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9)
“할머니······. 나 이상해.”
어린 유연서가 할머니, 박금주의 손가락을 살짝 잡았다. 박금주는 어둡고 지친 표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손자를 눈엣가시로 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엄마가 자꾸 보여.”
유연서가 박금주의 어깨너머 허공을 쳐다봤다. 허공에 뜬 두 발이 어렴풋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아마 아직 기억 동기화가 덜 돼서 저렇게 보이는 것이지 당시 어린 유연서는 더 선명히 보았을 것이다.
“어······.”
무표정한 얼굴로 손자를 쳐다보던 박금주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손자의 손을 쳐냈다. 그 손짓이 제법 매워서 손이 얼얼했다.
늘 자신을 안아주고 웃으며 반겨주신 할머니가 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어린 유연서가 알던 할머니는 이제 없었다.
‘무서워······.’
냉랭하게 쳐다보는 할머니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어서 어린 유연서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나오면서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그러면서도 창문을 통해 드문드문 보이는 이희서의 환영은, 이제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흐윽······ 끅······.”
이제는 별채가 아닌 본채에 마련된 자신의 방에서 어린 유연서는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고 울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8살의 유연서가 아니라 28살이 된 유연서가 되어 있었다.
“우웨엑!”
기억 동기화의 여파로 피를 토하던 유연서가 욕실 바닥에 앉았다. 어지럽고 몸도 무거워서 일어설 힘도 없었다.
“······하하!”
그렇게 멍하니 욕실의 전등 따위나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왜 웃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웃다가 다시 변기를 부여잡고 토악질을 했다.
대충 소매로 닦아 입가는 피로 범벅되어 있었고, 입고 있는 셔츠와 바지도 피로 더러워졌다.
[가족은 알아야지. 아니면 친구라던가······.]그 다음에 진수호가 뭐라고 했었지? 자기처럼 나를 도와줄 수 있다고 했었나?
‘다 개소리야.’
안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어린 유연서가 처음으로 도움을 청한 상대는 할머니, 하지만 그 이후로도 할머니는 자신을 무시했고 걸리적거려했다.
이러니 본체도 다른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었으니까.
“아 시발.”
저절로 욕이 치밀어올랐다. 거울을 통해 본 욕실 내부에 하얀 치마 같은 것을 또 본 것 같아서였다.
고개를 푹 숙였다가 용기 내 다시 들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하얀 수건을 보고 착각한 것이다.
‘이러다가는 진짜 미치겠는데.’
그래서 정말 본체가 미친 건가? 미쳐서 사리분별 못하고 갑자기 화내고?
유연서는 계속 웃음이 터졌다. 너무 웃어서 끅끅거리면서도 아직 뱉지 못한 피가 있어서 고개를 숙여 피를 토하고를 반복했다. 누가 보면 호러 영화나 고어 영화 속 한 장면일 줄 알 것이다.
“아······.”
대충 욕실을 수습하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왔을 때, 침대 옆 테이블에 어설프게 세워 놓은 그림을 쳐다봤다.
아이, 라울이 그렸던 엉성하지만 따뜻한 그림이었다. 삐뚤빼뚤 고맙습니다라고 쓰인 글씨를 보니 복잡했던 마음이 점점 가라앉았다.
***
솔직히 그때의 유연서와 지금의 유연서는 다르다. 기억 동기화 직후에는 과거의 유연서에게 휩쓸려서인지 감정이 격해졌지만, 지금은 차분했다.
‘조금 불편한 것 같기도?’
그런데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점점 본체의 기억을 흡수하면서 내가 2207년의 강진후가 아닌 진짜 유연서가 되어가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아버지!”
“그래. 선우, 동영상 잘 보고 있다.”
“네?!”
“구독까지 했는데, 몰랐니?”
“네에?!”
“너무 졸부처럼 찍지는 말아라.”
