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109. 더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다르덴은 자신이 머무는 호텔 라운지를 통째로 빌려 강무혁 일행을 맞이했다.
강무혁은 협상장에 나온 상대 멤버를 확인했다.
‘부길마 다르덴에, 지난번 우릴 안내했던 헌터. 오른팔인 니콜라예프라고 했던가? 또 한 명은 모르겠군.’
강무혁이 마지막 인물에게 시선이 멈추자 곁에 있던 안톤이 귓속말했다.
“티런의 원정대장 레브입니다.”
강무혁과 마찬가지로 다르덴 역시 상대 면면을 살폈다.
‘강무혁, 주세아, 안톤. 예상했던 대로군.’
그는 표정 변화 없이 강무혁에게 자리를 권했다.
다과가 차려져 있는 거대한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양측이 서로 노려봤다.
“먼저 우푸망바우 토벌을 성공한 것을 축하드리죠. 솔직히 이렇게 일찍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는데. 항복은 좀 더 뒤에 할 줄 알았습니다.”
다르덴의 말에 안톤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당장 판을 뒤집고 싸우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기세에 다르덴의 심복들 역시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주세아가 포크를 집어 들자 한순간에 상황이 역전됐다.
“이걸로 사람 머리 찍어 본 적은 없는데. 뭐, 삼지창 닮아서 상관없으려나?”
“…….”
“…….”
다르덴 측의 기세가 죽자 안톤은 실소를 지었다.
‘이래서 S랭크, S랭크 하는 거로군. 주 길마가 S랭크일 줄이야. 믿기 힘들었는데 저쪽 반응 보니 거짓은 아닌 게 확실해.’
항상 이고르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역으로 돌려주자 안톤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강무혁이 입을 열었다.
“전 당연히 그쪽에서 지금 만남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레이드 하나 성공했다고 아주 자신감이 넘치시는군.”
“당신이 그랬잖습니까? 14년 전 나제진스키 사건 이후 양심도, 자존심도, 의무도 믿지 않는다고. 그럼, 대신 뭘 믿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내가 뭘 믿는데?”
“이익.”
강무혁의 말투가 차갑게 변했다.
“복수가 먼저라면, 복잡하게 돌아가지 말고 폭군처럼 굴었어야지. 당신은 너무 계산적이었어. 블라디보스토크를 차지하는 게 우선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만남을 절대 거절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
“웃기는군. 우푸망바우를 해결했다 해도 이쪽 우세는 변하지 않아. 아? 혹시 그쪽 S랭크를 믿고 까부는 건가? 글쎄, 천 년, 만 년 차르 길드에 상주할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지켜 줄 수 있을까?”
강무혁에게서 대꾸가 없자 다르덴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 더욱 몰아붙였다.
“크렘린을 움직이려고 해 봤자 모스크바가 주 무대인 우리에게 정치력에서 밀릴 거고. 이번 사태로 형님께 다친 차르 길드원들의 회복도 상당히 걸리겠지. 그 공백을 메꾸려면 외부의 원조를 받아야 할 텐데. 행정청이 그때까지 기다려 줄까? 몬스터 치안 공백을 감수하고서? 이 도시가 티런에 넘어오는 건 이제 시간 문제야.”
“시간은 그쪽에도 우호적이지 않아. 티런 길드는 언제까지 버틸 것 같아?”
강무혁의 말에 다르덴은 눈가를 찌푸렸다.
“멋모르고 넘어가는 건 독 스킬을 사용하는 포로를 데려갔을 때 한 번이면 족해. 하지만 또 무슨 술수를 부리려는 건진 궁금하군. 어디 한 번 지껄여 봐.”
“크렘린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건 지나가는 개도 알아. 정치를 길드 싸움에 끌고 오지 마. 개싸움 되니까.”
“그래서 그쪽은 뭐로 협상할 건데?”
“지난밤, 블라디보스토크가 궤멸할 뻔한 사실. 이 도시 지방 의회와 행정청 모두에게 보고됐지. 그 음모를 꾸민 건 이고르 두드닉.”
