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359)
제359화
#359. 어째서 그걸 아는 자가 나밖에 없는가.
구자천은 백호 길드를 퇴단한 이후 실로 오랜만에 경기도 모처에 마련한 별장을 찾았다.
한동안 비워뒀던 곳이었으나 상전을 모시기 위해 수리와 청소를 끝냈던 장소였다.
겉으로는 평온했으나 곳곳에 자리한 헌터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하고 있었다.
구자천이 별장 본채로 들어가자마자 거실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거창한 자리 필요 없다고 했는데.”
거실에는 갈색 곱슬 머리카락의 남자가 흔들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구자천은 그에게 다가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래도 일루전 님을 아무 데나 모실 순 없죠.”
“아무튼, 거처를 마련하느라 수고했어.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지? 뭔가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어?”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그거야 자주 듣는 얘기고. 우리 조직이 환영받는 곳이 있나? 죄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그래서 어느 쪽 꼬리가 밟힌 거야?”
“박재준입니다.”
구자천의 보고에 일루전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는 친군데, 조심성이 없단 말이야. 내버려 두면 어디까지 피해가 예상되지?”
“황룡 길드에서 오면서, 자오커지가 그에게 한국 내 조직망을 짜도록 지시했었습니다.”
“다 걸린다는 거네? 입 가벼운 사기꾼한테 그런 중요한 일을 맡기다니. 자오커지가 관홍에게 밀려 이인자, 삼인자 소리 듣는 이유가 있었군.”
“박재준은 사기 칠 때 피라미드 조직이나 종교 단체를 대규모로 설립해 운영한 경험이 많습니다. 조직 관리만큼은 치밀해서 이런 부분이 반영되어 일을 맡았을 겁니다.”
구자천이 자오커지의 인사에 대한 의견을 말하자 일루전은 피식 웃었다. 그도 자오커지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오커지가 관홍만큼의 평가는 듣지 못한다 해도 음흉하기로는 누구 못지않아. 이번 일은 조직 관리보다 보안이 더 중요한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런 놈이 괜히 박재준을 선택했겠나? 그건 구자천 자네도 알잖아?”
“제 생각을 물으시는 거라면, 자오커지가 박재준을 택한 건 조종하기 편해서일 겁니다. 팔랑귀에 입은 가벼우니 추후에 저희 미라주와 반목하게 되면, 이 부분을 노렸겠죠.”
“방파제에 구멍을 뚫고 막아둔 격이군. 틀어지면 빼내서 무너트리려고.”
“댐을 무너트리는 건 실금 하나, 구멍 하나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이 구멍을 사용한 건 자오커지가 아닙니다.”
구자천이 자오커지의 음모를 말할 때도 평온했던 일루전이었지만, 제3의 등장인물이 언급되자 관심을 보였다.
“누구지?”
“헌터수사청이 냄새를 맡았습니다.”
“범죄자 떨거지나 잡는 개들?”
일루전은 자신이 테러리스트라는 것도 잊고 물었다. 아니, 그는 테러리스트라는 자각 자체가 없었다.
구자천도 이를 알고 있었으나 굳이 입에 담진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김명준이라는 놈이 붙었습니다.”
“김명준은 또 누구야?”
“그도 우중도 출신입니다.”
“박재준과 같은 과로군?”
“좀 더 급수가 높은 범죄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감방 동기가 찾아간 건가? 그래서 헌터수사청도 붙은 거고?”
“김명준은 그런 것 같지만, 헌터수사청은 다른 이유로 온 것 같습니다.”
“무슨 이유?”
“박재준이 위장 중에도 사기를 몇 차례 친 것 같습니다.”
“하?!”
일루전은 실소를 터트렸다.
그는 전 세계를 돌면서 이런저런 일을 다 겪었었다. 하지만 사기꾼이 신분 세탁하고 들어와서 또 사기 치다가 조직의 꼬리가 밟히는 일은 또 처음이었다.
차라리 세계헌터연맹이나 유럽 헌터 연맹인 유로피언 헌터 어소시에이션(EHA), 아니면 적어도 슬레이어 길드가 나섰다면 이해라도 했을 터였다.
눈치를 살피던 구자천이 말했다.
“잠적하라고 명령할까요?”
