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356)
제356화
#356. 허튼수작하지 마. 확 깨버릴라니까.
다크 사이드의 블랙 마켓 한국 지부 보안팀장.
헌터 유승기가 가지고 있는 직함이었다.
그는 A+랭크임에도 몬스터를 잡는다든가, 빌런을 잡아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사명감 자체가 없었다. 돈 욕심도 많지 않았다. 대신 권력욕이 가득했다.
몬스터를 잡는 것도, 돈을 모으는 것도 이 권력의 도구로 쓰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그래서 다크 사이드가 손을 내밀었을 때 냉큼 잡았다.
좁은 한국 땅에서 부대껴봤자 슬레이어 길드를 뛰어넘을 순 없었다. 하지만 다크 사이드라면 그 이상의 힘도 가능했다.
다크 사이드.
북미를 기반으로 하는 어둠의 조직이지만, 그 영향력은 전 세계 곳곳에 미쳤다.
남들은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라고 하지만, 뱀 머리보다 좋은 게 용 꼬리라는 게 유승기의 생각이었다.
뱀은 아무리 용을 써도 뱀이지만, 용은 용이었다. 꼬리에서부터 올라가면 적어도 용 날개 정도는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날개 정도 되면 슬레이어도 한 수, 아니 두, 세 수를 접어줘도 모자랄 터였다.
그렇게 모든 게 권력의 수단이고, 권력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자신의 모습을 한 가짜를 봤을 때 처음으로, 권력이 아닌 순수한 분노에 폭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이 새끼가아!”
“어처구니가 없네? 화를 내야 하는 건 나야. 네가 아니라.”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다니. 당장 저 주둥이를 털어버리고 싶었다.
유승기는 검을 뽑았다. 상대도 마주 검을 뽑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빈손이었는데. 저 검은 또 어디서 난 거야? 그것도 내 검과 같은걸. 이것도 스킬인가? 아니면 아이템?’
누구나 할 수 있는 짐작이었으나 모습이나 아이템을 복사하는 스킬이나 아이템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기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부당함에 집중하느라 유승기는 본질을 보고 있지 못했다.
‘도플갱어 템으로 검까지 복사하긴 했는데, 싸우면 당장 들통날 거야.’
미스터 조는 유승기를 따라 무기를 겨누며 연기를 이어갔지만, 속으론 난감해하고 있었다.
도플갱어 특성을 가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오랜 세월 모아 게이트 내의 각종 자원을 결합해 만든 위장 아이템.
이른바 ‘도플갱어 패브릭’이라 불리는 아이템은 대상의 겉모습만 따라 변할 수 있었다.
검과 충돌하면 바로 변신이 풀릴 게 분명했다.
그녀는 다른 방법을 사용해 싸움을 피하려 했다. 대책은 이미 세워둔 바 있었다.
“잠깐. 이거 생각해보니까 억울하잖아? 내가 진짠데. 싸워서 증명한다고? 이건 자존심 상하는 문제라고.”
“자존심? 싸워서 이기면 해결될 문제지. 왜? 자신 없나? 네 말대로라면, 넌 유승기잖아. A+랭크 헌터가 싸움을 피해? 웃기는군.”
“꼭 켕기는 놈들이 욱해선 칼을 들어요. 당당하면 그럴 일이 없지 않나?”
미스터 조의 말에 유승기의 부하들이 수군거렸다. 대체적인 여론이 이성적인 미스터 조의 발언에 쏠리고 있었다.
유승기는 그들 반응에 당황해하며 고함을 질러 윽박질렀다.
“이 자식들아! 지금 저놈 말에 넘어가고 있는 거야! 내 당장 저놈을 때려눕히고 내가 진짜라는 걸 증명하지.”
“난 싸울 필요도 없이 내가 진짜라고 증명하지.”
미스터 조는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유승기가 움찔했다.
“그, 그건…….”
“이봐, 가짜. 너 이거 있어?”