“방금 정치를 끌고 오지 말라던 사람이 누구더라?”
“경고하는 거야. 이쪽은 개싸움 할 수 있다고.”
“…….”
“정치인도 사람이야.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났다는 걸 알면, 크렘린이고 나발이고 눈에 들어올까?”
다르덴은 이 눈앞의 한국인이 러시아 사정에 깜깜할 거라 여긴 게 패착이라는 걸 깨달았다.
‘안톤이 알려 줬을까? 아니야. 현재 러시아 정치권의 미묘한 기류를 모두 설명하려면 하룻밤으로도 부족할 거야. 알았어도 그걸 바탕으로 내게 이런 식의 협잡을 벌이는 건 더더욱 힘들지.’
강무혁의 말대로 중앙 정부에 불만을 품은 지역이 상당히 많았다. 러시아 땅이 너무 넓은 게 문제였다. 그만큼 몬스터도 많았고, 헌터 치안의 공백지도 적지 않았다. 러시아 각 도시 길드의 이권을 보장해 주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자원의 분배가 고르지 않았기에 부와 안보 자원 또한 대도시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하여 갈수록 그에 소외된 지역의 불만이 커지고 있었다.
그나마 남미나 아프리카처럼 길드가 군벌화되지 않았던 것은 이른바 새 시대 러시아 정신이라고 불리는 범 슬라브 민족주의와 강력한 헌터 전력 덕분이었다.
강무혁은 그 약한 고리를 끊는 것 자체가 러시아 연방의 붕괴라는 걸 알고서 다르덴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큰 혁명을 일으킬 순 없어도 그 계기의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다르덴은 자신이 그 시작점이 되길 원치 않았다.
“러시아 중앙 정부가 각 지역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는커녕 모스크바 굴지의 길드를 이용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차지하려고 음모를 획책했다고 알리면 어떻게 될까? 이런 시나리오라면, 크렘린도 너흴 지지해 주질 못해. 그게 S랭크를 보유한 길드라 해도 말이야.”
“어이, 지금 누구 앞에서 허풍 떠는 거야? 증거도 없는 중상모략이 얼마나 공허한지 모르는 건가? 그게 되더라도 이후 사태를 감당할 배포나 있어?”
강무혁이 정곡을 찔렀지만, 티어 길드답게 다르덴은 동요하지 않고 받아쳤다.
“차르 길드 소속 28명의 나제진스키 출신 헌터들 전원 사망. 사망 원인은 폭군의 무자비한 살육. 14년 전 비극을 러시아 정계에 다시 끌고 오게 하지 마. 그리고 참고로 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야.”
“이 새끼가…….”
“덧붙여서.”
“??”
“우리 길드장님이, 네놈 형이 차르 길드에 했던 짓을 이곳에 똑같이 갚아 줄 수도 있어. 여기 호텔 투숙객 명부 보니까 데리고 온 헌터들이 꽤 있던데? 그건 감당할 수 있겠어?”
티런 길드에 이고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놓고 위협하는 강무혁의 눈빛에 흔들림은 없었다.
‘형님이 지금 이곳에 없는 걸 알고서 저러는 거로군. 젠장, 형이 우푸망바우만 건드리지 않았어도 이 자를 당장 만날 일은 없었을 텐데.’
블라디보스토크가 우푸망바우에 그대로 무너졌으면 차라리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이고르에 의해서 성공 직전에 독기가 새어 나오게 됐으니 그 책임을 티런 길드에까지 무를 여지를 주었다.
이 부분을 염려했기에 다르덴은 마카르의 속셈을 읽고 레이드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었다.
“원하는 게 뭐야?”
“우리도 심한 요구는 하지 않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철수. 그리고 다신 이곳을 노리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해. 아? 물론 배상도 해야겠지. 안톤 길드장님, 저 결계 박스 얼마짜리라고 했죠?”
안톤은 속으로 웃음을 참고 있다가 강무혁의 물음에 정색하며 준비한 청구서를 내밀었다.
