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260)
제260화
#260. 괜히 건드렸다 싶지?
“원정대장이 왔다!”
“와아아아!”
“퍽! 왜 이렇게 늦었어?! 기다리고 있었다고!”
테일러의 등장은 밀리고 있던 B-5 전투에 승기를 가져왔다.
밀렸던 전열은 금세 제자리를 찾았고, 오히려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테일러의 파티는 모두 원정대에서도 최정예였기에 육식말벌을 상대로도 우위를 점했다.
“자넷! 이대로 돌파한다! A구역 쪽으로 밀어붙여!”
“예썰!”
여성 탱커이지만, 어지간한 마초들보다 터프한 자넷이 방패를 곧추세웠다.
손아귀에 힘을 단단히 주고 팔을 겨드랑이에 바짝 조였다. 어깨에서 경추, 척추, 엉덩이뼈를 지나 허리와 다리에까지 마나가 휘돌았다.
【컴뱃 엔진】
전신에서 증기처럼 열기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자넷이 돌진했다.
말벌들은 자넷을 공격했다. 찔리면 절명하는 독침, 스치기만 해도 살이 찢기는 톱니 같은 날개, 달라붙으면 단숨에 신체를 찢어발기는 괴력의 다리까지.
자넷을 향해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쏟아부었다.
“날벌레 새끼들이 뭐래?”
【다이아몬드 스킨】
조금 전까지 헌터들을 몰아붙였던 말벌들의 공격은 자넷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되레 자넷의 불도저 같은 진격에 말벌들이 부딪혀 튕겨 나갔다.
바닥을 나뒹구는 말벌들은 대형 트럭과 교통사고라도 난 듯 머리며, 가슴, 배가 찌그러져 있었다.
여러 갈래로 나눠진 흉측한 입에서 녹즙을 토해내다 절명하거나 부서진 가슴에서 찐득거리는 체액이 울컥울컥 샘솟았다.
한순간에 말벌 떼 사이로 넓은 길이 만들어졌고, 놈들의 신경도 자넷에게 모조리 집중됐다.
테일러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손아귀에 2m에 이르는 장검이 쥐어졌다.
길이에 비해 폭과 두께가 얇은 검신이라 단단한 말벌들의 몸에 박힐 것 같진 않았지만, 누구도 그의 공격을 의심하지 않았다.
“스트렛치(stretch).”
그의 명령어와 함께 검날이 길게 늘어졌다. 그의 검이 명품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검날은 이제 채찍이라 불려야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했다.
테일러는 뒤통수를 보이는 말벌을 향해 횡으로 채찍을 휘둘렀다.
【파이로매니악(pyromaniac)】
방화광.
마검사 테일러의 이명과 뜻을 같이하는 스킬이 말벌들을 휩쓸었다.
고열의 불 채찍은 원래 무기의 길이보다 더욱 길게 늘어져 일대를 쓸었고, 말벌이었던 존재는 재가 되어 스러졌다.
“청소해.”
이쯤 되면 더는 세세한 오더가 필요 없었다.
테일러의 명령과 동시에 나머지 그의 파티원들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말벌들의 무너진 전열에 일격을 가해 파고들었다. 자넷은 여전히 말벌 사이에 파묻혀 헤집어놓고 있었다.
이 기세를 타고 B-5 구역의 헌터들이 쇄도했다. 이내 공동을 가득 메울 듯 통로에서 끊임없이 쏟아졌던 말벌들의 세도 한층 누그러지더니 점차 줄어들어 더는 나오지 않게 됐다.
사냥터 정리단계에 이르자 테일러는 아리송한 얼굴로 현장을 바라봤다.
마침 전투를 마친 자넷이 투구를 벗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격렬한 싸움을 끝냈음에도 여전히 생기가 돌았다. 초콜릿색의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도톰한 입술에 맺혔다. 혀로 날름 땀을 핥자 짠맛이 미각을 자극했다.
“와우, 한바탕했더니 배고프네.”
“이 악취 속에서 시장기가 돌다니. 건강하군.”
“대장은 비위가 너무 약해. 최전선에 선 헌터가 겨우 이 정도로 음식 가리면 쓰나? 게이트 들어가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사람이 밖에선 유난을 떤다니까.”
“네 취향이 유별난 거야. 적어도 게이트 밖에 있을 땐 좀 음식답게 깨끗한 곳에서 먹어야지.”
“네네. 전 미각도 후각도 염병이라 그런 거 잘 안 따집니다. 그나저나 대장. 여기 좀 이상하지 않아요?”
“너도 그러냐? 나도 그런다.”
“그쵸? 겨우 이 정도로 A-3이 전멸하진 않았을 것 같죠? 적어도 후퇴하는 것 정도는 문제없었을 텐데…….”
자넷의 의문이 지금 테일러의 고민이었다.