유승기가 품을 만졌다. 있어야 할 게 없었다.
‘언제……?’
미스터 조는 지갑을 열어 안에 있던 신분증을 헌터들에게 내밀어 보였다.
“주민등록증, 헌터증. 이래도 내가 유승기가 아니야?”
미스터 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까 업어치기할 때 빼낸 게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군. 후훗.’
미스터 조가 기습적으로 유승기의 손목을 잡아 던진 건 단순히 변신을 위한 정보를 스캔하려는 이유만이 아니었다. 그사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해줄 재료도 소매치기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저, 저건 가짜야!”
유승기가 외쳤다. 미스터 조가 비꼬아 대꾸했다.
“그럼, 진짜가 너한테 있겠네? 어디 한번 꺼내 봐. 진짜 신분증.”
있을 리가 없었다. 소매치기당했으니까.
유승기는 그 부분을 짚어 말했다.
“네가 훔쳐 갔지? 아까 전에 날 던졌을 때!”
“방금 이거 가짜라며? 근데 이젠 소매치기야? 앞뒤 말이 꼬이는 걸 보니 당황했나 봐? 역시 가짜의 바닥이 드러나는 건가?”
둘의 대화가 진행될수록 헌터들은 누가 진짜인지 헷갈렸다. 겉모습만 보면 전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무기 역시 같은 걸 들고 있었고, 복장도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신분증이 나오니 저쪽이 진짜 같다가도, 소매치기 당했다며 길길이 날뛰는 쪽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들 생각해 봐. 자기가 진짜 A+랭크면 소매치기를 당했겠냐고.”
미스터 조의 말에 헌터들의 여론이 약간 기울었다. 유승기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싸우자는 거 아니냐? 스킬까지 모두 베끼진 못했겠지. 결국, 전투 중엔 드러나게 되어 있어.”
유승기가 자신 있게 몰아붙이자 저울이 다시 그에게로 쏠렸다.
“맞아. 싸우면 되잖아. 그게 헌터 아니야?”
“A+랭크라면 이기겠지. 스킬 쓰다 보면 누가 진짜인지 밝혀지겠고.”
“팀장 전투 스타일은 우리가 잘 알잖아? 붙어보라고 하자.”
“유승기 대 유승기. 빅매치다!”
마지막은 본질에서 벗어난 발언이었으나 헌터답게 싸워서 증명하라는 여론이 우세해졌다.
미스터 조는 한숨을 쉬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안타깝네.”
“흥! 끝까지 자기가 진짜라고 우길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 그쪽 모두가 너무 안타깝단 소리야.”
“무슨……?”
“이제 효과가 나타날 때가 됐는데?”
“!!”
미스터 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승기는 몸이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른함이 몰려왔다. 급히 마나를 일으켜 저항하려 했다. 그러자 명치에 따끔함이 느껴졌다.
유승기는 이것이 무슨 증상인지 바로 눈치챘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굴렀던 헌터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을 증세였다.
‘마나홀이 손상을 입었다고?’
비단 이런 현상은 유승기만 겪는 게 아니었다.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던 헌터들도 모두 같은 증세를 느끼고 있었다.
문득 유승기는 이 증상이 왜 생겼는지 깨달았다.
“아까 연막이…….”
“맞아. 독이야. 내가 도망치려고 던진 줄 알았지? 미안하지만 내가, 이 좁은 복도에서 연막탄 하나로 빠져나갈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서. 참고로 그 독에 중독된 상태로 마나를 쓰면 명치가 따끔할 거야. 곧 있으면 온몸이 근질거릴 거고. 전신으로 독이 퍼진다는 증거지. 경고하는데, 섣불리 마나를 썼다간 헌터증 반납해야 할 거니까 함부로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미스터 조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유승기와 같은 외모, 같은 목소리였으나 조금 전과는 다리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몇몇 헌터는 벌써부터 여기저기 간지러운지 몸을 베베 꼬고 있었다.
