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266)
제266화
#266. 그건 하지 말자.
머리가 부서진 챔피언 말벌은 선 채로 죽었다.
주세아는 방해가 된다며 사체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순간 죽었어야 할 챔피언이 움직였다.
네 개의 팔과 두 다리가 180도 돌아가 등 쪽을 바라봤다. 동시에 두 쌍의 날개가 좌우로 벌어지며 도검처럼 곤두섰다. 사라진 머리 대신 가슴 부위에 눈과 입이 돋아났다.
말벌은 희번들한 겹눈을 껌뻑이며 날개를 뽑아 주세아에게 휘둘렀다.
“느려.”
챔피언이 변하는 동안 주세아는 선공을 취할 수 있었으나 일부러 대응하지 않고 일련의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머리가 날아갔는데도 움직인다는 건 따로 핵이 있다는 건가?’
언데드나 골렘과 같은 무기물이 아니기에 핵이 있을 리 없겠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데이터로 남길 겸 나중을 생각해서 정보를 좀 얻어보려고 했는데.’
주세아는 주변 상황을 재빨리 훑어봤다. 말벌들의 예상 못 한 역공에 헌터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럴 여유가 없네.”
챔피언은 주세아를 향해 또다시 날개를 휘둘렀다. 마나까지 은은하게 담긴 일격이었다. 그녀는 고개만 살짝 돌려 공격을 피해냈다. 그게 약올랐는지 챔피언은 네 개의 손에 들린 날개를 제각각 빙빙 돌리며 마구잡이로 베었다.
주세아가 피할 때마다 주변 땅거죽에 생채기가 났다. 마치 레이저 커팅기로 베는 것 같았다.
말벌들이 단단하게 굳힌 바닥임을 생각하면, 챔피언의 공격이 매섭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주세아는 챔피언의 공격이 어설프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힘과 스피드만으로도 어지간한 헌터에겐 위협이 될 정도였지만, 조금만 검술에 통달한 헌터라도 챔피언의 공격은 하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왼쪽 허리춤에 멨던 검의 손잡이에 오른손을 살포시 올렸다. 그리곤 타이밍을 맞추듯 몸을 좌우로 흔들다가 챔피언의 공세 속에서 빈틈을 찾아 파고들었다.
【고속 베기】
검집으로부터 빛살처럼 뽑혀 나온 발검술.
가슴과 배 부위마저 분리된 챔피언이 휘청이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질기게 명줄을 부여잡고 있었다.
챔피언은 급속 재생 능력을 발휘해 가로로 갈린 몸을 억지로 이어붙이려 했다.
이를 두고 볼 주세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한번 뽑은 칼을 되돌리지 않고 손목 힘만으로 재차 베었다.
【다단 베기】
칼날이 지그재그로 이어져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몸통, 팔, 다리, 꼬리 독침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슬라이스 햄처럼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잘렸다.
저민 햄처럼 얇게 썰린 챔피언의 살점이 바닥에 철퍼덕 내려앉았다. 그 위로 녹즙 같은 체액이 소스처럼 뿌려졌다.
주세아는 칼날을 흠뻑 적신 녹혈을 바닥에 털어냈다.
“이래도 살아나나 보자.”
그렇게 2초 정도 몬스터였던 고깃덩이를 지켜본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거뒀다.
“좋아. 착하네.”
“착해?”
카밀라는 자신이 고전했던 챔피언 말벌을 단숨에 제거한 주세아의 무력에 벙찐 상태로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주세아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카밀라는 얼떨결에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자폭 스킬을 도중에 취소하는 바람에 전신이 저릿했지만, 포션 몇 병 마시면 전투에 나설 정도는 되었다.
“착하지. 얌전히 죽어주는 몬스터만큼 이쁜 놈들이 어딨다고.”
“어째 표현이…….”
한국어가 통역 아이템으로 인해 약간 애매하게 표현된 터라 카밀라에겐 그 뜻이 명확하지 않게 전달됐다.
덕분에 이상한 오해가 생겼다.
‘이 사람은 몬스터를 싫어하는 거야, 좋아하는 거야?’
어느 쪽으로든 제정신은 아니니라. S랭크는 어느 쪽으로든 미쳐야만 가능한 경지니까.
