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353)
제353화
#353. 전화 한 통만 합시다.
미스터 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신의주에서 느슨한 중국 길드 연합 사이를 오가며 이간질하고 명령 체계를 혼란에 빠트렸던 그녀였다.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의 활동은 그녀에게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식은 죽도 급히 먹으면 체하니까 조심해야지.’
“송기훈 씨.”
“후훗, 역시 난 프로스파이. 절대 방심하지 않는…….”
“송기훈 씨?”
“이러니 강무혁이 나한테 뻑이 가지. 그 얌체가 거금 들여서 회사를 통째로 인수한 거 봐. 내 능력이 탐나니까…….”
중얼중얼.
“송기훈 씨!”
“네?!”
미스터 조는 식겁해서 식은땀을 흘렸다. 변신을 자주 하다 보면 가끔 자신이 맡은 대역의 이름을 바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이런 실수를!’
미스터 조는 자신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눈치로 남자의 위치가 송기훈의 직장 선배이거나 관리직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남자는 중간 관리자였다. 그가 다가와 업무 태만을 지적했다.
“송기훈 씨,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다니는 겁니까?”
“저, 정신은 잘 챙겨뒀는데…….”
남자가 가까이 붙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너 오늘 경매장 안쪽 출입문 담당 아니야? 형이 여기서 어리바리 떨지 말랬지. 너 잘할 수 있다고 해서 빽으로 넣었는데, 여기서 이 지랄 떨다 걸리면 내 체면이 뭐가 돼?”
미스터 조는 남자가 자신이 변신한 송기훈과 형, 동생하는 사이라는 걸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어? 아아…. 응.”
“응이 뭐야, 응이? 애새끼야? 똑바로 안 해?”
“네.”
“좀 잘하자. 고향 후배라도 일 못 하면 내 팀장 권한으로 바로 아웃이야. 아니, 재수 없으면 인생 아웃이라고. 얘들이 우리 같은 건달 사업체를 왜 쓰겠냐? 없애도 뒤탈이 없으니까 그런 거야. 정신 차려.”
이 팀장이라는 남자는 단순히 송기훈과 형, 동생 관계가 아니었다. 헌터로 인해 설 자리가 좁아진 깡패 조직. 그 조직이 내세운 불법 경호 업체 사람이었다.
미스터 조는 블랙 마켓이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주먹패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에 놀랐다.
세계 아이템 거래 부문에서 한국은 작은 시장이었지만, 그 모체는 북미 최대, 최악의 헌터 범죄 조직인 다크 사이드였다.
그런 단체가 별 볼 일 없는 깡패를 경호원으로 쓴다는 게 언뜻 보기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쪽은 헌터가 아니라서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다크 사이드가 고용하다니. 뭔가 마음에 걸리는걸?’
찜찜한 구석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으나 당장은 블랙 마켓에 집중해 미라주의 주구로 의심되는 구자천에 대한 자금 정보를 빼내야 했다.
미스터 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선히 그의 말에 따랐다.
“잘할게… 엤습니다, 팀장님.”
“그래, 그래요. 말로만 말고 제발 좀 잘합시다, 송기훈 씨.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남자는 송기훈, 아니 미스터 조의 뺨을 툭툭 치곤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미스터 조는 정체가 들통난 게 아니라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부턴 집중하자. 집중!’
프로스파이답지 않은 실수를 할 뻔한 미스터 조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경매장으로 돌아가는 척만 하고 옆길로 샜다. 조금 전 팀장과의 접촉으로 변신 가능 리스트가 추가됐기 때문이었다.
걷는 동안 팀장으로 변신한 미스터 조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문구가 적힌 장소로 갔다.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어서 발걸음을 돌렸던 곳이었다.
경호원 중 하나가 팀장의 얼굴을 알아보더니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박진수 팀장님, 방금 식사한다고 나가시더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뭐 두고 온 게 있어서.”
웃음으로 얼버무린 미스터 조는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문에 카드 보안키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지문이었으면 문제 없었을 텐데.’
팀장이 곤란한 듯 서 있자 조금 전 친한 척 굴었던 경호원이 물어왔다.
“왜 그러십니까?”
“이거 내가 카드를 안 가져온 것 같은데? 잃어버린 건가? 이것 참, 어디다 뒀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네?”
“하이고! 그거 잃어버리면 큰일 납니다,”
“나도 알아. 그래서 문제 생기기 전에 찾으려는 거라고.”
“어디 뒀는지 기억 안 나세요?”
“기억나면 이렇게 고생하겠나? 안쪽에 떨어트린 것 같긴 한데…. 여기 좀 열어줘 봐.”
경호원이 곤란한 듯 망설이자 미스터 조가 다그쳤다.
