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196)
제196화
196. 우리 단장이 전해달라더라.
송화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렀다. 지린성을 지나 북서단의 싼차허에서 물줄기를 합쳐 북동쪽으로 유로를 바꾼 뒤 하얼빈을 거쳐 다시 무단강과 합치고, 자무쓰를 지나 아무르강(헤이룽강)에 합류했다.
공교롭게도 황룡 길드가 강제로 개문하려 했던 게이트들이 이 송화강 유역과 관련이 있는 셈이었다.
“그것도 다 옛날 말이오. 지금은 지형이 많이 바뀌었소. 이 길 아는 이도 나 말곤 찾기 어렵소.”
연변 사투리를 쓰는 마경 길잡이의 설명에 도대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 앞에 펼쳐진 지형은 지도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달랐으니까.
그도 마경에서 활동했지만, 이곳은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곳이었다. 마스터인 백귀의 지시가 아니었으면, 앞으로도 영영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악명이 자자한 장소였다.
“본래 여긴 평지 아니었네?”
“그냥 평지가 아니었소. 흑토였지. 지력이 좋아 뭘 심어도 잘 자랐소.”
“그런데 지금은 산이 솟았단 말이디?”
송화강 중하류는 마경의 마나 간섭과 과거 대형 몬스터들의 난리로 지형이 크게 변해 있었다.
중국에서도 손꼽히던 농업지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대신 산이 높이 솟구쳐 있었다.
산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는 형세였다. 그 사이 협곡에서 옛 송화강 물줄기가 흘렀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물은 물살이 사나워서 강에 빠졌다간 아무리 헌터라도 곤욕을 치르기로 유명했다.
지형이 험한 만큼 강한 몬스터도 많았다. 그런데 헌터들은 이곳을 잘 찾지 않았다. 강한 몬스터라는 건 곧 비싸다는 뜻인데도 말이다.
찾는 사람이 적다 보니 당연히 길을 아는 이가 드물었다.
덕분에 도대철도 길잡이를 구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웃돈으로도 모자라 상당히 좋은 장비를 대가로 걸고서야 겨우 길잡이 구인에 성공했다.
길잡이는 산줄기를 따라 허공에 손짓하며 말했다.
“산 솟은 지는 오래됐고, 소전쟁 때 이후론 또 많이 변했소. 그러니 지금 이곳 길을 아는 사람이 적은 게요.”
“왜 안 오네? 여기만큼 좋은 사냥터가 어딨다고?”
“몰라서 묻소? 여기가 거기잖소?”
“거기? 아아, 구룡릉 말이네?”
“그게 언제 적 얘긴데 말하오. 옛날 헌터들이야 구룡릉 레이드하면 치를 떨지만, 요즘 헌터들은 여기가 구룡릉인지도 모르는 이가 더 많소.”
“그럼, 지금은 뭐라 불리네?”
“무덤. 여길 아는 헌터들은 무덤이라고 부르오.”
“무덤? 누구 무덤?”
“그냥 무덤이오. 몬스터건, 헌터건. 모조리 뼈를 묻는다 해서.”
도대철이 귀동냥해서 듣던 소문이 좀 더 구체화한 명칭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무덤…….
소문의 절반만 사실이라도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듯했다. 그만큼 많은 헌터가 목숨을 잃은 곳이었다.
‘그러니 중국도, 러시아도 죄다 이곳을 피해 다녔디. 여길 드나든 건 돈에 환장한 조선족 아니면 겁대가리 없는 통일 한국 사냥꾼 아새끼들 뿐이디.’
솔직히 도대철도 꺼림칙했다. 길잡이를 구하지 못했다면, 들어오지 않을 곳이었다.
하지만 임무는 임무.
그는 백귀의 명령만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총수께서 지린시 괴물굴 대장이 옛 구룡릉 터로 들어갔다 했디. 기껏 얻은 좋은 패를 써먹지 않을 수 없디 안 갔어? 이번 계획만 잘 마무리 지으면, 우린 다시 옛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기야.’
황룡 길드도 같은 생각으로 게이트 보스를 찾아 무덤에 왔었지만, 보스에게 제대로 손써 보지도 못하고 물러나야 했었다.
그 실패의 여파로 황룡 길드는 게이트 보스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는 선양시 게이트를 열지 않기로 결정한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린 다르디. 황룡 애들은 모르는 방법이 있으니 말이네.’
도대철은 마련해 온 방법을 되새기며 긴장을 풀었다. 준비해 온 것만 제대로 풀 수 있다면, 백귀의 대계가 완성되리라.
