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317)
제317화
#317. 애초에 거래할 일이 아니야.
주세아는 헌터수사청 본청으로 출두(?)했다.
본청 강력범죄수사2팀 나상면은 팀장에게 주세아를 수사하겠다고 미리 알린 상태라 차분하게 그녀를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팀장은 자리를 피했다. 위세 좋은 헌터수사청 팀장이지만, S랭크만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상면은 취조실 거울 뒤편에서 주세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막상 마주하자 저 안으로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주세아는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거울 창을 노려봤다. 투시 스킬까지 막는 특수 창이라 이쪽이 보일 리 없겠지만,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절로 시선을 피하게 됐다.
보다 못한 후배 수사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 들어가세요?”
“보채지 좀 마.”
“그래도 S랭크 헌터를 계속 저렇게 두는 게 어째…….”
“네가 들어갈래?”
“저 심장마비 옵니다.”
후배는 진저리치며 도리질했다.
나상면은 몇 차례 심호흡을 반복하더니 이윽고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후우! 다녀오마!”
나상면은 서류철 하나를 챙겨들고 복도로 나갔다. 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취조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주세아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익숙한 멘트를 날렸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수사청이란 게 항상 사람이 부족해서 오늘처럼 일이 많으면 정신이 없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여기 바쁜 건 장득구 헌터에게 자주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나상면은 테이블을 한가운데 두고 주세아의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원래는 참고인 조사할 땐 취조실이 아니라 일반 접견실을 씁니다만, 그쪽은 워낙 보는 눈이 많아 실례를 무릅쓰고 이쪽으로 모셨습니다. 주세아 길마님이 이 워낙 유명인이라,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 같아서요. 이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뭐, 조용하고 좋네요. 저도 번잡한 거 싫어해요.”
“아, 격식을 차리지 않으시는구나?”
그렇게 말해놓고 나상면은 속으로 혀를 깨물었다.
‘너무 약하게 보였나? 너무 티 나게 눈치 본 것처럼 보인 것 같은데?’
그는 화제를 바꿔 말했다.
“그런데 변호인은 함께 오지 않으셨나 보네요?”
“같이 올 필요가 없죠. 죄가 없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보통 헌터들은 죄를 짓고 안 짓고를 떠나서 무조건 변호인을 데려오거든요. 길드 이미지라든지, 혹여 문제가 될 발언을 자제시키려고 말이죠.”
“그건 길드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헌터들 얘기고요. 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는데요? 아? 우리 단장님 빼고.”
“단장이라면…….”
“강무혁 단장님. 아시죠? 우리 길드 총책임자인데.”
“예. 당연히 알고 있죠. 한번 뵌 적도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나상면은 식은땀을 흘렸다.
주세아가 자신과 강무혁의 만남을 알고 있단 건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강무혁이 청문회의 스타가 되긴 했으나 그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다. 강제 소환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장득구와 대립하면서까지 강무혁을 데려가려고 했던 걸 보고받았을 테니, 결코 좋은 인상은 아니리라.
‘설마 앙심을 품고 있진 않겠지?’
나상면은 부디 주세아가 상식을 아는 헌터이길 바라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오시기 전에 드리머 길드에 몇 가지 알아봤습니다. 백형규 헌터가 살해당한 장소가 드리머 길드 근처 공영주차장이더군요. 주세아 길마님 말대로 이적이 결정 나서 길드 주차장 ID를 반납하는 바람에 바깥에 차를 댔다더군요.”
“또 뭘 알아봤는데요?”
“이적 동의서가 협력처에 제출된 것도 확인했고, 드리머 이전에 아이언윌에 있었던 것도 파악했습니다. 희한하게도 퇴단한 길드에 다시 입단하는 케이스더라고요.”
“흔한 일이죠. 더 좋은 길드로 이적하는 거. 백형규 헌터가 나갈 땐 아이언윌의 전망이 어두웠고, 지금은 고속성장 중인 길드니까요.”
주세아의 침착한 답변에 나상면이 이의를 제기했다.
“드리머 쪽 말은 좀 다르던데요. 북포천에서 오크 부족 레이드 중에 동료들이 죽었다고요. 그래서 나왔다는 말이 있던데…….”
“트라우마를 겪는 거야 헌터들에게 특별할 것 없는 사건이죠.”
“그 당시 기사를 좀 봤습니다. 그 레이드 작전. 강무혁 단장이 짜셨다죠? 혹시 백형규 헌터랑 강무현 단장 간에 마찰은 없었습니까?”
주세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래서요? 그쪽 시나리오가 뭐에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시나리오라니요? 그냥 의례적으로 이것저것 여쭤보는 겁니다.”
“이봐요, 나상면 수사관님.”
주세아가 탁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녀가 탁자 위에 올린 손에 나상면은 움찔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장득구 헌터에게 들어서 여기가 바쁘고 힘든 거 잘 알아요. 그래서 조사에 순순히 응하고 있는 거고요. 그런데 어째 우리 쪽에서 범인을 잡고 싶으신가 봐요?”