그 청구서를 받아든 다르덴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게이트 서너 개를 잡아먹을 비용이군.”
“모스크바 최고 길드한테 이 정도는 껌값 아닌가? 어차피 우리 길드장님이 손 쓰면 여기 헌터들 죄다 반병신 돼. 괜히 치료비에 헛돈 쓰지 마. 참, 안톤 길드장님, 말 나온 김에 차르 길드 헌터들 치료비도 넉넉히 챙기셨죠?”
“사냥 못 나가는 기간까지 산정해서 적었습니다.”
“다르덴 씨, 이런 기회 또 없어. 당신 형이 저지른 일을 돈 몇 푼으로 퉁칠 수 있다고.”
강무혁은 일부러 보란 듯 다르덴을 향해 이기죽거렸다.
다르덴은 처음과 달리 이번엔 자신이 판을 뒤집을까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이내 그 선택지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고르가 차르 길드 헌터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정예를 데려온 건 아니지만, 우리가 모스코바에서 맡아야 할 지역이 상당히 넓지. 여기서 헛되이 헌터들을 잃을 순 없어.’
길드 세력을 넓히려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왔는데, 도리어 헌터를 잃어 영향력이 축소된다?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되는 격이었다.
“좋아. 기꺼이 지불하지.”
“아? 그리고 또 하나. 나제진스키에 위령비를 세워.”
“뭐?!”
“흥분하지 마. 너희 죄를 고하라는 게 아니야. 14년 전 그곳에서 희생된 모든 사람을 위해 세우라고. 그 안엔 당신 가족도 있었잖아? 그분들을 차르 길드와 티런 길드의 이름으로 함께 기리는 거야. 참고로 여기 안톤 길드장님은 이미 수락했어.”
다르덴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형이 받아들일까?’
분노보다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나제진스키 시민들을 기리는 위령비 건은 두드닉 형제에게 굴욕적일 수 있었다. 가족의 복수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생각하면, 오히려 위령비를 세움으로써 14년 전의 원한을 잊겠다는 선언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이는 다르덴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노릴 명분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방심을 유도할 수 있겠지.’
약간의 여유를 두고 생각해 보니 아버지와 여동생의 위령비를 크게 만든다는 명목이면 이고르를 설득하는 게 가능할 듯했다.
“좋아. 그것도 받아들이지. 더 있나?”
“없어.”
“다시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네놈처럼 지독한 한국인은 본 적이 없으니까.”
“티어 길드답게 합의를 잘 이행하면 다시 볼 일 없을 거야.”
무심하게 협상의 끝을 알린 강무혁을 보며 다르덴은 이를 바득 갈았다.
‘이번엔 그냥 물러나지만, 내가 이곳을 포기했다고 생각지 말라고.’
* * *
“안톤 길드장님은 돌아가시면 이번에 티런 길드가 저지른 일을 정리하시고, 보상금이 입금되는 대로 바로 뿌리십시오.”
차르 길드 본사로 돌아오는 리무진 안에서 강무혁이 대뜸 제안했다. 안톤은 당황해서 말했다.
“그렇게 되면, 이쪽에서 합의를 파기하는 꼴 아닙니까?”
“다르덴이란 인간이 언제까지 합의를 지키겠습니까? 분명 열세의 상황만 벗어나면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노려올 겁니다.”
“하지만 폭군의 일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약점을 쥐고 있는데 섣불리 움직일까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당장 알리면 블라디보스토크 행정청과 의회가 길길이 날뛰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약발이 안 먹힐 겁니다. 다르덴이 그때까지 아무런 방비도 세워 두지 않을 리가 없죠.”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안톤은 다르덴의 음흉함과 집요함을 익히 들은 바 있었다.
아무리 형이 S랭크라고 하더라도 용담호혈이라 불리는 모스크바에서 불과 10년 만에 티런 길드를 티어 길드로 성장시킨 것만 보더라도 그 수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뒤통수를 침으로써 뒤따라올 보복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강무혁은 안톤의 걱정을 읽고 말했다.
