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Son of the Pentanium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210)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10화(210/275)
제파림.
용제의 동생이자 용신의 열쇠인 그는 불터렉스 본가 근처의 한 호수를 지나고 있었다.
오늘 만난 열쇠 쪽 후배에게 한마디 경고해둔 그는 호수 위로 비치는 자기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롬 형님, 형님이 이렇게 제게 놀아날 줄은 생각이나 해 본 적 있습니까?”
밤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푸른색의 눈동자가 깨끗한 호수 수면에 비쳤다.
호수에 비친 그의 얼굴은 다름 아닌 제롬이였다.
그야 당연하다.
그가 지금 뒤집어쓰고 있는 이 몸은 다름 아닌 그가 훔쳤던 제롬의 몸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롬의 영혼은 오래전에 이미 소멸하여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육체는 여전히 동생인 제파림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제파림은 묘한 짜릿함을 느꼈다.
평생을 바쳐도 따라잡을 수조차 없었던 형이다.
그런 형을 보며 동경심을 품었던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남은 것은 추악한 시기심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형조차 용신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게 자신을 구하는 길이라며 동생 목을 베어낸 그 형이 복수를 위해 용신에게 덤벼들었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제파림은 그때 서야 모든 세상이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이 멀쩡히 돌아왔던 그 순간에 지었던 형의 표정은 여전히 제파림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형님은 어떻게 그때도 웃으신 겁니까?”
제파림은 수면에 비친 제롬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문을 담아 물었다.
그걸 해소하고자 형의 몸까지 가져와 뒤집어썼지만, 그 의문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묵직해지는 거 같았다.
그러던 중 제파람의 팔 한쪽이 검은 진물과 함께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쯧.”
제파림의 혀 차는 소리가 울렸다.
꽤나 오래 사용한 형의 몸뚱어리였지만. 슬슬 버릴 때가 온 모양이었다.
제롬의 육체에 깃든다면 동경하던 그 힘을 빼앗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뒤집어쓴 몸이었지만.
그의 몸은 자신이 뒤집어썼을 때는 그저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제롬은 모든 힘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 당시 미숙했던 자신의 공격에도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무력하게 당했던 거겠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내려고 했건만.”
아쉽지만 그러기에는 육체가 먼저 망가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꼴에 천하오장성이라고 마지막까지 발버둥 친 그릭슨의 독기는 이 낡은 육체를 서서히 망가트리고 있었다.
하나, 제파림에게 있어서 그건 딱히 상관없는 문제였다.
자신의 본체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만악의 질병 안에 있고, 지금도 세계 침식을 흡수하고 있었다.
제롬의 몸에 들어와 종종 활동하던 것은 그저 제파림의 유희.
그 유희를 끝낼 시간이 다가온 것뿐이다.
‘돌아간다.’
그렇게 그가 호수에서 발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보글보글―
그가 방금까지 바라보던 호수에서 갑자기 작은 기포들이 생겨났다.
이상함을 느낀 제파림이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본 그 순간.
갑자기 치솟은 물이 그의 머리를 덮쳤다.
치이이이이익!
물은 산의 성질을 띠고 있었다.
제파림을 덮치며 주변으로 튄 물이 땅에 닿자 하얀 연기가 나며 깊게 파여 들어갔다.
제파림은 자기 얼굴 위에서 나오는 연기와 함께 조용히 눈을 돌렸다.
그의 얼굴 앞에는 검은색 깃털 같은 게 막을 치듯 생겨나며 물을 막아 제파림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거 꽤 내가 잘 아는 사람인 거 같다만.”
콰광!
그 순간 이번에는 낙뢰가 제파림을 내려쳤다.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은 제파림이 눈살을 찌푸린 순간, 그의 앞으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제파림, 동생이라는 놈이 형의 몸을 뒤집어쓰고 패악질을 일삼다니…… 세상이 두렵지도 않아?”
꾸지람을 담은 듯한 그 목소리를 듣고 제파림은 헛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는 그도 잘 아는 이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타린.”
마제, 올스타드 스타린.
과거 제롬의 친우이자 같은 삼무제였던 그가 이곳에 나타났다.
그런 그를 보는 제파림의 주위로 검은색 깃털이 하나둘 흩날리기 시작했다.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나?”
