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202)
제202화
202. 제 목을 걸고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디니거얼과 시린나이의 선택은 예상보다 더 빠르게 결정됐다.
디니거얼은 날짜가 바뀌기도 전에 강무혁을 찾았다.
“증인, 되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가족 얘기겠죠?”
“예. 저희 두 사람의 가족과 죽은 동료들의…….”
“잠깐만요.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책임질 수 있는 건 여기 계신 두 분 가족이 전부입니다. 황룡 길드의 원정3팀 멤버의 가족 전원을 빼 오는 건 어렵습니다. 물론 도울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모두의 안전을 장담할 순 없으니 미리 말해두는 겁니다.”
부탁을 냉정하게 끊는 말이었지만, 디니거얼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사실대로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턱대고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으면 오히려 의심했을 겁니다. 저희도 욕심을 부리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두 분이 하실 일은 하나입니다. 때가 될 때까지 몸을 최대한 회복해 두는 것. 필요로 할 때 연락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친 강무혁은 협상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백귀의 게이트 개폐기 증거, 황룡 길드의 전 원정대 인원의 증언, 카멘스키가 확보한 실물 개폐기까지. 이만하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나머진 협상 상대가 누구냐인데…….’
강무혁은 백귀에게 연락했다.
“황룡 길드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주십시오.”
-협상 장소는 신의주로. 괜찮겠습니까?
“예.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떤 조건입니까?
“협상 상대는 이쪽에서 지명하겠습니다.”
-특정인을 지명하신다고요? 흐음. 그럼, 누굴 원하십니까?
“관홍. 무조건 그와 협상하도록 성사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 * *
마경 게이트 개문 작전.
황룡 길드에선 ‘마경 대계’라 이름 붙인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길드 내에서 관홍의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다.
다행히 실패는 곧 죽음 혹은 업계 퇴출로 이어지던 다른 헌터들과 다르게 관홍은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헌터가 한직으로 밀려나면 무슨 재미로 사나? 차라리 퇴출당했으면, 다른 국가로라도 망명했지. 이건 숫제 귀양살이하는 것과 다를 게 없군.”
관홍은 ‘남산도’ 근처 해안가 도시의 황룡 길드 지소에 홀로 부임해 있었다. 재적 인원 1인의 지소에 그를 보낸 건 중국 최악의 헌터 교도소를 보며 자중하라는 경고의 의미가 섞여 있었다. 수틀리면 바로 남산도에 처박아버리겠다는 협박이기도 했다.
이를 알고도 경거망동할 헌터는 없었다. 관홍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지소 생활을 며칠 하지 않았을 때였다. 갑자기 길드 총단에서 그를 불러올렸다.
관홍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총단이 죄를 사해줄 리가 없다. 제거하거나 버리는 패로 사용할 일이 있어 날 부르는 거겠지.’
한참을 고민한 끝에 관홍은 전자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죽이려면 진작 죽였으리라. 황룡 길드의 처사가 과격하고 냉담하긴 해도 한번 뱉은 결과를 뒤집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는 길드 총단 수뇌부의 체면과 관련이 있었다. 중국에서 체면을 차리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의식이었다. 실제로 헌터들 간에 체면을 무시해서 길드전이나 생사결이 벌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렇다면 맡길 일이 있다는 거겠군.”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관홍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여겼다. 미관말직이라도 상관없었다. 총단에 발을 들일 수만 있다면, 시간이 얼마가 들던 자신의 능력으로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갈 자신이 있었다.
관홍은 한달음에 달려가 총단이 있는 북경에 입성했다.
그가 안내된 곳은 북경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거대한 회의실이었다.
한가운데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비원쥔 님! 퇴원하셨군요. 몸은 괜찮으십니까?”
“내상은 좀 더 다스려야겠지만, 움직이는 덴 문제 없다. 우선 서 있지 말고 앉게나.”
관홍은 마른침을 조심스럽게 목울대 뒤로 넘기며 자리에 앉았다. 비원쥔과는 처음 대화를 나누는 사이도 아닌데 긴장이 됐다.
전략팀장이란 명패를 달고 있을 때와 달리 지금은 백의종군해야 할 처지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던데, 자리를 잃으니 자신의 격이 그만큼 떨어진 기분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지녔으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천 길 낭떠러지 행이었다.
“내가 자넬 부른 건 다른 이유가 아니네.”
관홍은 자신을 부른 게 총단이 아닌 비원쥔이라는 걸 깨달았다. 만약 총단 수뇌부의 선택이었다면, 총단의 결정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으리라.
이어지는 비원쥔의 말에 관홍은 조용히 귀 기울였다.
“한국에서 협상 자릴 마련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네. 역천 길드 떨거지들이 주선했지.”
“역천 길드가 말입니까? 굳이 그자들 말을 들어줄 필요가…….”
