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354)
제354화
#354. 의심이 귀신도 낳는다지 않던가.
아일라는 세계헌터연맹의 단 네 명뿐인 커맨더 중 한 명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마음을 다스린 후 입을 열었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엘프도 마찬가지인가 봐요. 하도 당해서 이젠 놀랍지도 않네요. 진짜 그렇게 해달라고요? 아니요. 그쪽과 안면은 없어요. 대신 엑히사르 의장이나 그 외 고위급 몇 명이 그쪽과 거래를 한 적이 있죠. 자연히 저도 한쪽 발을 담근 적 있고요. 예…. 예…. 아니요. 전화 한 통 넣는 거야 어렵지 않아요. 대신 이거 하나는 알아둬야 해요.”
아일라는 심호흡을 하곤 말을 이었다.
“커맨더는 연맹 최고 무력의 중심이에요. 강 단장님이 경솔한 짓을 할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다크 사이드를 비롯한 세력들은 모두 커맨더가 움직이는 걸 예의주시할 거라는 것. 자칫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거죠. 1, 20분 내로 연락이 가게 손 써둘게요. 행운을 빕니다.”
아일라가 통화를 끝내자 곁에 있던 알렉스가 물었다.
“C004가 뭐라고 합니까?”
밤늦은 시각이었으나 중요 안건이 생겨 밤샘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강무혁이 전화했으니 또 무슨 일을 저지르려나 싶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탁을 하네요?”
“청탁이요?”
“다크 사이드를 통해 헤드라인의 최고 수뇌부에게 전화 한 통 달라고요. 한국 지부장한테.”
“이번엔 다크 사이드입니까?”
알렉스가 한숨을 쉬며 덧붙여 물었다.
“무슨 일이랍니까?”
“그건 말 안 해주던데요?”
“아니, 다크 사이드와 헤드라인을 찾을 정도의 일이면 작은 일이 아닐 텐데. 그걸 안 물어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일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커맨더가 하는 일은 본인이 말해주지 않는 한 강제할 수 없는 게 불문율인 거 모르나요?”
“말 그대로 불문율이지, 무조건 지켜야 할 연맹 법규는 아니잖습니까.”
“그 정도 권한 보장도 없으면, 커맨더 짓 못 해요. 알렉스도 알잖아요. 커맨더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인지.”
알렉스는 C004 강무혁을 비롯해 선임 커맨더들의 행적을 떠올리곤 핼쑥해져서 말했다.
“그, 그건 알지만…. 그래도 그냥 내버려 두는 건 좀…….”
“그건 이따가 말하고 우선 강 단장님 일부터 처리하죠. 알렉스, 다크 사이드 쪽 사람 예전에 만난 적 있죠?”
“예. 예전에 메데인 패밀리 문제로 만났었습니다.”
“메데인? 커맨더 랜서가 주도했던 작전이로군요?”
“예.”
“유로피언 랜서가 아메리카 쪽 일을 처리하는 경우는 드문데. 별일이네요?”
“그쪽 마약이 유럽에도 문제를 일으켰었거든요.”
“아아, 그래서 대서양을 건넜구나? 아무튼, 그쪽에 연락해서 헤드라인 지부장에게 협조를 구한다고 전해주세요.”
알렉스는 그리 내키지 않는 어조로 말했다.
“일은 같이했었지만, 서로 부탁 들어줄 사이는 아닙니다. 저희 말에 따라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강 단장님이 딱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유리 코즐로프가 잘 있냐고 안부를 묻던데요. 러시아에서 신세 많이 졌다고.”
“러시아에서?”
유리 코즐로프는 세계헌터연맹의 러시아 지부 연락관이었다. 또한, 나제진스키의 비극을 겪은 희생자 가족이었다.
그는 당시 연맹의 눈을 속이고, 몬스터인 우푸망바우를 이용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인질로 삼아 차르 길드와 폭군 이고르 두드닉을 충돌시키는 음모를 꾸몄었다.
“감옥에 가둬둔 배신자의 안부를 물을 리는 없고. 무슨 다른 뜻이 있습니까?”
“천리안이요. 그때 코즐로프를 꿰어낼 때 미끼로 천리안을 들먹였었잖아요. 그걸 헤드라인을 압박할 재료로 쓰라던데요?”
알렉스는 단숨에 강무혁의 힌트를 이해했다.