카밀라는 단번에 이 여자가 말로만 듣던 주세아임을 확신했다.
이번 레이드의 핵심이랄 수 있는 S랭크.
실력만 봐도 범상치 않았다. 그녀의 강함이 카밀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원정대나 수습해요. 챔피언이 나왔으니 여왕이 곧 나올 거예요.”
“지금 전열이 붕괴해서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그건 걱정 말고. 시간은 내가 벌어줄 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주세아가 튀어나갔다. 그녀의 시야에 빈사 상태의 헌터들이 들어왔다.
피 칠갑을 한 채 동료들을 지키고 있는 헌터, 잘린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검을 그대로 들고 휘두르는 헌터, 무기는 온데간데없고 방패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헌터 등등.
불리한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몬스터들을 물고 늘어지며 동료들이 전열을 제정비할 기회를 만드는 모습은 가히 정예 원정대라 할 만했다.
주세아는 위기에 빠진 헌터들에게 향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구해봤자 위기는 쉬지 않고 찾아올 게 뻔했다. 그녀가 아무리 S랭크라도 마법사가 아닌 이상 전장 전체를 단번에 압도할 방법이 없었다.
범위 공격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나 게이트 스킬 없이 오리지날 스킬로 그만한 위력을 내려면 힘 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지하에서의 전투, 머리 위엔 대도시. 자칫 지상에 있을지 모를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놈들의 어그로를 죄다 끌 방법은 하나뿐이야.’
벌집 본체.
‘여왕을 노린다!’
주세아는 가는 길목을 막아서는 탱커 말벌들을 몸으로 부딪쳐서 날려버리며 벌집으로 향했다.
주세아의 의도가 적중했는지 말벌들에게서 동요가 일었다. 일부 말벌들은 헌터들과의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고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벌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전투에서 이탈하는 말벌이 늘어났다.
종국에는 모든 말벌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갑작스러운 공백에 헌터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반응하지 못했다.
이때 카밀라가 마나를 담아 우렁차게 외쳤다.
“S랭크가 참전했다! 모두 부상자 수습하고, 전열을 정비해!”
그녀는 습득해놓긴 했으나 평소엔 쓸 일이 없었던 ‘라우드스피커’까지 써서 모두에게 알렸다. 평소엔 메시지 스킬에 익숙했으나 지금처럼 다른 길드와 연합할 땐 동시에 상황을 전파하려면 확성기 스킬만큼 확실한 게 없었다.
“촌스럽다고 쓰지 않던 스킬까지 쓰고. 급했나 보네.”
어느새 건파우더의 테일러 원정대장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는 부대장과 각급 파티장들에게 원정대를 추스르라 명령하고 다음 계획을 조율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카밀라 역시 테일러와 비슷한 명령을 내린 뒤 말했다.
“우리 애들 많이 죽었어. 이미 체면 다 구긴 상태야. 그보다 촌스러운 게 어딨다고?”
카밀라의 말에 테일러는 주변을 돌아봤다. 몇몇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중엔 카밀라의 부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테일러는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려 말을 꺼냈다.
“애도는 여왕 머리 딴 다음에 하자고. 주세아에게 뭔가 들은 게 있나? 레이드 계획이라든지 하는 것 말이야.”
“S랭크라고 이 상황에서 뾰족한 수가 있겠어? 정석대로 가는 거지. 저 여자가 시간을 벌어준댔어. 그리고 말대로 됐지. 그 사이 전열 정비하고 여기서 끝장을 본다. 물러나면 대책 없잖아?”
“하긴 여기 놈들이 밖으로 나가면…. LA는 지옥이 되겠지.”
“LA만? 캘리포니아가 악몽으로 변할걸? 나 챔피언 말벌 새끼한테 당하는 거 봤지? 벌써 5세대야. 잡을 수 있을 때 잡지 못하면 어디까지 올라갈지 몰라.”
원래 카밀라와 테일러가 각자 길마에게 받은 명령은 따로 있었다.
만약 레이드가 원정대 역량을 넘어선 수준으로 난이도가 올라갔다면, 바로 퇴각해서 길드 전체가 LA를 벗어난다는 오더였다.