“볼 일이야. 더럽게 많지. 내가 최근에 이것저것 들은 게 좀 있거든.”
“아하, 이것저것이라…… 뭔가 많이 알고 온 모양이로군.”
그리 말하며 제파림의 두 눈이 반달 형태로 휘어졌다.
“그런데 어쩌나. 네가 뭘 알든 말든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라고 보는데.”
“제롬을 내놔라.”
제파림의 도발에도 스타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 목적만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제파림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었다.
“동생한테서 친형을 뺏어 가려는 속셈인가? 세상이 두렵지 않은 건 오히려 네가 아닌가 싶다만.”
“개같은 소리 지껄이지 마라. 네게 양심이 있다면 제롬을 더 이상 욕보이지 말라는 소리다.”
파지직―
경고한 스타린의 팔 주위로 번갯불이 튀어 올랐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제파림은 이마를 짚더니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양심이고, 뭐고 내가 제롬 형을 욕보이고 있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흩날리던 깃털이 공중에서 멈추더니 이내 스타린을 노리고 거세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제파림은 후드를 벗으며 제롬의 얼굴을 드러낸 채 입안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그거 아나? 나는 조만간 널 찾아가 끝을 보려 했었다. 그런데 덕분에 수고를 덜었군.”
비록 그릭슨에게 상처를 입은 상태긴 하나 제파림이 뒤집어쓴 제롬의 몸은 어디까지나 분신에 지나지 않았다.
제파림이 지닌 능력 중 가장 강한 것은 그가 만들어낸 고유 영체 비기 성령불사(星令不辭)이다.
지금 제롬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신의 영체를 일부 잘라내어 심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체는 최흉 만악의 질병 속에서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물론 분할된 영체라 할지라도 상처를 입으면 본체로 되돌아갈 때, 타격을 입는다는 사실은 그도 잘 안다.
‘형한테 그 꼴을 당했었으니까.’
제롬과 큰형에게 죽었던 그가 되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도 성령불사 덕이긴 했으나.
그런데 제롬이 만든 기묘한 기술에 당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영혼에 새겨졌었다.
그걸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가.
최근 겨우 어느 정도 회복한 그는 본격적인 최흉 사냥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이 회복하는 기간동안 수족처럼 부린 제롬의 육체는 이제 더 이상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지금 이건 버리려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
본체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그였다.
그러니 제파림은 분노하고 있는 스타린을 상대로도 여유로웠다.
오히려 그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기회로 보였다.
제롬의 몸을 불살라 스타린을 죽이거나 하다못해 크게 망가트려 놓는다면, 앞으로의 일이 좀 더 편하게 풀릴 거란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옛 삼무제의 몰락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다면 천상사성 놈들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겁이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혼자서 무슨 생각인가?”
“내가 언제 나 혼자서 왔다고 하였지?”
그 순간, 제파림이 급하게 몸을 틀었지만, 한발 늦었는지 그의 옆구리에는 검 한 자루가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주룩 하고 제파림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내부 장기가 검에 잘렸기 때문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그릭슨 놈이 마지막에 사용한 독이 생각보다 몸을 많이 망가트린 모양이었다.
머리가 내린 판단을 육체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노부를 빼놓으면 섭섭하지.”
거기에는 스타린과 마찬가지로 작은 키에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작아진 것은 오로지 키와 외형적인 부분밖에 없었다.
그가 지닌 별은 그의 정체를 짐작게 해주고 있었다.
“요치아.”
검제 펜타니엄 요치아.
그가 먼 과거의 인연이 남긴 흔적을 쫓아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스타린이 해주었던 조언을 서리스가 말해준 뒤로 깨달음을 극복해.
마침내 반로환동을 성공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제파림에게 있어서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문제는 적이 스타린뿐만 아니라 요치아까지 있다는 점이었다.
“과거의 망령 같은 놈들이.”
요치아가 검을 더 비틀어 그대로 몸을 잘라 버리려 했지만, 제파림이 손에 쥔 깃털을 휘둘러 그를 쫓아냈다.
“그놈…… 제롬의 몸 아니랄까 봐, 더럽게 단단하기 그지없구나.”
“요치아, 이 자식아 방금 걸로 끝을 냈어야지. 틈을 그렇게 만들어줬는데.”