‘숫자가 많고 4세대가 중간에 몇몇 껴 있는 바람에 밀리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B-5가 넓은 공간이라 그랬던 거고. A-3은 좁은 곳이라 한 번에 싸울 수 있는 몬스터 수가 적었을 거야. 그렇게 전멸할 파티도 아니었고. 뭔가 다른 게 있어!’
테일러의 확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B-5 출입 통로까지 말벌들을 몰아쳤던 헌터들 사이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변을 눈치챈 것과 동시에 자넷은 투구를 다시 썼다. 그녀의 동료들도 휴식을 끝내고 전열로 복귀했다.
테일러가 발걸음을 재촉해 앞으로 나아갔다. 파티원들이 그 뒤를 쫓았다.
“모두 진정해! 물러나더라도 질서 있… 에잇, 비켜!
정신없이 물러나는 헌터들을 다독이려던 테일러는 명령이 듣질 않자 힘을 써서 그들을 옆으로 밀쳤다.
성질 같아선 모조리 머리통을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같은 길드원들을 다치게 할 순 없었기에 인파에 휩쓸려 도통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앞이 텅 비었다.
말벌들을 거의 몰아냈던 라인이 그들이 있는 곳까지 밀린 것이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여태껏 고생이 허무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대장, 저거 저놈들 혹시…….”
자넷의 조심스러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일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놈들이 5세대인 것 같다.”
말벌이라기보다 장수풍뎅이가 더욱 어울리는 근육질의 집채만 한 몸집.
날개를 퍼덕이는 게 어색해 보이는 흑색의 말벌들이 테일러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테일러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길마한테 메시지 보내. 대 레이드 전용 장비와 게이트 공략 전력으로 맞서라고.”
* * *
“5세대 육식말벌에 대해선 생각보다 알려진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작전을 설명해 줄 듯했던 강무혁은 갑자기 육식말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말벌에 대해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번 작전을 설명하기에 앞서서 육식말벌의 5세대가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제가 이 최종 작전을 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운을 떼자 토마스가 반문했다
“좋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런데 5세대 정보가 별로 없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보츠나와에서 싸운 전쟁이 벌어졌지 않습니까?”
“그랬죠.”
“그렇다면 데이터가 상당히 쌓였을 것 같은데요.”
“초창기 전투는 뭘 알아내기도 전에 참전 헌터들이 전멸해버렸고, 후반기 전투는 S랭크 마법사와 원거리 전력의 인해전술로 접근전을 허용하지 않고 초토화시켰죠.”
“어느 정도 전력을 동원했기에 5세대 말벌이 그렇게 당했답니까?”
“남아프리카 최정예가 총동원됐습니다.”
“그 정도면…. 이해가 가네요. 아프리카가 몬스터 소굴로 유명한 만큼 거기 헌터들 실력이 상당히 좋다던데.”
“그렇게 원거리 공격을 난사한 후 남은 말벌들은 공격대가 진입해 제거했죠. 그때 얻은 정보가 현재 알려진 정보의 전부입니다. 물론 여왕벌은 살아남아서 최종 레이드를 진행하긴 했습니다만, 그조차도 선제 타격에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상태여서 온전한 정보가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알려진 5세대 육식말벌은 전형적인 몬스터의 역할 분류법에 따라 진화해 있었다.
역할 분류법이란, 헌터를 탱커, 딜러, 서포터 등의 포지션으로 나누듯 몬스터를 벌레류, 용족 등의 종류로 분류하는 게 아니라 맡은 역할과 특징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이었다.
아시아에선 그리 사용되지 않지만, 북미 학계와 유럽 헌터계에선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이었다.
북미에서 먼저 연구됐으나 널리 통용되지 않았기에 유럽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최근엔 역으로 북미에도 전파되기 시작해 이를 도입한 길드가 늘어가고 있었다.
“먼저 스텔서.”
“스텔서?”
“보통 스텔서는 암살자로 치는데, 몰래 몸을 숨기고 기습하는 유형이죠. 그런데 말벌은 좀 다릅니다. 보다 공격적이죠.”
육식말벌의 스텔서는 카멜레온처럼 몸을 보호색으로 바꾸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나는 종류였다.
이때의 빠른 속도는 벽을 박차면서 추진력을 얻은 결과였다. 날개는 글라이더처럼 펴서 날갯짓 소리마저 없앴다. 대신 날개 자체가 칼날이 되어 적의 목을 베었다.
“다음은 벌쳐.”
벌쳐는 의미대로 따지면 보통 수릿과 맹금류를 뜻했으나 이 분류법에선 야구 용어를 따와서 지은 명칭이었다.
야구에서 손쉽게 세이브를 챙기는 구원투수를 벌쳐라고 부르는데, 몬스터 중에서도 게임에서처럼 막타를 치는 교활한 놈들을 가리켰다.
“육식말벌의 벌쳐는 암살자라는 카테고리에서 스텔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첫 번째는 공격에 올인 된 스탯입니다. 일격필살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방어력도, 기동력도 최하입니다. 오직 순간적인 민첩성과 공격의 강도에만 집중했죠. 확인된 바는 없지만, 보츠나와에 참전했던 헌터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벌쳐는 마나를 이용한 공격을 한다더군요.”
