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210)
제210화
210. 이런 케이스가 있었다니.
“오늘 뉴스 초대석에는 수개월째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인공이죠? 대한민국 유일의 S랭크 헌터. 아이언윌 길드의 주세아 길마님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주세아 길마님?”
“예. 안녕하세요. 주세아입니다.”
뉴스 진행자는 초대석 초반을 수려한 언변으로 진행해나갔다. 어디 한 곳 모난 곳 없는 질문이라 주세아도 역시 수월하게 답변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본색을 드러냈다. 티어 길드의 견제나 주변국의 간섭과 같은 민감한 질문이 조금씩 튀어나오더니 종국에는 해석하기에 따라 위험한 부분을 건드렸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백호 길드가 갑자기 해체를 선언한 게 아이언윌의 주도로 펼쳐진 공작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트 바깥에서 진행자의 질문을 들은 표범희가 발끈했다.
“저 사람이 지금 뭔 소릴 하는 거야? 이봐요. 이런 건 사전 질문지에 없었잖아요?”
커뮤니케이션팀에 속해 있는 표범희는 표면적으로 홍보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다.
평소에는 홍보 파트의 직원들이 길마를 서포트했지만, 최근 들어 대외 활동에서만큼은 그녀가 직접 챙겼다. 그녀가 A+랭크 헌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력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그녀는 확실한 압박 카드가 되었다.
“그, 그러게요. 하하…. 우리 앵커가 너무 많이 의욕적이었나 봅니다. 저런 질문은 저도 들은 게 없어서…….”
뉴스 담당 PD는 표범희의 사나운 눈길에 진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몰랐는지, 표정만으로 읽긴 어려웠다.
‘이래서 나오기 싫었는데. 강 단장이 미디어 노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니 피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길마를 예능에 내돌릴 수도 없고.’
어느 쪽이든 시청률에 환장한 인간들이니 위험하긴 매한가지.
뉴스조차 언론의 공정성과 진실성보다 자극적인 멘트를 뽑아내기 바쁜 시대에 정해진 질문지만을 믿을 순 없었다.
‘이게 다 강무혁 때문이다.’
표범희는 단장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렇다고 아예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수를 써야 했다.
그녀는 당장 촬영을 중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관뒀다. 뉴스는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강제로 끊었다간 구설에 오르기 좋았다.
‘게다가 질문도 안 좋아. 저거 자르면 의심만 사는 꼴이라고.’
표범희가 전전긍긍 발을 구르는 동안 진행자가 교묘하게 말을 돌리며 주세아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백호 길드와 같은 대형 길드가 한순간에 해체된 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좋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그런 대형 길드를 없애는 건 같은 등급의 길드라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유일한 S랭크인 주세아 길마님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세아는 잠시 팔짱을 끼고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질문이 좀 이상한데요?”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지요?”
“해체 당시 밝혀진 백호 길드의 악행에 대해서는 다들 아실 테고. 증거도, 증인도 명확했고요. 중국에서조차 국가 전복에 가까운 일을 꾸민 그들의 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죠. 그런데 지금 질문은 어쩐지 백호 길드를 옹호하시려는 의도로 들리는데요? 혹시 제가 오해한 건가요?”
주세아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역공을 취했다. 앵커의 입술이 한일자(一)로 꾹 다물어졌다.
그녀의 선택에 표범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굿! 잘한다!’
이번엔 반대로 대답이 궁색해진 앵커가 손사래를 치며 변명했다.
“아…. 물론 옹호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많은 의혹이 있던 사건이다보니까 질문드린 건데. 솔직히 지금까지 밝혀진 건 결과일 뿐이지 않습니까? 백호 길드가 해체된 과정에 대해선 어느 곳에서도 알려진 바가 없어서 여쭤본 것입니다.”
앵커는 본인의 대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 듯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주세아가 놔주질 않았다.
“저도 소문 들은 게 하나 있는데.”
“예? 어떤 소문을 말씀하시는지요?”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S랭크가 된 주세아를 방해해라. 일본에서 퍼트렸다던가? 아니다. 한국에서 날 싫어하는 애들이 막 흘렸다던데. 걔들이 막 언론도 주무르고 인터넷 여론 조작하면서 저 까기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설마 여기 뉴스 초대석에서 그런 소문 믿고 질문하신 건 아니죠?”
“하하…. 물론 아닙니다. 그냥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것뿐입니다.”
“역시 그렇겠죠? 호호호.”
