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Son of the Pentanium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132)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32화(132/275)
그로부터 몇 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화창한 봄 날씨는 한창.
꽃망울들도 무르익어 여기저기서 꽃을 피워내고.
“에취!”
덕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고생하는 시기가 왔다.
서리스는 옆에서 재채기를 남발하는 아이랑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청랑단에도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단원이 있어서, 저게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리스님, 재채기하는 모습 보이기가 부끄러우니 고개를 조금 돌려주시겠어요.”
어차피 면사포 때문에 보이는 것도 없다만.
하지만 부끄러울 수는 있었기에 서리스도 순순히 고개를 돌렸다.
몇 주간 엑스널에게 훈련을 같이 받은 덕분인지 아이랑은 서리스와 눈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맞추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죄책감이 조금 가신 거겠지.
“크라페, 거기 누워있으면 밟힌다.”
훈련에 지쳐 바닥에 누워 굴러다니는 크라페에게 한마디 건넨 서리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른 하늘은 오늘도 어김없이 맑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내일이면 악스달에서의 생활도 끝날 예정이다.
또 다음 단으로 가면 적응할 시간과 함께 또다시 훈련이 시작되겠지.
‘이것도 쉽지 않구만.’
서리스가 체력에 자신이 있어서 이 정도지.
엑스널이 시킨 훈련들은 서리스 입장에서도 그 난이도가 꽤나 질릴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훈련이 앞으로 4개는 더 남아 있다는 점과.
단을 돌아보는 것이 다 끝나도 고작 1학기라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왜 기껏 워너힐 아카데미를 입학해놓고서 도망치는지 이해가 간달까.’
세계 침식을 상대하기 위한 영웅을 기르는 과정이 참 험난하다고 서리스는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서리스는 알리즈를 떠올렸다.
알리즈에게 통보했던 대로 서리스는 종종 그를 찾아가곤 했다.
그날 이후로 서리스의 조언을 따라 그림자와 별을 쓰지 않기로 한 알리즈는 자신이 쥔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다시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는데.
최근 서리스가 보기에도 그의 검에 담긴 감정이 무척이나 많이 변화했단 것이 느껴졌다.
드디어 제 뜻을 담아 검을 휘두르는 법을 깨우치기 시작했달까.
그 덕분에 알리즈는 무섭도록 검만 휘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물아일체(物我一體)에 가깝기 그지없었기에 최근 서리스는 그를 찾아가는 것을 그만뒀다.
자신의 검을 쥐어 보게 된 알리즈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해 보여서 더 이상 자신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 근간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었고, 이제야 그 결실이 맺힌 거라 보지만.
그는 분명 알을 깨고 나올 것이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자. 마지막이기도 하니.”
그러는 사이 엑스널이 훈련 종료를 통보했다.
시종일관 엑스널과는 퉁명스럽게 부딪친 서리스지만, 그에게서 조력자와 잠식자를 상대할 때의 주의할 점을 많이 배웠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거기에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인지 서리스가 검을 휘두를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안 좋은 버릇을 지적해 고치는 걸 도와주기도 했다.
‘참, 이렇게만 보면 좋은 선배인데.’
알리즈를 긁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기도 했다.
확실한 건 그는 펜타니엄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도 같은 오대가이자 라이벌 관계이기 때문이겠지.
마키나가 한때는 펜타니엄과 같이 검술 명가로 불렸다는 사실을 서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이 검을 놓았다는 사실조차.
그래서 놀랐었다.
엑스널이 검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
‘그 사실이 내 귀에 들리기도 전에 엑스널은 죽었었으니까.’
대가문 펜타니엄의 이름에 크게 먹칠을 한 아카데미 학살 사건 때 그는 알리즈의 검에 의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었다.
그 일을 알기에 서리스는 알리즈를 그렇게 낮게 평가하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알리즈가 세계 침식자에게 힘을 빌렸다 한들 워너힐 아카데미 2학년은 절대 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혼자서 전부 처리했다는 뜻은 알리즈에게도 분명 피어날 새싹이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서리스는 그 부분을 알리즈가 아직 제 검을 쥐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추측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는 평생 제 검을 휘둘러도 워너힐 아카데미 문턱을 넘지 못했던 반면.
알리즈는 남들이 시키는 대로 휘두른 검만으로도 워너힐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그의 재능은 피어나지 못한 새싹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끝까지 피어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새싹인 채였겠지.’
우습게도 그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건 서리스밖에 없었다.
요치아나 락로드 같은 천재들은 알리즈가 지닌 고민을 이해조차 못 했을 것이고.
