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Son of the Pentanium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88)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88화(88/275)
서리스에게 오랜만에 돌아온 펜타니엄 저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생각이 있으면 아들 된 사람으로서 어머니에게 한 번쯤 연락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죄송합니다.”
바로 2년간 연락 두절 된 아들을 앞에 두고 잔소리하는 어머니였다,
아까부터 꾸중을 하고 있는 이 여성이 누구인가.
하체펠 드웨이진의 딸이자, 검황의 아내 펜타니엄 릴리스였다.
원래라면 천랑후나 청랑단을 통해 꾸준히 소식을 전해 받던 그녀였으나.
서리스가 수련을 떠난 이후 그녀는 2년간 그와 완전히 연락 두절 상태였다.
물론 천랑후를 통해 수련을 떠났다는 소식이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서리스에게서 한 번쯤은 연락이 올 거라 생각하고 쭉 기다린 것이다.
“넌 아직 스무 살도 아니지 않느냐. 아직은 가문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란 말이야.”
“할 말이 없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서리스도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릴리스 말대로 서리스는 아직 성인이 아니었고.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어른이었던 서리스이기에 어른이 아이에게 가지는 걱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수련에 정신 팔려 부모 속을 썩였으니, 서리스는 잠자코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릴리스는 푹하고 한숨을 한 차례 내쉬더니, 까치발을 세워 서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는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성과가 있는 모양이니 어미가 참아 주마.”
“감사합니다.”
“올해로 너도 스무 살이구나. 다른 아이들처럼 워너힐 아카데미로 갈 생각이니?”
“네, 그걸 위해 노력한 거기도 하고요.”
“나는 무위에는 재능이 없어 확신할 수 없지만. 서리스, 너라면 잘 헤쳐 나갈 거라 생각한단다.”
릴리스는 서리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는 항상 뛰기만 해 본 사람보다, 몇 번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더 강한 법이거든.”
혹여나 넘어지더라도 일어서는 것을 다시 기다려 줄 테니, 걱정 말라고 릴리스는 덧붙여 주었다.
릴리스는 빙의한 서리스에게 진짜 어머니는 아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직은 어색한 느낌이 남아 있지만, 결국 그에게 있어 어머니였기에.
“바라크 쪽과 친선 대결이 있다고 들었으니 그만 가 보거라.”
“네, 그럼 이만.”
그 말과 함께 서리스는 밖으로 나가려다 문뜩 떠오른 생각에 발을 멈췄다.
그러자 릴리스가 할 말이 남아 있냐는 듯 서리스를 바라봤고, 그는 곧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제로랑은 잘 지냅니다. 그 녀석, 어른스러워졌거든요.”
“언제 적 얘기니.”
“직접 말한 적은 없는 것 같길래요.”
그 말을 듣고 릴리스가 입을 가린 채 웃는 동안 서리스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슬슬 왔을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거닐고 있으니 반대편에서 다급히 뛰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무슨 일 있나요?”
“아, 서리스 도련님, 제로 님이 문제를 일으키셨습니다.”
“예? 제로가 말입니까?”
서리스는 일순 발걸음을 멈췄다.
‘이 자식, 방금 전에 릴리스에게 칭찬하는 이야기를 해 줬더니 그사이에 사고를 일으켜.’
어이가 없어 하며 앞머리를 쓸어 올린 서리스가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그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어디죠?”
“푸른 잠자리 여관입니다.”
푸른 잠자리 여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서리스는 조용히 얼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왜냐하면 바르크에서 온 주홍빛 기사단이 머물기로 한 여관이었으니까.
* * *
주홍빛 기사단원인 한스렘은 황당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눈앞에 나타난 소년.
아직 약관도 넘지 않았을 것 같은 소년이 돌연 선전포고한 황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내뱉은 이름은 문제가 되었다.
펜타니엄 제로.
그 이름은 즉, 그가 펜타니엄의 직계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젠장,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대가문 직계를 향한 모욕적인 언행은 당연히 문제될 수 있는 일이다.
보통은 그냥 무례를 사과한 뒤, 넘어갈 만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지금 자신들이 바르크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친선 대결이라 쓰고, 대가문 간의 알력 다툼이라 할 수 있는 일을 앞둔 채로 말이다.
여기서 자신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게 된다면?
당연히 펜타니엄 쪽에 빌미를 하나 주게 된다.
그리고 그 빌미를 준 대가로 자신이 당할 불이익은 이루어 말할 수도 없겠지.