강무혁의 설명에 토마스가 갸우뚱했다.
“방어력은 둘째치고, 기동력도 없다고요? 그런 몬스터는 피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공격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맞지 않으면 그만인데.”
“바로 그게 두 번째 특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토마스가 설명을 재촉하듯 상체를 강무혁 쪽으로 기울였다.
“두 번째 특징은 바로…….”
* * *
“아악!”
자넷의 팔이 방패째로 날아갔다.
깜짝 놀란 자넷의 윙맨 잭이 재빨리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잭의 순간적인 기지 덕분에 자넷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있던 자리로 정체불명의 낫이 스쳐 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자칫 동료를 잃을 뻔했다.
“젠장! 이 새끼는 또 뭐야?!”
잭과 자넷이 물러난 자리를 메꾼 차스테인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거대한 장수풍뎅이 말벌의 배 밑에서 기어 나오는 조그마한 말벌, 아니 전갈인가? 아무튼, 꼬리에 독침 대신 대낫을 달고 있는 말벌의 공격을 피하며 역습을 가했다.
하지만 그의 공겨은 장수풍뎅이 말벌이 막았다. 단단한 껍질은 마나를 잔뜩 머금은 차스테인의 대도조차 통하지 않았다. 숫제 금속 덩어리를 때린 듯 손아귀에 충격이 가해졌다.
“탱커에다 벌쳐까지. 최고의 방어력과 최강의 공격력이란 건가? 몬스터 주제에 머리를 쓰는군.”
테일러는 대번에 이 희한하게 생긴 흑색 말벌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벌집 레이드 전에 보츠나와 사건을 비롯한 말벌 헌팅 자료들을 모두 훑어보고 들어온 덕이었다.
그는 몬스터의 정체를 알아채자마자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콜먼, 자넷 팔 챙겨. 늦지 않으면 붙일 수 있을 거다. 잭은 자넷 데리고 먼저 가라. 나하고 차스테인이 후방에서 저지한다.”
“옛!”
“알겠습니다.”
“대장 조심하쇼.”
혼절한 자넷과 그녀를 안은 잭이 물러났다. 콜먼은 그들 편에 자넷의 팔을 끼워 보내고 다시 전장에 합류했다.
테일러는 불타는 채찍으로 벌쳐의 움직임을 제한하며 오더를 내렸다.
“콜먼, B-5는 포기한다. 길마에게 알려서 선봉대를 본진으로 후퇴시켜. 이곳의 단원들도 물러나도록 하고. 그동안 우리가 시간을 끌고 완전무장해서 전력으로 레이드를 치르도록 준비시켜.”
“옛!”
테일러와 차스테인의 분전은 실로 대단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B-5도 A-3의 참상을 그대로 재현했을 터였다. 원정대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순간이었다.
테일러는 단단한 탱커 흑벌을 괴롭히면서 천천히 물러났고, 이내 완전 퇴각에 성공했다. 발이 느린 탱커 흑벌로서는 그들의 기동력을 쫓아오지 못했다.
‘A-3이 당한 건 빠른 말벌들이 길을 막고 저 흑벌들이 뒤를 쳐서겠군. 이거 어째 몬스터가 아니라 군대를 상대하는 기분인걸?’
테일러는 이번 레이드의 작전 전반에 걸쳐서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보츠나와 전에서 알려진 5세대는 그리 많지 않아. 만약 저놈들 이상의 괴물들이 있다면, 이 레이드…. 좋은 꼴은 못 보겠어.’
* * *
“와아, 개 약해.”
주세아의 주먹에 머리가 부서진 장수풍뎅이를 보면서 고을지는 감탄했다.
“개 강한 거겠지.”
“우왁, 길마 지금 너무 재수 없었던 거 알죠?”
“원래 잘난 사람은 재수 없는 거야.”
“실력으로 보여 주니 할 말이 없네. 쩝.”
“부러우면 너도 어서 S랭…. 응?”
주세아는 뭔가가 복부를 내리치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복부엔 기다란 낫이 박혀 있었다.
방금 죽인 장수풍뎅이를 닮은 말벌의 아래쪽에서 기어 나온 새끼 말벌이 휘두른 꼬리였다.
“귀엽네? 간지럽게 뭘 또 이런걸.”
당황한 쪽은 공격한 새끼 말벌이었다. 먹이의 배에 깊숙이 박혔다고 생각했던 낫에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꼬리 낫을 회수해보니 반쪽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머지 반쪽은 바닥에서 발견됐다.
이쯤 되자 지능이 낮은 새끼 말벌도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네가 생각해도 괜히 건드렸다 싶지?”
주세아는 망치로 내리치듯 새끼 말벌의 머리 위로 주먹을 휘둘렀다.
새끼 말벌의 뇌리에 주마등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