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203)

제203화

203. 그야말로 윈윈이로군.

강무혁의 말을 듣는 순간, 관홍은 먼저 비원쥔을 욕했다.

‘내게 기회를 준 게 아니었군. 내가 바로 협상의 조건이었어. 비원쥔! 검룡이 아니라 여우였구나.’

그것도 모르고 목을 걸고 나왔으니 관홍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밖에.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미리 알았어도 크게 바뀌는 건 없었으리라.

어차피 헌터는 랭크가 전부고, 검룡은 S랭크다. 그가 죽으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격차가 존재했다. 길드 내 서열도 크게 밀리는 관홍에겐 애초에 선택권이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니야. 아직 늦진 않았어. 강무혁이 날 지명했다는 건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했다. 당장 떠오는 건 있었다. 자신이 데려온 두 사람을 강무혁이 지적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남이 들어서는 안 될 얘기를 하려는 듯했다.

‘가령 예를 들자면, 내 구명줄과 같은 것? 소속 길드를 속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 말이야.’

솔직한 심정으로 던져주기만 하면, 바로 잡을 것 같았다. 그만큼 관홍은 몰려 있었다. 비원쥔이 던져준 구명줄은 썩은 동아줄이었으니까.

강무혁은 관홍의 표정에서 절박함을 읽어냈다.

‘관홍이 딴마음 품지 못하게 황룡 길드가 정보를 제한한 것이 오히려 내게 득이 되었군. 너무 얕은 수였어. 관홍처럼 사세 판단이 빠르고 심지가 굳건한 자에게 술수를 부리다니. 내가 진실을 밝히면 바로 깨질 텐데 말이야.’

이제 관홍은 황룡 길드를 더는 우군이라 여기지 않을 터였다.

“이제 좀 상황이 파악되신 것 같고. 본격적인 얘기는 저와 관 선생, 단둘이서만 진행하고 싶군요. 저희 쪽 사람들도 물리겠습니다.”

강무혁의 제안에 샤오잔과 원하오가 반발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협상단을 내쫓겠다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반대하는 건 중국 측만이 아니었다. 사전에 관홍과의 독대에 대해 언질을 듣지 못한 주세아와 장득구도 마찬가지였다.

“강 단장님, 저쪽은 헌터예요. 쟤들을 뭘 믿고 둘이서만 한방에 두고 나가요?‘

“명령이라면 듣긴 하겠지만, 만약의 경우 지켜드리지 못합니다.”

“장 아저씨, 듣긴 뭘 들어요. 안돼. 내가 허락 못 해. 마경에서 게이트 터트린 놈들을 뭘 믿고 강 단장을 맡겨?”

쌍심지를 켜고 있는 주세아를 향해 강무혁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길드장님. 관 선생의 지금 처지가 상당히 딱하거든요. 절 해치면 나락에 떨어지지만, 대화만 잘해도 스스로를 구명할 수 있으니 경거망동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흰 운명 공동체라 볼 수 있겠군요.”

강무혁의 단언에 관홍은 기가 막혔다.

나 건드리면 너도 죽어, 라고 말하는 운명 공동체가 어디 있겠는가.

당신을 위한 조언을 하겠다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다른 의미로는 협박이라 할 수 있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는 게 더 뼈아프군.’

관홍은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봤다.

“모두 나가세요.”

“관홍 선생!”

“관 팀장!”

샤오잔과 원하오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관홍의 이어진 말에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두 분도 신의주에서 큰 실책을 저질렀죠? 이 협상이 잘돼야 앞으로 길드 내에서 살아남으실 수 있을 겁니다.”

둘은 아교풀을 바른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쯤 되자 주세아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강무혁의 눈짓이 그녀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알았다고요. 전권을 준 건 나니까. 따르긴 할게요. 이봐, 거기. 우리 단장 건드리면 넌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주지. S랭크가 얼마나 지독하게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지 보여줄게.”

“거, 걱정하지 마시지요, 주세아 길마님. 저도 제 목숨 소중한 걸 아니 지금 이러는 겁니다.”

주세아가 출구로 발길을 돌렸다. 장득구가 따라나서려는데 강무혁이 그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앞서 나간 두 사람, 이쪽엔 신경 쓰지 못하게 단단히 잡아두십시오.”