암흑세계의 최고 정보상 헤드라인은 이 분야에서 두려울 게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정보의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않았다. 만인의 적이 되길 피하는 전략이었다. 대신 만인의 아군이 되기를 원했다.
누구와도 척을 지지 않고 원칙을 세워 거래한다.
이것이 헤드라인의 모토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이 되고 싶지 않은 단체가 바로 세계헌터연맹이었다.
특히 연맹의 정보 시스템 천리안은 그들로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헤드라인처럼 폭넓은 정보망을 지니진 않았으나 한 번 찍은 대상에 대해선 아침에 입은 속옷 색깔까지도 털어버린다는 무시무시한 시스템.
정보를 다루기에 정보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헤드라인으로서는 연맹을 거스르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했다.
물론 천리안이 예지 능력을 지닌 헌터라는 걸 헤드라인은 모르고 있었다.
알렉스는 아일라를 대신해 음모와 배신, 정략과 협상이 일상인 현장에서 뛰던 헌터였기에 이것을 어떻게 써먹을지 바로 머릿속에 떠올렸다.
“알겠습니다. 연락해 보죠.”
알렉스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를 냈다.
“한국 지부장이 김상식이라더군요. 연락 갈 겁니다.”
“말해둘게요.”
아일라는 강무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곤 알렉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좀 알아봐 줘요. 아니,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에서 일어나는 일 좀 파악해 주세요. 혹시 현장 조사관으로 당장 한국에 보낼 사람이 있나요?”
“레이븐이 지금 임무가 없습니다.”
“레이븐은 강 단장님을 처음 봤을 때부터 싫어하던 것 같은데, 문제없을까요?”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압니다. 그리고 연맹 커맨더가 됐으니 C004는 그의 상관이나 마찬가지죠.”
레이븐은 아일라가 북미를 떠날 때면 알렉스와 함께 그녀를 항상 수행하는 2인조 중 하나였다.
그는 아일라가 강무혁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일라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었다.
레이븐의 특성은 ‘자연과 소통하는 자.’
엘프식으론 ‘드루이드’였다.
드루이드는 엘프의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여러 사정이 얽혀 있었지만, 레이븐이 아일라를 따르는 건 숙명과도 같았다.
그랬기에 아일라는 레이븐을 신뢰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C004와 친해지라고 해야겠네요. 레이븐을 파견할게요.”
“예. 그렇게 알리겠습니다.”
알렉스는 레이븐이 강무혁과 가까워지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한 줄기 기대를 걸 수 있다면, 그가 아일라의 충신이라는 것이었다.
‘아일라 님의 명령이라면 몬스터하고도 친구 먹을 녀석이긴 하지.’
* * *
잠시 후, 김상식은 헤드라인의 최고위원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듣기만 하게.
“…….”
-연맹의 새로운 커맨더, 강무혁이라고 했던가? 일단 협력해 줘. 미라주와 같은 테러범들은 우리도 골치 아픈 놈들이니까. 정보 장사도 일단 세상이 망하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놈들은 망하라고 비는 놈들이니…! 크흠, 내가 너무 열을 올렸군. 하여간 협조하고. 대신 그와 관련된 모든 인물에 대해 파악해두게. 공짜로 일해주지 말라는 걸세. 그 정도 지분은 몰래 요령껏 챙겨 둬. 무슨 말인지 알겠지?
“…….”
-좋아. 사안에 따라서 이번 일은 비공식적일 수도 있고, 연맹과의 공동 전선이 될 수도 있네. 이를 잘 판단해서 보고하게나.
“…….”
-이만 끊지.
별다른 이견 없이 상부의 명령을 묵묵히 듣기만 하고 있던 김상식은 전화를 끊기 무섭게 태세를 전환했다.
“그래서 강 단장님이 원하시는 게 뭐라고 하셨죠?”
“중국. 베이징. 황룡 길드와 거래하는 지부장이 따로 있죠?”
“물론이죠. 중국은 한국과 달리 이쪽 세계 경로가 워낙 활발하니까요.”
“이어링 길드에 박재준이라는 헌터가 하나 있습니다. 그쪽 통해서 그 사람 정보 하나 흘려줬으면 합니다.”
“어떤 정보입니까?”
“박재준은 황룡 길드가 한국 헌터계를 견제하기 위해 매수한 우중도 출신 범죄자라고요.”
