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227)
제227화
227. 이 자식이!
O.C.의 실무책임자 빌리는 급히 지부장 울벗을 찾았다.
“뭐야? 강무혁 쫓던 애들 찾았대?”
“걔들은 옥상에서 자빠져 있던 거 진작 찾았고요. 다른 일 때문입니다.”
“버턴가, 마가린인가 하는 것 때문인가?”
“예.”
빌리는 손에 구겨 쥐고 있던 A4용지를 책상 위에 내밀었다.
“이게 뭐야?”
“인원 푼 김에 LA 프리랜서 라인을 좀 살펴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좀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요.”
울벗은 종이를 들어 내용을 살폈다. 문서엔 이름과 알파벳, 날짜와 LA 인근 장소가 적혀 있었다.
“랭크 보니까 헌터 명단 같은데. 장소는 사냥터고. 날짜는 뭐야?”
“실종일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O.C. 회원들에게 사냥터에 도는 소문이나 사건들을 좀 추려봤는데. 요즘 들어 실종된 헌터들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몬스터한테 당한 건 아니고?”
“바로 그 부분이 문제입니다. 장소와 랭크를 봐주십시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디 보자. 랭크는 C에서 B 사이. 그리고 장소는…….”
울벗은 명단의 위화감을 금세 눈치챘다.
“게이트를 제외하면 나머진 그리 어려운 사냥터가 아니군.”
“맞습니다. 명단에 적힌 헌터들 일부는 솔로잉도 가능한 낮은 등급의 사냥터입니다. 보통 오랫동안 휴식을 취한 프리랜서 헌터들이 전투 감각을 조정하러 오는 곳이죠.”
“여기 몬스터한테 당할 리가 없다?”
“몬스터라는 게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놈들이니 절대 없다고는 장담하지 못합니다만. 적어도 B랭크 헌터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정도로 강한 몬스터는 없는 곳이란 겁니다.”
울벗은 다른 가능성을 언급했다.
“변종이나 진화종은 어때?”
“어느 한 군데 사냥터라면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실종자들이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만한 몬스터가 이 넓은 지역을 이동했다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버터의 부작용 중 헌터에게 가장 치명적인 게 전투 중 마비 증상입니다. 졸도하는 경우도 있고, 환각 증세도 있다더군요.”
“그 말은 중독자들이 헌팅 중에 부작용이 일어나 몬스터에게 죽었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예. 물론 정확히 파봐야겠지만, 현재로썬 그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울벗은 빌리가 묻는 말의 저의를 알아챘다. 자신의 추측을 기반으로 조사를 시작해도 되겠냐는 의미였다.
보통은 직권으로 일에 착수한 후 사후 보고를 해도 되는 사항이었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커질 기미를 보이자 지부장의 재가를 요청한 것이다.
울벗은 고민했다. 어쩌면 전 도시를 들쑤실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약이 어디서부터 튀어나와 어디까지 퍼졌는지 모르는 상태에선 본의 아닌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고심을 거듭한 울벗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례 모아서 실종 헌터들 행적을 추적할 수 있겠나?”
“예. 헌터들 거주지와 활동지 특정해서 가까운 헌터와 만났던 사람, 들린 가게 등등 모조리 훑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조사하다 운 좋으면 버터 판매상 꼬리도 잡을 수 있겠죠.”
“진행해. 회원들한테 문자 보내서 협조 구하고. 수상한 건 모조리 신고하라고 해. 지부 정예도 대기 걸고.”
“예.”
울벗의 결정으로 인해 규모만 따지면 북미 최대라 할 수 있는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이타카 길드의 부길마 파월은 정체불명의 흔적을 쫓아 스키드 로우의 불법 양조장 뒤편을 지나는 하수도로 내려왔다.
“냄새 한번 지독하군.”
“그냥 위에 계시지요. 제가 수색한 뒤 보고 올리겠습니다.”
오른팔인 그랜트가 앞서서도 수차례 만류했지만, 이번에도 파월은 고개를 저었다.
“길마가 맡긴 일이야. 날 보낸 건 이런 변수가 발생했을 때 잡음 생기지 않게 처리하란 뜻이겠지. 워낙 꼼꼼한 인간이라 예상 못 한 질문을 던지면 곤란하다고. 직접 나서서 확인하는 게 길마한테 보고하기 수월할 거야.”