반대로 평범히 검을 다루는 범인들은 알리즈가 제 검을 휘두르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천재에게는 이해받을 수 없고, 같은 범재는 눈치챌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
알리즈에게는 자신의 문제점을 정확히 집어줄 조언자가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리스는 달랐다.
서리스는 한때, 범재에도 속하지 못할 낙제생으로 살았기에 그들이 가진 고민을 알고 있었고.
이제는 천재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한 괴물 같은 재능을 쥐었기에 그의 검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단순한 우연.
아니, 알리즈의 폭주를 막기 위해 서리스가 그를 찾은 것이니 필연일지도 모른다.
최근 알리즈를 보면 서리스는 어렴풋이 생각한다.
지금의 알리즈라면 과거와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물론 아직 확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지라 완전히 신경을 거두는 건 무리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리스는 엑스널을 바라보았다.
알리즈의 폭주 시발점일지도 모르는 인물.
그가 왜 알리즈를 괴롭히는지 어렴풋이 눈치챈 서리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이놈의 경쟁 사회가 여러 사람을 망쳐 놓은 탓이다.
‘가장 확실한 건 저 녀석이 마키나의 첫째라는 점이겠지.’
펜타니엄의 첫째인 락스카는 규수단 테르넬의 최연소 단장이 되었다.
당연히 그 일은 엑스널에게 있어서 어깨를 짓누를 정도의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조급함, 초조함.
태어날 때부터 비교당했을 그에게 그 사실은 심한 압박이었겠지.
아마 알리즈와 같이 그가 악스달에 들어온 이유는 락스카가 테르넬의 단장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조급함과 압박감을 알리즈를 괴롭히는 거로 푸는 게,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미래의 자기가 자신이 괴롭힌 알리즈에게 살해당하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서리스 후배.”
그러는 순간 갑자기 엑스널이 서리스 앞으로 다가왔다.
서리스가 그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고 있자 엑스널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언제까지 가짜 망나니 행세를 할 거야? 네가 다른 선배나 단원분들께는 깍듯이 대한다는 건 이미 들었어.”
“그럼 처음부터 밉보이지를 말았어야지.”
실제로 먼저 펜타니엄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건 건 엑스널이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기억을 들먹이지 않아도, 형제이기 이전에 같은 스승을 둔 알리즈를 욕보이는 엑스널이 마음에 들 리가 있나.
물론 그의 실력과 전투 경험은 존중하기에 훈련 중에 내리는 그의 지시와 지도는 철저하게 따랐다.
엑스널도 서리스가 공과 사는 구분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훈련 과정에서 그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하는 치졸한 짓은 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때 내가 한 행동을 사과하면 그 태도를 고칠 생각이야?”
사과라니?
의외의 발언에 서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하지만 마키나의 장남답게 그는 자존심이 굉장히 셌다.
사과라는 말을 섣불리 내뱉을 위치는 아닌 것이다.
그것도 펜타니엄인 나에게는 더욱더.
“내가 아무에게나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야. 알리즈를 보고 무심코 내뱉기는 했지만 네게 무례하게 대했다는 것 정도는.”
“아저씨, 혹시 오다가 어디 걸려 넘어졌어? 머리라도 다친 거 아니야?”
“넌 남이 말하면 좀 진지하게 들어!”
“농담이야. 사과한다면 적어도 호칭과 말투 정도는 고쳐줄게.”
저쪽이 예의를 갖춘다면 그 정도는 해줄 속셈이 있다.
단지, 한 방 먹이고 말겠다는 계획은 그리 달라지지 않겠지만 말이다.
“미안해. 그때는 내가 실수했었어.”
알리즈는 덤덤히 입을 열었다.
꽤나 솔직한 발언에 서리스는 눈을 깜빡이다 곧 씨익하니 웃었다.
“마키나 첫째가 펜타니엄 셋째한테 사과나 다 하고, 소문나면 큰일 나겠는데?”
“앞에서 한 말이나 지켜.”
“그러지. 엑스널 선배, 예의를 지킨다는 게 서로 참 어렵다. 그죠?”
서리스가 익살맞게 바로 호칭과 말투를 바꾸자 엑스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품에서 대뜸 편지 한 장을 꺼내더니 서리스에게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그가 편지를 들어 살랑거리자 엑스널은 거기 박힌 인장을 가리켜 보였다.
“천옥지회(天鈺支會)라고, 워너힐 아카데미를 다니는 학생들의 사교회야. 기존 회원의 초대를 통해서만 회원이 될 수 있지. 그 초대 횟수 자체도 1인당 1회라서 그렇게 인원이 많지는 않아.”
“딱히 관심 없는데요.”
과거의 기억 덕분에 정치라 하면 학을 떼는 서리스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 보였다.
어차피 같은 동년배 학생들이랑 어울리며 친목은 쌓아놨고.