“자료를 뿌릴 곳은 티런 길드와 적대적인 길드들입니다. 폭군이 워낙 제멋대로 구느라 적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S랭크가 폭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견제가 될 겁니다. 물론 합의에서 벗어나지도 않고요.”
“합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아? 그렇군요.”
강무혁이 이끌어낸 합의는 시시콜콜 따진 듯했지만, 비밀유지 관련 대상을 정치권과 행정부, 언론과 인터넷 등으로 한정 짓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이 적대 길드에 알려진다 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다.
티런 길드를 노리던 각 길드의 정보망이 작동한 것이라고 변명하면, 이를 어떻게 밝혀내겠는가.
티런 길드의 적들 역시 티어 길드와 그에 준하는 세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의심이야 하겠지만, 한동안 블라디보스토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다른 길드들의 공세를 막아내려면 말이죠. 그대로 자빠지면 더욱 좋고요.”
“우리 단장 말대로 하세요, 안톤 길마님. 이래 봬도 이런 쪽으로는 S랭크 저리 가라 할 사람이니까. 아마 위령비 세운 것도 음모가 있을걸요?”
리무진 역방향 쪽에 앉아 있던 주세아가 나서서 거들었다. 그녀의 표현에 강무혁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음모는 또 뭡니까? 좋은 일에.”
“그래서 위령비에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고요?”
“그건, 아니지만…….”
안톤이 궁금하다는 눈길을 보내자 강무혁이 설명했다.
“첫 번째는 나제진스키의 비극을 끝맺음할 상징이 필요했습니다. 누구도 그들의 희생을 기리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잊어버렸고, 희생자들은 잊지 못한 겁니다. 이 위령비가 희생자 가족들을 모두 위로할 순 없겠지만, 하나의 계기는 될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요?”
“두 번째는 상대방이 알아들었을지 확신이 없긴 한데…. 다르덴에게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메시지?”
“이쪽에서 더는 나제진스키와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뜻이죠. 성격은 나쁘지만, 머리는 좋은 자입니다. 제가 드러낸 의도를 파악했다면, 아마 우리가 이 일을 끝냈다고 여기고 방심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겠죠. 그동안은 길드를 정비할 시간이 충분하리라 여길 겁니다. 그런 여지를 줌으로써 당장 합의를 깨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노렸습니다.”
안톤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본심 다 드러내고 싸운 것 같던 협상 테이블이 사실은 서로 속이고 숨기는 도박판이었다니.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안톤은 만만해 보였던 첫인상과 다르게 강무혁이 두려워졌다.
‘이런! 그러고 보니 아직 나한텐 견적서를 들이밀지 않았잖아? 얼마나 써서 줄지 벌써부터 끔찍하군. 뒤끝이 제법 있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후하게 쳐줘야 원한을 품지 않겠지?’
그는 길드에 돌아가면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차르 길드에 도착한 강무혁을 기다리고 있던 건 뜻밖의 인물이었다.
“차르 길드의 전대 길드마스터 파벨 아킨페예프일세.”
“제가 모셨습니다.”
안톤은 나제진스키의 비극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은퇴한 전대 길드마스터를 소환했다. 그가 아는 파벨이라면, 절대 나제진스키를 희생시킬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잔인한 법이기에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안톤은 이 진실 확인의 공증인으로 강무혁을 택한 것이었다.
“안톤 길마에게 들었네. 이번 우푸망바우 사태와 폭군의 공격이 14년 전 나제진스키의 비극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얼굴에 자글자글 주름이 진 노인은 담배를 찾으며 운을 뗐다.
강무혁은 노인을 살폈다.
노인의 오른쪽 다리는 의족이었다. 자료에서 봤던 50대의 나이로 짐작되는 모습에 비해 7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폭삭 늙은 얼굴이었다.
그의 눈길을 눈치챈 노인이 말했다.
“이 몰골 말인가? 마나 회로가 망가져서 그런다네. 다리를 잃은 것도 14년 전 게이트 붕괴 때문이지.”
“제가 듣기론 차르 길드가 블라디보스토크를 지키기 위해 나제진스키로 보스 몬스터와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을 유인했다고 하더군요.”