“보안카드 잃어버리면 나만 좆돼? 우리 실업자 된다고. 아니, 이승하고 빠이빠이 될 수도 있어. 위에 찍히고 살 수 있겠냐? 어여 열어.”
“하아, 알겠습니다. 빨리 들어가서 찾으십시오.”
경호원은 자신의 보안카드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미스터 조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손을 벌렸다.
“네 카드 좀 빌려줘.”
“제 카드는 왜요?”
“보안키가 여기만 있는 거 아니잖아.”
“아니, 어딜 그렇게 다니셨길래 그러세요? 전산실에도 들어가셨었어요?‘
“그냥 여기저기 다녔어. 아잇, 빨리빨리 내놔. 급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성질을 내세요. 평소답지 않게.”
“너도 카드 잃어버려 봐라. 피가 마른다, 야.”
“금방 나오셔야 합니다.”
경호원은 찝찝한 얼굴로 미스터 조의 손에 보안카드를 쥐여줬다.
‘역시 태생이 건달 조직이다보니 보안 교육이 부족하구만. 마인드가 형님, 동생 족보를 따지니 이런 꼬라지가 나는 거지.’
미스터 조는 관계자 구역을 돌아다니며 전산실을 찾았다. 전산실은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있어 봐야 의자에 기대앉아 졸고 있거나 구석에서 네 사람이 둘러앉아 카드 게임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이놈들 헌터로군. 다행히 고랭크는 없어.’
미스터 조가 전산실에 들어오자 카드 게임을 하던 헌터가 손을 들어 아는 체했다.
“여어, 박 팀장. 왜? 그쪽도 카드 치게?”
“하하, 쩐이 달리는데 제가 거기 껴서 허리나 펴겠습니까? 그냥 일 좀 보러 왔습니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게임 재밌게 하십시오.”
비굴한 미소를 보인 그녀는 구석진 곳 컴퓨터에 앉아 데이터 베이스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큰 문제에 봉착했다.
‘젠장, 패스워드!’
너무나 당연하게도 컴퓨터에 보안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지? 생체 보안이 아니라서 열 수도 없고. 하드를 통째로 들고 날라야 하나? 아니면 실물 장부가 있는 금고를 털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질 무렵, 미스터 조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미스터 조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조금 전까지 카드 게임을 즐기고 있었던 헌터 넷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컴맹 박 팀장이 키보드를 만지네? 우리가 그런 걸 처음 봐서.”
“하하…. 요즘 세상에 키보드도 못 치는 컴맹이 있다니요. ”
미스터 조의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 * *
“처음부터 관홍을 데려간 정체불명의 헌터는 미라주가 아니었습니다. 여기 있는 고을지 헌터였죠.”
강무혁의 부연 설명에 김상식은 헤드라인 한국 지부장답게 상황을 정리해 말했다.
“위장입니까? 미라주에게 덮어씌우기 위한.”
“아니요. 그저 오해입니다. 딱히 오해를 풀지 않은 탓에 그렇게 알려진 거고요.”
“그걸 저보고 믿으라고요? 중국 헌터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바보던데…….”
고을지가 작게 중얼거렸다가 강무혁의 눈초리에 입을 다물었다.
김상식이 계속 말했다.
“단장님에 대해선 소문을 여럿 들었습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수완이 좋으시다더군요. 일부러 그렇게 유도하지 않는 이상, 관홍을 데려간 자들이 미라주라고 중국 헌터들이 과연 속았을까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건 오해였습니다.
“하? 어떻게 하면 아이언윌이 미라주라는 오해가 생기는 겁니까? 그것도 참 재주네요.”
“그러게요.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랄 수 있겠죠.”
강무혁은 말하는 끝에 고을지를 흘끔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고을지는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김상식이 물었다.
“황룡 길드와 미라주 그리고 북한산 게이트. 이게 어떤 식으로 엮인 겁니까? 용건보다 상황을 먼저 밝히시는 걸 보면, 뒤에 말할 용건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뻔한 스토리입니다. 북한산 게이트의 원흉이 미라주라는 혐의점을 발견한 제가 관홍에게 연락했습니다. 그 사건에서 찾아낸 증거가 황룡 길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까요.”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건 밝히기 곤란합니다. 대신 관홍이 직접 움직일 정도의 사안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죠.“
“어이가 없군요. 증거가 뭔지도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믿으라면, 단장님은 믿겠습니까?”
“안 믿겠죠. 그래서 커맨더 자격으로 자릴 마련한 겁니다.“
김상식은 강무혁이 예상보다 훨씬 고단수임을 깨달았다. 강무혁은 애초에 헤드라인과 자리를 마련하려는 이유만으로 커맨더 이름을 판 게 아니었던 것이다.
