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126)
제126화
126. 앉아.
“덕수 형님! 저 왔습네다.”
“그래, 되놈들이래 뭐라니?”
“뭐라긴 뭐랍니까? 강무혁인가? 남쪽 사냥꾼활동반에서 온 아새끼래 잡아오랍디다. 그 뒤넘스러운(건방진) 놈 있잖습네까. 이름이 뭐더라? 맞다. 현정건이. 현정건 그 아새끼하고 붙어먹고 여기 어디 숨었다던데. 끌고 오랍니다.”
“언제까지네?”
“당장 잡아 오라는 거래 내일까지로 겨우 미뤘습네다.”
천덕수는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 먼 곳을 바라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련정문 아들하고는 최대한 부딪티디 말고 샅샅이 뒤지라. 시비를 걸면 내게 바로 알리고.”
“예. 알갔습네다.”
* * *
강무혁은 다락방이 비좁게 느껴졌다. 침대 주변에 삼삼오오 앉아 있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냥 교도소촌 얘길 좀 듣겠다고 한 것뿐인데.’
김길영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골목 친구들을 죄다 불러왔다. 아이들은 마을 사람들 외에 얘길 나눠본 적 없기에 호기심이 잔뜩 담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모여 앉았다.
‘뭔가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은데? 뭐, 그래도 말하는 입이 늘어나니 정보가 좀 더 풍성해지는군.’
강무혁은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들 입에서 나오는 정보를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입견 없이 보고 듣고 느낀 대로 말하니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도 상당했다.
게다가 나이답지 않게 철든 아이들이라 말하는 게 상당히 조리 있고, 명확했다.
“련정문 대장은 정말 멋있단 말이야. 나도 나중에 커서 대장처럼 될 거야.”
“근데 그 아저씬 얼굴이 너무 무서워. 차라리 난 현 아저씨가 좋더라. 서울 살아서 그런지 귀공자 스타일이야. 나중에 현 아저씨 같은 남자랑 결혼할 거야.”
“덕수가 지난번에 공 영감님 집에서 행패를 부렸다더라?”
“아니야. 덕수 그 정도로 나쁜 놈은 아니야. 공 영감네 연탄 넣어준 게 덕수란 말이야.”
“그걸 니가 어떻게 아냐?”
“덕수 지나갈 때 봤어. 옷에 연탄이 묻어있었다고.”
“자기 집에 연탄 넣었나 보지. 그놈은 그렇게 정 있는 놈이 아니라고.”
“중국놈들이 가끔 마을에 들어와서 무서워. 지난번에 교도소 창고에서 눈 마주쳤는데, 오줌 지릴 뻔했어. 막 웃으면서 나한테 오길래 벌벌 떨고 있었는데, 황동수가 나 도와주더라? 중국놈한테 중국말로 막 뭐라 하니까 그놈이 무서워서 도망갔어.”
“뭐? 황동수면, 황 할매 집 망나니? 그 망나니가 웬일이래?”
“망나니야 나가 죽어도 상관없지만, 황 할머니는 큰일이야. 몸도 안 좋으신데, 겨울이 돼서 아랫목이나 따뜻하게 하고 지내시는지 모르겠어.”
어느새 두서없이 자기네끼리 떠드는 수다 자리가 되어버렸지만, 강무혁은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시시콜콜한 마을 소식부터 이곳을 나누고 있는 세력 구도까지.
교도소촌은 크게 천덕수와 련정문의 세력이 양분하고 있었지만, 황동수와 같이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헌터들도 다수 있었다.
큰 무리를 짓지 않고 파티 별로 움직이는 헌터들도 있었고, 작게나마 길드 비슷한 운영 체제를 도입해 다른 헌터들을 흡수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뭡니까? 이 녀석들은?”
마침 은신처로 돌아온 현정건이 다락의 모습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물어왔다.
“현 아저씨!”
현정건을 이상형이라고 말했던 조그마한 여자애가 현정건의 다리를 붙잡고 반겼다. 다른 아이들도 현정건에게 달려들어 부대꼈다.