뉴스는 어색한 웃음만을 남겨두고 끝났다.
* * *
주세아는 표볌희가 모는 차를 타고 방송국을 빠져나왔다.
주변에 사람이 없자 그녀는 뒷좌석에 널브러져 앓는 소릴 냈다.
“으어, 나 죽어. 이봐요, 언니. 도대체 날 언제까지 방송국에 뺑뺑이 돌릴 건데? 제발 그만 좀 합시다.”
표범희는 백미러로 뒷좌석을 쳐다봤다.
찰나 주세아의 몸에 딱 맞는 핏의 아머 코트가 헐렁해졌다. 머리카락의 길이도 미묘하게 달라졌고, 옅은 붉은 빛이 감돌던 머리 색도 바뀌어 있었다.
“길마가 귀국할 때까지. 지금 길마는 한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야 해요. 그리니까 다시 변신해요, 조시원 씨. 밖에서 들키면 곤란해요.”
“여기 볼 사람이 누가 있다고. 썬팅도 진하게 해서 안보이잖아요.”
“투시 스킬 가진 헌터가 감시하면 가능하죠.”
“흐흥, 강 단장이 이 비싼 차를 괜히 산 게 아니라고요. 투시 안 먹혀요, 이거.”
“백프로는 없어요. 항상 조심해야죠. 받은 만큼 일 하라면서요? 길드에서 지불하는 돈에는 그런 비밀 유지 조항도 포함되는 거니까. 주는 만큼 일하세요. 조시원 씨.”
“예예. 알겠습니다요. 그리고 이름 말고 미스터 조라고 불러주세요.”
“아? 그렇겠네요. 프로 스파이인데 본명이 불리면 곤란하겠죠?”
“아니요. 친하지도 않은 데 이름 듣기 거북해서.”
“그래요. 미스터 조라고 부를게요. 그쪽도 언니라고 친한 척하지 말아요.”
“네, 아줌마.”
빠직!
순간 미스터 조는 표범희의 이마에 돋은 핏줄이 터진 줄 알고 운전석을 넘겨다봤다. 하지만 그녀가 바랐던 핏줄은 멀쩡했다. 대신 운전대 일부가 박살 나 있었다.
미스터 조는 표범희의 표정만으로도 그녀의 속을 읽을 수 있었다.
어디 차에서 내리면 보자.
‘차에서 내리지 말아야지.’
표범희의 살기에 미스터 조는 입을 다물고 다시 주세아로 변했다. 헐렁한 복장이 제 사이즈를 찾아 몸에 맞춰졌다.
때마침 스마트폰이 울렸다. 전면 창 구석에 통화 아이콘이 뜨면서 발신자 이름이 떴다.
-강무혁 단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통화하시겠습니까?
“통화.”
-핸즈프리로 연결됩니다.
“여보세요.”
-표범희 팀장님, 지금 어디 십니까?
“아까 방송 끝내고 길드 들어가는 중. 포천 가는 자동차도로 탔으니까 금방 가요. 왜요?”
-방금 길드장님 밀입국에 성공하셨답니다. 북포천으로 오고 있습니다. 미스터 조한테 전해주십시오. 더는 주세아 길드장님으로 연기할 필요 없다고요.
“예. 그럴게요.”
“만세! 이젠 자유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표범희는 다음 빠지는 도로에서 차를 돌렸다.
처음엔 서울로 돌아가는 줄 알고 있던 미스터 조는 차가 점차 으슥한 곳으로 가자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언니? 왜 여기로…? 하하, 서울 가는 길은 아까 거기서 좌회전인데…….”
대답은 없었다. 이윽고 차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표범희가 손수 뒷좌석 문을 열며 말했다.
“야, 내려.”
* * *
주세아의 지옥 훈련조차 견뎌낸 고을지는 휴식 도중 스마트폰을 보더니 급기야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What the f…….”
“이젠 하다 하다 영어로 욕하니? 말조심해. 헌터라고 다 싸가지 없는 건 아니야.”
“싸부, 나 어떡해요?”
주세아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울 것 같은 제자를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물었다.
‘강 단장도 애 좀 잘 돌보랬으니까. 애 삐뚤어진 게 다 한병구 협회장이 몰아붙여서라고 했었지? 귀찮아도 일단 부사수니. 최소한의 성의는 보일까?’
주세는 짐짓 궁금한 척 물었다.
“왜 그러는데?”
고을지는 대답 대신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화면에 뜬 건 기사였다.