‘정보의 신빙성을 증명하기 곤란한 부분을 연맹의 커맨더 직위로 대신하겠단 거군. 세계헌터연맹의 커맨더가 헛소리를 할 리가 없다는 식으로 말이야.’
무논리의 논리. 그것은 견강부회와는 달랐다. 이치에 맞지 않은 논리로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커맨더의 존재 자체가 논리였으니까.
‘아니, 만능열쇠라고 해야 하나? 그 자리가 주는 신용은 연맹이 보증하는 셈이니까.’
그렇다면 이 논리를 타파할 방법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강무혁이 커맨더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강무혁의 용건도 모르는 상태이지만, 황룡 길드와 미라주 그리고 연맹이 엮인 일은 분명해 끼어들어서 좋을 게 없어. 정보를 독점한다는 헤드라인의 원칙에서도 이미 벗어난 상황이고, 우린 정보상이지, 일을 대신하는 흥신소가 아니야. 곤란한 상황이 되기 전에 잘라버리는 게 최선이다.’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연수해온 연맹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김상식은 강수를 던지기로 결심했다.
‘강무혁은 헌터가 아니다. 커맨더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진짜 커맨더라도 상관없어. 그는 헌터계 중심 무대에 오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커맨더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거야. 신임 커맨더가, 그것도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 연맹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리 없어. 그렇다면 커맨더라는 지위는 무시하고, 일단 아이언윌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 된다.‘
마침 강무혁이 그 약점을 만들어줬다.
칭다오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김상식이 입을 열었다.
“참 재밌는 얘기지만, 뒷얘기는 듣지 않겠습니다. 단장님은 커맨더라고 주장하시지만, 결국 이번 일은 아이언윌이 벌인 짓 아닙니까? 이 정도면 저흰 커맨더 체면은 세워드린 셈입니다.”
“아쉽군요. 아직 본론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아쉽지 않게 이 정보는 저희가 구매하겠습니다. 관홍이 아이언윌에 있다는 정보와 칭다오에서의 전투가 미라주가 아닌 아이언윌의 소행이라는 정보. 이걸 제외하고는 저희도 아는 정보이니 나머진 딱히 가격을 책정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그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시는 비용을 청구하시면 저희가 사들이죠. 비용을 산정해 적정한 가격이면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정보를 돈 받고 넘긴다는 건 그쪽에서도 돈 받고 팔 수 있다는 소리 아닙니까? 사양하죠.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미 들은 정보를 지워버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만.”
“헤드라인에서 파는 정보는 직접 얻었거나 돈으로 산 것만 취급하지 않습니까? 돈거래가 없으면 정보 거래도 없다는 게 원칙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NFS(Not for sale, 비매품) 파일에 올려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죠.”
김상식은 칭다오 사건을 언급해 간을 본 뒤 속셈을 드러냈다.
“그리고 원래 정보 거래 계약서에 적힌 사항입니다만, 거래하지 않으시겠다니 따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어떤 걸 말입니까?”
“NFS로 묶인 정보가 새어 나갈 경우에 관한 약관입니다. 저희 쪽 출처라는 게 확실해질 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조항입니다. 아시다시피 입이 많으면 새는 구멍도 많아지거든요. 여태껏 이 조항에서 저희 헤드라인의 잘못인 적은 1%에도 못 미칩니다. 즉, 아이언윌 쪽에서 샐 수도 있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죠.”
강무혁은 김상식이 하려는 말의 속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귀찮게 하면 칭다오 사건의 전말을 풀 수도 있다는 협박이로군.’
그렇게 되면 아이언윌은 황룡 길드, 구동존이 동맹, 천명 길드, 백귀 일파로부터 공공의 적이 될 터였다.
소속 국가는 다르지만, 이웃 나라의 대형 길드로부터 찍힌다는 건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 될 게 분명했다.
강무혁은 쓰게 미소 지었다. 김상식은 그 미소가 불편해졌다.
“김상식 지부장님, 저하고 취미가 같으시네요.”
“취미요? 갑자기 무슨…….”
“저도 이런 거 참 좋아하거든요. 살 떨리는 협상 말입니다.”
“알아들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할 말 다하셨습니까?”
“예.”
“이제 제 턴이로군요.”
“뭔가 하실 말씀이 더 남으셨습니까?”
“말로는 안 되니 실력행사를 해야죠.”
강무혁이 가슴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김상식의 뒤에 있던 비서가 눈을 부릅뜨며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엔 어느샌가 총이 들려 있었다. 헌터라면 위협이 되지 않을 무기였지만, 일반인에게 총기는 치명적이었다.
고을지가 만약을 대비해 방어막을 치는 사이 강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무언가를 꺼냈다.
“전화 한 통만 합시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스마트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