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265)
제265화
#265. 그러게 말 좀 듣지.
주세아는 지하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다섯 마리의 4세대 육식말벌을 단숨에 정리했다.
그녀는 최심부로 갈수록 급격히 줄어든 교전 횟수가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5세대는 이제 아예 안 나오네. 그 아랫세대도 뜸하고.”
“여왕을 지키기 위해 물러난 겁니다. 지금까지 4세대가 등장한 빈도를 보면, 상당수는 5세대에 먹히고 남은 놈들일 거예요. 육식말벌의 번식 속도를 생각하면, 겨우 이 정도 숫자가 아닐 테니까요.”
요한나가 주세아의 의문에 답했다.
그녀는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이탈리아는 항상 아프리카에서 건너오는 육식말벌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일부는 시칠리아 섬에 벌집을 만든 적도 있었다. 덕분에 육식말벌의 생리에 익숙했다.
이런 그녀의 지식과 경험은 현장에서 주세아가 판단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주세아는 결론을 내렸다.
“두 길드 중 누군가 벌집 본체에 도착했나 봐.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그쪽은 고생하겠지만, 우리로서는 차라리 잘 됐어. 이동 속도를 올리자.”
그녀가 보기엔 이제부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나머지 두 길드가 큰 타격을 입는 게 먼저일지, 자신이 도착하는 게 먼저일지.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는 와중에 갑자기 고을지가 입을 열었다.
“길마님, 그런데 여기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단장님이 여기 프리랜서 헌터들이 많이 들어왔을 거라고 했잖아요. 근데 왜 흔적이 하나도 없죠? 싸웠든 죽었든 뭔가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적어도 죽은 몬스터나 헌터가 있어야 하잖아요.”
고을지의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요한나가 대신했다.
“벌집에선 시체가 남지 않아요.”
“왜요?”
“죽으면 먹히니까.”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다른 몬스터는 흔적이라도 남기죠. 이놈들은 뼈 한 조각까지 발라 먹어요. 동족도 먹이, 헌터도 먹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 먹이가 되죠. 괜히 육식말벌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먹히는 족족 다음 진화를 위한 양식이 되니 더욱 위험하죠.”
“잠깐. 그럼, 그 헌터들이 죄다 말벌들 먹이가 됐다면…. 다음 진화도 빨라지겠네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진화한다고 해서 5세대가 단번에 6세대가 되는 건 아니에요. 최초 진화는 여왕벌뿐이니까. 진화한 여왕벌이 낳은 말벌들이 새로운 6세대가 되는 거예요. 6세대는 기존 5세대와 다른 먹이를 먹으면서 또 다른 진화를 시작할 거고요.”
“시간하고 먹이만 있으면 계속 진화한다는 뜻이네? 어우, 소름.”
고을지는 팔뚝에 돋은 닭살을 털어냈다.
5세대인 탱커와 벌처는 한 마리를 잡는 데도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껍데기의 강도와 기민함은 4세대 말벌을 훨씬 웃돌았다.
만약 주세아가 없었다면, 진작 마력과 체력이 고갈돼 위험에 빠졌을 터였다.
파티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세아는 갑자기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상황은 좀 이상한걸? 여왕벌은 분명 나를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텐데. 이쪽을 막지 않고 집을 지키는 선택을 했지. 거기다 다른 길드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벌집 본체에 도착했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 파티와 더욱 간격이 벌어졌어. 마치 일부러 길을 열어준 것처럼.’
이쯤 되니 단어 하나가 생각났다.
‘각개격파.’
가장 강한 자신을 먼저 잡는 게 아니라.
“방해되는 쫄몹을 먼저 청소한다?”
“갑자기 뭔 소리예요?”
주세아의 중얼거림에 고을지가 되물었다.
“아무래도 좀 뛰어야 할 것 같네?”
“예?”
“먼저 갈게요. 장득구 헌터, 뒤를 부탁해요.”
“예. 걱정마십시오.”
고을지가 상황을 묻기도 전에 주세아는 사라졌다. 좁은 굴속을 가득 채운 흙먼지만 남기고.
* * *
보통 탱커들이 드는 방패는 게이트 광물로 만들어진다.
같은 철광이라도 게이트의 마나를 머금은 광석은 최소 열 배에서 최대 스무 배가 넘는 강도를 가졌다.
거기에 게이트 광석에 최적화된 제련법을 쓰거나 또 다른 게이트 광석을 합금할 경우 그 단단함과 유연성은 이루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금속을 최첨단 공법을 가미한 대기업 공장에서 찍어내면, 브랜드 로고를 붙인 규격 장비로 팔렸다.
그와 다르게 최고의 대장장이 손을 거치게 되면, 레어 이상의 등급이 붙는 아티팩트로 거듭났다.