“없지. 우릴 싫어하는 놈들이니까, 허나 당장은 손을 잡은 자들이라 마냥 무시할 순 없으니 일단 말은 좀 들어봐야 할 듯하네.”
“그럼, 절 부르신 이유가 혹시…….”
“이번 협상을 자네가 맡아줘야겠네.”
예상했던 대로의 기회였다. 동시에 위기였다.
관홍은 상대가 무엇을 가지고 협상할지 예상하고 있었다.
‘해내면 중용될 수 있으나 실패하면 목을 날리기 좋은 일이겠지.’
하지만 받지 않을 수 없는 일.
관홍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협상 상대가 누구입니까?”
“이미 예상하고 있지 않나? 말해보게. 누구일 것 같나?”
관홍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단숨에 답을 말하는 건 쉽지만,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려면, 약간의 양념이 필요했다. 그는 적당히 뜸을 들이며 말했다.
“한국 정부는 아니겠죠.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으니. 그렇다고 통합 공격대나 슬레이어 길드는 아닐 겁니다. 공대장인 성선제의 지도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공대 자체는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월권으로 진행했다간 나중에 반발을 살 게 뻔하고, 레이드 외의 업무로 개별 협상을 가지는 건 통합 공대를 승인한 정부를 무시하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남은 건 한 사람뿐입니다.”
“흥미롭군. 조직이 아닌 인물을 지적하다니.”
“그 사람에게도 소속은 있죠. 아이언윌 길드. 강무혁 단장이 아닙니까?”
“역시 관홍 선생. 맞네. 강무혁. 그자가 협상을 주도하고 있네. 전권을 주겠네. 자네가 그를 상대하게. 개폐기와 마경 게이트 오픈에 관련된 사항을 모두 무마시키게.”
“전권의 범위가 궁금합니다.”
“금전적인 보상. 비용은 알아서 산출하고. 그 외에 실질적인 손해가 없는 협약이나 총단에서 허용 가능한 선에서의 협조와 배상 정도?”
말이 전권이지, 최대한 양보하지 말고 일을 성사시키란 뜻이었다.
협상 대표에겐 암울한 조건.
하지만 관홍은 좌절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협상단의 인선은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호오, 상황이 안 좋은데 제법 당당하게 나오는군. 역시 이래야 관홍이지. 말해보게. 누굴 내줄까?”
“최소한의 호위와 무력시위를 위해 샤오잔 대와 원하오 대를 내주십시오.”
비원쥔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재밌는 인선이군. 둘 다 그 강무혁에게 당한 자들이 아닌가?”
샤오잔은 압록강철교에서 주세아에게 박살난 단둥 공격대의 대장이었다. 압록강철교에 주세아를 배치한 게 강무혁이니 실제론 그에게 당했다고 봐도 좋았다.
원하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실종된 장중쉰과 함께 신의주 장악에 나섰던 자였다. 신의주 작전이 강무혁에 의해 실패했으니 그 역시 강무혁에게 원한이 있는 자라 할 수 있었다.
“패배자 동맹 같은 건가?”
“최소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자들입니다. 원한이 있는 자들이 협상장에 나타나면, 겉으로 보기엔 협상을 망치려는 모습으로 비출 겁니다.”
“미리 얘기해두지만, 망쳐선 안 되네. 협상이 틀어져도 감당할 순 있지만, 길드의 대계가 그만큼 뒤로 미뤄지니 말일세. 게다가 심월을 잃은 낙일 길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네. 당분간은 대외 공세를 나설 수 없어. 이제부턴 수성의 시기가 될 걸세.”
“걱정 마십시오. 제 목을 걸고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 * *
“길게 끌 협상이 아닙니다. 되도록 이 자리에서 끝내고 싶군요.”
주세아와 장득구, 단둘만 거느리고 협상장에 나온 강무혁은 첫 만남에서 으레 하는 인사도 없이 서두를 꺼냈다.
“저도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국가 간의 협상도 아니고 길드 간의 협상은 간 보고 이리저리 잴 것도 없죠.”
관홍은 상대의 의사를 반기듯 말했지만, 내심 궁지에 몰린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최소한 겉으로는 여유를 가장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개폐기를 폭로하지 않고 협상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상황이다. 상대도 마경 진출을 선언한 이상 황룡 길드를 몰아붙이는 건 또 다른 불화의 씨앗을 남기는 일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거야.’
관홍은 강무혁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가 신의주와 두만강 방어선에서 한 일을 알고 있었다. 통합 공격대 창설을 위해 국회 청문회에 나갔던 영상도 봤다. 비공식적이지만, 러시아를 끌어들여 심월을 제거한 사실까지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강무혁에 관해 그가 내린 평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상주의자.’
동시에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가.