유연서의 복잡한 심경과는 다르게 가족 친지들은 화목했다.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고, 올해도 잘 지내보자는 덕담을 나눴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채널에 동영상을 챙겨보고 구독까지 했다는 소식에 넋이 나간 박선우가 구석에 앉아있는 것을 쳐다보던 유연서가 고개를 돌렸다.
“연서야. 영화 잘 봤다.”
“네, 감사합니다.”
작은고모부, 박경석이 유연서의 옆에 앉았다. 박경석은 뭐랄까, 인상이 좋았다. 살집 있는 큰 강아지 같다고 해야 하나.
법조계 집안인 큰 고모부가 주성의 평사원 출신 박경석을 은근히 무시하는 발언을 해도 허허 웃으면서 적당히 넘어갈 줄 알았다. 그렇다고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 것을 보아하니, 이런 사람이 기가 제일 세다.
“드라마랑 영화 연타 흥행으로 광고 많이 들어오지?”
“많죠.”
박경석의 옆에 작은고모, 유선영이 앉았다.
“우리 회사에서 새로 론칭하는 뷰티 브랜드가 있는데, 광고 모델 해볼 생각 없니?”
“돈 많이 주시면요.”
“나보다 돈도 많으면서?”
박경석은 농담인 줄 알고 껄껄 웃었다. 난 진심이었는데. 유연서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돈은 많을수록 좋지 않나?
“그래, 내가 섭섭지 않게 챙겨주마. 너희 소속사에 요청하면 되니?”
“네, 그러세요.”
유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유선영이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 연서, 돈도 벌었으니 쓸 줄도 알아야겠지?”
“쇼핑이요?”
“그래.”
부담스러운 유선영의 눈빛을 보던 유연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날짜 잡죠.”
“그럴래?”
유연서는 큰고모에게 쪼르르 다가가 귓속말을 하는 작은고모를 바라봤다. 본체는 뭘 했길래 친척들한테도 인기가 좋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네 할머니가 문화재 반환받아서 주성 미술관에 들여온 건 알고 있지?”
“기사로 봤어요.”
“그래.”
어떤 수완으로 돌려받은 건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문화계의 한 획을 그었다고 대서특필 될 정도였다. 박금주는 청와대에 초청받아 훈장을 받을 예정이었고, 자연스레 주성의 이미지는 더 좋아졌다.
가장 마음의 짐이었던 둘째 손자는 정신 차리고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요새 기분 좋은 일만 있는 유 회장이 흡족하게 웃었다.
“기념 자선 행사에 참석하는 거 잊지 마라.”
“스케쥴 되면요.”
가끔 예전처럼 버릇없는 행동이 나오긴 한다. 심드렁한 모습으로 대답하는 손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유 회장이 헛기침했다.
“은호도 가는데 네 녀석이 안 간다고?”
“······그럼 가야죠.”
잘나가는 연예인보다 바쁜 게 유은호였다. 형이 갈 정도면 보통 자선 행사가 아닐 것이다. 주성 미술관 관장인 할머니는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니 유연서는 얼굴만 비췄다가 빠질 생각이었다.
“아들, 요즘 힘든 거는 없고?”
“없어.”
“진짜? 얼굴색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예능 찍느라 살이 타서 그래.”
유건민은 여전히 팔불출이었다.
듣기로는 ‘드리밍’의 블루레이 소장본을 샀다고 하고, ‘백호함’을 10번 이상 볼 정도라고 한다. 같이 봤던 최유진의 말로는 ‘백호함’에서 김우진 중사가 죽을 때 과몰입해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여간 재밌는 아버지다.
“혹시 곤란한 일 있으면 아빠한테 꼭 말해. 알았지?”
“필요하다면. 근데 아빠 우리 팬들 사이에서 유명하더라.”
“그, 그래?”
게다가 팬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기부 모금에 참여했다가 입금자 명단에 ‘유*민’이라고 떠서 팬들이 이 사람 우리 아버님 아니냐는 헤프닝이 있었다는데, 아마 맞을 것이다.