유승기는 다시 마나를 쓰려고 시도했으나 다시 명치가 따끔해져 오자 곧바로 포기했다. 상대 말마따나 마나를 쓰다가 병신이 되면 자신의 꿈도 수포로 돌아갈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침입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는 지원이 올 시간을 끌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그, 그런데 왜 변신을 했지? 그런 얄팍한 수를 써서 도망치는 건 처음부터 어려웠을 텐데?”
“왜긴 왜야? 독이 퍼질 시간을 번 거지. 처음부터 변신해서 도망칠 생각 없었어.”
“독을 해독할 방법은?”
“자, 여기. 해독제.”
미스터 조가 해독제가 든 병을 바닥에 놓았다. 유승기가 달려들 낌새를 보이자 그녀는 병 위에 발을 올렸다. 당장에라도 깨트릴 태세였다. 유승기는 감히 덤비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허튼수작하지 마. 확 깨버릴라니까.”
미스터 조의 위협에 유승기가 의심을 담아 물었다.
“그게 해독제인 줄 어떻게 믿지?”
“거래하자. 해독제 줄 테니 고객 리스트 내놔.”
“뭐?”
“여기서 돈세탁하는 애들 꽤 되잖아. 그놈들 리스트 내놓으라고.”
“하? 미친놈. 그런 고급 정보를 우리가 손댈 수 있을 것 같나?”
“그럼, 누가 알고 있지?”
유승기가 천장을 가리켰다.
“위면…. 헤드라인?”
“불가능하다는 거 알지? 우리 목숨 걸어도 어려워.”
“블랙 마켓은 다크 사이드 직속 아니야?”
“돈도 정보야. 그쪽 문제는 헤드라인이 깔끔하지.”
“그럼, 여기 전산실은…….”
“그냥 덫이고. 거기 걸린 게 너고.”
유승기가 비웃는 것과 반대로 미스터 조는 더욱 해맑게 웃었다.
“지금 상황은 누가 덫에 걸린 거지?”
“젠장!”
“어쩔 수 없네. 걸린 이상 더는 버티기 어려울 테니, 난 이만 퇴장할게.”
“자, 잠깐! 헤독제는….”
유승기가 뭐라 하기도 전에 미스터 조는 해독제를 발로 차며 몸을 돌렸다. 그는 헌터들에게 침입자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라고 명령했지만, 이를 따르는 자는 없었다. 그들은 한순간 해독제에 시선을 뺏겼다.
“정신 안 차려?! 그놈 잡아! 위에서 노하면 너희 목숨 어차피 없어!”
유승기가 다그치고 나서야 헌터들도 번쩍 정신이 들었으나 이미 늦은 때였다.
침입자가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한 스크럼은 깨져 있었고, 침입자는 너무나도 빨랐다.
더해서 헌터 짓 때려치우고 싶지 않은 이상 독 때문에 마나를 끌어 올리지도 못하니 미스터 조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단숨에 복도를 돌파한 미스터 조는 보안 구역 출입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보이는 족족 CCTV를 부수며 사람이 많은 경매장으로 빠져나갔다.
뒤늦게 헌터들이 쫓았으나 미스터 조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 또다른 누군가의 모습으로 변신했으리라 짐작했지만, 일일이 대조해가며 찾긴 어려웠다.
일단 블랙 마켓 출입 인원들은 제각기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신분을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비밀 엄수라는 블랙 마켓의 세일즈 포인트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물론 가면을 고르는 시점에서 신분이 다 노출됐으나 이를 고객에게 들키는 것과 비밀로 묻어두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결국, 유승기는 어느 방법에도 손쓰지 못하고 위쪽의 처분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젠장, 쥐새끼 하나 때문에 커리어가 개박살 나는군.”
경쟁자들 제끼고 임무를 하나하나 완수해내면서 한국 지부 보안팀장에까지 올랐다. 조금만 더 하면 아시아 총괄 쪽에 자리가 날 터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도 못 한 곳에서 보안이 뚫리다니. 울화통이 터질 일이었다.
