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Son of the Pentanium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56)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56화(56/275)
세계 침식자의 잠식.
그건 세계 침식자에 의해 정신과 몸을 빼앗긴 자를 일컫는다.
그들에게 개인 의사는 없다.
정확히는 그들은 자신이 세계 침식자에게 잠식되었다는 사실을 인지 못 한다.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을 따라 움직이지만.
본인은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모른다.
정신도 육체도 모든 게 꼭두각시.
그것이 바로 세계 침식에게 잠식된 자들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잠식되었는지의 여부를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잠식되어있는 줄을 모르니.
밝혀지기 전까지 그들의 행동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침식자에게 잠식되었다는 게 밝혀졌을 때도.
잠식자들은 사형당할 때까지 처절하게 자신의 잠식을 부정했다.
그것이 잠식자의 가장 끔찍한 점이었다.
‘용천도 밝혀진 게 한참 뒤였으니까.’
용천이 이때 당시에 무얼 하고 있었지.
서리스는 애매한 기억의 문을 두드렸다.
‘썩을, 이렇게 줄 알았으면 세계 침식자와 관련된 놈들 전부 조사해 두는 건데.’
누가 과거로 돌아올 줄 알았나.
“알겠습니다. 직접 찾아가 보겠습니다.”
괜한 의심을 사기 전에 서리스는 하다크에게 인사를 하고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직접 만나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서리스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용천이 지금 현재 세계 침식자와 관련되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시간이면.’
한창 점심시간이다.
식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
아니라면 거기 있는 선배들에게 용천에 대해 물어보면 된다.
뚜벅뚜벅.
서리스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그는 용천이 세계 침식자에게 잠식된 게 맞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이윽고 서리스는 식당에 도착했다.
“하핫, 몰랐네. 이렇게 예쁜 애가 청랑단에 들어왔을 줄이야.”
어디선가 커다란 목소리 하나가 울렸다.
거기에는 아저씨 같은 모습의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하나 있었고.
그 옆에는 클로나가 상당히 난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름이 뭐라고?”
“클로나입니다.”
“이름도 예쁘네. 이야, 청랑단에 살아 돌아오길 잘했다야.”
보자마자 알았다.
용천은 다름 아닌 저놈이었다.
“선배님, 클로나보다는 저와 대화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순간 보다 못한 엑포드가 나섰다.
클로나와 용천 사이에 끼어드는 그를 보고 용천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후배는 몇 기지?”
“클로나와 같은 50기입니다.”
“아하, 그런데 이러는 건 혹시 내가 불편해서냐?”
웃는 얼굴 사이로 정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엑포드도 멈칫하였다.
용천은 45기.
엑포드와 비교해도 한참 위였다.
청랑단은 기수제.
까마득한 선배인 그와 엑포드 사이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물며 예전 청랑호법 후보였기까지 했으니.
엑포드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였다.
“어라, 대답 안 하네. 네 위로 내 아래로 다 집합시켜서 물어볼까.”
엑포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성실한 그로서는 선배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요즘 것들은 빠져서 말이야. 몇 년 자리 비웠다고 이 꼴이 다 나네.”
용천이 청랑호법 후보 자리로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선배 기수들이 보기에 후배, 동기 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는 최악의 선배지만 선배들은 그를 매우 아꼈으며.
그 결과 그를 청랑호법 후보 자리에 추천할 정도였다.
그러한 악습은 그와 함께 선배들이 최흉 중 하나 ‘만악의 질병’의 지원 도중 행방불명되고 나서 사라졌다.
악습이 싫었던 후배 기수들이 그의 부재를 틈타 철폐해 버린 것이다.
“만악의 질병에 가서 행방불명된 선배가 돌아왔다고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하지만 문제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은 후배끼리 행한 일이다.
용천은 악습에 가장 깊게 절인 선배로서 그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용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들보다 우월한 키를 가진 그는 엑포드보다도 머리 한 개가 더 컸고.
