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07)
‘그렇게 걱정했나?’
2018년 이후 몇 년을 살면서 가족의 애정에는 익숙해졌지만, 아직 이런 지인들의 관심은 조금 낯설다. 기억 동기화가 끝나고 문득 과거 기억을 떠올리면, 대부분 그의 배경을 보고 접근한 사람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희한하네.’
지금껏 겪은 바로 느끼는 건데, 아마 이 사람들은 내가 진짜 괜찮다고 할 때까지 계속 날 걱정하고 안쓰러워할 거다. 그냥 시원하게 털어놓고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게 좋겠지.
괜히 말을 꺼냈나 싶어 후회하던 이한결을 향해 유연서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시원하게 사실 확인하고 넘어가죠. 예전부터 의심하고 있었던 건 맞아요.”
그렇게 말하며 이선자를 흘끔 쳐다봤다.
“언제부터?”
“좀 됐지. 잠깐 기억을 못 하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났으니까. 데뷔 초쯤?”
숨죽여 듣고 있던 몇몇 사람들은 그럼 유연서의 성격이 지랄 같았던 것도 그 영향 때문인 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조사하다 보니 집요하게 따라다닌 스토커가 있다는 걸 알았고, 저택의 보안이 철저했을 텐데 왜 증거가 안 남았을까? 생각하다 보니 내부자, 친척을 의심한 거고.”
친척이 눈치챌까 봐 비밀리에 직접 범인을 쫓고 있었다고 얘기했을 때는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그 스토커가 우리 옛날 숙소는 왜······.”
“우리 엄마로도 모자라서 나한테 집착했거든.”
“와, 개소름 돋아.”
불필요한 정보는 다 생략하고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생각보다 말로 털어놓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다들 믿을만한 사람들이고, 유연서의 뒤통수를 칠 담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혼자 조사한 건 아니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뭐, 어떻게 잘 잡았고.”
어차피 언론을 통해 얼추 공개된 내용이기도 했다. 무엇 보다, 말로 털어놓으니 신기하게 가슴에 얹어진 짐 따위가 슬그머니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술 때문인가?
“그래서 범인 잡혔으니까 오히려 기분 좋아요. 후련하고.”
“그래?”
“장장 20년을 넘게 기다려 온 일이었거든. 만약 범인을 못 잡았다? 이건 진짜 불쌍한 일이지.”
유연서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물로 목을 축였다. 사람들 눈에는 덤덤하게 말하는 것조차도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더라고요.”
불행한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누군가가 쓴 글 같은 반응 말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누군가의 틀에 끼워 맞춰지거나 혹은 내 의도가 아닌 일로 평가당하는 일이 많다는 건 알지만, 나는 생각보다 괜찮다.
“빨리 복귀하는 거 아니고, 할만하니까 하는 거고. 그러니까 오늘 이후로 그 일과 관련해서 얘기 안 하는 거로 하죠.”
확인하듯 눈을 맞추는 모습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게 숨을 토해냈다.
“어쨌든 잘 풀려서 다행이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너무 불편해하지 마. 다 너한테 애정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
걱정해서 안부를 물어보는 그 성의를 모르는 건 아니다. 유연서는 황급히 손을 들었다.
“아, 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오늘까지만이다. 앞으로는 그냥 평소처럼 지냈으면 좋겠다. 차라리 저 새끼 돈 좀 많다고 유세 떤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솔직히 그런 이미지가 활동하기 편하긴 하다.
“아무튼, 그래서 예능 생각을 해본 거예요. 나는 나름대로 잘 살았고, 잘살고 있다는 거를 보여주려고.”
“그럼요. 잘 생각하셨어요.”
“이참에 다들 궁금해하는 문제에 좀 솔직하게 말하면 입소문 좀 타겠지? 그럼 가입자 수 땡겨서 이득 보고.”
“어우, 이렇게 회사를 생각해 주시다니. 이런 효도가 어디 있어요? 회장님 좋아하시겠다.”
이재학 피디가 신나서 맞장구를 쳤다. 마음에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까지 예능에 담는다고? 좋아서 환장할 지경이다.
