핸드폰은 그냥 꺼 놨다.
세상과 잠시 단절하고 잠들었다가 깨길 반복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현대인들은 너무 핸드폰을 끼고 산다니까.
“······최남윤 딸?”
“네. 꼭 만나 뵈어야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유연서의 상태가 안정되고, 슬슬 면회를 받아도 될 상황이 됐음에도 가족들은 그의 병실에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나처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겠지, 회사 일도 바쁠 테니.
그 대신 이태겸과 임승현은 번갈아 가며 그의 수발을 들었다. 사실상 두 사람은 유연서의 병실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
“들여보내세요.”
그의 허락에 임승현이 최미리를 데리고 병실의 문을 열었다. 유연서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맞이했다.
“아, 안녕하세요. 연서 씨, 처음 뵙겠습니다.”
최미리는 잘게 떨리는 손으로 꽃바구니와 과일 음료수를 내밀었다. 이태겸이 대신 받아 옆에 내려놓았다. 유연서는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어째 입원한 사람보다 더 아파 보이네.
“뭐 이런 걸다.”
“빈손으로 오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유연서는 일단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녀의 아버지, 최남윤이 죽은 이유는 민성철이 박경석에게 수상한 전화를 남긴 게 원인이었다. 박경석은 민성철의 그의 목을 조여오는 것을 느끼고 이희서 살해에 가담한 사람을 쫓아 다 제거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민성철도 한 번 만나는 봐야 하는데.’
민성철은 자신이 죽인 이희서를 집착하고 그리워하다가 TV 속 유연서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 내재해 있던 음습한 감정을 촉발했다.
그 사람은 아직 유연서를 제 아들이라 믿고,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 희망을 박살 내려면, 만나서 그 환상을 깨 줘야 하는데······ 퇴원하고 볼까? 소소한 복수를 실천할 때가 다가온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꼭, 뵙고 할 말이 있어서요.”
작게 심호흡한 최미리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제가, 죄송합니다.”
뭐를? 유연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갈 타이밍을 놓친 임승현과 이태겸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그녀를 쳐다봤다.
“······제가 최미리 씨한테 사과받을 일이 있나요?”
최미리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뉴스를 전해 듣고 충격에 빠졌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밝혀진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살인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잠 못 이루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해야 하는 이유에는 자신의 지병이 원인이었고.
“저희 아버지 때문에······ 몹쓸 일을 겪으신 것을 대신 사죄드려야······.”
유연서는 고개 숙인 최미리의 정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푸흡, 웃음을 터뜨렸다.
“아, 죄송.”
최미리는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는 유연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며 숙였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처음이네.”
“네?”
“그 사건 때문에 사과받은 거 처음이라고요.”
박경원은 그의 눈동자를 피하기 일쑤였고, 양홍식은 끝까지 자기는 몰랐다고 했다. 민성철이야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니 자기가 잘한 줄 알았겠지. 그리고 박경석은······ 이렇게 된 게 할아버지의 탓이라며 절규했다지?
“정작 그 일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새끼들은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가 어려웠나. 끝까지 비싸게 굴던데······.”
재벌 3세인 나에게 비싸다는 말을 내뱉게 하다니, 그놈들도 참 지독한 사람들이다. 내 사전에 싸다는 말은 있어도 비싸다는 말은 없었는데.
“그런데 뜬금없이 사과를 안 해도 되는 사람한테 사과를 받을 줄은 몰랐네.”
자조적으로 중얼거린 유연서는 아직도 웃음기가 가시지 않아 몸을 들썩였다. 그리고는 후우, 숨을 토해냈다.
“일단 사과는 받겠습니다. 당신이 뭘 잘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아, 됐어요. 사과받았으니까 이만 나가세요. 귀찮게 하지 말고.”
유연서는 손을 휘적이며 빨리 내보내라고 임승현에게 신호를 보냈다. 임승현은 최미리를 이끌고 병실로 나가면서 유연서가 일부러 가볍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사건에 대해 아무렇지 않으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라는 의미였다.
“왜 항상 피해는 선량한 사람이 받나 몰라.”
은근슬쩍 자신까지 묶어 선량하다는 표현을 했지만, 이태겸은 아무런 태클도 걸 수 없었다.
“······그러게.”
“그렇지? 참 이상해.”
유연서는 기억을 되찾은 순간부터 최근까지 내가 그때 민성철을 안내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되짚으며 친모의 죽음을 자신 탓으로 돌렸고, 계속해서 자신을 찔렀다.
아마 최미리의 심정도 비슷했겠지.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살인에 가담하지도 않았을 거고 이런 비극적인 상황은 없었을 텐데, 같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됐다. 내 잘못이 아니니까.
‘그걸 깨닫기까지 꽤 오래 걸렸지만.’
그는 문득 사촌인 박유정과 박선우의 생각이 났다. 특히 박선우, 얼굴이 알려져서 시선도 몰리고 손가락질받을 일도 많을 거다. 안 그래도 수저빨로 마이튜버 한다고 욕도 꽤 많이 먹은 거 같던데······.
“······선우 걔는 아직도 소식 없어요?”
“네, 한동안 집에 계신 거로 압니다. 마이튜브 채널도 닫아놓았고요.”
설마 나랑 최미리처럼 혼자 땅굴 파고 있는 거 아닌지 몰라. 유연서는 퇴원하면 할 일에 박선우를 만나는 일정을 추가했다.
최미리를 보내고 유연서는 이태겸과 농담을 주고받고 임승현이 사다 준 책을 읽기도 했다.
이 책은 드라마로 만들어도 되겠는데? 라고 한마디 했다가 왜 여기서도 일 생각을 하냐며 한 소리 듣기도 했다.