그는 일을 성사시키겠다고 거듭 다짐하며 발걸음을 뗐다.
“안내하라. 시간을 맞추려면 바삐 가야 하니.”
* * *
심월은 끝내 카멘스키에게 따라잡혔다.
“늙은 게 발도 빠르군.”
어쩔 수 없이 전투를 이어 갔다. 조금 뒤 이고르가 합류했다. 심월은 다시 한번 도망치려 강력한 스킬을 준비했다.
파괴력이 큰 스킬로 눈속임하고 빠져나가려 했지만, 상대는 같은 방법에 두 번 당할 이들이 아니었다.
“어허, 어딜 가려고?”
“비켜라, 폭군!”
“계속 도망치려 하면 섭섭하다고.”
【아바타】
이고르의 신장이 길게 늘어났다. 몸도 부풀었다. 삽시간에 20m에 달하는 거인이 됐다.
질량 보존의 법칙도 무시하는 이능에 심월은 이를 갈았다.
“내가 사신과 싸우지만 않았다면. 몸만 멀쩡했다면. 네놈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거다.”
“세상에 어떤 헌터가 상대 사정 봐줘 가면서 싸우나. 악명 높은 남산도 출신이래서 기대했더니 랭크만 높은 쭉정이였군.”
“닥쳐!”
심월의 창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녀를 중심으로 창대가 반월을 그렸다.
【천수관음】
창을 쥔 손이 수십 개로 늘어난 듯 보였다. 그에 맞춰 창도 수십 개로 불어났다.
‘이것마저 안 통하면, 진짜 뼈를 묻는다.’
연계 스킬.
【공허창-연격】
수십 개의 창이 동시에 빛살이 되어 이고르를 덮쳤다.
“역시 쭉정이라도 S랭크란 말이지? 하하하하!”
이고르는 태권도의 정권 지르기 자세를 잡았다.
오른 주먹을 쥐어 허리에 가져다 붙이고 어깨를 등 뒤로 당겼다. 반대편 손이 왼쪽 허리춤으로 잡아당기는 순간에 맞춰 오른 주먹이 회전하며 앞으로 뻗어 나갔다.
처음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이내 산을 닮은 거대한 무형의 기운이 공간에 가득 찼다.
【지믈랴의 심판】
슬라브족 신화 속 땅의 신이 가진 힘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인 이고르의 오리지널 스킬이 심월의 공격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눈이 부신 빛이 주변 모든 형체를 흐릿하게 만들더니 이내 지워 버렸다. 지린시 도심부를 날릴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폭발이 일어났다.
뒤늦게 굉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하늘 위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공중에 흩어졌던 흙먼지가 천천히 내려앉을 즈음,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S랭크 헌터의 격돌은 처참한 광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문명의 흔적은 이제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완전히 무로 돌아간 땅 위에 남은 건 반경 수백 미터에 달하는 구덩이와 그 안쪽에 반쯤 파묻힌 두 헌터뿐이었다.
“크크큿! 진짜 위험했어. 공격력만큼은 러시아에서도 적수를 찾기 힘들겠군.”
이고르는 거인화가 풀린 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착용하고 있던 특수복과 장비들이 모조리 부서져 있었다.
심월도 사정이 그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아끼던 귀곡창은 창대가 꺾여 있었고, 전신 갑옷도 여기저기 금이 갔다. 얼굴을 감싸던 투구도 완전히 쪼개져 상갑 뒷덜미에서 너덜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이고르와 다른 점은,
“더럽게 단단하네. 몸뚱이만 큰 게 아니었나? 쿨럭!”
몸속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이었다.
족히 1년은 정양해야 회복할 만큼 내장이 엉망으로 뒤틀렸다.
입에 한 웅큼 솟구친 검은 피를 게워 내며 심월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저놈 겉으로 보기엔 다친 거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큰 타격이 없어. 컨디션이 풀핏일 때 싸웠어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카멘스키야 오래전부터 명성을 날렸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거의 같은 시기에 S랭크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폭군에게조차 약세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에 심월의 자존심은 금이 갔다.
그때 퍼뜩 잊고 있던 존재가 떠올랐다.
“카멘스…. 컥… 키.”‘
심월의 몸이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명치를 뚫고 나온 낫을 내려다봤다. 척추를 당했는지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다. 다리가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이를 악물고 뒤돌아봤다.
“이 치사한 늙은이가…….”
“내가 사냥하는 건 몬스터만이 아니야. 비겁하고 치사한 게 당연한 거지. 결과적으로 그 차이가 자넬 죽이게 된 거야.”