엿듣지 못하게 하란 뜻이었다. 장득구는 고개를 끄덕이곤 퇴실했다.

당사자 둘만 남으니 협상장이 고요해졌다. 먼저 운을 뗀 건 강무혁이었다.

“방해는 없을 겁니다.”

“절 협상자로 지명한 이유. 아직 못 들었습니다.”

“아까 말했지 않았습니까? 관 선생님 처지가 딱하다고.”

“그렇게 감상적인 분이 아닌 줄로 압니다.”

“사람이 사정이 나쁘면 지푸라기라도 잡기 마련이죠. 협상에서 제게 유리한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제 약점을 이용하시겠다는 거군요.”

“전 기본적으로 윈윈을 추구합니다.”

“적과의 협상도 말입니까?”

“협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적에서 중립으로, 혹은 아군으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관홍이 탁자를 가볍게 치며 지적했다.

“그게 제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제가 강무혁 단장님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진 않지만, 그동안의 행보로 짐작해보건대, 마경에서의 일은 강무혁 단장님이 수용하실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사건인 것 같은데 말이죠. 끝장을 볼지언정 타협하지 않는 종류 말입니다. 그래서 심월을 죽인 게 아닙니까?”

“남산도의 악귀는 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 러시아가 했지.”

“뭐, 그게 사실이긴 하죠. 그건 그렇다 치고. 어찌 황룡 길드와 협상할 생각을 하실 수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이 바닥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곳 아닙니까?”

“그런 호사가들의 속 편한 소릴 맹신할 만큼, 전 바보가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엔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것 같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결국 강무혁이었다.

관홍은 상대가 최소한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대주길 바랐다. 그래야 자신도 노선을 확실히 할 수 있을 테니까.

강무혁이 손가락 두 개를 들며 말했다.

“두 가지 포석 때문입니다.”

“두 가지?”

“이 협상 자리. 누가 컨택했는지 알고 계시죠?”

“역천 길드…….”

“황룡 길드의 적이죠.”

“적의 적은 아군이다? 아닌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역천보다 황룡 길드가 그쪽에 더 위험한 적일 텐데…….”

순간 저도 모르게 말을 뱉어놓고 부정하는 관홍이었다.

확실히 아이언윌과의 악연은 역천보다 황룡이 훨씬 컸다. 역천 길드가 마경에서의 일에 한 손 보탰다곤 하지만, 아이언윌과 칼을 맞댄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자금과 아이템을 대고,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일부 병력을 지원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강무혁이 미소를 짓자 관홍은 자신이 제대로 짚었음을 알아챘다.

“진짜입니까? 역천 길드를? 어째서요? 그쪽은 강 단장님에게 아직 아무 짓도 안했을 텐데. 아니지. 오히려 저희 개폐기 자료를 얻었다면, 역천일 가능성이 높겠죠. 도움이 된 자들을 왜 견제한다는 겁니까?”

강무혁을 위한 조언이라기보단 정말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었다.

강무혁은 관홍에게 이 협상 자리가 마련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한 뒤 그의 의문에 답했다.

“전 역천을 믿지 않습니다. 아? 정확히는 백귀라는 자를 믿지 않습니다.”

“백귀라…. 그가 옛 북한 헌터의 후손이었다니. 지금까지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는 게 놀랍군요. 황룡 길드에서도 그의 뒤를 캐지 못했는데. 하지만 백귀라면 그럴 만합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자이죠. 허나 그 수완만은 진짜입니다. 황룡 길드에 반대하는 일파를 모아 길드를 세우고 현재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세력을 이뤘으니 말입니다. 놀라울 것도 없죠.”

“백귀라는 자는 언뜻 보기엔 고개를 끄덕일 만한 조건을 걸면서 무리 되지 않을 대가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만. 어쩐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인물입니다.”

“어떤 부분이 석연찮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길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왜 지금 제게 손을 뻗었는지. 그만한 실력자라면, 언제든 한국에 복귀할 수 있었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전 그가 지금 들어오는 게 어떤 준비를 하느라 공을 들인 탓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백귀가 음모를 꾸미는지, 안 꾸미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의심만으로 백귀의 제안을 뿌리치기엔 당장 급한 불이 눈에 선했다. 강무혁은 백귀의 제안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만약을 대비하려 했다.