그가 거인 같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는 처음부터 클로나에게 관심 없었다.
그저 여자 기수를 건드리면 튀어나올 녀석을 기다렸을 뿐이다.
“선배가 이야기하는데 끼어든다, 라.”
용천의 손이 들어 올려졌다.
후배 기수 놈들을 잡기 위한 확실한 기선 제압.
머리통이 날아갈 만큼 후려쳐 주마.
휘익!
그렇게 용천이 엑포드를 향해 손을 내려친 순간이었다.
탁!
용천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그의 손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붙잡혔기 때문이다.
이에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한참 어린놈이 감히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뭐야. 넌.”
“53기 펜타니엄 서리스라고 합니다. 선배님.”
53기라는 말의 눈썹을 꿈틀거린 용천이었지만, 그는 이어진 서리스의 자기소개에 멈칫하였다.
펜타니엄.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청랑단이다.
청랑단에서는 기수가 곧 권력.
“어이, 후배, 선배 손목이 아픈데.”
“아, 그렇군요. 하지만 이 손에 맞는 사람도 아픈 법입니다.”
서리스가 여유롭게 대답하자 용천은 살짝 열이 뻗쳤다.
“펜타니엄이라고 해서 53기 녀석이 내 행동을 막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냐?”
“당연히 막을 권리가 있죠. 선배님.”
“하, 청랑단 꼴이 막 돌아가는구만! 펜타니엄이라고 주변에서 오냐오냐 대해 줬냐? 이래서 관리가 똑바로 되어야.”
“아뇨. 펜타니엄이라서가 아닙니다.”
서리스는 용천의 목소리가 시끄럽다는 듯 귀를 팠다.
그러곤 그의 팔을 붙잡은 손에 과격하게 힘이 들어갔다.
“너랑 같은 청랑호법 후보니까. 막는 거다.”
“윽?!”
그 순간 용천이 서리스의 손을 뿌려쳤다.
꽤나 힘을 줬는데 부러지지 않은 걸 보면 상당히 튼튼하다.
과연 청랑호법 후보로 뽑힐 만한 놈이긴 했다.
하지만 인성 부분에서는 글러 먹었다.
“늙은 미꾸라지가 호수를 더럽혀서 쓰나.”
서리스의 눈동자 속에서 웃음이 싸악 사라졌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패도적인 기운은 용천조차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다.
‘나보다 한참 어린놈이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얼굴을 보니 아직 성인도 되어 보이지 않는 모습.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름 날고 기었다는 자신이 쉬이 볼 수 없는 상대였다.
“……네가 청랑호법 후보라고?”
“그래, 불만이라도 있나?”
“이것들이 미쳤나. 53기를 청랑호법 후보라고 뽑아?”
그는 애써 여유를 찾는 표정을 지었다.
같은 청랑호법인 후보에도 분명 기수 차이는 있다.
하지만 한쪽이 청랑호법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기수제 위에 있는 게 계급제니까.
하물며 서리스는 펜타니엄이니, 용천이 먼저 청랑호법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막 건드리기 버거웠다.
“후배한테 당하기나 하고 청랑단은 머저리 집단이라도 된 거냐.”
그렇기에 그는 표적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려고 했다.
“걱정 마.”
하지만 서리스도 그걸 그냥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너라고 다르지는 않으니까.”
용천의 얼굴이 굳었다.
서리스와 용천의 눈동자가 한동안 마주쳤다.
금방이라도 싸울 듯 으르릉거린 두 사람이었지만, 용천 쪽에서 몸을 돌렸다.
“어디 얼마나 그 말을 지껄일 수 있는지 보자고 후배.”
서리스와 말싸움을 해 봤자 득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가 먼저 떠난 것이다.
싸해진 분위기 속, 서리스가 한숨을 내쉬었을 때.