“잘 쉬고 있었니?”
그렇게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가 지나갈 때 즈음, 박금주는 아무런 연락 없이 병실을 찾아왔다.
“오셨어요?”
임승현과 이태겸이 후다닥 자리를 비우고 단둘이 남았다. 어색함이 감도는 가운데, 유연서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박금주는 다급히 그를 말렸다.
“일어나지 말렴, 환자인데.”
“이제 다 나았어요. 사실 지금 바로 집에 가도 되긴 하는데······.”
시기가 좋지 않으니 제발 밖으로 나돌지 말고 얌전히 요양이나 하라는 할아버지의 당부를 냉큼 받았다. 안 받아주면 고혈압 때문에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 네 할아버지가 좀 극성맞아야지.”
박금주는 작게 웃으며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제 손자의 안색을 살폈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구나.”
“할머니는 괜찮으세요?”
대뜸 물어보는 말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박금주는 입을 열었다 떼면서 할 말을 골랐다. 유연서는 참을성 있게 뒷말을 기다렸다.
“유진이가 내년 그 아이의 기일 날 추모 공간을 만들면 어떠냐고 하더구나.”
“어머니가요?”
뜬금없는 소식이었지만, 그건 그거대로 놀라웠다.
“그래, 생각 깊게도······ 우리는 정신 없어서 생각도 못 했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괜찮을 것 같네요.”
내년이면 친모가 사망한 지도 벌써 25주년이 된다. 최유진은 그녀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자살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장례도 조용히 소박하게 치러야 했다. 어린 유연서는 발작 때문에 그녀의 빈소를 지키지 못했다.
“네 아버지도 동의했다. 가진 저작권을 풀겠다더구나.”
“그래요? 좋네요.”
사람들이 다시금 이희서를 추억한다.
유건민은 사별한 아내가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가 아니라, 재벌가의 며느리 혹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아니라 그냥 이희서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사람에게 여운을 남기고 기억되길 바랐다. 마치 혜성처럼 데뷔해 세대를 통틀어 휩쓸었다던 그녀의 연예계 시절처럼.
유연서는 이 일을 계획한 최유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머니에게도 몇 년 동안 싸늘하게 군 것을 만회해야 하는데.
“사실······ 돌이켜 보니 네게 사과해야 할 게 있더구나. 늦었지만.”
오늘 사과 많이 받네. 무슨 날인가. 유연서는 할머니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 새침을 떨었다.
“뭐를요?”
“네게 못되게 군 것 말이다.”
박금주는 엄마가 자꾸 보인다며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작은 손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품에 안아줄 걸 후회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외면했던 손자는 자신보다 두 뼘은 더 커져서 쉽게 안아줄 수도 없었다.
“나도 그 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그게 면죄부가 될 순 없다는 걸 안다.”
“······.”
“미안하다. 어린 너를 내친 것, 귀찮게 하지 말라며 외면한 거. 전부 다. 내 잘못이다.”
유연서는 힘겹게 토해내는,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응시했다.
“할머니, 최남윤이라고 아세요? 민성철이랑 바꿔 치기 했던.”
“······그래. 나도 사건 경위를 자세히 봤으니까.”
“그 사람의 딸이 왔어요.”
박금주는 다른 얘기를 하는 손자를 보며 그녀가 한 행동을 용서받기 글렀다고 생각했고, 체념했다.
“자기 아버지를 대신해서 나한테 사죄를 하겠대요. 웃기지 않아요? 정작 죄지은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희서의 사망으로 손가락질받던 박금주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였다. 왜 우린 이래야 할까. 정작 죄를 지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사실 좀 슬프긴 했어요. 그런데요······.”
할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괜찮았다. 할머니가 조금 외면했다고 상처받을 나이는 지났다. 박금주와 박정호가 도와준 덕분에 범인도 빨리 잡을 수 있었다.
“다 잊기엔 충분한 시간이잖아요.”
다 제쳐두고 지금 한순간만 보자면,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박금주의 진심이었다. 사과해서 마음의 짐을 덜려는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보통의 할머니.
“······용서해줘서 고맙구나.”
“그래도 상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보상 좀 해주셔야겠네요.”
“말만 해. 이 할미가 다 해주마.”
손자의 너스레에 기분이 풀린 박금주가 작게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말이 없어도 처음처럼 어색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던 유연서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괜찮으시면, 좋은 상담의 좀 소개해 주실래요?”
박경석을 잡았다고 ‘짜잔, 내 마음속에 있는 트라우마와 환청, 환각을 없애 드리겠습니다!’라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며칠 안 갔다.
장장 24년을 끌어온 문제였다. 범인을 잡아서 한결 편해졌다 뿐이지 쉽게 없어지지는 않았다. 가끔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뛰고 식은땀이 흘렀다.
유연서는 이게 비교적 정상적인 반응이라 생각했다. 환영과 환청만 아니면 뭐······ 견딜 만한데 그래도 치료하기는 해야지.
“그래, 좋은 사람으로 알아봐 주마.”
그래도 나아지려고 노력하려는 게 보여서 박금주가 눈에 눈물을 머금었다.
***
박금주가 왔다 가고, 남들이 다 잘 시간에 유연서는 침대의 각도를 눕히지 않고 그저 앉아 있었다. 병실의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사람을 보고 유연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왔네?”
“······안 자고 있었어?”
“슬슬 형이 올 때가 된 것 같더라고.”
유은호는 멋쩍게 웃으며 동생에게 다가갔다. 형제는 마치 하이 파이브를 하듯 두 손을 맞잡았다.
“기분이 어때?”
“글쎄······ 모르겠네. 너는?”
“나도.”
뭐라 말로 정의할 순 없어서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멍하니 있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