“적의 적은 아군. 그 적이 언젠가는 백귀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럼, 그땐 제가 단장님의 아군이 될 수도 있겠군요.”

강무혁은 관홍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황룡 길드가 아닌 자신을 내세우다니. 역시 눈치가 빠른 자야.’

황룡 길드는 절대 강무혁의 아군이 될 수 없었다. 그들 속에 꽉 찬 욕망은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강무혁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았다. 그가 건드릴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관 선생을 다시 황룡 길드의 중심으로 되돌리려는 겁니다.”

강무혁의 입에서 자신이 일을 성사시키는 것에 대한 대가가 나오자 관홍은 비로소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듣고 보니 두 번째 포석이 궁금해지는군요. 아무래도 그쪽이 진짜 하고 싶은 제안이신 것 같은데.”

“맞습니다. 제 진짜 제안은 바로, 한국-중국-러시아의 삼국 헌터 협의체입니다.”

“!!”

* * *

‘헌터 협의체? 그게 될 리가 있나?’

이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듣고 보니 되더라.

관홍은 강무혁의 심계에 소름이 돋았다.

‘확고한 동맹이 아닌 느슨한 형태의 연맹. 연락 사무소만 구성해 최소한의 체제만 유지하자? 그 중심엔 황룡 길드와 아이언윌, 차르 길드가 자리한다?’

요점만 파악하자면, 이 세 길드가 다 해 먹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강무혁이 던진 계획은 놀라웠다.

‘황룡 길드가 낙일을 품는다? 심월이 죽은 자리를 메꾸면서?’

이건 통한다.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심월의 죽음은 결국 황룡 길드의 실책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강무혁은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본질을 파고들었다.

‘낙일은 이제 S랭크가 없죠.’

그 사실 하나로 낙일은 황룡 길드와 천지 차이로 격차가 벌어졌다.

‘심월의 죽음은 즈메이 고리니치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발표. 낙일 길드를 영웅으로 만들면서 달랜 후 황룡 길드의 품으로 끌어들인다. 개폐기 자료는 불문에 부친다. 단, 자료는 넘겨줄 수 없다. 안전장치가 필요하니까. 대신 마경에서 러시아의 공세를 무마시키겠다. 이후 다툼은 협의체를 통한다. 그럼으로써 마경에서의 각국 길드의 영향력을 증대한다. 그럼에도 반발을 할 시엔 개폐기 본체를 인도한다.’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이와 같은 일을 아이언윌은 신의주 길드 연합에서, 차르는 카멘스키를 끼고 러시아 길드 대표 조직을 창설해 주도한다는 게 계획의 골자였다.

“좋아. 해볼 만해.”

북경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관홍은 결심이 섰다.

어차피 강무혁의 제안을 거절해봤자 자신은 잘 해봐야 외지를 전전할 테고, 상황이 나쁘면 목이 베일 수도 있으니까.

대신 성공하면 총단에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내가 해 줄 일은 원정 3팀 가족들을 몰래 빼돌려주는 것뿐인가?’

강무혁이 디니거얼과 시린나이를 언급했을 땐, 관홍은 상대가 모든 걸 다 준비하고 왔다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황룡 길드 내부자를 중인으로 포섭했으니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관홍은 강무혁에게 경의를 표했다. 자신이 마경에서 세웠던 대계에 버금가는 이 장대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감탄한 건 강무혁이 내세운 대의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미리 경고해두겠습니다. 제가 황룡 길드를 끝까지 적으로 두지 않은 건 모두 즈메이 고리니치 때문입니다. 그 용족이 언제 잠에서 깨어날지 알진 못하지만, 깨어나는 순간 지옥도가 펼쳐질 게 분명합니다. 전 그 용을 잡기 위한 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한 첫 단추가 바로 협의체입니다. 일이 틀어지면, 가장 지독한 방식으로 그쪽을 파멸시킬 겁니다. 그러니 절대 딴생각하지 마시길.’

이 또한 협박이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관홍은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붙일 수 있었다.

배신이 아닌 대의를 위한 행동.

악룡의 재래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언제든 포장할 수 있으니 양심에 찔릴 일도 없었다.

‘명분도, 실리도, 내 만족감까지 모두 채워주다니. 그야말로 윈윈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