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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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온전치 못한 것 같습니다.
한 남자가 회장실의 문을 열기 전에 옷을 가다듬고 목을 큼큼거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유 회장의 비서는 회장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으레 하는 행동을 비웃음 없이 관찰하다가 문에 노크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전략기획 본부 대리, 임승현입니다.”
“어서 오게. 인사치레는 생략하지.”
가장 상석에 앉은 유창호 회장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강렬한 눈빛의 소유자였다. 흡사 호랑이를 마주하는 기세를 느낀 임승현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유 회장뿐만 아니라 왼쪽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유건민 부회장이, 오른쪽에는 유은호 상무가 앉아 있었다.
“앉으시죠.”
“넵.”
유은호가 제 옆자리를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도 잘생긴 게 목소리도 잘생겼네. 역시 세상은 불평등해. 임승현이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래, 그 녀석은 요즘 어떻던가? 이제 퇴원해도 된다고 하던데······.”
유 회장이 말하는 ‘그 녀석’은 연예계의 문제아, 지옥불주둥이 유연서를 말하는 것이다.
“네, 도련님은 천천히 회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휴지통을 뒤져 보면 피가 섞인 휴지 뭉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치의 말로는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유건민이 초조한 얼굴로 다리를 떨었다. 유 회장이 그 무릎을 찰싹 때렸다. 임승현은 그 광경을 모르는 척하고 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도련님의 퇴원 의지가 확고하시니, 주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하셔서 검진을 받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는가?”
“도련님을 찾아온 소속사 대표와 실장이 있었는데, 일단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임승현은 유연서의 병실 앞을 지키는 수행원에 무려 ‘지원’한 사람이었다. 누구도 맡지 않으려 해 신입 사원을 돌려돌려 돌림판으로 뽑으려 했는데, 임승현의 지원에 전략기획본부실에서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 하시죠, 가감 없이.”
이걸 말할까 말까 입만 달싹거리며 고민하던 임승현을 유은호가 보챘다.
“저······ 그게, 저번에 방문하셨을 때 도련님이 멀쩡하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유건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회장님과 부회장님 그리고 상무님을 잘······ 알아보셨습니까?”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잘 알아보다마다. 유 회장은 그때 바락바락 대들던 유연서가 괘씸해서 코웃음을 쳤다.
“제 생각에는······ 도련님의 기억이 온전치 못한 것 같습니다.”
임승현의 말에 유 회장과 부회장이 등받이에 편히 기대던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유은호가 대신 질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일단, 저희를 대해 주시는 게 정중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이전에는 그, 도련님의 성격이 조금······.”
그가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하자, 유씨 집안 삼 대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연서의 지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단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적당히 넘어간 것뿐이다.
“그거야 목숨이 위험했으니 자기도 깨닫는 바가 있었겠지 않겠는가.”
유 회장은 못마땅한 듯 팔짱을 꼈지만, 볼록 튀어나온 광대뼈는 숨길 수 없었다. 망나니 같던 둘째 손자가 드디어 철들었나? 그렇다면 기억이 조금 온전치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 연서 성격이 어때서요?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요.”
“네가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까 애 성격이······!”
유 회장이 유건민에게 윽박지르려다가 임승현이 아직 있다는 사실에 간신히 화를 삭였다. 눈치 빠른 임승현은 그것을 못 본 체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신상 명세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쓰던 아이디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밖에 자산 내역과 관련 암호, 어렸을 때 친한 사람이라든지 학창 시절 교우 관계 같은 것을 물어보셨습니다.”
남을 신경 쓰지 않는 유연서가 남들과의 교우 관계 따위를 물어본다고? 그리고, 그 돈 귀신 유연서가 자신의 자산 규모와 비밀번호도 모른다? 유은호의 표정이 단번에 심각해져서 입을 꾹 다물었다. 유건민과 유창호도 마찬가지였다.
“의심스러워서 의사에게 물어보니, 머리에 큰 충격을 받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도련님의 얘기라고는 안 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다른 병원 의사에게 물어본 겁니다.”