5세대 육식말벌의 악명이야 이미 역사가 증명했고, 당시에도 주변국의 최정예 헌터가 모두 모여서 며칠에 걸친 원거리 포격전을 감행한 후에 토벌했었다.
그런데 지금 싸움터는 대도시라 같은 방법을 쓰지도 못했고, 주변 도시의 원조도 없었다.
길마의 명령은 합리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합리적인 게 항상 옳은 건 아니지.”
“뭔 소리야?”
“카밀라, 그쪽 길마도 적당한 때에 도망치라고 명령했지?”
“말하는 꼴을 보니 그쪽도 마찬가진가 보네. 그런데 왜 안 튀어?”
“그쪽하고 같은 이유.”
“…….”
카밀라는 묵묵부답 답하지 않았다. 테일러가 말을 이었다.
“애착이 가진 않아도 여긴 내 고향이야. 여기 사는 사람들은 내 이웃이고, 가족이다. 친구도 몇 있지.”
“친구 없을 줄 알았는데.”
“네 얘기 하지 말고.”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넌 진짜 언제 한번 날짜 잡아서 패버린다.”
“살아남고서나 말해. 시간 내줄 테니까. 아무튼, 사람들 죽게 두고 도망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그쪽 스타일 마음에 드네. 나도 그렇거든. 아이템에 목매는 건 길마 사정이고,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길마는 길마의 고뇌가 있겠지. 난 그걸 탓하진 않아. 다만, 그걸 내게도 강요하는 건 다른 문제지만.”
카밀라는 의외라는 듯 테일러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이 거북했는지 테일러는 변명했다.
“난 돈 벌려고 헌터 된 거 아니야.”
“각성된 김에 돈도 버는 거지. 대형 길드에 입단한 것부터가 그런 의미 아닌가?”
“아니. 지금 같은 때에 힘쓰려고 건파우더에 들어왔어. 덕분에 원정대라는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잖아?”
“너희 길마가 들으면, 심장 떨어질 소릴 하는군. 원정대를 지켜야 길드도 재건할 텐데.”
“아마도? 어쩌면 퇴단서 써야 할지도.”
“길마하곤 법정에서 보겠군. 막대한 손해배상을 물리겠어.”
“하하하, 어쩌면 망명해야할지도 모르겠군.”
“뭐가 웃긴다고 웃는 거야? 너 망했다니까.”
카밀라는 어이가 없다며 테일러를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헤이, 소송당하지 않을 팁을 알려주지. 그냥 나처럼 도망칠 틈이 없었다고 거짓말해. 현장에 없는 길마가 뭘 알겠어?”
“그 말은 너도 여기서 싸우겠다는 거 맞지?”
“폼이란 폼은 다 잡아놓고, 이제 와서 도망치면 웃음거리밖에 더 돼? S랭크도 왔잖아. 제대로 싸워보자고.”
“그렇다면 오더는 그쪽에 맡기지.”
“너희 원정대까지?”
“대원들에겐 말해놓겠어. 난 전방으로 간다.”
카밀라는 괜찮겠냐며 되묻지 않았다. 그녀는 테일러의 각오를 알 수 있었다.
‘라이벌 길드의 원정대장에게 자기 원정대 오더까지 양보할 정도면, 진짜 다 걸고 싸우겠다는 거군.’
대부분 헌터들은 죽어도 내주지 않을 게 바로 오더 권한이었다. 그건 길거리 파티에서도 양보하지 않는 권리였다.
하물며 길드, 그것도 LA를 대표하는 대형 길드의 원정대 오더를 맡기다니.
카밀라는 새삼 테일러라는 헌터의 그릇이 자신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런 헌터의 각오에 응할 각오를 해야만 했다.
“잘 아껴서 썼다가 돌려주도록 하지.”
“그래. 헌팅에 목숨을 장담할 순 없지만, 죽는 애 없이 잘 부탁하마.”
둘의 합의가 이뤄짐과 동시에 각 원정대에서 전투 준비를 마쳤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자, 그럼. 모두 우리 이름을…….”
“야, 그건 하지 말자. 부끄럽다고.”
“……어? 뭐….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번엔 생략하지.”
테일러는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검을 뽑았다.
“우선 하던 대로 간다. 바깥부터 갉아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