“아 진짜 산통 다 깨네.”
“이 피디님 이런 캐릭터였어요?”
“내버려 둬, 저것도 얼마 안 가.”
이재학의 주접 덕분인지 분위기는 빠르게 풀렸다. 다들 하하 웃으며 예능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러다가 박승환이 벌떡 일어나 잔을 들었다.
“모일 사람은 다 모였나? 다들 건배나 할까? 연서 건배사는 네가 할래?”
“아뇨.”
“그런데 건배사는 뭘 할까······.”
박승환이 고민하고 있을 때, 박민우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 내년 2월에 단독 주연 영화 나옵니다! 흥행 빌어주세요!”
“오, 축하해.”
유연서가 짧게 손뼉을 쳤다. 이거다 싶은 박승환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오, 좋아. 그럼 저도, 내년부로 감독 데뷔하게 됐습니다.”
“저도 내년 하반기에 제가 연출한 영화 나와요!”
“저희는 오랜만에 완전체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자리에 모인 거의 모든 사람의 근황을 건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짤막하게 환호하고 축하해주었다.
“저는 안타깝게도 축하할만한 일이 없습니다! 다들 제가 로또 대박 나길 빌어주세요!”
“하하!”
예정된 일이 없어도 좋았다. 다들 그 사람의 앞길을 축복했다.
“연서, 너는 뭐 할래?”
“음······ 나는 길게 해도 되죠? 오늘의 물주인데.”
“언제는 물주 아니였냐? 편하게 얘기해.”
박승환은 아예 유연서를 위해 판을 깔아줬다. 유연서는 잔을 들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었다.
“일단······ 이재학 피디님과의 예능 많이 기대해 주시고, 사실 계획된 건 없지만 아마 뭐든 나오게 될 겁니다. 기대 많이 해 주시고.”
그가 손대는 작품은 늘 빨리 나오게 되어 있다. 그게 드라마가 됐든 영화가 됐든, 이제는 마음의 짐도 없으니 하고 싶은 거 실컷 하고 살아도 된다.
“제작사이자 투자자로서도 공격적으로 활동할 예정이니 관심 있으면 연락해 주시고요.”
“연서 씨! 제 대본 좀 사주세요!”
“저도요!”
“회사 이직하면 받아주십니까?!”
방송국 직원들과 창작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는 그 환호를 즐겼다.
“그냥, 내년에도 잘 지내봅니다.”
“위하여!”
박승환이 타이밍을 맞춰 잔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자 다들 웃으며 잔을 높게 들었다.
유연서는 한동안 사람들에게 시달리다가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했다.
사실 기침을 크게 했던 건 장난이 아니었다. 전날 무리한 영혼 조정으로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그 상태에서 뒤늦게 합류한 사람들의 잔까지 받아야 했으니······ 와 이게 취한다는 기분인가?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
“뭐가?”
그는 화장실을 나오면서 이한결과 마주쳤다.
“다들 너 걱정하고 신경 쓰고 있는 거 말이야.”
내가 부담스러워했었나? 조금 거북했을 뿐이다.
“아까 어느 분 말씀대로 다 너한테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술에 뭐 들어가 있었나? 갑자기 낯간지러운 소리는 왜 해?”
“그거야 앞으로 더 쪽팔린 소리를 할 예정이니까 그렇지.”
“······술 취했어?”
유연서는 인기척이 들려서 고개를 들었다. 이한결의 뒤로 원세븐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다들 따로 얘기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도 다 모여서 제대로 말 못 한 거 같아서.”
“뭐를?”
아, 설마. 아니지? 유연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동안 고마웠고, 오해해서 미안했다는 말 말이야.”
“솔직히 너무 늦었지?”
원세븐 멤버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진지한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래, 퍽이나 일찍 하셨네.”
유연서는 빈정대면서 대답했다. 이미 몇몇 사람들에게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했다는 사과까지 받았다. 대체 뭘 오해했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의 관종이라 불렸던 시절 소문이었겠지. 그는 대충 손을 휘적이며 사과를 받았다.
“근데 진짜 투자금 회수 안 해도 돼?”