“일단 출입구는 봉쇄했고. 우선 이 해독제부터 복용하고 보자. 죽으면 다 끝장이니까.”
유승기는 해독제를 보곤 인상을 구겼다. 해독제에 이상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해독제 병엔 친절하게 복용법 텍까지 붙어 있었다.
문제는 복용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50인분 해독제 만드는 법. 물 20리터, 오우거 피 1리터, 칼피온 고환 가루 300밀리, 라타푸타 겨드랑이 비늘…. X발! 모조리 X발 같은 것들만 섞는 거잖아? 이거 토하라고 먹는 건가?”
포션 재료이기는 하나 최악의 냄새와 맛을 가진 것들만 모아놓은 제조법.
게다가 병에 붙어 있는 복용법은 잔인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혼자 먹으려면 그냥 먹고, 50명이 먹으려면 이렇게 만들라고?”
유승기의 혼잣말에 주위에 있던 부하들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마음 같아선 이따위 제조법으로 만든 해독제를 먹느니 차라리 바로 원샷 때리고 싶었으나 서른 명이 넘는 부하들을 죽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혼자 먹을까 봐, 이 자식들아?! 알았어, 알았다고. 어이, 거기. 여기 적힌 재료 구해와.”
유승기는 병에 적힌 텍을 떼서 부하에게 넘기곤 이를 바득 갈았다.
‘이 새끼. 누군지 알아내기만 해 봐. 나중에 꼭 갚아준다.’
한편, 경매장 이용 고객 중 하나로 변신한 뒤 인파 속에 몸을 숨긴 미스터 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짜가 독이 아니었으면, 진짜 피바람 불 뻔했네. 휴우!’
미스터 조가 독이라고 속인 연막탄은 가짜였다.
그녀는 신체에 전혀 해는 없으나 독특한 이상 반응만을 일으키는 재료들만 모아서 독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연막탄을 만들었다.
‘원래는 진짜 독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놈이 다루기가 어렵단 말이지. 특히 고랭크한테 통하는 건 돈 먹는 하마야. 개발도 쉽지 않고.’
헌터에게 통하는 독은 제조하기도 힘들고, 다루기도 어려웠다.
표범희처럼 따로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선 사고가 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헌터들도 사냥하면서 독을 사용할 때는 해독제 등의 충분히 안전장치를 확보한 뒤에 사용했다.
그래서 미스터 조는 독처럼 보이는 가짜 독을 만든 것이다. 거기에 적절한 상황과 리얼한 연기력이 뒷받침되면 없던 독도 생기는 마법이 일어난다.
‘지금쯤 출입구 경계는 강화하겠지? 빠져나가지 못하게. 어떻게 빠져나갈지 생각 좀 해봐야겠군.’
먼저 그녀는 탈출 계획을 새로 짜기로 했다. 위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 * *
중국 베이징.
황룡 길드의 작전부장 자오커지는 뜻밖의 정보에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생각지도 못한 두통거리가 생긴 탓이었다.
‘부길마가 게이트에서 나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관홍 문제가 점점 커지는구나? 그때 무조건 죽였어야 했는데.’
자오커지는 오늘 새로 입수한 정보 때문에 생각이 복잡했다.
‘이 시기에 박재준이 헌터수사청 감시망에 들어갔다? 그냥 단순히 이전 범죄 경력 때문이라면 몰라도 지금 시기가 너무 공교로워. 그동안 조용했던 것이 이제야 수면 위로 올라오다니.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칭다오에서 미라주가 관홍을 데려갔다. 자신들과 사전에 협의도 없이.
그것만으로도 문제인데, 하필 데려간 곳이 한국이었다. 거긴 미라주가 새롭게 진출하려는 곳이라는 걸 자오커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한국 진출에 일루전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관홍을 확보한 건 미라주다. 박재준은 우리가 제공한 미라주의 지원 병력 중 하나이고.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자오커지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