“나원, 사람을 부르자마자 굴리는 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구나. 애초에 노부는 이 몸이 아직 안 익숙하단 말이다.”
“네가 다 모자라서 그런 거다. 모자라서.”
“오냐. 스타린, 네 목부터 베어주마.”
자신을 앞에 두고 떠드는 두 사람을 보며 제파림은 입안에 찬 핏물을 뱉었다.
‘그릭슨의 독만이 아니었군.’
오래전에 별이 빠져나가 텅 빈 껍데기가 된 제롬의 육체는 진작부터 한계였다.
그릭슨의 독이 퍼진 게 그 붕괴의 트리거로 작용한 거겠지.
‘두 놈 다 죽여두면 좋겠건만.’
상상 이상으로 육체 상태가 영 아니올시다였다.
‘계획을 바꾸는 수밖에.’
죽이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히면 그만이다.
“딴생각할 틈이 있느냐?”
그 순간 아래에서 내지른 요치아의 그림자 검을 제파림이 깃털 검으로 막았다.
그와 함께 둘의 검이 맹렬하게 연달아 부딪쳤다.
“제롬의 몸을 가지고도 그것밖에 못 해? 예나 지금이나 형편없는 놈이구나?”
수명이 끝에 다다라 다 죽어가던 요지아는 반로환동으로 활력을 되찾은 뒤, 전성기 시절처럼 펄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넘치는 힘을 오롯이 제파림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하나, 그러면서도 그는 검술의 끝에 다다른 이답게 아주 미세한 틈도 없는 고요한 검세를 유지 중이었다.
육체는 뜨겁게, 검은 고요하게.
이 두 가지가 맞물린 요치아는 오래전에 잊었던 전투의 즐거움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채엥, 챙!
그리고 그 덕분에 날이 선 기감이 뒤에서 날아드는 검은 깃털들을 모조리 포착하며 쳐내었다.
“깃털이 마치 이기어검 같구나?”
신이 난 요치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검을 쳐낸 제파림이 뒤로 물러섰다.
요치아가 자신과 검을 맞부딪치며 과거의 무용을 되찾아 가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요치아만 있다고 생각해?”
그러는 순간 그의 뒤에서 스타린이 전신에서 푸른색 번개를 쏟아내며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궁그닐이 쥐어져 있었고, 그는 망설임 없이 제파림을 향해 그것을 휘둘렀다.
쩌엉!
휘둘러진 궁그닐의 충격파가 그 자리를 휩쓸며 폭발했다.
“스타린, 이놈아! 노부도 있는 걸 까먹었느냐?”
“그냥 같이 죽지 그래?”
덩달아 그 폭발에 휘말린 요치아가 소리쳤으나 스타린은 궁그닐을 지우곤 양손을 모았다.
틈을 주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칠 속셈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타린이 다음 마법 준비를 마쳤을 때, 연기 사이로 검은색의 구체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그 구체는 제파림의 검은 깃털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까악―
그 순간 어디선가 까마귀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를 느낀 스타린은 망설임 없이 번개를 던졌고, 이에 적중한 검은 구체는 산산이 조각나며 타버렸다.
그런데 구체가 사라진 자리엔 흩날리는 깃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에 스타린이 즉시 다음 마법을 준비했을 때, 요치아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하, 이놈 봐라.”
방금까지 별들로 수놓아져 있던 하늘을 잡아먹기라도 한 듯, 검은 깃털들이 돔 형태를 이루며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그 중심에 유유히 떠 있던 제파림은 아래로 턱짓하였고.
이윽고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색 깃털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닿는 모든 것을 썰어버릴 만큼의 절삭력이 담긴 깃털이다.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가 해.”
스타린이 요치아를 바라보며 말하자 그는 늙은 사람 고생시킨다며 투덜거리면서도 천천히 검을 들었다.
“서리스, 이놈아. 어디서 보고 있으면, 두 눈에 잘 담아 두거라.”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요치아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어디선가 지켜 보고 있을 자기 제자에게 먼 훗날 그가 도달하고, 또 넘어서야 할 검을 보여주기 위해서.
제왕월영도(帝王月影刀)
검의 제왕이라 불린 그가 만들어낸 극의.
달로 향한 용을 시기하여 그 비늘을 탐냈던 어리석은 까마귀에게.
제왕이 검을 휘두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