대형 길드의 원정대 수준쯤 되면 기성품보다는 오더 메이드로 도배했다.
맞춤 제작한 방패는 레드 게이트 몬스터들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보물이었다.
콜 마이 네임의 탱커진이 5세대 말벌 탱커의 돌격을 버텨내고 벌처의 기습을 막아낸 건 이런 방패 덕분이었다.
콰작! 쿠드드득!
“우왓! 이 근육질 말벌 새끼! 내 방패를 우그러트렸어!”
“입 좀 닥쳐, 브론! 그렇게 아까우면 네 머리통을 대신 내주던가!”
“나탈리! 브론 물고 늘어지는 놈 좀 떼어내! 라인을 재정비한다! 도리안은 나탈 리 자리 채워! 딱 4초만!”
“오케이, 캡.”
“내가 딜러지, 탱커야?”
파티장의 명령에 따라 서브 탱커 나탈리가 빠져나간 자리를 도리안이 메꿨다. 그는 근접딜러였으나 탱커에 버금가는 장기를 가지고 있었다.
【버서크 머슬 Berserk Muscle】
2m에 이르는 자루가 긴 대형 도끼를 들고 폭발적인 힘을 분출한 일격에 5세대 탱커의 머리가 부서졌다.
그 틈을 타 나탈리는 브론의 방패를 씹고 있는 말벌의 옆구리로 돌아 들어갔다.
그녀는 허리를 낮추고 방패를 앞세운 채 앞으로 돌격하는 자세를 만들었다.
【차징】
나탈리는 마치 장갑차가 돌진하듯 튀어나가 근육질 말벌의 가슴 옆을 강타했다.
말벌은 가슴이 우그러지면서 괴성을 흘렸다. 그 소리에 반응한 말벌 일부가 몸을 돌려 다가왔다.
나탈리는 꽁지에 불이 붙은 듯 재빨리 자리로 복귀했다.
파티장이 외쳤다.
“10보 후퇴! 전방 주시 잊지 마!”
그들이 물러난 자리로 말벌들이 몰려들었다. 파티의 꼬리를 잡으려는 찰나 원정대 후방에서 원거리 사격이 펼쳐졌다. 타격을 준다기보다 발목을 잡는 스킬들이었다.
5세대 탱커는 잠시 주춤했을 뿐 큰 타격이 없었지만, 원정대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사냥터 전체를 관장하던 원정대장 테일러는 원정대 전열 전체를 조금씩 뒤로 물렸다.
말벌들은 헌터들을 잡으려 앞으로 딸려 나갔다. 자연스레 말벌들의 측면이 훤히 드러나게 됐다.
“이 정도로 자릴 만들어줬으면, 알아서 주워 먹을 줄 알아야지?”
테일러가 허공에 말을 걸었다. 그의 말을 받은 건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던 건파우더의 원정대장 카밀라였다.
그녀는 들릴 리 없는 테일러의 목소리에 응답하듯 원정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여기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병신 소리 들어도 할 말 없어. 싹 쓸어버려!”
헌터들의 무기에 마나가 차올랐다. 스킬이 공간을 범람했다. 각종 빛무리가 말벌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건파우더 원정대의 공격은 해일처럼 거셌다. 몬스터와 헌터의 머릿수를 따지는 게 하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유리한 전황에서도 카밀라는 여전히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녀는 부관에게 짜증을 섞어 명령했다.
“스태미나 포션 물 먹듯 쓰는 놈들 좀 말려. 칵테일 쓰는 놈들은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전해. 이제 시작인데 벌써 도핑을 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쪼무래기들 잡고 퍼질 일 있어?”
“아무래도 강행군하느라 지친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바로 오더 전달하겠습니다.”
“힘든 일은 네임 태그 붙인 놈들이 다 했잖아. 지쳤다고 이 정도 배려를 받았는데도 앓는 소릴 내면, 욕 들어 처먹어도 싸. 아주 평생 놀림감이 될 거라고.”
부관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상태였으니까. 그저 전술적으로 옳은 판단이었기에 테일러의 의도대로 따라준 것이었다.
“왜 쓸데없이 배려해선 사람 열 받게 하고 난리야? 쯧! 테일러 자식 언제 한 번 손봐주든지 해야지.”
듣는 귀가 많아서 말로는 체면을 챙겼지만, 카밀라는 원정대를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런 면에서 테일러와 통하는 게 있었다. 이 작전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는 걸 알았기에 말과는 다르게 불만을 품고 있진 않았다.
“콜 마이 네임도 다시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이대로면 금방 쓸겠는데요, 대장님?”
부관이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았지만, 카밀라는 그와 정반대였다.
“이런, 너무 신났어.”