누가 팬들이 십시일반 해서 진행하는 기부 모금에 몇천만 원을 입금하는가? 팔불출밖에 없지. 저러고 따로 유연서의 이름으로 기부를 또 했을 것이다.
“다 밝혀진 거 알면서 부끄러워하기는.”
최유진은 부끄러워서 유은호에게 도망치는 유건민을 보며 작게 웃었다. 유연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안 닮아서 다행이다.
“우리 연서 인기 많네.”
“연예인이잖아요. 영화제는 어땠어요?”
“똑같았지. 너는 휴가는 잘 보내고 왔고?”
“그게 휴가인가요? 일하러 간 거지.”
“일이라니, 네가 제작진 위에서 놀았다고 하던데?”
“그래요? 이 피디, 입이 가볍네.”
유연서가 무게를 잡으면서 말하자, 최유진이 작게 웃었다.
“반쯤 농담이야. 요즘은 너에 대해서 좋은 소문만 들리더라. 이번에도 활약이 대단했다던데?”
“제가 뭘요 다 임 비서가 했지.”
“그런 사람을 아래에 두는 것도 네 능력이야. 방송 기대할게. 나도 보고 싶다. 네가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잘 몰랐잖니.”
그가 상념에 빠진 최유진의 얼굴을 살폈다. 동기화율은 이제 31.19% 아직 과거의 최유진이 유연서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파악한 최유진이라면 계속 밀어내는 유연서에게 어떻게든 다가가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할머니보다 나은데.’
본체는 사람 봐 가면서 벽을 치지. 조금 아쉬웠다.
“아 맞다. 어머니.”
“응?”
“이제 그만 하셔도 돼요.”
유연서의 뜬금없는 말에 최유진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뭐를?”
“기사요.”
그 대답에 최유진이 웃었다.
“내가 한 줄 알았구나.”
“그럼 아니에요?”
“글쎄······ 네 눈에는 내가 그렇게 티 나게 언론을 가지고 놀 것 같니?”
유연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JSENM을 단기간에 업계 최고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최유진이 그렇게 허술하게 언론 플레이를 했을까? 맘만 먹으면 유연서 모르게 여론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아버지인가?”
그렇다면 원조 팔불출? 유연서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우뚱했다.
“네 아버지는 기사로 장난질 안 하셔, 너한테 직접 뭘 하면서 티 내는 걸 좋아하지. 이번에는 출장 뷔페를 부르겠다고 벼르고 있던데?”
“하하······.”
커피차 다음에는 출장 뷔페인가. 그것참 든든한 소리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차기작의 스태프들은 하루에 한 번씩 출장 뷔페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럼 할아버지?”
최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한 사람 남았네.”
“······할머니요?”
유연서는 저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억 동기화 속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서 어설픈 언론 플레이를 할 정도로 정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왜요?”
최유진은 이해하지 못하는 유연서가 안쓰러웠다. 박금주가 유연서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글쎄······ 할머니께 직접 여쭤보는 건 어떠니? 이번에 자선 행사 가지?”
“네.”
“그때 시간 되면 한 번 독대해 봐.”
“글쎄요······.”
내키지 않았다. 지금도 다 같이 있는 자리에 할머니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최유진은 고민하는 둘째 아들을 보며 웃었다. 할머니와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 보이는데, 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가는 서로 오해할 수 있다. 결국, 둘이 풀어야 하는 문제다.
“그나저나 은호 무슨 일 있니?”
“어머니도 눈치챘어요?”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네가 이상하게 쳐다보길래 나도 좀 관찰했거든.”
최유진과 유연서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고모부들과 뭐라 얘기하는 유은호를 빤히 쳐다봤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아마 회사 때문일 거야. 요즘 일이 많잖니? 재료 수입 문제라던가 그런 일로 머리가 아플 거야.”
“그런가?”
회사 일까지는 자세히 모르니 알 방법이 없지만······ 팔불출 유건민도 유은호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 말 안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일 때문인가?
유연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기에는······ 이 집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이상해졌는데.’
유은호의 변화를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