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0)
유 회장이 이태겸을 시험하고 임승현과 대화를 나눈 다음 날, 유은호는 유연서가 입원했던 병원을 직접 찾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연서 도련님의 상태는······ 특이해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의 방문 소식에 병원장까지 올 정도였다. 유연서의 주치의를 맡았던 교수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까지 앉아 유은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정도로 기억을 잃었으면 뇌에 심각한 손상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다행히 아무 이상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기억력이 떨어진 것도 전혀 아니었죠.”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에 대한 대가치고는 싸게 먹힌 축에 속했다.
“그에 반해 성격은 침착하셨는데······ 보통 떠오르는 게 없어서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합니다. 초조해서 거짓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혹시 도련님이 그러십니까?”
“아니요.”
거짓 기억을 만들어냈다면 유은호가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그렇군요······ 기억을 찾기 위해 최면이나 약물 유도 상담을 권했지만, 그런 건 필요 없다고 거절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떠신가요?”
“괜찮습니다. 점점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오랫동안 못 찾는 일도 있는데······.”
유은호는 시계를 쳐다봤다. 약속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가 괜히 온 게 아닌가 싶네요.”
“아닙니다. 저희도 상무님 봬서 좋았습니다.”
그가 벌떡 일어나자, 병원장과 교수들도 따라 일어났다.
“회장님께 안부 전해주시지요.”
“네.”
병원을 나온 유은호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는 2층의 카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유은호는 익숙한 듯 커피나 마셨다.
“유은호. 여전히 인기 많으시네.”
“백서준. 오랜만.”
그는 맞은편에 털썩 앉은 사람을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백서준이라 불린 사람이 팔짱을 끼고 유은호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바쁘신 분이 여기까진 웬일이야?”
“너보고 싶어서.”
“네가? 지랄한다.”
백서준, 그는 유은호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들이 다닌 고등학교가 워낙 고위층 자제가 다니는 학교라서 백서준도 대대로 경찰 집안의 사내였다.
머리도 좋아서 전교에서 2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1등은 당연히 유은호였는데, 그를 이기려고 별별 견제를 하고 라이벌 의식을 불태웠다가 어쩌다 보니 친하게 지내면서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하고 있었다.
“못 본 새 말투가 더 거칠어졌네. 일이 힘드냐?”
“새파랗게 어린놈이 경위 달고 왔더니 차기 청장 아들이래, 어떨 거 같냐?”
백서준은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유은호는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부하는 새끼들이랑 질투해서 돌아버린 새끼들이랑 뒤섞여서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내가 세게 나가야 좀 닥치던데. 야 상무님아, 너는 그런 거 없냐?”
잔을 내려놓은 유은호가 말했다.
“없는데.”
“재수 없어.”
유은호가 피식 웃었다. 누가 그에게 뭐라고 하겠나. 유 회장이 아껴서 대놓고 밀어주고 있는 장손, 어릴 때부터 천재라 불리고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서 회사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래서, 난 왜 불렀는데?”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뭐 물어본다고 여기까지 왔냐? 그냥 전화로 하지.”
유은호는 틱틱 내뱉는 백서준을 무시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반가울수록 틱틱거리는 게 동생을 닮기도 했고, 그래서 절친한 친구였다.
“우리 엄마 자살 사건 말이야.”
“······이희서?”
유은호가 말없이 백서준의 눈을 바라봤다. 그 무표정한 시선에 꼬리를 내린 백서준이 말을 정정했다.
“이희서 씨, 그래. 그분 얘기는 왜?”
“재수사, 가능해? 너 혼자서.”
“뭐?”
의자에 편히 기대고 있던 백서준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가 아는 유은호는 아무 이유 없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자살로 종결 난 사건을? 십 년도 넘게 지난 사건이야.”
“내 동생이 말이야······.”
백서준은 또 동생 얘기를 하는 유은호를 질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세상 진지한 표정과 평온한 말투로 동생의 자랑을 하는 것을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니어서 그렇다. 그렇게 자랑할만한 동생도 아닌 거 같은데······.
