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Son of the Pentanium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36)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36화(36/275)
점화한 빛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을 때.
모든 이가 숨을 죽이고 시야가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그 정도로 강한 별의 부딪침이었다.
이윽고 서서히 사람들의 시야가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서리스가 보였다.
가슴팍과 목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만신창이 같았다.
더불어 샬롯 또한 두 다리로 서 있을 뿐 멀쩡하지 못했다.
검을 쥔 팔은 부러진 듯 처량하게 덜렁거렸고.
게다가 그녀의 별은 완전히 꺼져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 일격.
샬롯의 검은 분명 서리스에게 닿았다.
‘내가 조금만 더 깊게 휘둘렀으면.’
아마 서리스의 목이 잘려 나갔을 거다.
하지만 샬롯은 서리스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품은 시점에서.’
샬롯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둘의 공격이 맞부딪친 충격에 의해 시험장 벽 일부가 허물어져 생긴 틈에서 불어온 바람이었다.
애초에 정말로 서리스의 목을 날릴 수 있었을는지도 확신이 가지 않았다.
샬롯의 검을 끝까지 똑바로 보던 서리스의 눈동자는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뚜벅뚜벅.
서리스가 샬롯의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별이 다시금 그의 전신을 물들여 가기 시작했다.
핏물을 적시며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악귀나찰과도 같았다.
“샬롯, 숨겨 둔 수가 더 있을 텐데.”
그 순간 서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샬롯의 어깨가 멈칫하였다.
그러다가 곧 그녀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시험관님이야말로 숨겨 둔 게 하나 있을 거 같은데?”
저쪽도 눈치챘나.
서리스에게는 검은별이 있다.
만약 검은별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으리라.
하지만 샬롯 쪽에도 숨겨 둔 수가 하나 더 있음을 서리스는 어렴풋이 눈치챘다.
서리스는 어깨를 으쓱거리곤 손으로 목을 누르며 지혈했다.
별과 근육으로 상처를 억누르고 있긴 하지만 당장 치료해야 할 상처였다.
샬롯이 별을 다 소진한 만큼 이 이상의 싸움은 의미 없다.
지금 서리스가 검을 내려치면 샬롯은 죽은 목숨이라는 소리니까.
“펜타니엄 샬롯, 2차 시험 통과를 인정하겠습니다.”
그 말을 하자마자 서발광이 대기하던 의사를 끌고 서리스에게 달려들었다.
“서리스, 너무 무리했잖아!”
그가 혹시나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며 의사가 어디 못 가게 옷자락을 꽉 쥐고 있던 그였다.
서리스는 의사에게 응급처치를 받으면서도 샬롯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목적을 달성해서인지 더 이상 시험에는 관심 없어 보였다.
“샬롯, 청랑단에는 들어올 거냐?”
서리스의 물음을 듣고 샬롯은 손으로 볼을 감쌌다.
그러다가 곧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나중에 더 기대하고 싶으니까.”
역시 성격 나쁜 여동생이다.
샬롯이 돌아서자 제로가 뛰어왔다.
그는 샬롯을 부축하려다가 한 대 맞곤 울상을 지었다.
그러다가 서리스와 눈이 마주치더니, 이전과는 어딘가 다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로의 시선에 서리스가 고개를 기울였을 때 뒤쪽에서 아카펠의 호령이 떨어졌다.
“응시생분들 뭐합니까. 시험 시작했습니다.”
샬롯과 서리스의 싸움 때문에 잠시 멈췄던 시험이 다시 재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시험관들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는 사이 서리스의 의식이 조금씩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피와 별을 너무 소모한 까닭이었다.
“서발광, 한숨 잔다.”
뒤는 부탁한다고 말하며 서리스는 자리에 앉은 채 의식을 잃었다.
* * *
다음 날, 서리스가 일어났을 때 시험은 이미 끝나 있었다.
피를 너무 쏟은 탓에 꽤나 늦잠을 자 버린 서리스는 의사가 준 약을 먹곤 병실을 퇴원했다.
의사는 볼 때마다 경이로운 생명력이라며 감탄을 표했다.
‘애초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니.’
금강잔월 덕분에 몸 하나는 튼튼한 서리스였다.
“그건 그렇고.”
서리스는 서발광에게 전해 받은 시험 결과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샬롯이 추가 시험을 치르지 않을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놈이 남아 끝까지 할 줄이야.
서리스가 받은 시험 결과 내용은 이랬다.
1등 펜타니엄 제로.
제로 녀석이 청랑단 입단 시험을 1등으로 통과했다.
‘샬롯을 따라나간 게 아니었나.’
제로는 누가 봐도 샬롯에게 질질 끌려온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제로가 성실하게 시험을 끝까지 다 치를 줄이야.
청랑단 전용 병원에서 걸어 나온 서리스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리스가 지내는 숙소에는 아직 빈방이 몇 개 있다.
분명 제로라면 그 방으로 왔을 것이었다.
끼익.
방문을 열자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기수들이 새로 들어온 막내들과 대화 중인 듯하였다.
“서리스 왔냐. 다쳤다면서 괜찮냐?”
“예, 저야 멀쩡하죠.”
민소매 차림으로 배를 긁고 나오던 선배 기수 한 명이 하품과 함께 인사했다.
어제 야간 당번을 섰던 선배 기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곧 무언가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 시험에 동생들이 응시한다지 않았나?”
“마침 저기 있네요.”
한 명은 그대로 떠나가 버렸지만 말이다.
서리스가 가리킨 방향에는 제로가 있었다.
그는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자기 동기들이 선배 기수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보다가.