“아이고, 이놈들. 자자, 저기 둥근 통에 과자 있으니까, 길영이 네가 가지고 나가서 다 같이 사이좋게 나눠 먹거라.”
“네에!”
언제 반겼냐는 듯 과자 통을 가지고 우르르 몰려나가는 아이들을 향해 현정건이 외쳤다.
“여기 아저씨들 있다는 거 비밀이다!”
“네에에에~!”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가 금세 멀어졌다.
“정신머리가 하나도 없군. 이거 여기가 은신처라고 할 수도 없겠어. 응? 왜요?”
“뭘 말입니까?”
“뚫어지게 쳐다보길래. 단장님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아아, 아이들이 여길 떠들고 다닐까 봐요?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애들이 어린 것 같아도 입이 무겁고 생각이 깊어요. 이런 데 살아서 그런가. 철이 확 들었어요. 저 때 나는 사고 치기 바빴는데.”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의외로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놀랐습니다.”
강무혁이 진심으로 놀란 눈을 하자 현정건은 멋쩍은 듯 뒷목을 긁적였다.
“인기랄 것까지야.”
“하긴 여기 들어올 때 쌀이며 연탄이며 이것저것 기부도 많이 하신 것 같던데. 인기 얻을 만하겠네요.”
“애들이 그래요? 뭘 그런 얘기까지 하냐, 저놈들. 별건 아니고. 원래 이방인이 들어오면 마을 사람들이 경계하잖습니까. 전략적으로 접근한 거죠. 먹을 거, 입을 거 공짜로 주면 싫어할 사람 없으니까. 번 돈 쓸 일도 없어서 이사 떡 대신 좀 돌렸습니다.”
“이사 떡이라기엔 양이 상당히 많던데. 마을 사람 전체가 잔치를 열 정도였다던데.”
“잔치는 무슨. 그해 신의주에 들어오던 쌀값이 많이 올라서 굶어 죽는 사람도 있었거든요. 중국 애들이 그런 걸 통제해서 괴롭히니까. 그때 트럭에 가득 실어와서 신났던 거지. 그냥 배불리 밥 지어 먹은 게 답니다.”
강무혁이 말없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현정건은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자꾸 따지지 마시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천덕수 패거리가 움직였습니다. 아참, 모르시겠구나? 천덕수라고 여기 마을…….”
“압니다. 교도소촌 2대 세력 중 하나.”
“아이들이 얘기했습니까?”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세 시간 동안 아이들 일곱 명이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들면, 국정원에서도 얻기 힘든 정보를 알게 된다는 걸.”
“하하하, 저놈들이 좀 많이 수다스럽긴 하죠. 아마 외지인은 오랜만이라 신나서 떠들었을 겁니다. 어른들은 전부 먹고살기 바빠서 상대해주지 못하니까요. 골목도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놀만 한 곳도 없고, 학교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딱히 모일 곳이 없으니까.”
“학교가 없습니까?”
“학당이라고 해서. 그래도 좀 배운 친구들이 가르치고 있긴 한데, 많이 부족하죠. 뭐, 부족한 게 학교뿐이겠습니까. 병원도, 소방서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서 크게 다치면 죽어야 해요. 포션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걸 마련할 돈이면 의식주에 더 신경 써야 해서 대개 앓다가 죽는 경우가 다반사죠. 불이라도 나면 더더욱 큰일이고요.”
“그래서 여기 사람들이 중국 헌터들 행패에도 마음껏 싸우질 못하는 거군요.”
“신의주에서 쫓겨나면 갈 데가 없거든요. 마경으로 가겠어요, 아니면 남쪽으로 내려가겠어요? 죄다 경찰에 잡혀가지 않으면 다행이지.”
열 올리면서 말을 뱉어내던 현정건은 잠시 입을 다물고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여튼 간에, 아직 여기서 빠져나갈 루트는 찾지 못했습니다. 바깥에 연락할 방법도 없고.”