[세기의 아이돌 BTA. LA 콘서트 취소.]“그래. 네가 그러면 그렇지. 겨우 콘서트 취소됐다고 우냐?”
“겨우라니요? 무려 BTA 오빠들이라고요. 내가 이 콘서트 땜에 여기 들어온 건데.”
“식사권이 아니고?”
“오빠들 바빠서 당분간 국내 활동 안 한대요. 작년 연말 콘서트 때만 잠시 들어온 거고요. 그러면 외국 콘서트라도 꼬박꼬박 챙겨야죠. 내가 왜 영어 공부하는데. 이번 여름에 LA 가려고 했단 말이에요.”
“아, 그래서 영어로 욕을 하셨구나. 근데 왜 난 네 입에서 욕 말고 영어를 들은 기억이 없지?”
“원래 외국어는 욕부터 배우는 거예요. 귀에 쏙쏙 들어오잖아요. 외국애들도 한국어 배울 때 씨팔저팔 먼저 알아듣는 것과 같은 이치죠.”
“어느 나라 학습법인지, 참 귀에 쏙쏙 들어오네.”
“그쵸?”
“지금 칭찬한 건 줄 알아?!”
【십중쇄】
“으왓! 딱밤 좀 그만! 길마 딱밤은 살인 무기라고요! 세상에 철판을 뚫는 손가락이 어딨어?”
“어쭈! 감히 사부가 주는 사랑의 딱밤을 스킬로 막아? 네가 요즘 랭크업했다고 기고만장했구나?”
“아니, 겨우 A랭크 된 거 가지고 S랭크한테 기고만장하겠어요? 어어? 또 때리려고요?”
기어코 주세아의 딱밤이 고을지의 방어막을 뚫었다.
발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부여잡고 고을지가 억울한 듯 볼멘소리를 했다.
“나 곧 있으면 졸업인데. 이젠 애도 아니고. 계속 이러다간 스무 살 되고도 매 맞고 살겠네. 요즘도 매맞는 제자가 있다? 이러다가 TV에 나오겠어요.”
“때 되면 때리라고 해도 안 때려.”
“그때가 언젠데요?”
“네가 아이돌에 환장하지 않을 때?”
“평생 때리겠다는 거구만?”
“억울하면 퇴단하시던지.”
“내가 치사해서 오빠들 식사 자리만 끝나면 나간다.”
“응. 너 다음 입단은 헌터협회. 할아버지 옆에서 잘 해봐.”
고을지는 순식간에 썩은 얼굴이 되었지만, 곧장 반격했다.
“확 슬레이어에 들어가 버릴까 보다.”
“뭐? 슬레이어?”
“왜요? 내가 슬레이어 간다니까 좀 쫄리시나 보죠?”
“어쩔 수 없군. 내가 못 가질 바엔 부숴버린다.”
“자, 잠깐. 딱밤 그만 하라니까요옷!”
고을지는 끝내 딱밤을 몇 대 더 맞고 실신해버렸다. 맞은 충격보다 그걸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다가 탈진해버린 탓이었다.
* * *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의무실에서 깨어난 고을지에게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을지는 깨어나자마자 강무혁이 찾는다는 말을 듣고 단장실로 올라갔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듣고 싶습니까?”
“좋은 소식이요. 전 맛있는 거 먼저 먹는 타입이라.”
“BTA 콘서트. 취소가 아니라 연기라고 합니다. 표범희 팀장이 확인했습니다.
“정말요? 언제요?”
“가을입니다. 10월. 정확한 일정은 추후 공지라고 하더군요.”
“아아,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착하게 사니까 이렇게 도와주시네.”
두 손을 맞잡고 하늘을 쳐다보며 기도하는 고을지를 본 강무혁이 고개를 저었다.
“고을지 헌터가 착하게 살았다기보단 미국의 몬스터 방위력 덕분이죠. 이번 콘서트 취소가 LA에서 벌어진 대규모 몬스터 사태 때문이었는데, 금세 정리돼서 다시 추진하게 됐답니다. 사건 규모를 봤을 땐 상당히 위험해 보였는데, 역시 헌터 강국 미국의 저력은 대단하더군요.”
“하여간 산통 깨는 덴 최고라니까. 강 단장님, 타이탄에선 사회생활 어떻게 했대요? 그런 사회성으로 팀장 자리는 또 어떻게 올라갔던 거래?”
“능력과 인품?”
“하늘에 빌 사람은 내가 아니라 강 단장이었네. 어서 빌어요. 고맙다고.”