“…….”
“S랭크가 됐다고 자만했었군, 심월. 자네도 결투나 전쟁이 아니라 사냥을 했었어야지.”
“이이…….”
뒷말은 듣지 못했다. 심월의 등에서 대낫을 뽑아낸 카멘스키가 그대로 그녀의 목을 쳤기 때문이었다.
이고르는 구덩이의 비탈을 타고 데구루루 굴러 내려가는 심월의 머리를 발로 멈춰 세웠다. 그는 주인 잃은 머리를 들고 비탈길을 올라갔다.
카멘스키는 대낫을 휘둘러 날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곤, 무기를 몸 뒤로 감췄다.
심월에게 당했던 상처가 욱신거렸다. 응급 처치를 했지만, 워낙 급하게 추격하느라 멎었던 출혈이 다시 시작됐다.
‘장기를 다쳤어. 마나도 체력도 바닥이고. 그에 반해 저놈은 팔팔하군. 나도 이제 많이 늙은 건가?’
아릿한 통증과 함께 카멘스키가 입을 열었다.
“이젠 내 차례인가?”
“오래 살아서 눈치 하난 빠르군.”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인데. 이고르 자네도 그렇고. 자네 동생 다르덴도 그렇고. 어쩌면 너희 형제는 진작 없애 버렸어야 할 녀석들이었는지도 모르겠군.”
마치내 이고르가 카멘스키 앞에 섰다. 그는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주저앉아 있는 심월의 목 위에 잘린 머리를 조심스레 올렸다. 그녀의 몸은 머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이고르는 바닥에 널브러져 비탈길 아래로 쓸려 내려가는 심월을 일별하곤 카멘스키에게 몸을 돌렸다.
“난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말이야. 늙은이가 없었으면, 우리 일이 여러모로 편했을 거야. 그랬다면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좀 더 일찍 진출했을 거고, 아무런 방해도 없이 내 복수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겠지. 당신이 방해됐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 오르더군.”
“그건 그냥 화풀이 대상이 필요해서 아닌가?”
“뭐, 그런지도?”
“날 죽이려면 쉽진 않을 걸세.”
“멀쩡할 때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쉬울 것 같은데?”
“그쪽도 멀쩡해 보이진 않네?”
이고르가 공격 자세를 순간 갑자기 끼어든 여자의 목소리.
그는 얼굴을 와락 구기며 짜증을 냈다.
“또 끼어드는 건가, 마녀?”
이고르의 눈길이 닿는 곳에 주세아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쪽이 개차반이긴 해도 사적으로는 악감정 없어. 나도 일하는 거야.”
“무슨 일? 날 죽이는 거?”
“아니. 누굴 살리는 거.”
주세아가 카멘스키를 가리켰다.
“한국. 아이언윌 주세아예요.”
“S랭크로군. 한국에 S랭크가 있었던가?”
“얼마 전부터요.”
카멘스키는 죽을 고비를 넘겼음에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수십 년을 동토에서 몬스터 사냥으로 보낸 헌터답달까?
주세아는 손바닥을 내밀어 카멘스키의 관심을 밀어내곤 이고르 앞에 섰다.
“2차전 할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끝내지 못한 거.”
“처음부터 내가 늙은이를 노릴 거라는 걸 알았던가?”
“우리 단장이 전해 달라더라.”
“역시 그 얍삽한 놈이었군. 그래, 뭐라 그랬지?”
“개수작 부리지 말고 몬스터나 잡아.”
“하? 겁이 없군. 내게 감히…….”
“너 동생한테 전해달래.”
“…….”
“이번엔 내가 물을게. 나하고 싸울 거야, 말 거야?”
* * *
“공대장님! 이쪽! 아직 살아 있습니다!”
소상엽의 고함을 들은 성선제가 급히 달려왔다. 소상엽은 처참한 몰골로 바닥에 누워있는 헌터의 입에 포션을 흘려 넣고 있었다.
그 옆에선 감우영이 여자 헌터에게 포션을 먹였다. 그녀 역시 숨이 끊기기 직전이었다.
“황룡 길드의 원정대로군. 나머지는?”
소상엽이 고개를 저었다. 황룡 길드의 원정대 중 숨이 붙어 있는 건 이 둘이 전부였다.
성선제는 앰플킷과 슬레이어 길드마의 응급 약품들을 꺼내 그들을 치료했다.
덕분에 숨은 붙여 놓을 수 있었다. 겨우 한숨 돌리자 성선제는 바로 지린시에서 이탈하기로 결정했다.
“두만강으로 복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