“브로커였다면서요. 그쪽에서 이용하던 방법은요?”
“제가 쓰던 라인은 물론이고, 여기 거간꾼들도 마찬가지로 막혔습니다. 진짜 땅 한복판에 섬이 따로 없습니다.”
“그렇군… 우읍, 쿨럭쿨럭! 크흡…….”
“왜 그래요? 괜찮아요?”
강무혁은 갑자기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퍼부었다. 당장 숨이 넘어갈 듯 해대던 기침은 조금 뒤 진정됐지만, 낯빛이 창백하게 탈색해버렸다.
“거, 거기 약 좀…….”
현정건이 가져다준 알약을 강무혁은 물도 없이 씹어 삼켰다. 시간이 흐르자 혈색 없던 얼굴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현정건은 약통을 탁자 옆에 두며 말했다.
“이게 효과가 있나 보네요? 곧 죽을 것처럼 기침하던 사람이 괜찮아지는 걸 보면.”
“임시방편입니다. 기침할 때마다 기운이 빠지고 있어요. 이러다가 나중엔 휠체어에 실려다닐 판국입니다. 더 심해지기 전에 주사제를 맞아야 합니다.”
“으음, 일단 다시 나가서 아이언윌에 연락을 취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분명 어딘가 구멍이 있을 겁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확인만 해보세요.”
“저 현정건입니다. 아시면서.”
그날 밤 현정건은 은신처로 돌아오지 않았다.
* * *
“동수야, 너도 우리 형님 통 큰 거 알지 않냐? 강무혁인가 하는 놈만 잡아 오면 두둑이 챙겨줄게. 중국 놈들은 우습게 봤다가 한 방 먹은 것 같은데, 넌 현정건이 얼마나 센지 알잖냐. 여기서 그놈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도 너 아니면 몇 없고. 너 어머니 돌봐야지. 병간호한다고 사냥도 못 나가는데 다른 벌이라도 해야지 않겠냐? 돈 받으면, 우리 형님이 중국 애들한테 잘 말해서 시내 쪽 병원 이용할 수 있게 길 열어주도록 해준단다.”
어릴 적부터 이웃에 살았던 형님의 제안에 황동수는 마음이 동했다.
백두산 호랑이처럼 무리 짓는 걸 거북해해서 천덕수 패거리와는 거리가 먼 황동수였지만, 이런 단발성 의뢰에는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황동수는 실종된 아버지를 닮아 교도소촌에서도 손꼽히는 사냥꾼이었다. 실력이 좋아서 값어치가 상당한 몬스터들도 심심치 않게 잡아 왔었다.
하지만 비싼 부산물을 얻으면 뭐하겠는가. 마음대로 팔지도 못하는데.
교도소촌 사람들은 마물의 부산물을 신의주 내에서만 팔 수 있었다. 두만강 쪽이나 산둥 반도 쪽의 중국 암시장에 팔다가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앞으로 장사는 다 한 셈이었다.
다른 곳에 팔았으면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사람들이지만, 북한 사냥꾼들의 핏줄이라는 천형이 그들을 불평등 속으로 내몰았다.
부산물 판로가 신의주 상권을 장악한 중국 사냥꾼들뿐이니 그들 눈 밖에 나기라도 하는 날엔 당장 생계가 막막해졌다.
식량의 수급도, 이동의 제한도, 치료받는 것까지. 마을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중국놈들에게 반감을 갖는 건 당연했지만, 어머니를 치료받게 해준다는 말에 황동수는 딱 한 번만 눈을 감기로 했다.
“숨은 곳은 압니까?”
“뻔하지, 뭐. 몇 군데 없어. 현정건하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중 하나겠지.”
“이 마을에서 현정건한테 은혜 안 입은 사람들 몇 없소. 나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안 한다고?”
“…….”
“병주 형님댁. 거기 형수님이 숨겨주고 있지 않겠어?”