“물론 줄을 잘 잡은 것도 있었죠. 능력은 있지만, 고집으로 헌터들을 위험에 밀어 넣던 전임 팀장을 제껴버리고도 했고, 제 전략에 따르지 않아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헌터들을 업계에서 매장시켜 버리기도 했죠. 그런 노력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건 보통 노력이라고 안 하죠.”
“그럼, 뭐라고 합니까?”
“사기 혹은 협박. 아니면 음모?”
“노력 맞네요. 그런 부분들도 제 업무의 일종이라.”
“잘못됐어. 이 길드는 뭔가 잘못됐어. 당신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너무 삐뚤어졌잖아.”
강무혁은 고을지의 외침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자, 그럼. 이번엔 나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가을 콘서트. 고을지 헌터는 못 갑니다.”
“What?! Why?!왜?!”
“학기 중이잖습니까. 학교 빠지고 가려고요?”
“당연하죠. BTA인데. 어차피 대학 안 갈 거니까 학교 빠져도 상관없어요.”
“알아보니까. 더 빠지면 졸업 못 한다던데요. 두만강 사건 때 통합 공격대 일정으로 빠졌었으니까. 학교 1년 더 다녀야 한다더군요.”
“아니, 이번 일은 공무로 쳐야…. 아아, 나 헌터인 거 숨기고 있었지?”
고을지의 외할아버지인 한병구는 그동안 재능이 뛰어난 유망주를 미리 제거하는 일본의 마수로부터 손녀를 보호하기 위해 신상을 조작, 은폐를 한 상태였다.
그 탓에 고을지가 훈련과 레이드 등의 이유로 등교하지 않을 때는 단순 가출이나 옆길로 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불량아로 통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발목을 잡다니.
하지만 고을지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말했다.
“까짓것 관두죠. 어차피 학교는 나리 아니었으면, 진작 그만뒀어요.”
“나리? 아, 고을지 헌터의 유일한 친구?”
“‘유일한’이라고 강조하니까 어째 기분이 나쁘네.”
“제가 파악하지 못한 교우 관계가 또 있습니까?”
“없다는 게 또 슬프네.”
“하여간 고등학교는 졸업하라는 게 고을지 헌터의 외할아버지이신 한병구 협회장님의 뜻입니다. 졸업 못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언윌에서 퇴단시키겠다고 합니다. 퇴단하면 협회행인 거 아시죠?”
“당신 길마하고 한통속이지?!”
“당연히 한통속이죠. 제 상관인데.”
고을지는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더는 희망이 없었다. 어딜 봐도 적뿐이었다. 그것도 보통 적이 아니라 레드 게이트 급, 아니 그 이상의 마굴. 주세아와 강무혁, 외할아버지에게 둘러싸여 도망갈 틈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자, 나쁜 소식 다음엔 해결책이 나와야겠죠?”
“믿고 있었다고, 강 단장!”
“고을지 헌터의 정보를 공개할 겁니다. 공식적으로 헌터로 등록될 거고요.”
“그래도 되나? 할아버지가 반대할 텐데…….”
“협회장님도 허락했습니다. 이젠 위협이 사라졌으니까.”
“사라져요?”
“길드장님이 S랭크 선언을 하셨지 않습니까. 일본의 모든 신경이 길드장님을 향할 겁니다. 더 이상 S랭크가 될 만한 한국의 유망주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감시가 약해졌으니 헌터 자격을 회복시켜도 괜찮을 겁니다.”
“완전 병 주고 약 주고네. 내가 우리 길마 덕을 다 보다니. 그래서요?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가을 학기 중에 헌터 연수로 빼 드리겠습니다. 그에 맞춰서 LA에 다녀오면 됩니다.”
“그런 방법이?!”
고을지가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BTA 콘서트에 가게 되다니.
“그래도 우리 아이언윌 만한 곳이 없죠?”
“예. 단장님. 여기 뼈를 묻겠습니다.”
“그럼, 종신 계약을…….”
“어? 저 퇴근 시간이라서. 다음에 뵙겠습니다.”
재빨리 단장실을 빠져나가는 고을지를 보면서 강무혁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 * *
신의주 교도소촌.
마을은 이젠 더 이상 교도소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만큼 바뀌어 있었다.
신의주 전쟁 때 무너진 교도소를 대신해 지어진 신의주 협의회 건물을 중심으로 새로운 주택이 줄지어 지어졌다.