건파우더와 콜 마이 네임의 형태는 L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랫변은 콜 마이 네임이 좌변은 건파우더가 밀어붙이는 형국. 하이브 본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자연스레 건파우더의 측후방이 비는 모양새였다.
그녀는 급히 부관에게 외쳤다.
“모두 원위치시켜!”
카밀라는 부관이 모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 역시 직접 파티장들에게 메시지 스킬을 보냈다.
하지만 한발 늦은 때였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호리호리하고 위로 길쭉한 모습의 말벌들이 뛰쳐나왔다.
“저건 뭐야? 켄타우로스?”
벌이라기보다 말을 닮은 모습.
정확히는 하체만 말이었고, 상체는 벌이었다. 등에 날개가 달려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동형 몬스터인 켄타우로스를 쏙 빼닮아 있었다.
“말벌 새끼들이 왱왱 날아다니기나 하지. 무슨 기마대야?! 원거리 사격 개시! 목표는 켄타우로… 비(bee)? 뭐든 간에 저 새끼들 돌격, 멈추게 해!”
카밀라의 명령이 채 전달되기도 전에 콜 마이 네임에서 먼저 반응했다.
마법과 원거리 스킬이 기마벌들을 향해 쏘아졌다. 폭음에 공동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먼지가 자욱하게 낀 데다가 마나가 요동친 탓에 공중에 띄워둔 라이팅볼 절반이 빛을 잃고 떨어졌다.
전장은 삽시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공격을 명했던 테일러가 외쳤다.
“어떻게 된 거야? 막았어?”
“보이질 않습니다.”
“색적 스킬은 취미로 배웠어?! 탐지 계열은 빨리 파악해!”
“조금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먹히질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막기라도 했다는 거야?”
테일러는 말을 뱉어놓고 흠칫했다.
‘스킬은 습득하고 나면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발동된다. 카운터 스킬을 당하지 않는 이상.’
그런데 탐지 스킬이 막혔다는 건 즉,
“그게 가능한 벌이 있다는 거구나?”
눈에 뻔히 보이는 돌격에 이어 탐지 스킬을 막아뒀다는 건 따로 속셈이 있다는 뜻이었다.
“모두 경계를…..”
그가 새로운 오더를 전달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테일러는 비명이 들린 방향을 단번에 잡아냈다.
“젠장, 후방!”
그제야 하늘 위로 길게 늘어서 날고 있는 기마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원거리 공격을 피해 날아오른 것이다.
“1, 2 파티 따라와! 원딜을 보호한다!”
워낙 다급한 나머지 테일러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말벌들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촤라라라라라락!
수백 장의 날개가 한꺼번에 펴지는 소리가 어둠 저편으로부터 들려왔다.
원정대 헌터들은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췄다. 동시에 엄청난 충격이 헌터들을 뒤흔들었다.
대부분이 어떤 공격에 당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개중에 시력이 특출나게 좋은 헌터가 있었다.
“스텔서다!”
테일러는 피가 땅 아래로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몬스터가 이런 연계를 한다고?’
아무리 여왕벌이 상당한 지능을 가졌고 5세대까지 진화했다지만, 기본적으로 곤충형 몬스터는 머리를 쓰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대하는 육식말벌들은 마치 잘 조련된 군대처럼 행동했다. 그 지휘관도 공격대를 다루듯 말벌들을 움직였다.
공격대와 다른 점이라면, 희생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목표를 위해 던져준다는 것이었다.
“끝내 이럴 때가 오는군.”
지금 테일러에게 필요한 건 차가운 이성. 냉정한 판단이었다. 그는 결정해야 했다. 누굴 죽이고 누굴 살릴 것인가.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재정비 시간을 벌기 위해 말벌들에게 던져줄 희생양이 필요했다.
“3파티장.”
“예.”
“무슨 말 할지 알지?”
“제 차례까지 돌아올 줄은 몰랐네요. 알겠습니다.”
“부탁한다.”
“앞서간 친구들한테 받은 대로 하는 거죠. 각오는 예전에 했습니다.”
“빌리. 네 이름은 내가 기억하마.”
3파티장과 그 대원들이 비장한 얼굴로 스텔서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들은 뒤가 없다는 듯 마나를 불태워 스킬을 난사했다. 덕분에 스텔서들은 섣불리 공격에 나설 수 없었다.
이 같은 광경은 건파우더 쪽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5파티가 막는 동안 전열을 재정비한다. 6, 7, 8은 원딜 라인을 구원해. 지금 상태에서 원딜이 꺾이면 우리 목숨도 장담 못 해. 적어도 여왕벌 목은 따고 죽어야지.”
카밀라는 북미 헌터계의 대표적인 여장부답게 강단 있게 대응했다.
그 모습에 원정대 헌터들은 흔들리지 않고 대응했다.