“그럴 리가요. 저도 조금 전 말했던 것처럼 으레 하는 수사 절차일 뿐입니다.”
“저 그렇게 잘 참는 성격 아니에요. 지금 굉장히 인내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수사 말고, 증거 내놔봐요.”
“무슨 증거를?”
“백형규 헌터를 죽인 놈에 대한 모든 것.”
“…….”
“수사청에서 할 일도 많은데. 괜히 수사관 동원하지 말고. 그냥 나한테 맡기라는 거예요.”
주세아가 S랭크로서의 본색을 드러내자 나상면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맡기면 어쩌시려고요? 범인을 직접 잡으시게요?”
“글쎄요. 잡을까요, 죽일까요?”
“……아무리 범죄자라도 사적인 복수는 불법입니다.”
“그걸 누가 정하죠?”
“대한민국 법률이…….”
“S랭크는 치외법권 아닌가?”
주세아의 짤막한 혼잣말에 나상면은 경악했다. 방금 주세아가 한 말은 그녀가 처음 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가 한 말의 기원을 알고 있었다.
‘에머슨 무가베…….’
중앙아프리카의 독재자. S랭크이면서 왕이 된 자.
그는 인접국에서 수천 명이 죽는 사고를 치고도 당당하게 인터뷰를 했었다.
-S랭크는 존재 자체로 치외법권이다. 심판은 오직 신만이 가능하다.
S랭크의 위험성을 몸소 선보인 독재자의 발언을 주세아가 입에 담았다는 것에 나상면은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풋! 농담이에요, 농담. 그렇게 표정이 굳는 걸 보니 농담도 못 하겠네.”
“하하…. 노, 농담이시군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법 지켜야죠. 폭군처럼 될 순 없잖아요? 그럼, 이제부터 농담 말고 진담. 자격증 하나 발급해주세요.”
“자격증이요?”
“바운티 헌터. 아주 잠시만, 몬스터 대신 빌런 잡는 사냥꾼이 될게요.”
* * *
장득구는 카페에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손을 들어 흔들었다.
“여어.”
“여어는 무슨?!”
남자는 얼굴을 구기며 성큼성큼 걸어와 장득구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모철현 선배.”
모철현이라 불린 남자는 느긋한 장득구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날 불렀어? 너 잘 나가잖아. 그러면 이제 수사청에선 손 떼야 하는 거 아니냐?”
“저 잘 안 나갑니다?”
“제자가 S랭크에, 아이언윌인데? 누가 들으면 배부른 새끼라고 욕해.”
“그건 제자가 잘 나가고, 길드가 잘 나가는 거지. 저야 뭐 볼 게 있다고. 오히려 선배가 잘 나가지. 특급 수사관 떼고 특무팀에 자리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오매불망 바라던 자리시잖아요.”
“너 아까전에도 그거 가지고 나 협박했잖아. 그 자리 지키고 싶으면 튀어나오라고? 시부럴 자슥!”
장득구는 욕을 먹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능글맞게 말했다.
“오신 김에 차 한잔하시면서 숨 좀 돌리세요. 커피? 차?”
“안 마셔, 쨔샤!”
“여기 1인 1메뉴입니다. 잘 나가는 후배가 사줄 테니까 먹어요.”
“먹어도 네 돈으로 안 먹어. 내가 사먹어.”
모철현은 직접 계산대로 가 병 음료를 사 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이번에 온 건…….”
“아니, 그전에 하나만 확실히 하자. 너 이번 얘기 들어주면, 다시는 나한테 예전 일 가지고 협박하지 않는 거다.”
“뭐요? 수사청 앰플 납품 때 뒷돈 받은 거? 아니면 결백한 헌터 잡아다 우중도로 보낸 거? 워낙 많아서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전부 다. 이 새끼야.”
“그러게 착하게 살라니까. 쯧.”
“언제까지 그걸 가지고 우려먹을래? 이제 그만 좀 하자. 잊을 만하면 와서 분탕질 좀 치지 말고.”
모철현이 이를 갈자 장득구도 같이 이를 갈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모철현 선배님. 선배님이 뭘 모르시나 본데? 나 아직 바운티 헌터 자격증 있습니다. 부패한 수사관 하나 때려잡는 거? 일도 아니야. 내가 왜 범죄자하고 그런 거래를 해? 내가 예전에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둔 이유는 단 한 가지야.”
“…….”
“댁한텐 현상금이 안 걸려 있어서.”
“뭐, 뭐?”
“단돈 천 원이라도 걸려 있었으면, 당신 지금 여기 없어. 우중도에 들어가 있지.”
모철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제야 장득구의 과거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범죄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잡아넣는 수사관. 그 과정에서 병신이 되고, 목숨을 잃은 빌런이 부지기수였다.
나중엔 장득구에게 찍혔다는 소리만 들어도 범죄자들이 알아서 자수를 해 올 정도였다.
‘이놈은 그게 또 마음에 안 든다고, 자수하겠다는 놈을 제발 자수하지 말라고 말렸었지. 직접 멱을 따러 간다면서.’