“펜타니엄 제로 님이라 하셨습니까? 무언가 곡해해서 잘못 들으신 것 아닙니까?”
결국 기사단원이 할 수 있는 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뿐이었다.
애초에 자기들끼리 나눈 잡담이다.
이야기의 의미를 변질하여 해석했다고 밀어붙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저쪽도 보아하니 자신들을 염탐하러 와서 얘기를 엿듣고 있던 거로 추정되는 상황.
떳떳하지 못한 것은 피차일반이라는 소리였다.
“지금 발뺌하는 거냐!”
눈썹을 일그러트린 제로가 노성을 토해 내자 기사단원은 옆 사람을 힐끗 보았다.
“한스렘 말대로 아무래도 이야기를 곡해해서 들으신 모양입니다.”
그러자 상황을 눈치챈 그도 냉큼 거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사태 파악을 대강 한 듯한 다른 기사단원들도 수군거렸다.
“……총단장님이나 다른 기사단장님들은?”
“펜타니엄 쪽에서 청랑단과 이야기 중이실 거야. 4기사단장님은 아까 셀링이랑 가 버렸고.”
“후,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당장 위로 이야기가 들어가 큰일로 번지지는 않을 모양이다.
사태 수습만 잘한다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문제는 제로의 목소리가 워낙 큰 탓에 바깥 이목이 이쪽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거지만.
어떻게든 쌍방의 잘못으로 밀고 가면 그만이다.
“펜타니엄 제로 님, 애초에 방금 저희가 나눈 사담은 어떻게 들으신 겁니까? 저희가 창문을 열고 나눈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만.”
“그건.”
그 사실을 눈치챈 한스렘이 곧바로 제로를 쏘아붙였다.
그에 대해서는 제로도 할 말이 없었기에 답을 못하자, 한스렘은 기회를 잡았음을 알아채고 말을 이었다.
“혹시 멀리서 들렸더라면 충분히 잘못 들을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직접 염탐하러 와서 들었다고는 직계의 자존심상 절대 말하지 못하겠지.
이걸로 어떻게든 밀고 나가자며 한스렘이 속으로 웃은 순간.
“그냥 너희들 염탐하려고 왔다가 들었다만.”
제로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나왔다.
한스렘은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기사단이라는 이름답게 규율에 엄격한 편인 주홍빛 기사단은 뒤에서 일을 움직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 한다.
그렇기에 남들을 염탐하여 정보 수집을 하기보다는.
그들은 기사로서 정정당당히 싸워 이기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청랑단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펜타니엄 자체가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이든 용인하는 분위기이다.
그렇기에 펜타니엄의 청운귀명도에서 파생된 청운무투와 같은 여러 갈래가 생겨도 인정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 펜타니엄에서 창설된 청랑단은 당연히 이와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펜타니엄 직계인 제로도 마찬가지.
즉, 주홍빛 기사단의 추구와 청랑단이 추구하는 바는 다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몰아가려 한 한스렘의 계획이 되레 자신을 옥죄게 된 것이다.
“설마 내가 너희를 염탐한 것과 너희가 우리 가문과 서리스 형을 욕보인 것을 같은 선상에 두는 건 아니겠지? 나는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
이렇게 나오자 한스렘이 도리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잘못한 일이라고 밀어붙여 넘어갈 생각이었건만.
저쪽은 잘못했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지 않는가.
이대로라면 정말로 자신이 했던 말을 책임지고 사과하며 펜타니엄에 빌미를 주게 생겼다.
‘이걸 의도한 건가?’
한스렘은 제로를 바라보았으나 그의 의중은 알 수 없었다.
그저 팔짱을 낀 채 당장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사과할 생각이 없다면 결투에 응해라!”
제로가 다시금 외친 순간 한스렘이 뒤를 슬쩍 보았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제로는 펜타니엄 직계다.
당연히 그 핏줄만큼이나 실력이 있을 건 분명하나 그렇다 한들 아직 어린애다.
눈으로 보기에 18살 정도.
핏줄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이바드라 같은 규격 외의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문이 무성한 검성 샬롯도 아니다.
결국 또래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일 뿐인 것이다.
그에 비해 이십 대 중반인 한스렘은 주홍빛 기사단에서도 꽤나 괜찮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
입이 좀 가볍고 신중하게 행동 못 하는 편이긴 하나 무려 4성이다.
게다가 실력 위주로만 사람을 뽑는 이바드라가 4기사단에 그를 넣을 정도로 그는 실력이 괜찮은 이였다.