“엄마가 정말 자살했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어.”
“고작 망나니 동생의 말을 믿고 재수사를 요청한다고?”
“그래.”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유은호를 보며 백서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일단 친구의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백서준은 대단한 비밀 얘기를 하듯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유은호에게 속삭였다.
“글쎄······ 만약 그분이 자살이 아니라고 치면, 누군가가 자살로 꾸미고 죽였겠지.”
“그렇겠지.”
“너 그때 몇 살이었지? 사건 당시 기억나는 걸 한번 말해봐.”
유은호는 팔짱을 끼고 백서준의 뒤에 있는 이름 모를 식물에 시선을 고정했다.
“열한 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기념할 일이 있어서 집에 가족 친척들이 다 모였었어. 어린 사촌들까지.”
“거의 명절이네. 그리고?”
“다들 할아버지가 계시는 본채에 있었지. 우리 가족은 별채를 썼었고. 다들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무슨 이유로 자리를 비웠었어.”
유은호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듯 눈살을 잠시 찌푸렸다.
“천재인 너도 기억 못 하는 게 있냐?”
“그때의 기억은 나도 희미해서.”
당시 유은호도 고작 열한 살이었다. 충격을 안 받았을 리가 없었다. 백서준은 팔짱 낀 손을 테이블에 올렸다.
“주성의 경호팀은 청와대 다음으로 살벌하다고 들었어, 맞지?”
“맞아.”
“온 가족이 모여있는 유 회장님의 저택이니 평소보다 많은 경호 인력이 들어갔을 거야.”
유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경호를 뚫고 들어와서, 주성의 며느리를 자살로 위장하고 꼬리도 밟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가설은 너희 가족 친지 중에서 범인이 있거나, 최소 공범이라는······.”
백서준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유은호도 침묵했다.
볼륨이 큰 카페의 음악 소리와 유은호를 보며 수군거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어도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신경이 다른 쪽으로 기울어서 그랬다.
“······너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래.”
유은호가 한숨 쉬듯 대답했다. 백서준은 이미 유은호가 다 의심하고 자신을 찾아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말이 안 되는데······. 이건 가족 전체를 의심한다는 소리야. 바꿔 말하자면, 가족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소리고. 그걸 고작······.”
그걸 고작 동생이 한마디 했다고 이런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유연서는 SNS에 돈 자랑이나 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연예인을 취미로, 심심하면 갑질하고 찍어 누르는 사람이었다.
상류층 사이에서는 어땠을까? 똑같았다. 지옥불 주둥이에 개망나니 싸가지. 그게 유연서였다.
평소 행실이 이런 사람을 누가 믿을까? 하지만 백서준은 유연서를 못 믿어도 유은호는 믿었다.
“내 동생은 이유 없이 그런 말 할 사람이 아니야.”
“그 미친놈의 말을 믿냐?”
“미친놈, 그래.”
유은호는 다 식어버린 커피를 멍하니 바라봤다.
[엄마가 정말 자살했다고 생각해?]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유은호가 아릿한 표정을 지었다.
[연서야, 이미 끝난 일이다. 경찰이 몇 번이나 조사한 사건이야.] [형, 내 말 들어봐. 그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이제 그만 엄마는 잊어버려.]동생이 엄마를 생각할 때면 발작했으니까, 그냥 언급을 안 하는 게 최선인 줄 알았다.
“미친 이유가 있었겠지······.”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제 내가 믿어줄 차례다.
유은호는 시계를 슬쩍 바라봤다. 친모의 사망 사건을 밝혀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음에도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할 수 있겠어?”
“······네 부탁이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 하지만 나도 내 일해야 하니까 비는 시간에 잠깐 조사하는 정도로만 할 수 있어.”
백서준이 한숨을 푹 쉬었다. 유은호의 의심은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당시 경찰이 면밀한 조사를 했고, 결론 난 사건을 다시 파헤친다는 건 백서준도 상당한 각오가 필요했다.