그 말에 겁먹은 빌런이 울면서 자기 손으로 수갑 차고 수사청에 기어들어 온 사건은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었다.
말을 잃은 모철현에게 장득구가 말했다.
“애초에 거래할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포기하고 내 부탁 좀 들어줘.”
“뭔데?”
모철현은 자포자기하고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백철현 헌터라고 드리머 길드 소속이었는데, 이번에 우리 길드로 이적한 친구가 하나 있어. 그런데 이적 절차가 완료되기도 전에 살해당했어. 그쪽 수사 내용 좀 흘려줘.”
“지금 수사청 내부 정보를 빼돌리라는 거냐?”
“왜? 안 돼? 전엔 정치가나 재벌 양반들한테 잘도 넘겼었잖아?”
“야, 그때하고 지금 하고 같냐?”
“뭐가 다른데?”
“시스템이 달라요. 요샌 다 전산화되어 있어서 누가 자료 열람했는지도 나와.”
장득구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었다.
“내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만약 추궁해도 그냥 궁금해서 봤다고 하면 될 거고. 비리가 밝혀져서 잡히는 게 나아? 아니면 그냥 보다가 의심만 사고 마는 게 나아? 정해. 시간 없어.”
“개XX.”
“물지 않을 걸 다행으로 생각해.”
모철현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연락할게. 되도록 얼굴 보지 말자.”
“고마워. 일 있으면 또 보자고.”
“개XX.”
* * *
미스터 조는 몇 시간도 되지 않아 강무혁이 부탁한 자료를 확보해 북포천으로 들어왔다.
“자료랄 것도 없어. 현재까지 상황만 요약한 거니까.”
미스터 조가 넘긴 자료는 얄팍했다. 사건 현장 사진과 수사청에서 현재까지 나온 소문이 전부였다.
“자료가 빈약하네요.”
“부검은 아직 안 했고, CCTV는 수사청도 확보 못 했더라고.”
“사각지대?”
“아니. 그냥 아예 없어.”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요즘 시대에 근처 CCTV가 하나도 없다니.”
“다다음장 넘겨봐.”
미스터 조의 말대로 강무혁은 페이지를 넘겼다. 종이에 사건 현장 지도와 함께 곳곳에 빨간색 점이 찍혀 있었다.
“이건 뭡니까?”
“CCTV 설치 장소. 여길 다 뒤졌거든? 근데 멀쩡한 CCTV가 없었어. 알아보니까 사건 시각 전에 근처에 있던 모든 CCTV 박살 났다고 하더라.”
“블랙박스는요?”
“그것도 마찬가지.”
강무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도에 나와 있는 CCTV 설치 장소는 면적을 둘째치고 개수 자체가 많았다. 이것을 모조리 찾아 박살 냈다니 어이가 없었다.
미스터 조는 강무혁의 표정을 보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강무혁이 은근히 물었다.
“그렇다고 맨손은 아닌가 보네요?”
“빙고. 내가 누구야? 미스터 조라고.”
“세계 최고 스파이죠.”
“비꼬진 말고.”
“비꼰 건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스터 조는 득도한 표정으로 강무혁을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거기서 재밌는 걸 발견했어.”
“어떤 걸요?”
“고장 난 게 CCTV와 블랙박스만이 아니더라고.”
“??”
“근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들이 모두 점화 플러그가 타 버렸다고 하더라.”
“!!”
“그 외 자동차 내 반도체 등의 전자 기기도 모두 먹통이고. 심지어 광고 전광판도 나갔어.”
미스터 조의 말을 듣자마자 강무혁은 무언가 불현듯 떠올랐다.
“마법사?”
“그렇지. 아는구나?”
“예전에 비슷한 걸 본 적 있습니다. 전격계 마법사가 국지적인 전자기장 펄스를 만드는 실험이었죠.”
대전쟁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 갑자기 게이트가 나타나고 헌터가 각성하던 때에 그 능력을 전쟁에 써먹으려고 했던 시도가 있었다.
그때의 사례는 아직도 헌터들의 정신교육을 위한 교보재로서 갓 각성한 신입들의 커리큘럼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미스터 조는 추리 영화를 보듯 들떠서 말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백형규 헌터의 사인이 마법사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거야. 최소한 근접 딜러야. 그렇다면 2인 이상의 팀이라고 의심해볼 수 있겠지?”
“혹은 혼자서 벌인 짓일 수도 있죠.”
“혼자? 어떤 법사가 맨손으로 딜러를 잡아?”
“마법이 아니라 전격계 초능력을 지닌 헌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쪽이라면 근접전에도 익숙할 테죠.”
“아무리 그래도 백형규는 A-랭크야. 전격계 초능력은 기본적으로 원거리야. 그런데 전문 딜러인 백형규가 맞붙어서 죽는다? 그게 말이 되려면, 랭크 차이가 얼마나 많이…. 잠깐만. 강 단장이 얼마 전에 나한테 맡긴 일…. 그거 아니지?”
미스터 조가 당황해하며 묻자 강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미라주의 잔당이 아니라 그 수장이 들어온 것일 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