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233)
제233화
#233. 맡기겠습니다.
토마스와 장득구는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옆에 짐이 딸린 채.
“이런 상황에선 좀 어색하지만, 일단 전 스티븐 버틀러라고 합니다. 뉴욕에서 헌터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에이전시?”
헌터 에이전트는 한국에선 길드의 강력한 반발로 정착되지 않았지만, 북미에선 스포츠 에이전트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시스템이었다.
소속 헌터들의 이익을 대변해 길드와 계약하고, 헌팅 트레이닝 프로그램과 법률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스폰서 계약을 체결해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언론 홍보, 이미지 관리 등으로 헌터의 가치를 높이는 업무를 도맡았다.
물론 대형 길드의 헌터들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스포츠 선수와 다르게 헌터들은 무력이라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었다. 함부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뜻이 아니라 그 힘이 국가의 안보를 좌지우지하는 이상 정부도 그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이는 곧 이익이라는 측면만으로 헌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에이전트는 초기 각성자나 프리랜서인 헌터 중 유망주를 발굴해 중소 길드에서 성장시켰다.
이후 중견 길드 이상의 대형 길드와 계약하는 것을 목표로, 흔히 말하는 대박 이적을 성공시키면 그에 대한 보너스 조항을 발동시켜서 큰 이득을 취했다.
대형 길드에서도 계약 등 헌터의 헌팅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의 개인 영역은 터치하지 않았기에 헌터 에이전트들의 영업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었다.
그런 스티븐이 반짝이는 눈으로 장득구를 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는 장득구가 육식말벌을 처리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스티븐은 틈새를 노려 직업의식을 발휘했다. 명함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어필하려고 뜬금없는 자기소개를 한 것이다.
“혹시 이름이…….”
“장득구.”
“미국 시민권자는 아닌 것 같고. 이름이 동양식인데…. 차이니즈? 코리안?”
“한국.”
“아? 한국분이군요. 혹시 미국에 온 건 북미 진출을 생각하시는…….”
“이 사람은 일반인인데도 전혀 긴장감이 없군.”
마침 도착한 옥상 비상구 문을 열고 있던 토마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흔히 야구에서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도 데려온다고. 헌터계에도 비슷한 말이 있죠. 무기 잘 쓰는 헌터는 레드 게이트하고도 바꾼다고요. 아마 그것 때문에 저럴 겁니다. 저도 나름 대형 길드 소속인데, 미스터 장만큼 깔끔하게 몬스터를 베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마나는 전혀 쓰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게이트가 등장한 지 수십 년.
오랜 전쟁 후 도중에 혼란기가 있었지만, 인류 전체에 위협될만한 큰 사건 없이 평화의 시대가 길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헌터들의 생존 기간이 늘어나고, 헌터계는 랭크 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이했다.
당연히 랭크만 높은 쭉정이가 많아졌고, 정작 기본기가 중요한 고등급 게이트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거품들도 늘었다.
이 때문에 옥석을 가리는 통계적 지표가 여럿 생겼는데, 그런 지표와 관계없이 모든 스카우터와 에이전트들이 첫손에 꼽는 능력이 특성이었다.
그다음이 무기 숙련도.
건물을 부수고, 산을 깎고, 강줄기를 바꾸는 강력한 스킬이 넘치는 세상에서 무기가 옵션 제공 외에 무슨 소용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좋은 무기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것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더욱 중요해졌다.
무기의 한계치를 모두 끌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장득구의 ‘웨폰 마스터’ 특성은 진귀한 재능인 것이었다.
“이 헌터 분 말이 맞습니다. 제가 헌터 에이전트 경력만 17년입니다. 딱 보면 알아요. 랭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참격하며, 딱히 자세를 잡지 않고, 집중하지 않아도 정확히 급소를 노리는 노련함. 이건 경험만으로는 메꿀 수 없는 실력이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요새 뉴욕 소재 길드들이 무기 전문가를 찾고 있는데. 연봉은 맞춰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 좀 있으신지…….”
장득구는 이 상황에서도 비즈니스를 하려는 스티븐에게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 소속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때가 아닙니다. 그래서 방법은?”
장득구는 주제를 바꿔 토마스에게 물었다.
“저주파 소음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니.”
“보통 층간소음 관련한 이슈에서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예전에 한국 마법사가 고안했죠.”
“층간소음에 어지간히도 시달렸나 보군.”
“거기까진 잘 모르겠고. 아무튼, 이 저주파 소음을 응용해 몬스터를 유인하는 방법으로 싱가포르에서 육식말벌이 등장했을 때 활약했습니다. 상당히 오래된 기록이지만, 이미 검증된 방법이니 효과가 있을 겁니다.”