“강 단장님, 말씀을 조금…….”
“됐네, 안톤 길마. 이번 사건은 그 당시 비극의 경위를 숨긴 내 탓도 있으니 말일세.”
노인은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상념에 빠졌다. 이어서 불붙인 담배가 연기를 뿜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린 블라디보스토크와 나제진스키, 이 두 도시 중 희생당할 곳을 고른 적이 없네.”
“진실은 다르다는 뜻입니까?”
“지금 이 길드를 보게. 뭔가 이상하지 않나?”
“…….”
“이 길드의 구성원들 말일세. 현재 길드원들과 당시 길드원들 사이를 잇는 세대가 전혀 없어. 자연스럽게 세대가 교체되어야 하는데, 가위로 잘라 낸 듯 그 중간이 없지. 왜 그럴 것 같나?”
강무혁은 단번에 노인이 묻는 이유를 눈치챘다.
“혹 길드가 전멸한 겁니까?”
“보스 몬스터는 강했네. 길드는 괴멸했고, 보스를 저지하지 못했어. 보스는 우리가 몰아낸 게 아니야. 그저 마경으로 향한 거지. 본래 계획대로라면 나제진스키로 향하는 걸 추격해야 했지만, 길드원 절반이 죽고 나머지 절반은 대부분 중상을 입은 상태라 손을 쓸 수 없었어.”
강무혁은 상대가 거짓으로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심은 둘째치고, 차르 길드의 구성원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대표하는 길드치고 확실히 이상했으니까.
경력상 중견이어야 할 헌터들이 수뇌부를 꿰차고 있는 건 보통의 길드와는 확연히 달랐다. 세대교체가 급격히 일어났다고 봐야 했다.
“길드 전력이 그만큼 무너졌다면, 유인이나 다른 작전을 시도하지 못한 건 이해됩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상태를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습니까?”
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모든 게 무너지고 희망이 필요한 때였지. 몬스터가 그냥 물러났다고 하는 것보다 우리 힘으로 막아냈다고 하는 게 사람들에겐 안심이 되니까. 그렇지 않아도 여긴 마경에서 가까운 곳일세. 블라디보스토크를 지키는 차르 길드의 부재는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되지. 우린 이 도시를 지키는 기둥이어야 했어. 절대 흔들리지 않는.”
노인은 품에서 이젠 사용하지 않는 복사 CD를 꺼내 건넸다.
“그때 레이드가 끝난 후 기자가 취재한 영상의 일부분일세. 기자에게서 뺏었지. 전부는 아니더라도 차르 길드가 입은 피해가 어땠는지 볼 순 있을 걸세.”
노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길드를 떠났다.
당시 괴로움이 자꾸 생각난다며 안톤이 며칠 머물고 가라는 권유도 마다했다.
강무혁과 안톤은 CD 안의 영상을 확인했다.
그야말로 끔찍한 참상이 들어 있었다.
이 영상을 촬영한 기자는 저널리즘에 취해 세상에 알릴 흥분으로 가득 찬 음성이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젊고 다리도 멀쩡한 전 길마에 의해 저지되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결국, 모두 게 오해에서 비롯된 사건이었군요.”
안톤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 원한의 원인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을 줄이야.
도대체 무엇 때문에 피를 흘린 건지,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강무혁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역시 이 모든 게 몬스터 때문이야. 이놈들은 모두 사라져야 해. 더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 * *
병실에 입원해 있는 표범희에게 문병 갔을 때, 강무혁은 또 다른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 아무래도 A+랭크가 된 것 같아.”
강무혁이 주세아를 돌아봤다.
“기도가 확실히 전과 달라지긴 했어요.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독정으로 우푸망바우 독을 다룰 때 한계를 넘은 것 때문일걸요? 저도 몇 번 겪은 적 있거든요.”
주세아의 확인을 듣자마자 강무혁은 귀국에서 할 일을 추가했다.
‘연맹에 내밀 청구서에 몇 가지 더 추가해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