‘하지만 어떤 신념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브레이크라는 걸 몰랐을 거야. 강무혁이란 자는 잘 쓰면 보검이고, 잘못 쓰면 살검이 될 인물이다.’
상반되는 성향을 한몸에 지닌 인간이라는 게 흥미로웠다. 보통 이런 자들은 평화 속에서 살 수 없었다. 끝내 자신조차 망가트려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 감각을 지니고 있다니, 존재 자체로 놀랍다 할 수 있었다.
관홍은 현상에 나서서 난생처음 압박감을 느꼈다. 낙일로부터 S랭크인 심월을 빌려올 때도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었다. 자신이 힘든 이유가 처한 상황 때문인지, 상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오늘 협상에서 실패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조건을 먼저 말씀드리죠. 그쪽에서 가지고 있다는 게이트 개폐기와 증거 일체를 넘기는 것. 그리고 영원히 침묵하는 것. 간단한 요구입니다.”
“대가는 뭡니까?”
관홍이 고이 접은 쪽지를 반대편 탁자에 앉은 강무혁에게 넘겼다.
강무혁은 손에 쥔 종이를 슬며시 편 뒤 눈을 내리깔았다. 종이에 적힌 건 일련의 숫자였다.
“보상금입니다. 아이언윌에게만 넘기는.”
강무혁은 종이에 적힌 금액을 보곤 시큰둥한 듯 코웃음 쳤다. 관홍의 눈가에 주름이 실룩였다.
‘상당한 금액일 텐데?’
아이언윌이 태성 그룹 산하 길드라 재정 압박을 받지 않는다지만, 마냥 무시하기 어려운 돈이었다. 가진 역량은 둘째치고, 규모에서 아직 C급 길드를 벗어나지 못한 아이언윌에겐 상당한 기반이 되어줄 만했다.
강무혁은 겉으론 냉정하게 보였지만, 속으론 움찔한 참이었다.
‘절묘한 금액이군. 우리 길드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온 게 분명해.’
아이언윌이 태성 그룹으로부터 독립을 꾀한다는 건 비밀이랄 수 없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태성에서 떨어져나오면 재정적인 자립을 위해 당연히 돈이 필요할 터.
황룡 길드가 제시한 보상금은 매력적인 숫자로 유혹하고 있었다.
‘맛있어 보인다고 먹으면 바로 배탈이 날 돈이기도 하지. 마경 사건을 무마시킨다는 건 국가적인 사건을 일개 길드가 결정하는 일이니까. 이런 건 조금만 말이 새어나가도 반역 행위가 될 수 있지.’
만약 관홍이 그걸 노리고 제시한 것이라면, 웃으면서 독을 뿌리는 격이라 할 수 있었다.
“돈은 됐습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당장 급한 게 아니라서.”
“그렇다면 혹시 아이템을 원하십니까? 참고로 유니크 템은 저희도 쉽게 넘길 수 없습니다.”
“유니크라…. 욕심나긴 하지만, 존재 자체로 길드 전쟁이 벌어지는 게 아티팩트 아닙니까? 당연히 내주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럼, 남은 건 길드 간의 약속인데…. 강 단장님이 생각하고 계신 조건이 있습니까?”
강무혁은 입술을 들썩이다 멈췄다. 그러더니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관 선생은 이 협상 테이블이 어떻게 마련됐는지 모르고 오셨군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뒤에 계신 두 분. 샤오잔 헌터와 원하오 헌터 아닙니까? 제 성질을 건드리시려는 건지, 부담스럽길 원하는 건진 몰라도 굳이 제게 원한이 있는 패잔병들로 협상단을 꾸린 건 이 자리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모르고 오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금껏 관홍의 뒤에 서서 병풍 노릇을 하던 샤오잔과 원하오는 ‘패잔병’이라는 단어에 눈을 부릅뜨며 강무혁을 노려봤다.
분노를 넘어 살기마저 뿌리려는 찰나, 주세아가 그들을 쏘아봤다. 이미 된통 당한 경험이 있는 샤오잔은 바로 눈을 피했다. 그보다 두 수 낮은 원하오도 감히 S랭크의 시선을 마주 볼 수 없어 눈을 내리깔았다.
단번에 자리를 제압한 주세아는 끌어올렸던 기세를 죽였다.
강무혁은 그녀에게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이곤 말을 이었다.
“여하튼 이 자리의 의미를 모르시니 제가 무엇을 제안하든 이야기는 겉돌 겁니다.”
“말도 꺼내지 않으시고 왜 단정부터 지으십니까? 속 시원히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뭘 모르고 왔는지.”
둘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겉으론 조용했지만, 속으론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먼저 계산을 끝낸 강무혁이 조심히 말을 꺼냈다.
“관 선생으로 협상자를 지목한 게 바로 저였습니다.”
“!!”
단 한마디.
그제야 관홍은 강무혁의 의도를 눈치채곤 헛바람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