이곳엔 신의주 출신 헌터들의 가족들이 거주했다. 아이들은 새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학교를 다녔다.
예전과 다른 희망이 도시 전체에 흘러넘쳤다.
물론 모두가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여, 꼬마.”
“어? 아저씨?”
친구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고만 있던 박철이는 반년 만에 찾아온 노송린을 보고는 깜짝 놀라 달려왔다. 잘린 팔 쪽 소매가 허공에 너풀거렸다.
허전한 팔이지만, 전과 다르게 기우뚱거리며 균형을 못 잡진 않았다. 생활에 익숙해진 듯했다.
“너 지난번에 헌터 각성했다며?”
안부를 묻기도 전에 다짜고짜 자기 말만 뱉는 노송린을 보면서 박철이는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아저씨는 여전하네요.”
“여전한 게 뭔데?”
“오지랖이 넓다는 말 못 들어보셨어요?”
“내가 인상 험악하다거나 살려달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오지랖 넓다는 말은 또 처음이네.”
“그럼, 많이 변하신 거겠죠.”
“겨우 반년으로 사람이 바뀔 리가,”
“바뀌지 않았으면, 아저씨가 원래 그랬던 거예요.”
“오지랖 넓다고?”
“재밌고… 잘 챙겨주는 거요.”
“챙겨줘? 재밌는 건 몰라도 그것도 처음 듣는다, 야.”
노송린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뭐 네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구나. 아무튼, 오늘 온 용건이 있으니까.”
“용건이요?”
“지난번 헌터로 각성했을 때. 그게 아니었으면, 넌 이곳 교도소촌에서 죽었을 거다. 각성하면서 생명이 질겨져서 그렇게 피를 흘리고도 견뎠던 거지. 강 단장 말로는. 아? 강 단장은 우리 길드 단장. 강무혁이라고 지난번에 여기서 골골대던 사람.”
“알아요. 강무혁 단장님.”
“그래. 그 사람 말로는 통계적으로 마나에 많이 노출될수록, 게이트에 가깝게 지낼수록, 죽음에 가까운 위기를 겪을수록 헌터로 각성할 확률이 높다더구나. 절대 조건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네. 그전 신의주 환경이야 위험 가득한 곳이니 당연히 각성 확률이 높겠지. 마경에 가까워서 마나 농도도 높을 거고. 그래도 그때 각성한 건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 팔로 뭘 하겠어요? 외팔이인데…….”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유명한 헌터 중에 외팔이 검객이 있다고. 무려 S랭크거든. 팔 한쪽 없다고 포기하지 마라.”
“…….”
“자, 이제부터 진짜 용건.”
박철이가 노송린을 올려다봤다.
“넌 아직 어려서 헌터 연수는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법정대리인이 필요하거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통은 부모가 법정대리인이 되는데, 넌 없으니까.”
“그래서요?”
“원래는 강무혁 단장한테 해달라고 한 건데. 단장은 나보고 하라더라고. 내가 그리 믿을 놈은 아닌데 말이야.”
“그러면 아저씨가 내…….”
“음. 쉽게 말하면, 내가 네 대부가 되어주겠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헌터 연수도 갈 수 있을 거다.”
“아저씨…….”
“그럼, 할 말은 다 했고. 건강하게 지내라. 뭔 일 있으면 연락하고. 나중에 변호사 찾아올 테니까 설명 잘 듣고. 난 간다.”
노송린은 왔던 때와 같이 무뚝뚝하게 떠나갔다.
박철이는 그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을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 * *
늦은 시각까지 인터넷으로 논문을 검색하던 강창수는 피로해진 눈두덩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컴퓨터 전원을 끄려는 순간 메일 수신 메시지가 떴다.
자신이 마나중독증 관련 논문을 올렸던 사이트에서 보내온 쪽지였다.
“여기에서 메일이?”
관리자 공지를 제외하고는 이제까지 단 한 통도 메일이 오지 않았던 사이트였다.
얼핏 스쳐 간 발신자가 관리자 아이디가 아님을 확인했기에 궁금증이 일었다.
‘미국이군. 토마스 리? 한국계인가? 아니면 중국? 스팸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메일을 클릭한 강창수는 상당히 긴 내용임을 확인하고, 서두에 있는 용건만 대충 읽은 후 메일 창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첫 문장을 읽은 그는 A4로 두 장에 가까운 내용을 모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케이스가 있었다니. 이거 어쩌면 무혁이 병을 고칠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어.”
>> 2부 완결. 3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