현재의 학교생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뭐 하러 선배들까지 만나러 가겠는가.
“관심 없어도 귀담아들어. 천옥지회 소속에서 매년 학생 단장이 나오는 만큼 절대 무시할 만한 곳이 아니야.”
서리스가 말의 진의를 확인하듯 아이랑 쪽을 보자 그녀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맞는 말이긴 해요. 천옥지회의 초대되는 시점에서 실력이나 인품이 검증되었단 뜻이고, 당연히 그런 분들이 학생 단장에 뽑히니까요.”
그러면서 아이랑도 초대장을 받았다고 말해왔다.
크라페까지 받았다고 하니 확실히 아카데미 내의 영향력이 꽤 강한 모임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걸 왜 엑스널 선배가 저한테 줍니까?”
3주간 같이 훈련하긴 했지만, 엑스널과 서리스는 앙숙이라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절대 친하다고 할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인 엑스널이 굳이 자신에게 초대장을?
서리스 입장에서는 수상쩍을 수밖에 없었다.
“서리스 후배, 난 네 능력을 꽤 높이 사고 있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알겠어. 넌 아마 높은 확률로 네 대의 학생 단장이 될 거야.”
서리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악스달 단장인 윈터에게 학생 단장 자리를 제안받았었다는 걸 그는 모를 테니 말이다.
“나는 마키나 직계이고 그런 만큼 악스달의 단장과 마키나의 가주 자리까지 노리고 있어.”
“그래서 엑스널 선배 밑으로 들어오라 이 말입니까?”
“그래. 너도 알잖아? 펜타니엄 락스카가 있는 한 너는 가주가 되지 못해. 그럴 바에야 워너힐 아카데미를 손에 쥐는 게 나을 거고, 그 정도는 네 실력과 내 도움이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서리스는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그가 품은 원대한 꿈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엑스널은 그런 꿈을 그릴 정도로 실력이 괜찮았고, 이대로만 흘러가면 아마 그의 계획대로 흘러갈 테니까.
단지, 서리스 입장에서는 전부 관심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펜타니엄 가주라는 자리에도 여전히 애매한 반응을 보이는 서리스다.
그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정치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단지, 계속해서 강해지다 보면 언젠가 가주 자리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란 짐작이 생겨 조금 염두에 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마당에 워너힐 아카데미를 손에 쥐자고?
서리스에게 워너힐 아카데미는 그저 거쳐 가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엑스널 선배, 밑에 들어가는 건 거절하겠습니다.”
“……기어코 펜타니엄 가주 자리를 노릴 속셈이야? 그러지 마. 서리스 후배는 지금의 락스카를 몰라. 그를 보는 순간 바로 무너질 거야.”
“제가 그렇게 약해 보입니까?”
“아니, 락스카가 규격 외로 강할 뿐이야.”
엑스널의 눈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라이벌이라는 관계가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는 현실에서 온 자괴감이 그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는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쇼. 애초에 제 목표는 천상사성이니까요. 뭐, 기회가 되면 더 위를 노리기도 할 테지만.”
엑스널은 서리스의 말을 듣고는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펜타니엄 가주가 되겠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그렇게 들린다면 어쩔 수 없고요.”
서리스가 태평하게 어깨를 으쓱이자 엑스널의 표정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감정을 모두 연소시킨 듯, 살을 에는 추위가 느껴질 정도의 무표정으로 엑스널은 경고했다.
“……서리스 후배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앞으로 우리는 적이야. 훈련 기간이 끝난 만큼 나는 적이라 판단한 상대를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아.”
앞서 한 사과와 제안은 서리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듯.
엑스널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서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경고에도 서리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초대장을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잊었습니까? 저희는 처음부터 적이었습니다.”
상대가 이렇게 나와주니 오히려 좋다는 듯, 서리스가 도발을 받아치자 엑스널은 이내 짧게 혀를 차곤 고개를 돌렸다.
“난 역시 서리스 후배가 마음에 안 들어. 펜타니엄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도.”
“그런 사람이 저한테 밑에 들어오라고 제안합니까? 악질이시네요. 그런데 걱정하지 마십쇼. 저도 엑스널 선배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서리스는 처음과 같이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발을 옮겼다.
“초대장은 잘 받았습니다. 초대해 준 정성 따라 한 번은 가줄 테니 그때 봅시다.”
서리스가 걸음을 옮기자 엑스널은 마음대로 하라는 양, 그도 훈련장을 떠나갔다.
그 사이 아이랑과 크라페는 서리스를 뒤따라오더니 한마디씩 내뱉었다.
“서리스님, 엑스널 선배님이랑 사실 친하죠?”
“악연, 애증.”
얘들이 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서리스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