“말했잖아. 푼돈은 안 받는다고.”
“어우, 재수 없어.”
“이제 알았냐?”
그리고는 김이준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계시겠어요?”
“네······ 근데 그분이 정말 저를 보고 싶어 하셨나요?”
“네, 이사님이”
이사님이래······ 미쳤어. ‘연좌제’의 시놉을 쓴 김예진은 으리으리한 개인 사무실을 보고 몸을 움츠렸다. SNS 사진에서만 보던 그 장소였다.
“너무 긴장 안 하셔도 돼요. 이렇게 불러서 얘기 나눌 정도면 우리 이사님 마음에 들었다는 거니까.”
“네. 감사합니다.”
사실 팬심 때문에 긴장한 거였는데······ 차윤호가 나가자, 김예진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유연서의 개인 사무실을 구경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유연서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유연서,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밝은 미소
‘유연서가 주최했다’ ★들의 모임···의외의 친분까지?
└재밌었겠다ㅠㅠ
└저기 알바생 내친구인데 나 저기서 찍은 인증샷 받고 별안간 새벽에 오열하는 사람됨ㅠㅠ 덕계못은 과학이냐?
└와 근데 촬영하면서 다 친하게지냈나보다ㄷㄷ 거의 다 모였네
└유연서랑 신예원 투샷이라고?
└내안의 현서커플 망령 진정해
└와 원세븐 찐완전체다
└└유연서는 원세븐 아닌데..
└저 사람들 지금까지 받은 상만 몇개임? 세어볼 사람?
‘연좌제’를 이 회사에 투고한 것은 정다희 작가가 겪은 헤프닝 그리고 이정훈의 ‘다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지망생들에게 점점 부풀어졌었고, 그걸 계기로 유연서에 대해 찾아보다가 어느새 팬 카페까지 가입해서 진성 덕질까지 하게 된 것이다.
“안녕하세요.”
나 같은 성덕이 또 있을까? 김예진은 입을 살짝 벌린 채 다가오는 유연서를 멍하니 쳐다봤다.
‘쓰, 쓰리피스 수트······.’
시상식이나 가족 행사에만 보였던 이 모습을 내 두 눈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김예진은 유연서가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억! 죄송합니다. 김예진이라고 합니다.”
김예진은 이상한 비명을 내더니 황급히 그가 내민 손을 잡아 악수했다. 유연서는 상대방이 부끄러워할까 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기다리실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보네요.”
“아뇨, 제가 너무 일찍 와서······.”
유연서도 약속된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한 것이라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기다리면서 개인 사무실을 관찰할 좋은 기회였고.
유연서는 다리를 꼬고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어떡하지? 저 에티튜드도 너무 좋다. 김예진은 속으로 난리를 떨었지만, 표정만은 평온했다.
“이렇게 작가님을 부른 이유는······ 작가님 시놉을 저희 쪽에서 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차 비서 말로는 아직 계약한 곳은 없다고 들었는데······.”
“네, 그러면 그······ 연서 씨는 제작으로만 참여하시는 건가요? 보통 연기까지 다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렇긴 한데, 혹시 시놉 쓰다가 생각해둔 배우가 있으면 맞춰 드릴 생각이라서요.”
“제 의견까지요?”
보통 그런 건 대박 작가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얼떨떨해하는 김예진을 보고 유연서는 씨익 웃었다.
“작가님이 생각해 둔 배우가 있다면 맞춰 드려야죠.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여유까지 엿보였다. 김예진이 눈을 반짝 빛냈다.
“저는 사실, 윤성이 역할에는 연서 씨를 염두에 두긴 했는데······.”
“사실 저도 강윤성 역할이 탐나긴 했어요.”
은근한 어필에 김예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연좌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제가 대략 알고 싶은데요.”
“혹시 시놉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개인적인 신념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 저는 범죄자의 합리화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김예진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달싹였다. 뭐가 걸리는 일이라도 있나? 계속 뜸 들이는 모습에 유연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그렇다 아니다 정도로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사실 윤성이는 저를 모티브로 짠 캐릭터에요.”
“작가님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