경력도, 실력도.
18살 중에 재능 있는 꼬맹이에 비하면 한참 위.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한스렘은 제로를 마주 보고 섰다.
“결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제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결투를 받아들였다는 건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과 같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제로는 창문턱에서 내려오더니 뒤를 가리켰다.
“따라와라.”
푸른 잠자리 여관은 규모가 큰 고급 여관인 만큼 머무르는 사람들을 위해 대련장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제로가 그 장소로 가려 하자, 한스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어? 단장님들이 알면.”
“저쪽이 결투라고 했잖아. 이기면 사과하지 않아도 없던 일이 된다는 소리니 해결하고 올게.”
걱정하는 기사단원을 두고 대답한 한스렘은 곧장 제로를 따라나섰다.
또래보다 작은 키를 가진 제로여서일까.
뒤를 따르고 있으니 유달리 그가 아직 어린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른에게 있는 융통성이 저 아이에게는 부족한 거겠지.
‘그래도 대가문 직계이니 방심은 하지 않겠다만.’
손속을 둘 수 있다면 둬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대련장에 섰다.
결투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생결단을 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을 다루는 결투와.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한 일반 결투다.
지금 하게 될 결투는 일반 결투.
패배를 인정하거나 혹은 상대가 전투 불능에 빠졌을 때 끝나는 결투다.
“심판은 저희 주홍빛 기사단원 한 명과 펜타니엄 제로 님의 수하분에게 맡기려는데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어.”
제로를 따라온 수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제로를 보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걸 본 한스렘은 한숨과 함께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그러자 그런 그를 따라 제로가 손을 옆으로 뻗었고, 그의 손아귀에는 새까만 그림자 검이 쥐어졌다.
‘오랜만에 보는군.’
펜타니엄이 자랑하는 그림자로 만드는 검.
그 내구성은 당사자의 능력에 따라 일반 검이 될 수도 명검이 될 수도 있는 특별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제로는 펜타니엄 직계라서인지 그 검의 완성도가 한스렘이 보기에도 훌륭해 보였다.
‘매번 볼 때마다 저건 좀 부럽긴 한데.’
펜타니엄의 가문별을 새긴 이들과는 과거에 있었던 친선 대결에서 맞서 보았다.
펜타니엄 직계와 맞서는 것은 처음이지만, 결투는 그렇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럼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을 보게 된 기사단원이 외친 순간 한스렘의 목뒤에서 별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가 새긴 가문별은 바르크.
그렇기에 그의 부름을 따라 빛난 바르크의 별이 그의 검으로 이어졌다.
화륵!
타오르듯 한 불길이 검 위에 휩싸이며 불꽃을 튀었다.
바르크의 가문비기 멸천화륜검(滅天火圇劍)이었다.
‘펜타니엄의 청운귀명도와 바르크의 멸천화륜검은 상성이 좋지 않지!’
그림자는 타오르는 불 앞에서 제힘을 잃는 법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한스렘은 거침없이 제로에게 검을 휘둘러 나갔다.
휘두르는 궤적을 따라 남은 불길이 타오르고, 공기를 뜨겁게 달구는 사이.
제로는 무감정한 눈으로 한스렘의 검을 맞받아 쳤다.
덕분에 불꽃이 종종 제로에게 튀어 올랐으나, 제로의 그림자가 불꽃을 잡아먹어 무마시켰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한스렘은 기세를 끌어 올리며 더더욱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끝낸다.’
궤적을 그린 불길이 그 열기가 더욱 강해진 순간 한스렘은 기회를 잡은 듯 검을 틀어잡았다.
그 순간 그의 검이 그린 궤적을 따라 불길이 사방으로 펼쳐지며 마치 풍차와 같이 회전했다.
멸천화륜검(滅天火圇劍)
삼식(三式)
멸천화차(滅天火車)
날아든 화염의 풍차가 제로를 급습했다.
한스렘의 경지를 짐작시켜줄 수 있는 열기가 대련장을 뜨겁게 달구고 한스렘이 승리를 확신했을 때.
서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래 불이라는 건 물리적인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정상이나.
한스렘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자신이 사용한 멸천화차가 제로의 그림자 검에 선명하게 베이는 모습이.
그의 눈동자 속에 깊은 당황이 깃들었을 때.
제로는 그를 보며 냉담하게 말했다.
“더럽게 약하네.”
그리고 그건 한스렘이 냉정을 잃게끔 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