“알면 가서 잡으면 되지. 왜 날 부릅니까?”
“아까 말했잖아. 현정건 잡으려면 적어도 우리 형님이 나서야 한다고. 아니면 너나 련정문 정도? 우리가 련정문한테 부탁할 순 없잖아. 그냥 가서 잡아 오기만 해. 숨도 붙어 있을 필요 없어. 그럼,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길게 한숨을 내쉰 황동수는 이내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마을 사람들 살리고 돌아가신 병주 형님 때문에라도, 형수님 깨어있을 땐 그 집 문지방 넘을 순 없소. 밤늦게 들어가서 조용히 처리하겠소.”
“그래. 그것까진 마음대로 하고. 어차피 내일 정오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그럼, 너만 믿는다.”
* * *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등불만 밝힌 야심한 밤.
이조차 건전지나 기름이 아까워 모두 일찍 잠들고, 골목길엔 달빛 외에 그 어떠한 빛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어둠 속에서 황동수가 움직였다. 마치 대낮처럼 거침없이 의주댁 집에 침입한 황동수는 곧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기척이 없어.’
그가 말하는 기척은 현정건의 것이었다.
허름하니 태풍이라도 불면 무너질 것 같은 집의 1층엔 형수님과 길영이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위쪽에는 강무혁으로 의심되는 일반인의 기척만 느껴질 뿐, 현정건의 기운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헌터라도 휴식 중에 이렇게까지 기척을 죽일 순 없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힘이 소모되니까. 숨어 있는 걸까? 침입을 예상하고? 그럴 리가. 언제 올 줄 알고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하겠어?’
평소라면 찜찜해서 일단 물러났겠지만, 오늘이 아니면 더는 기회가 없었다. 내일 정오까지 잡아 와야지만, 어머니를 병원에 모실 수 있었으니까.
황동수는 최악의 경우 한바탕 붙을 각오를 하고 다락 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엔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황동수는 표적의 생김새가 맞는지 얼굴을 살폈다. 그러다가 흠칫 놀랐다.
“안 자고 있었소?”
“현 사장이 아직 들어오지 않아서. 걱정돼서 말이죠.”
그제야 황동수는 현정건의 기척이 왜 느껴지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아예 자릴 비웠던 것이다.
껄끄러운 상대가 없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상대의 기이한 태도가 눈에 밟혔다.
“희한하군. 비명도 안 지르고. 사냥꾼이 아닌 사람이 침입자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다니. 보통 간담으론 어렵지. 뭐 하는 사람인진 몰라도 중국놈들이 애간장을 태우며 잡으려고 난리 칠 만하오.”
강무혁은 힘겹게 낑낑 몸을 추스르며 겨우 상체를 들어 올렸다.
“어두워서 그럽니다. 밤손님 험악한 얼굴이 보이질 않으니 놀랄 일도 없는 거죠.”
“밤손님? 난 도둑이 아니오.”
“그건 도둑한테 실례죠. 도둑은 물건만 훔치지, 적어도 무고한 사람 목숨 뺏으러 담 넘진 않으니까.”
“변명하진 않겠소. 나름 사정이 있으니.”
“그 사정이란 게 어머니 병환 때문인가? 아니면 먹을 것? 저쪽에서 무얼 약속했지?”
“!!”
황동수는 깜짝 놀라 입을 열지 못했다.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함정인가?’
강무혁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들었던 대로 요즘엔 잘 안 쓰는 점잖은 말투, 낮은 톤. 듬직한 체격과 큰 키, 다듬지 않은 긴 더벅머리에, 얼굴 쪽 큰 상처. 당신 황동수 맞나? 교도소촌의 망나니?”
“너 누구야?”
“나 죽이러 왔잖아. 몰라? 강무혁. 아니야?”
“어떻게 날 알고 있지? 난 널 본 적 없는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 고개 들고 있는 것도 피곤하니까.”
“무슨 수작인지 말해!”
“앉아. 황동수. 네 어머니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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