“하긴 마스터가 작을 일까지 다 챙기시긴 하죠.”
“훗, 일 빨리 끝내고 다들 한잔하도록 하지.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파월의 말에 뒤따르던 헌터들의 안색이 활짝 폈다. 그렇지 않아도 더러운 하수도를 뒤지는 것에 불만이 가득했다. 부길마 앞이라 내색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를 알기에 파월도 수하들을 달래려 당근을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파월의 약속은 지키기 어렵게 됐다. 수색이 길어진 탓이었다.
“이건 뭐야?”
흔적을 따라 한참 하수도로 들어가서 발견한 건 한편이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벽면이었다.
벽 안으로 굴이 파여 있었다. 굴은 가파른 대각선으로 땅속 깊숙이 이어졌다.
“공사를 벌인 건 아닐 테고. 통로가 좁군.”
“그래도 사람 하나 드나들기엔 충분합니다.”
“굴을 파는 몬스터라…. 개미 종류인가?”
“개미류 몬스터 중에 독을 쓰는 놈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신종일 수도 있지.”
“만약 개미굴이라면, 도시 안쪽까지 침투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놈들 먹어치우는 양이 적지 않습니다. 진작 사람들을 덮쳤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군. 인해전술로 미는 놈들이라 식량 공급에 환장한 놈들이니까.”
파월은 그랜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플랜을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부길마의 생각을 읽은 그랜트가 먼저 제안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러난 뒤에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다시 수색할까요? 아니면 이대로 묻어버릴까요?”
“다시 오긴 귀찮잖아. 묻으려니 찝찝하고.”
“그럼, 이대로 강행할까요?”
“길드 단원 중에 실력에 자신 없는 친구가 있던가? 아? 토마스만 빼고 말일세.”
파월의 농담에 헌터들 사이로 가벼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잠시 보고 올라오도록 하지. 위험하더라도 도망치는 덴 별문제 없을 거야. 군집 몬스터 중에 그리 강한 놈은 없잖아? 우리가 누구야?!”
“이타카!”
“이타카가 누구?”
“서부 최강 길드!”
파월이 익숙한 구령을 내리자 헌터들도 길드 구호를 외쳤다.
보기엔 유치해 보여도 길드의 결속을 다지는 덴 좋은 방법이었다. 특히 이타카 길드와 같이 법과 불법 사이에서 일하는 길드의 경우엔 양심에 매몰되거나 배신을 막기 위해서라도 소속감을 강화하는 건 무척 중요했다.
“자, 가자고.”
파월이 앞장서서 굴로 뛰어들었다. 이어서 그랜트가, 나머지 헌터들이 차례대로 땅속 깊숙이 뻗은 구멍에 몸을 던졌다.
* * *
“아까 연락드렸었죠? 헌터범죄국 에이전트 마틴 맥기치입니다.”
“강무혁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강무혁은 홀로 HCF(Hunter Crime Force) LA 지부를 찾았다.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토마스를 돌봐야 했기에 장득구는 호텔에 남았다.
장득구가 거듭 동행하길 권했으나 강무혁은 토마스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만약 일이 발생할 경우 그를 제어할 수 있는 건 장득구 뿐이었다.
‘장소도 헌터범죄국 안이고, 연맹 배경도 있으니 해코지하진 않을 거고. 대화만 잘 끝내면 돌아가는 길엔 노송린 헌터도 함께일 테니 호위 문제도 덜 수 있겠지.’
이와 같은 이유를 들어 장득구를 설득하기도 했다.
강무혁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마틴을 따라갔다.
마틴이 안내한 곳은 사방이 유리벽으로 세워진 회의실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기다리고 있는 건 예상대로의 인물이었다.
다만, 강무혁이 예상한 것보다 좀 더 거물이었다.
“헌터정책부서 파트장 알렉산더 해밀턴입니다.”
“한국 아이언윌 길드 단장 강무혁입니다.”
상대가 내민 손을 마주 잡으며 악수한 강무혁은 속으로 침음성을 냈다.
‘거물이로군.’