임승현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유 회장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연서의 몸이 걱정되지만, 어차피 퇴원이 코앞이니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눠보면 알 것이다.
“그랬군······. 수고했네.”
“저는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눈치를 살피던 임승현이 회장실 밖으로 나섰다. 그를 따라 나온 유은호가 임승현을 불렀다.
“임승현씨, 잠시 시간 됩니까?”
“네, 상무님.”
시간이 없어도 오너 일가의 부름인데 억지로 시간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임승현은 유은호의 뒤를 따라 근처 회의실로 향했다.
“회장실에서는 커피 마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뭐 마시겠습니까?”
“저는 그럼 냉커피로······.”
유은호가 밖을 향해 손짓하자, 언제 따라붙었는지 모를 그의 비서가 음료를 내려놓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투명한 유리는 반투명으로 바뀌었다.
“임승현씨가 연서의 병원 수행원을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아시다시피 제 동생 놈이 제대로 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비록 임시지만, 그 녀석의 직속 수행원? 다들 꺼리는 자리죠.”
유은호의 냉소적인 말에 임승현은 이걸 동조해야 할지 말지 몰라서 그냥 어색하게 웃었다.
“순순히 지원하신 게 의심스러워서 임승현씨의 인사 기록을 좀 살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넵. 괜찮습니다.”
임승현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라도 뒷조사할 것 같았다. 유연서의 소문은 도시 전설 급으로 유명했고, 모든 직원이 그를 꺼렸으니 무슨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만하지.
“한국대를 졸업하고 바로 주성 그룹에 입사, 경쟁률이 상당했는데 면접관의 평가가 아주 좋네요.”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이지요. 수저 잘 물고 태어난 저보다 스펙이 좋은데요?”
“과찬이십니다.”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인가요?
임승현은 제 앞에 있는 최연소 상무를 바라봤다. 타고난 수저도 수저인데 머리도 좋고 능력도 좋다. 동생과는 다르게 사생활도 깔끔해서 요새 재벌가의 일등 신랑감으로 인기 많은 사람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지금 빈말로 자신을 띄워 준다? 빈말로 밑밥을 까는 것은 이유가 있다. 임승현은 긴장의 끈을 조였다.
“학창 시절에 유도로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근데 왜 관두셨죠?”
“가벼운 부상을 입었습니다. 운동은 그만둬야 했고요. 그래도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운동을 관두고 바로 한국대 현역······ 좋네요. 노원구 출신에 2남 1녀 중 차남, 형님이 아이돌 연습생에서 지금은······ 배우 일을 하고 있고요?”
“배우라기보다는 아직 지망생 수준이지만요.”
어, 근데 형의 얘기는 인사 기록에 없는 내용인데. 임승현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런 분이 무슨 이유로 연서를······?”
“음······.”
유은호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임승현을 쳐다봤다.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임승현이 유연서의 수발을 자처한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눈치 빠르기로는 귀신같다는 평을 듣고 살아온 그가 주성 그룹에 입사하고 3년간 수집한 소문과 직장 동료가 겪었던 일을 조합해보면,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유씨 일가는 유연서를 편애한다.’
그렇게 사고를 쳤는데 내쳐지지 않은 것도 그렇고,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임승현이 회장실에 불려갔을 때, 회장의 책상 위에 유연서의 굿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공식 굿즈, 시즌 그리팅 달력이라고?
이걸 왜 아냐? 여동생이 러브 레터라서 그랬다. 임승현도 참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어쨌든, 한 명 빼고는 고모와 고모부, 사촌까지 유연서를 좋아했다. 유연서도 가족에게는 성질을 죽이고 살아서 패악질을 부려도 적당히 땡깡 정도로 끝난 거 같고.
‘사실, 그래서 유연서한테 붙으려던 건데.’
유씨 일가의 편애를 독차지하니, 옆에 붙으면 콩고물 하나는 떨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소문만큼 개차반이지도 않고.’
임승현이 유연서의 병원에 잠시 출장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같은 부서 동료들의 걱정과 동정의 시선을 한눈에 받았다.
