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Son of the Pentanium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267)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67화(267/275)
별가루 평원.
서리스는 소드란을 저주받게 했던 그 땅에 들어가기 전, 한 가문에 먼저 방문했다.
대가문 그라말테.
천하오장성이 그라말테 세라 에이징이 있는 그 땅에 도착한 서리스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흰색의 건물들이 눈에 띄는 그곳에는 거리와는 안 어울리는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짐보따리를 들거나 노상을 깔고 있는 그들은 하나같이 피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피난 온 거군.’
최흉들이 워낙 말썽을 일으켰던 만큼 그나마 안전한 그라말테로 사람들이 몰려든 거 같았다.
‘그라말테는 최흉에서 안전했으니까.’
최흉 별가루 평원은 제파림이 건드리지 못한 최흉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다른 가문에서 살던 이들이 그라말테로 피신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서리스가 최흉을 마무리한 만큼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최흉이 사라지다니. 하참, 이런 일이 다 있구만.”
“천상사성이랑 천하오장성 분들이 노력해 줘서지. 고마운 일이야.”
대화를 나누며 떠나가는 그들을 보고, 서리스는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군.’
세계 침식자와의 대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에 왔었던 기억을 떠올린 서리스는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평원 하나를 중심으로 둘러 있는 성벽이 보였다.
별가루 평원.
그게 바로 저곳이었다.
“서리스.”
그러는 순간 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그라말테 세라 크라페가 있었다.
금발 아래로 보이는 표정 없는 얼굴과 마주한 서리스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다. 크라페.”
“얼마 전에 아카데미에서 봤지만.”
그 말대로 서리스는 얼마 전에 크라페를 만났었다.
하지만 제파림에 의해 바로 사건이 터졌던 만큼 졸업식 당시 얼마 이야기도 하지 못했었다.
“별가루 평원에 들어갈 생각이지?”
서리스는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위험할 거야.”
크라페는 서리스의 강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이 중 하나다.
세계 침식자인 은신사의 아들인 그였기에 검은별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런 만큼 서리스에게서 느껴지는 검은별을 그대로 체감하고 있는 크라페였음에도 그는 별가루 평원에 가는 걸 경고한 것이었다.
“그렇겠지.”
서리스 또한 별가루 평원이 어떤 곳인지 잘 안다.
별가루 평원, 오직 월사자 한 명만이 존재하는 세계 침식임에도 최흉이라 불리는 곳.
과거에 수많은 가문이 월사자를 막기 위해 나서서 싸웠던 달빛전쟁은 엄청난 사상자를 냈음에도 그 끝을 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소드란이 저주를 받았었지.
“그런데도 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
그렇게 말한 서리스는 씁쓸히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크라페는 눈을 깜빡이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크라페가 한숨 쉬는 일은 드물었던 만큼 서리스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가 한숨 쉬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네가 혼자서 너무 많이 짊어지는 거 같으니까.”
너무 많이 짊어진다.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
의외로 더 힘들었던 시절은 소드란 시절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는 걸 서리스는 잘 알았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가 가장 잘 나아갈 수 있는 시기니까.”
그렇기에 서리스는 지금이 훨씬 더 내적으로 충만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알았어.”
크라페는 서리스의 대답을 듣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앞까지는 내가 안내할게.”
“고맙다.”
서리스의 감사를 듣고 크라페는 걸음을 옮겼다.
성벽 앞에 도착한 서리스는 그 위를 올려다보았다.
성벽 너머로 별가루가 옅게 흩날렸다.
가문이 저주받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들어갈 수 없었던 장소였다.
그곳에 자신이 오게 됐음을 깨달으며 서리스는 크라페를 돌아보았다.
“그럼, 갔다 올게.”
서리스의 말과 함께 쿠구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벽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별가루가 서리스의 뒤편에서 흩날렸다.
“갔다 와.”
크라페와 그렇게 인사를 나눈 서리스는 별가루 평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과 함께 등 뒤로 성벽이 닫혔다.
그러자 서리스의 발아래로 별가루가 흩날렸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별가루와 바닥에 눈과 같이 소복이 쌓인 별가루는 무척이나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밤하늘 속 별들이 때지어 내려온다면 이런 느낌일까.
보는 것만큼은 황홀하기 그지없는 그 광경에 서리스조차 잠시 넋을 놓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여기에 있어 줄 수는 없었다.
서리스는 별가루를 밟고 가며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어깨 위로 별가루들이 내려앉자 파직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별가루가 서리스의 별빛을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별가루 평원은 최흉이라 불리었다.
별을 가진 이는 절대 깊숙이 들어갈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별가루 평원이었다.
그 순간 서리스의 몸 위로 검은별이 깃들더니 서서히 갑옷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림자와 검은별을 통해 갑옷이 완성된 순간부터 별가루는 더 이상 그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별가루조차 결국에는 세계 침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리스의 검은별은 별가루를 흡수해나가기 시작했다.