분명 한 발 삐끗하는 순간 전멸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기였지만, 이상하게도 차분해졌다.
지금껏 카밀라가 보여준 성과에 대한 신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시키는 대로만 해. 다 살리진 못해도, 다 죽이진 않으마. 죽더라도 내가 죽고 너흴 살릴 거다. 그러니까 잠시만 너희 목숨 내게 맡겨.”
“우오오오!”
부관이 사기를 살리려는 듯 함성을 선창했고, 뒤따라 헌터들이 기합을 넣듯 소리쳤다.
그때였다.
카밀라의 등 뒤로 전혀 처음 보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뭐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림자에게서 네 방향으로 공격이 뻗어 나왔다.
카밀라는 활대를 회전시켜 방어했다. 활줄이 끊겼지만, 제왕궁이라고 불리는 그녀만의 오더 메이드 활은 여간해선 부러지지 않는…….
콰작!
“크흡!”
카밀라는 입에서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대장님!”
부관이 급히 그림자를 막아섰으나 이번엔 아래로부터 솟구치는 공격을 막지 못했다.
부관의 턱 아래로부터 뚫고 들어간 일격이 정수리로 튀어나왔다. 대형 길드의 최정예 원정대라는 명함이 허무하리만치 쉽게 당했다.
“저, 저건 뭐야?”
이내 라이팅볼의 범위 안으로 몸을 들인 그림자.
주변에 있던 헌터들은 난생 처음 보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러섰다.
“Fu…. ck.”
카밀라가 피를 게워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너, 뭐야? 벌이야, 사람이야?”
카밀라가 그렇게 묻는 것도 당연했다. 그녀를 공격했던 그림자는 인간의 형상을 한 채 등에 날개와 꼬리에 독침을 지니고 있었다.
얼굴도 흉측한 털과 돌출된 눈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목구비가 거의 인간과 흡사했다. 입이 가로세로로 동시에 벌어지고 팔다리 사이에 한 쌍의 팔이 더 달리지 않았으면, 할로윈 분장을 한 인간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대답을 바라고 물은 건 아니었지만, 인간형 벌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카밀라를 향해 움직였다.
“막아!”
헌터들이 자신들의 원정대장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간형 벌이 강하기도 했지만, 포메이션이 깨진 헌터들은 몬스터에게 우위를 점하기가 쉽지 않았다. 탱커도 전방에 몰린 상태라 몸으로 버텨줄 헌터도 없었다.
근접딜러들이 분전했으나 전진을 잠시 막을 뿐.
그들의 팔다리가 허공에 날리고, 목이 뽑혀 바닥에 떨어졌다.
공포스러운 존재였지만, 그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헌터들은 사력을 다해 인간형 벌을 막았다.
“그만!”
카밀라는 등에서 스페어 활을 꺼냈다. 한 발에 백만 달러짜리 화살을 활줄에 맸다. 그녀는 자잘한 스킬 대신 전력을 다한 스킬을 뽑아냈다.
【선샷】
여왕벌을 위해 아껴뒀던 단 한 발의 화살이 인강형 벌을 꿰뚫었다.
“젠장, 그걸 피해?”
카밀라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화살이 인간형 벌의 우측 어깨를 맞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쉽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화살을 맞은 부위로부터 뜨겁고 강렬한 빛이 일더니 사방으로 번져갔다.
빛은 인간형 벌의 몸을 녹였다.
태양을 머금은 화살은 적이 완전히 타서 사라질 때까지 타오를 터였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인간형 벌의 행동에 카밀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스각!
“!!”
인간형 벌이 타들어 가고 있던 자신의 반쪽을 스스로 자른 것이다.
문제는 몸을 절반 가까이 떼어냈음에도 그 위압감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래도 반쯤 레이드했다고 낙관하는 헌터들이 있었으나 잠시 후 챔피언의 몸이 순식간에 복구되어 가는 모습에 그들도 전의를 상실하고야 말았다.
‘여왕은 확실히 아니고, 수벌도 아니야. 이놈, 챔피언이었구나.’
상위 세대 여왕벌의 수호자.
극히 희박한 확률로 탄생한다는 챔피언 말벌의 등장이었다.
챔피언 말벌은 나머지 헌터들을 쓸어버리고 비로소 카밀라 앞에 설 수 있었다.
“나 혼자 죽을 순 없지!”
카밀라는 최후의 스킬. 자신의 몸을 태운 자폭을 시도하려 했다.
챔피언이 기괴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뻗……
퍼걱!
카밀라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머리가 사라진 챔피언만이 그녀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게 말 좀 듣지. 왜 바득바득 먼저 움직여서 피를 보냐고.”
전혀 처음 듣는 목소리.
검붉은 색감의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주먹을 들고 있는 동양계 여자가 그녀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