“그게 다입니까?”
“추가로 박재준의 당시 담당자는 현 황룡 길드 작전부장 자오커지이라는 것도요.”
“그래도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요?”
“더 이상 뭐가 필요합니까?”
“미라주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리려고 했던 게 아니었습니까? ”
“그건 너무 노골적이죠. 나머진 그쪽에서 알아서 채워 넣을 겁니다. 아? 여기서 말하는 그쪽이라는 건 황룡 길드만이 아니라 구동존이, 천명까지 포함해서입니다.”
“백귀는요?”
“백귀는 내버려 둬도 기를 쓰고 알아낼 테니 그냥 두셔도 됩니다.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는 자니까요.”
김상식은 강무혁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냈다.
“우리 집 구멍을 남이 채우면 빈틈이 많은 법인데…. 그걸 원하시는 거군요. 구석으로 몰진 않겠다는 의도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아, 저희가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오해하진 마십시오. 정보를 뿌리려면 역공작을 하는 의도를 저희도 파악하고 있어야 그 수위를 조절할 수 있어서 묻는 겁니다.”
“정답입니다. 황룡 길드가 적당히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야 이쪽이 표적이 될 일이 없으니까요.”
강무혁은 황룡 길드가 노릴 제1의 적이 구동존이나 천명이길 바랐다. 중국 최고 길드가 아이원윌에 시선이 쏠리는 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될 터였다.
“참, 잊을 뻔했는데. 더해서 관홍을 구한 미라주의 비밀 요원이 한국으로 향했다는 정보도 흘려주십시오.”
“그러니까 그 비밀 요원이…….”
“예. 접니다.”
강무혁의 시선에 고을지가 손을 들었다.
“신상은 공개하지 마시고요.”
“그건 당연한 거긴 한데…….”
김상식은 강무혁의 이번 의도만큼은 도통 읽어낼 수가 없었다.
‘관홍을 구한 미라주가 한국으로 갔다? 만약 황룡 길드가 미라주와 관련이 있다면, 당연히 거짓임을 알 게 아닌가. 그렇다면 용의자는 관홍과 친분이 있는 아이언윌이 의심받을 텐데? 구동존이나 천명은 알아봤자 손 쓸 게 없고. 백귀 역시 마찬가지지. 정말 모르겠군.’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김상식도 이 부분에 관해 물었으나 강무혁은 시원스럽게 답을 해주지 않았다. 도리어 헤드라인이 그 정도도 모르냐는 말투로 되묻자 자존심 때문에라도 더는 보채지 못했다.
강무혁은 고을지를 보며 생각했다.
‘관홍 구출 때 고을지 헌터가 미라주라고 거짓말하는 바람에 곤란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적들에게 혼선을 주기에 아주 좋은 미끼가 되겠어.’
강무혁의 의도를 김상식이 짐작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강무혁이 공작을 걸고 있는 대상은 미라주의 수장 일루전이기 때문이었다.
김상식은 한국에 미라주가 침투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알고 있었으나 일루전이 직접 왔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이 정보의 부재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황룡 길드가 통째로 미라주에 넘어갔다고는 볼 수 없어. 그랬다면 관홍 같은 사람은 예전에 제거됐겠지. 마경에서도 이빨을 드러냈을 테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관계없는 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강무혁은 황룡과 미라주가 협력 관계이고, 일부 영역을 공유하는 것 혹은 미라주가 황룡에 기생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기생했다면 머리와 몸통이 따로 놀 수밖에 없어. 소통이 잘 될 리가 없다. 서로 완전히 믿지도 않을 거고. 그 빈틈에 고을지 헌터라는 정을 박아넣어야지.’
틈새가 더욱 커질 수 있도록.
황룡 길드는 미라주가 관홍을 채간 것에 혼란스러워할 터였다.
반대로 미라주는 황룡 길드의 의심에 환장할 것이고.
황룡이 데려오지도 않은 관홍에 대해 미라주에게 물었을 때 아니라고 하면 황룡은 그걸 믿어줄까?
‘적들의 내부 사정을 확신할 순 없지만.’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
‘의심이 귀신도 낳는다지 않던가. 꼬인 인간들끼리 일을 더 꼬아놓았으면 좋겠군.’
이 중에서 가장 꼬인 인간이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