백악관 헌터정책부서장 하면, 막말로 끗발 죽이는 자리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북미 헌터계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이니 아무리 강무혁이라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으시죠.”
여유롭게 자리를 권하는 손짓에 따라 의자에 앉은 강무혁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
해밀턴도 마주 보고 앉았지만,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리를 마련한 마틴마저 자릴 비킨 덕에 회의실 안은 적막하기만 했다.
졸지에 무언의 공간이 된 회의실엔 시계 초침 소리만 울렸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 없이 서로 바라만 보고 있자 해밀턴이 고개를 저으며 항복 선언을 했다.
“상당히 과묵하시군요.”
“제가 조용한 게 아닙니다. 이 자리를 마련한 게 해밀턴 씨니까요. 용건 있는 사람이 먼저 말을 해야 제가 뭐든 답할 게 아닙니까?”
“신중하기까지. 보통 이런 자리에 오면 왜 불려왔는지 묻곤 하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하는 일이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까요. 그런데 단장님은 남 일처럼 대하는군요.”
“글쎄요. 거리낄 게 없어서가 아닐까요?”
강무혁은 담담히 대꾸했지만, 해밀턴은 편히 들을 수 없는 답변이었다.
“제가 무슨 얘길 꺼낼지 어느 정도 예상하고 계신 것 같군요.”
“백악관 높은 분이 이렇게 빨리 LA로 직접 날아올 정도면, 상당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 입김이 닿지 않았을까, 하는 것만 추측할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미국에서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하나뿐이라서요.”
강무혁은 돌려서 말했지만, 해밀턴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을 전했다.
결국, 자신은 라이더 늑대의 판매 때문에 왔고, 이에 관련된 업종은 동부의 드래곤 홀스 목장에 관련된 두 길드뿐. 그 정도 영향력은 돼야 백악관이 움직이지 않겠느냐고 에둘러 말한 것이다.
“눈치가 빠른 분인 것 같으니 얘기가 쉽겠군요. 백악관의 입장을 전달하겠습니다. 미국 세관은 검증되지 않은 몬스터의 수입을 제재할 겁니다.”
“검증되지 않았다? 법적 근거는요?”
“법을 따지기 이전에 아직 길들였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새로운 탈 것이 아닙니까? 수출 실적도 없고, 한국 내에서 출하한 적도 없는, 게다가 고블린들이 다루던 몬스터를 미국에 들여온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국내에서 출하하고 다른 나라에도 수출 실적이 있으면, 언제든 시장을 개방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그에 따른 절차만 올바르게 진행된다면, 굳이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강무혁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한가지였다.
‘약았군.’
강무혁은 해밀턴이 말한 올바른 절차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고 있었다. 승인 기간도 고무줄이라 정치권에서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일주일이 되기도 하고, 일 년이 될 수도 있었다. 심하면 몇 년씩 뭉개는 것도 가능했다.
‘어차피 당장 수출할 상황은 아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니까 좀… 마음에 들지 않는군.’
해밀턴이 친절한 미소를 가장한 승자의 표정을 짓고 있자 강무혁은 어쩐지 심술이 났다.
“미스터 해밀턴. 미안하지만, 저흰 미국의 수출입 절차에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하하, 설마 밀무역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럴리가요. 전 악법도 법이다, 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법은 꼭 지켜야죠. 부끄럽지만, 한국에선 절 보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판이 있을 정도입니다.”
언젠가 주세아가 지나가듯 한 말이었다.
분명 법을 무시하는데, 그렇다고 딱히 어기지 않은 것처럼 일한다고 해서 뱉은 농담이었다.
“그러면 강 단장님의 말뜻은 뭡니까?”
“아이언윌은 라이더 울프와 관련해 세계헌터연맹과 합작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
“명목상 연맹은 미국 내 특수목적기관으로 되어 있죠? 국내 기업 혹은 기관과 협력한 해외 길드의 사업은 일반적인 수출입 절차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 LA에 늑대 목장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해외 길드가 투자한다고 하면, 모양새도 좋을 것 같은데. 게다가 탈 것이니까 서부에 새로운 바람도 불 겁니다.”
그 새로운 바람이 토네이도가 될 수도 있는 게 문제였다.
‘이 자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