시선을 눈치채곤 이쪽을 돌아보았다.
“서리스 형!”
그리고는 제로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서리스는 그가 절대로 자신을 반길 놈은 아니었기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제로는 그대로 그의 앞으로 뛰어왔다.
“오랜만이야! 아 참, 나 이번에 1등으로 청랑단에 들어왔어”
자랑스레 외친 제로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마치 새로운 광명이라도 발견한 양.
반짝이는 제로의 눈을 보고 서리스는 무언가 눈치챘다.
‘이 녀석 샬롯한테서 도망칠 구실을 나로 잡은 거군.’
쌍둥이 누나인 샬롯은 제로에게 늘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어제.
제로는 그 존재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도 한때 자신보다도 더 비참하게 추락했던 서리스에게 말이다.
제로는 경악했다.
머리가 새롭게 재정립되는 기분이었다.
샬롯은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제로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평생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렇기에 샬롯을 상대로 제로는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하나, 그 생각이 틀린 것이라면.
샬롯의 그늘에서 자신이 벗어날 수 있는 거라면.
그러자 처음으로 제로의 가슴 속 꺼졌던 불꽃이 다시금 붙기 시작했다.
서리스를 보고 배운다면 자신도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
‘단순한 녀석 같으니.’
제로의 의중을 파악한 서리스는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시험에서 1등을 한 제로는 54기수 대표다.
대표만 잡아 놓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쉽게 따라온다.
‘게다가 제로 녀석의 수하들도 덩달아 붙었군.’
예전에 제로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 두 놈도 제로와 같은 기수로 붙어 있었다.
그래도 제로는 직계다.
제로와 가깝다는 건, 다른 말로 괜찮은 가문의 자제 놈들이란 뜻이다.
서리스와 눈이 마주친 둘은 재빨리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혹시나 불똥이 튈까 두려운 것이다.
물론 불똥은 마구 튀겨 줄 생각이지만.
“뭔가 시킬 일 있어? 말하면 다할게!”
충성스러운 개처럼 구는 제로를 보고 서리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2년 전만 해도 자신을 보면 이를 바득바득 갈던 녀석이 한순간에 변했다.
“제로.”
“응!”
자기 나이답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은 그를 보며 서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녀석이긴 하지만, 청랑단에 1등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 직계는 직계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좋은 감정을 품고 있는데, 굳이 망칠 이유는 없지.
“나한테 하는 만큼 선배 기수들한테도 잘하면 돼. 그럼 나도 널 챙겨 줄 테니까.”
선배 기수란 말에 제로는 옆을 돌아보았다.
서리스라는 케이스가 있는 만큼 펜타니엄 직계의 선입견이 많이 사라진 선배 기수들이다.
제로가 열심히 하는 만큼 주변도 호응해 줄 거다.
“알았어.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제로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열정을 태웠다.
“그리고 네가 대표니까 애들도 철저히 관리해라.”
“나한테 맡겨!”
이걸로 막내 기수들 관리는 마무리됐다.
애초에 54기 중 제로의 수하가 절반인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리라.
‘도로시나 서발광 같은 케이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보니 참 53기가 버라이어티한 녀석들만 모였다는 생각이 든다.
똑똑.
그런 순간 9호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리스 후배님, 있어?”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클로나였다.
“클로나 선배?”
서리스가 문을 열고 나오자, 그녀는 손을 살짝 흔들곤 서리스 어깨너머를 힐끔 보았다.
“쟤들이 새로운 막내 기수구나. 서리스 후배님도 이제 선배네.”
“그렇죠. 근데 무슨 볼일이라도?”
클로나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건 대표로서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관문을 닫고 서리스가 밖으로 걸어 나오자 클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야. 대표 회의 소집 때문에 왔거든.”
“신입 기수 대표도 데려갈까요?”
“아니, 그 애들한테는 너무 이른 이야기라.”
이르다, 라.
서리스는 라파즐리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른 애들은 다 갔어. 후배님도 얼른 같이 가자.”
그러면서 클로나는 자연스럽게 서리스에게 팔짱을 껴왔다.
서리스는 쓴웃음과 함께 팔을 빼었다.
클로나는 아쉬운 듯 팔을 휘적거렸지만 서리스는 앞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럼 가시죠.”
클로나와 함께 대표 회의실에 도착한 서리스는 먼저 온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서리스와 클로나 말고는 다들 착석해 있었다.
48기부터 53기까지.
총 6명의 대표가 모인 자리였다.
“서리스 몸은 괜찮나요? 큰일이었던데요.”
안경을 치켜올린 49기 대표 델리티드가 미소와 함께 물어왔다.
“네, 괜찮습니다. 며칠이면 낫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에취!”
그러면서 그는 재채기와 함께 새빨갛게 물든 코를 손수건으로 슥슥 닦았다.
봄이라 그런지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인 모양이었다.
“서리스, 이쪽이야. 여기, 여기.”
라파즐리의 부름에 서리스는 그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러자 때마침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청랑호법인 윌리엄이었다.
언제나 대충대충인 그는 풀어 헤쳐진 제복 차림으로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어, 아마 대충 어디선가 주워들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만다 씨께서 은퇴하신다.”
청랑호법인 아만다의 은퇴.
라파즐리에게 그 소식을 미리 들었던 서리스와 같이 모두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청랑호법 후보 한 명을 미리 뽑아 놔야 하는데. 대표 중에서 뽑기로 했다.”
그러면서 윌리엄은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더니, 펜 꼭지를 꾹꾹 눌러 심지를 빼었다.
“그래서 빠질 녀석 있냐?”
처음부터 할 사람도 아니고 빠질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