‘이 여우 새끼······.’
그래서 유은호가 백서준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 차기 경찰청장의 아들이니까. 아무튼, 절친이 저렇게 부탁하니 들어는 주겠지만, 적당히 장단이나 맞춰주고 빠질 생각이었다.
“서준아. 아무에게도 들키면 안 돼.”
“······나도 알아.”
유 회장의 안방에 당당히 들어와 며느리를 살해한 사건이다. 만약 진짜 자살한 게 맞다면 범인, 공범과 조력자도 주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다.
“은호야. 근데 네가 했던 의심을 너희 할아버지가 못 하셨을까?”
“하셨겠지.”
“그런데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셨다고?”
“가족이라서 그래.”
정확히 말하면 가족이 아니라 핏줄. 유 회장은 죽은 이희서보다 미쳐버린 둘째 손자가 우선이었다.
“우리 할아버지의 유일한 약점이거든.”
***
그래서 유은호의 태도가 이상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술했던 건 아니다.
그의 미묘한 변화는 유연서가 제일 먼저 알았고, 유연서가 의심하니 유건민과 최유진도 어렴풋이 짐작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친척들은 유은호의 태도에서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도.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유연서는 이태겸이 가져온 대본과 시놉시스를 훑으며 차기작을 고르고 있었다.
“······어때?”
“괜찮네.”
“진짜?”
유연서는 제 손에 들려있는 대본을 흔들었다.
“이것만.”
“아······.”
이태겸이 고개를 떨궜다. 야심 차게 고르고 골라 가져왔는데 다 탈락인가.
“보는 눈 좀 길러라.”
“에이 씨, 내가 너냐?”
“나는 될 수 없지. 더 수련하고 와라.”
잘났네 잘났어. 이태겸이 구시렁거리면서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근데 의외네? 그걸 고르다니.”
유연서의 손에 든 대본에는 ‘결핍된 사람들 -시즌 2-’라고 적혀 있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시즌 2까지 결정됐으면 인기작 아닌가?”
“인기 작품은 맞지, 원작이 유명 웹툰이거든. 나도 진짜 재밌게 봤는데······.”
“그래? 근데 왜?”
“원작 팬이 콘크리트야. 워낙 극성맞아서 캐스팅 단계부터 삐걱거렸거든. 시즌 1이 내 눈에는 잘 나왔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고 팬들이 제작사에 항의하더니 결국 작가와 감독 동시 하차. 시즌 2부터는 원작자가 작가로 참여하고 감독도 바뀐다고 하더라. 간섭 엄청 심할걸?”
“왜 그런 걸 신경 쓰지?”
“그래······ 네가 뭘 알겠냐.”
빠와 까를 동시에 미치게 하는 오리지널 미친놈이 뭘 알겠냐. 이태겸이 한숨을 쉬었다.
“원작이 유명하니까 고른 줄 알았는데, 원작 자체를 몰랐을 줄이야······ 그럼 그걸 고른 이유가 뭐야?”
“내가 맡을 배역이 미친놈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서.”
미친놈의 마음은 미친놈만 이해한다, 뭐 그런 거야? 이태겸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유연서를 노려보았다. 물론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무 일 없는 듯 표정을 바꿨지만.
‘결핍된 사람들’, 줄여서 결.사는 정체불명의 단체에 뭔가를 하나씩 뺏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죽음을 뺏긴 남자가 주인공으로, 결핍된 것을 다시 찾기 위해 움직이는 능력자 베틀 물이었다.
유연서에게 들어온 배역은 잠을 빼앗겨 미쳐버린 남자 ‘이태오’였다.
‘이태오는 잠을 빼앗겨 미쳐 버렸고, 나는 죽은 엄마의 환영을 보면서 미쳐 버렸네.’
둘이 얼핏 닮았다. 유연서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태겸이 이상하게 쳐다봐도 상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