“서리스 후배님, 지금 나 구해 준 거야?”
클로나가 눈웃음을 지으며 서리스에게 엉겨 붙었다.
그녀가 식당 속 경직된 분위기를 눈치채고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티 났나요.”
“안 어울리는 짓 하기는.”
서리스가 장난을 받아 주자 클로나가 입을 가리며 웃음을 흘렸다.
“야야, 잘했다. 서리스!”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러자 다른 선배들도 서리스의 행동을 칭찬했고, 주변이 금방 왁자지껄해졌다.
그들 입장에서도 용천은 거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서리스, 그, 고맙다.”
그리고 그건 엑포드도 마찬가지였다.
서리스가 지위와 펜타니엄의 힘을 이용해 자신을 도와준 걸 알고 감사 인사를 해 온 것이다.
“괜찮아요. 저도 저 사람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 준 서리스는 선배들과 인사를 나누곤 밖으로 나왔다.
그런 뒤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방금 전.’
용천의 손을 잡은 순간 미약하게 느껴진 검은별의 기운.
검은별을 직접 다루기에 서리스는 검은별의 감각을 캐치할 수 있었다.
‘용천은 세계 침식자에게 잠식된 게 맞다.’
그 사실을 확신한 서리스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찾은 것은 기숙사 방이었다.
“서리스, 보고하고 왔어?”
문을 열고 들어오자 편한 옷으로 쉬고 있던 서발광이 그를 반겼다.
“응, 아카펠은?”
“방에 있어.”
서발광이 가리키자 서리스는 곧바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자 거기에는 때마침 씻고 나온 듯한 아카펠이 있었고.
서리스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서리스, 뭔 일 있냐?”
“아카펠,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부탁 하나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서리스 쪽에서 부탁이라니.
전에 없던 일에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무슨 일인데?”
“누구를 좀 같이 쫓았으면 해. 선록화를 이용해서.”
세계 침식자에 잠식된 용천이 어째서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더불어 그놈이 바라는 바도 알 수 없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같은 청랑호법 후보에다가 펜타니엄인 서리스의 등장은 예상 못 한 사건일 테니.
‘분명히 오늘 안에 보고를 할 거야.’
그걸 위해서라도 용천을 오늘 하루 동안은 반드시 감시해야만 했다.
세계 침식자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반드시 막아야만 했으니까.
‘같은 세계 침식자가 되어 버린 내가 한 말은 아닐지 몰라도.’
이건 분명히 필요한 일이었다.
“알았어. 나가자.”
아카펠은 선뜻 부탁을 들어주었다.
한창 쉴 시간인 그에게는 미안했지만, 이번에는 아카펠이 꼭 필요했다.
“서발광, 우리가 안 돌아와도 적당히 변명 좀 부탁할게.”
“응, 맡겨 둬!”
걱정 말고 맡기라는 서발광에게 미소를 지어 준 서리스는 아카펠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누군데?”
“용천이라는 자야. 나와 같은 청랑호법 후보.”
그 말을 듣고 아카펠은 잠시 동안 눈을 깜빡이었다.
오늘 서리스와 함께 온 아카펠은 용천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였다.
“서리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같은 청랑호법 후보여서 견제하려고 그러는 건.”
하지만 아카펠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그건 너무 추한데.”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 치졸한 이유가 아니긴 하지만, 당장 마땅하게 설명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니, 네가 그러려고 날 부른 건 아니겠지.”
다행히 아카펠은 서리스랑은 안 어울린다면서 손짓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
“설명하기는 아직 애매한 단계라서. 심증만 있을 뿐이야.”
서리스가 제대로 설명 못 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둘러대는 게 아니라, 실제로 도와주는 아카펠에게도 말하기 애매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에 아카펠은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었다.
“괜찮아. 서리스가 하는 일이니까.”
그래도 이렇게 믿어 주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럼 가자.”
용천의 진짜 모습을 캐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