토마스는 저주파 소음을 이용한 작전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내용은 크게 특별할 것이 없었다.
빌딩 유리창과 벽면을 떨리게 해서 공명시킨 후 사방으로 소음을 넓게 퍼트려 말벌들을 건물 바깥으로 유인하는 작전이었다. 말벌들이 밖으로 나오면 마법을 이용해 호텔 옥상으로 소음을 집중시켜 끌어당긴 후 광역 공격을 펼치다는 전개였다.
“통상적으로 인간의 귀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는 20~18,000㎐. 하지만 육식말벌은 인간보다 더 낮은 주파수의 소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겐 약간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 몸에 큰 이상을 주진 않을 겁니다.”
“육식말벌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군.”
“이론적으로는요. 몸이 이 모양이라 마음껏 싸우지 못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냥하려고 노력하죠. 덕분에 몬스터 도감이나 관련 사이트에 공개된 전술 리포트를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장득구는 토마스가 강무혁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다.
헌터이긴 하나 마음껏 싸우지 못하는 몸.
한정된 자원으로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그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야 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몬스터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필수였고, 자연스레 다른 헌터들은 잘 하지 않는 부분에 집중할 수박에 없었던 것이다.
“스티븐 씨는 저 통풍구 안쪽에 숨어 계십시오. 안전한 곳까지 호위할 시간이 없어서 함께 올라왔지만, 이제부턴 지켜드리지 못합니다.”
스티븐은 토마스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다. 헌터 에이전트로서 몬스터와 관련해선 헌터의 말을 따르는 게 살길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 난 자넬 호위하면 되는 건가?”
“예. 상황에 맞는 스킬이 없는 상태입니다. 약간의 조합이 필요한데, 지금 몸으론 광역 마법 사용에 딜레이가 발생할 겁니다. 그동안 무방비상태가 될 테니 시전 시간을 확보해주십시오.”
“걱정 말게.”
“시작하겠습니다.”
* * *
“꺄아악!”
호텔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가 숨어 있던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침대를 들어내며 머리를 들이민 벌 머리에 몸이 굳었다. 바지 아래가 축축이 젖었다. 창백한 얼굴에선 핏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제프…. 엄마가…….’
집에 두고 온 아들이 먼저 떠올랐다. 몬스터에게 먼저 희생된 아이 아빠의 몫까지 열심히 키운 아들. 친정엄마에게 잠시 맡기고 출장을 온 것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게 되다니.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이 더욱 걱정됐다.
거대한 벌의 이빨이 그녀의 머리를 으깨려는 순간.
키이잉!
몬스터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등에 달린 날개가 요란스럽게 파닥거리더니 여자는 건드리지도 않고 유리창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방 안을 덮칠 때 깨졌던 유리창의 남은 반쪽을 부수며 날아오른 벌 뒤로 다른 벌들이 뒤쫓았다.
여자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근처 빌딩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백, 수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인간의 영역에 가득 찬 모습은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여자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했다.
* * *
소속 길드의 반대를 무릅쓰고 안식년을 쓴 요한나는 꿈이었던 세계 여행의 첫 출발지로 미국을 선택해 동부를 거쳐 LA에까지 온 참이었다.
오랜 여행으로 입을 옷을 마련하려 숙소 근처 쇼핑몰을 누비던 중에 갑자기 사건이 터졌다.
“께 깟쬬!”
요한나는 이탈리아 욕을 퍼부으며 육식말벌의 머리통을 부쉈다.
머리가 박살 났음에도 말벌의 꼬랑지가 움직였다. 레이피어 같은 독침이 그녀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요한나는 독침을 낚아채 그대로 부러트렸다. 그리곤 말벌의 가슴에 박았다. 파르르 떨리던 날개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말벌 사체를 던지며 벽을 등지고 물러섰다. 그녀 앞으로 십여 마리의 말벌들이 늘어서 있었다.
“재수 오지게도 걸렸네. 하필 내가 오자마자 사건이 터지는 거야?”
길드에서 나올 때 파티장이 인력이 부족하다며 바짓자락을 붙잡은 게 생각났다. 그래도 떠나겠다고 단호히 말했더니 바로 욕설이 날아왔었다.
‘휴가지에서 확 게이트나 터져버려라!’
그 저주가 실현된 것이다.
“파티장 자식. 새로운 스킬이라도 익혔나? 진짜 말대로 돼버렸네.”
짜증이 왈칵 치솟았지만, 당장 문제는 파티장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말벌보다 쇼핑몰을 누비는 집단이 위협적이었다.
‘수벌과 그 호위가 있어. 여기 졸개들하고는 전혀 다른 놈들이야. 저거 잘못 건드리면 엿 되는데…….’