[어머, 승현씨······ 어떡해. 괜찮겠어요?] [과장님, 임승현씨 송별회 지금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절대 그 분의 얼굴을 마주치지 마. 눈 마주치는 순간 퇴사 빔을 맞는다고!]퇴사 빔이라니. 무슨 요괴야? 결국, 그 날로 저녁 회식이 잡혔고 이른 송별회의 주인공이 되었다. 저기요, 저 아직 사원증 아직 있는데요.
[거기, 계속 앞에 서 있으면 퇴근은 언제 해요?] [괜찮습니다. 도련님. 이게 제 일입니다.] [피곤할 텐데, 이만 퇴근 해요. 어차피 당신 말고 다른 사람도 있잖아. 당장 집 안 가면 짤라버립니다?] [네,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도련님.]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유연서는 얌전했다. 무려 조기 퇴근을 시켜 줬다고. 소문의 그 개망나니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근데 이걸 진짜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나?’
임승현이 눈치를 살폈다.
‘에라 모르겠다.’
그 유은호 상무이지 않은가. 최근에는 사내 성추행 사건도 깔끔하게 해결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뻔한 걸 막았다고 한다. 솔직히 얘기한다고 불이익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 맞습니다.”
임승현은 자신이 느낀 바를 최대한 순화해서 주절주절 내뱉었다. 유은호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눈치가 빠르군요. 맞아요. 연서는 우리 집안의 골칫거리지만, 그만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죠. 걔 밑에서 3개월만 버텨도 우리 가족의 시선이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절대 도련님을 이용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상무님. 사실······ 같은 부서 동료분들이 너무 잘나서 이대로 가다가는 승진이 밀릴 거 같고······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임승현이 열심히 자신을 변호했다. 유은호가 피식 웃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싫지 않다. 사내 평판도 좋았고 유도 유단자에 형이 연예인 지망이었으니 연예계 일도 꽤 잘 알 것이다. 유연서에게 붙여 주기에는 차고 넘치는 인재였다.
“그런데,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연서 밑에 있던 사람들 다 며칠도 안 가서 퇴사했는데.”
“그, 그랬죠.”
유연서가 인사 권한은 없지만, 밉보이면 찍힌다. 그 날로 회사생활 종 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좀 쫄리기는 했다. 그렇게 아득바득 스펙을 쌓고 들어온 주성 그룹인데, 오너의 망나니 손자 때문에 허무하게 짤리면 어떡하지? 임승현도 나름 사활을 건 프로젝트였다.
“그거야······. 그분의 소문은 저도 잘 알지만, 사람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니까요.”
이건 자신을 포장하려는 말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성격도 괜찮은데? 유은호가 씨익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쭉 연서의 밑에서 일해 주시죠.”
“네.”
“갑작스러운 승진은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보게 될 테니······ 연봉 두 배 인상에 분기마다 인센티브까지 지급해 드리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만 가보세요. 제 비서가 안내할 겁니다.”
유은호가 손을 휘저었다. 임승현은 애써 다리에 힘을 줬다. 유창호 회장에 이어서 유은호 상무까지, 주성 그룹의 두 호랑이와 독대한 여파가 컸다.
“아, 상무님. 아까 회장님 앞에서는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말지 몰라서 안 드렸던 얘기인데요.”
“뭐죠?”
“그······. 도련님이 가족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셨습니다.”
유은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기억에 문제가 있나? 근데, 이 정도면 아까 할아버지와 아버지 있을 때 얘기해도 되는 문제 아닌가? 지금 정보를 걸러서 전달해 준 건가?
그의 표정 변화에 임승현이 황급히 덧붙였다.
“그게, ‘그분’에 대한 정보도 요청하셔서······.”
“······그렇군요. 잘했습니다.”
‘그분’이라는 말에 유은호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정말 눈치 빠른 사람이로군. 부디 제 동생이 저 사람은 오래 둬야 할 텐데.
근데 걔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 사실을 왜 굳이 수행원에게 요청한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만큼 동생의 기억이 망가졌다는 소리기도 했다.
“하아······.”
걱정의 한숨만 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