별가루 평원은 서리스에게 있어서만큼은 실보다는 득이 많은 곳인 것이다.
그렇게 평원을 횡단하기를 한참.
저 멀리 평원의 끝자락에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돌로 만들어진 사원이었다.
최흉 안에 사원이 지어져 있는 기이한 광경을 보고, 서리스의 몸에서 서서히 별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럼과 함께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꺼내 들었다.
동시에 그의 발아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왜냐하면, 돌 사원의 중심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의 얼굴은 마치 여러 별을 새겨 놓은 우주처럼 보였다.
그런 중심에 딱 하나.
거대하고 노란 달이 떠올라 있었다.
그 기이한 모습은 마치 우주를 사람으로 빚어 놓은 것 같았다.
‘소름 끼치는군.’
사람을 모방하기라도 한듯 한 모양새라 서리스는 자연스럽게 깊은 거부감을 느꼈다.
특히 몸 주위에서 풍겨 나오는 저 강렬한 기운은 주위를 일그러트릴 정도였다.
그 순간 놈의 얼굴이 이쪽으로 들어 올려졌다.
서리스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월사자.
최흉 별가루 평원의 주인이 그곳에 있었다.
불어온 바람에 월사자의 은장발이 흔들렸다.
도복과 같은 새까만 옷을 입은 월사자는 가부좌 튼 자세에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월사자의 주먹으로 별빛 무리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온다.’
서리스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방금까지 사원 앞에 있었던 월사자가 어느샌가 그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주변이 세계 침식으로 꽉 차서일까.
분명 상대가 눈앞에 있음에도 제대로 기척이 잡히지 않았다.
그것을 본 서리스는 그 즉시 악스판시온을 놈에게로 휘둘렀다.
무려 제파림조차 어쩌지 못한 월사자다.
서리스는 망설임 없이 검 위에 신룡월단을 전력으로 퍼부었다.
무형의 기운이 빛을 받아 반짝인 순간이었다.
챙!
무언가 철이 맞물리는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월사자의 앞에 서린 은색의 빛 무리가 서리스의 검을 막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서리스의 두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신룡월단이.’
은색의 빛무리가 베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서리스는 그 즉시 검로를 꺾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흐름을 끊는 신룡월단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할 틈이 없었다.
꺾어진 검날이 월사자를 향해 또 한 번 날아들었다.
챙, 챙, 챙, 챙, 챙!
하지만 그때마다 은빛 무리가 쫓아와 서리스의 검과 계속해서 부딪쳤다.
그것을 본 서리스의 두 눈이 한차례 부릅떠졌다.
마치 자신의 검이 어디로 향할지 전부 아는듯한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서리스가 다시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놈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권을 서리스가 검으로 막은 순간 뒤이어 날아든 빛무리가 서리스를 강타했다.
부웅!
한차례 날아오른 서리스가 바닥을 길게 끌며 멈췄다.
상대의 강력한 공격에 서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월사자의 권보다 은빛의 빛무리가 더 강렬한 충격을 줬기 때문이었다.
검을 들고 있던 서리스의 팔이 덜덜 떨렸다.
이런 충격은 난생처음이었다.
‘잠깐, 처음?’
그러던 중 서리스는 자신이 처음이라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가졌다.
과연 자신이 이런 충격을 받은 게 처음이었는가.
‘아니다. 처음이 아니야.’
서리스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왜냐하면, 지금도 느껴지는 이 통증을 언제 느껴봤는지 서리스는 똑똑히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날이다.’
먼 옛날, 육체를 강하게 만들 방법 따윈 전혀 없었던 소드란의 가주 시절.
그저 약하기만 했던 그 인생에서 서리스는 마수에게 공격당할 때마다 번번이 죽을 뻔했었다.
그때마다 겪었던 통증과 지금이 너무나 똑같았다.
그러는 순간 서리스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 빛무리.’
별을 뚫고 들어온다.
서리스는 금강잔월로 단련된 강철 같은 육체를 가졌다.
그런데도 이런 충격을 받는다는 건, 답은 간단했다.
상대의 공격이 금강잔월로 강화된 육체를 전부 뚫고 들어 온다는 소리였다.
그제야 서리스는 어째서 신룡월단이 통하지 않았는지도 깨달았다.
‘신룡월단도 결국 별에서 기원한 힘이니까.’
그러니 별을 뚫어 버리는 월사자의 저 은빛 무리를 끊어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하, 이러니.”
월사자 혼자서 가문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별을 흡수하는 장소에 존재하는 별이 통하지 않는 상대.
별을 다루는 가문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최악의 적이었다.
그런 월사자를 보고, 서리스는 팔을 들었다.
그러는 순간 서리스의 그림자가 가라앉고, 몸에 깃들어 있던 금강잔월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대신 서리스의 몸에 깃들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검은별이 어둠이었다.
“별이 안 통한다면.”
별 뒤에 내려앉은 어둠.
“너랑 같이 세계 침식으로만 싸워 주마.”
그 어둠만이 서리스에게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