장비라도 갖추고 있다면 싸워볼 만하겠지만, 누가 휴가에 장비를 들고 오겠나. 기껏해야 아머 코트와 기본 무장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 수벌에게 달려든다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장비는 호텔에 고이 모셔져 있지 않은가. 당장 목숨을 부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말벌들이 다시 날아드는 찰나였다.
모든 말벌의 고개가 한곳으로 향했다.
출입구였다.
갑작스러운 이상 행동에 요한나는 긴장했다.
그 순간 요한나의 귀에 이상한 이명이 겹쳐 들렸다. 인상이 절로 찡그려지게 신경을 건드리는 소음이었다.
그녀가 귀를 막는 것과 동시에 말벌들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 뒤를 수벌이 이었다. 수벌의 호위벌들도 함께였다.
삽시간에 쇼핑몰 안에 있던 벌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그제야 요한나는 이 정체불명의 소리가 말벌들을 유인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 많은 몬스터를 유인한다고?”
미쳤군.
딱 그 한마디로 표현 가능한 짓이었다.
혹은.
‘고랭크 마법사거나.’
그게 아니라면, 길드 차원에서 대응한 것이겠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그녀는 발길을 옮겼다.
이 많은 벌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양키들은 어떤 식으로 사냥하는지 한 번 봐둘까?”
* * *
토마스는 호텔 옥상의 철골 구조물에 올라갔다. 슬슬 어둠이 내려올 시간이라 타워 랜터부엔 불빛이 번쩍였다.
철골에 걸터앉아 좌우를 살폈다. 빌딩 사이로 언뜻언뜻 육식말벌이 보였다.
‘나머진 건물 안에 있나 보군.’
마나의 흐름으로 읽어낸 말벌들의 숫자는 일천을 넘기고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희생된 상황. 아직도 생존자가 많았다. 이들을 구하려면 일일이 빌딩을 수색할 시간이 없었다.
‘그나저나 지나치게 많은데? 아직도 다른 길드에서 출동하지 않은 걸 보면, 다들 바쁘단 뜻인데…. 어쩌면 도시 곳곳이 습격당한 상태인지도 모르겠군.’
올해 봄에 있었던 아웃 브레이킹 사태 때만 봐도 완벽하게 대처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LA 외곽 동네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몬스터가 동시다발적으로 마을을 습격하는 바람에 가장 안쪽에 있던 시민들은 전멸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보다 도심에 가까운 이곳에서 헌터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대규모 습격으로 인해 출동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꼭 성공해야겠군.”
토마스는 각오하며 중얼거렸다.
눈동자가 금색으로 빛났다. 그는 양팔을 벌렸다. 손바닥이 허공을 밀어냈다. 마나가 담긴 바람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일반적인 물리 법칙과는 상관없이 토마스의 의지대로 작은 기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건물을 건드렸다.
유리창이 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겉면을 두드린 마나가 다시 벽을 향해 몸을 던졌고, 벽에 부딪힌 파장은 철제 난간을 흔들었다.
도로에 주인 없이 널린 차량들이 은밀하게 들썩였고, 아스팔트를 타고 흐른 소음은 맨홀을 박차고 뛰어올라 콘크리트와 유리로 만들어진 모든 건물을 뒤흔들었다.
눈에는 그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육식말벌들의 민감한 센서엔 자신들을 공격하는 소리가 잡혔다.
벌들이 날갯짓했다. 날아오르고 있었다. 건물 창을 부수며 적을 찾았다.
토마스는 소리를 호텔 옥상으로 끌어 올렸다. 소리의 길이 만들어졌다. 그 뒤를 따라 벌이 쫓아왔다. 사방에서 웨엥~ 귀를 어지럽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토마스의 몸이 휘청였다. 코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목구멍으로 위액이 치솟았다. 가슴에서 울컥거리며 올라오는 뜨거운 김을 억지로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아직 근처에 있던 벌들이 다 모이지 않은 상태였다.
현재 몸 상태로 광역 마법을 쓸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
지금 마법을 써봤자 절반도 채 없애지 못할 터였다.
위잉!
타워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토마스를 향해 말벌 한 마리가 공격해왔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
하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퍼걱!
날카로운 독침이 토마스의 심장을 뚫기 직전 아래로부터 솟구친 검이 말벌의 머리를 부쉈다. 이어서 날개를 잘라버리자 아래로 추락해 곤죽이 되어버렸다.
“하던 일 계속해. 마법 쓰기 전까지 어떻게든 지켜줄 테니까.”
장득구의 말에 토마스는 눈짓으로 대답했다.
‘그럼, 맡기겠습니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Chap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