“교도소 동기에, 헌터수사청이라…. 당장 보는 눈이 많을 텐데. 뒤를 밟히면 바로 오히려 곤란해. 그냥 처리해버려. 원한 관계로 위장해서.”
“예. 실행부대에 명령 넣겠습니다.”
“그럼, 박재준 일로 끝인가?”
“죄송하지만, 일이 더 남았습니다.”
“오늘은 죄송할 일이 많군, 구자천.”
일루전의 목소리 톤이 바뀌자 구자천은 더욱 머리를 조아리며 빠르게 말했다.
변수도, 위기도 많이 겪어본 일루전이었으나 실패를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일루전은 그 실패가 연속되면 관리자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미라주에서 관리자는 큰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동시에 파리목숨이기도 한 자리였다.
“송구합니다만, 황룡 길드는 제가 컨트롤할 수가 없어서…….”
“황룡 길드? 그쪽은 왜?”
“관홍이 황룡 길드 내의 저희 조직에 대해 눈치챈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
“하하하! 관홍! 하하하하! 역시 난 놈이군. 그걸 어떻게 알았다지?”
구자천은 분노를 예상하였으나 일루전은 되레 크게 웃었다. 비웃는 게 아니었다. 정말 기분이 좋아 폭소를 터트린 것이었다.
구자천은 일단 일루전의 노기를 피한 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어서 보고했다.
“연구소 쪽 재무자료에서 뭔가 이상한 걸 찾아냈었나 봅니다. 그걸 파고드는 과정에서 개폐기 건이 드러났고, 그에 관련한 인물들을 조사하다가 충돌한 것 같습니다.”
“하여간 그놈의 돈이 문제군. 이건 완전히 감추기가 힘드니, 원. 그래서 어떻게 처리했다는가. 말하는 걸 보면 실패한 것 같은데?”
“산둥성으로 도망쳤답니다.”
“산둥성? 관홍 그놈도 어지간하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길 잡아먹으려는 놈들이 가득한 곳으로 가다니. 그러면 관홍은 누구한테 잡혔지? 천명? 구동존이? 황룡?”
“그게…. 미라주랍니다.”
일루전은 눈을 크게 뜨더니 귀를 후벼팠다.
“내가 잘못 들었나? 누구라고?”
“미라주입니다.”
그는 이번엔 자신의 번역 아이템을 만지작거렸다.
“이게 고장 났나? 내가 따로 관홍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던가? 아니면 구자천 자네가 일단 병력을 움직이고 본 건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잖나?!”
조금 전까지 기분 좋던 일루전은 사라졌다.
구자천은 몸을 떨었다. 항상 당당했던 그였지만, 노기를 분출하는 주인 앞에선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는 딱딱 부딪치는 이빨을 겨우 악물고 말했다.
“미라주라고 주장한 괴한들이 관홍을 탈취해 한국으로 갔다고 합니다.”
“괴한? 어떤 놈들이 저지른 거야? 부바글라인가? 아니면 도리스?”
“저흰 절대 일루전 님의 명령 없인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은 뭔가 음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황룡 길드에서 자작극을 펼친 것일 수도 있고요.”
“자작극?”
일루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황룡 길드를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었다. 서로 필요에 의해 한배를 탔지만, 언제든 서로가 서로를 버릴 수 있는 관계였다. 특히 황룡 길드의 입장에선 테러리스트 조직인 미라주와 연관되어 있음을 들켜서 좋을 게 없었다.
“관홍이 구동존이 길드에 공개적으로 황룡 길드와 미라주의 관계를 떠벌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것을 의식해서 저희 미라주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속셈이 의심됩니다.”
“우리가 관홍을 데려갔다고 해서 황룡 길드의 결백을 주장하긴 어려울 텐데?”
“관홍을 쪼던 황룡 길드의 추격대가 전멸했습니다. 미라주가 같은 편이라면, 저지르지 않을 일이었겠죠.”
“하? 신장 지구에서도 그러더니. 같은 편을 죽여서 이득을 취하는 방식은 여전하군. 그래서 우리와 거리를 두겠다, 이건가?”
“저희도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황룡 길드가 어떤 식으로 배신할지 모를 일입니다. 지체했다간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수도 있습니다.”
일루전은 구자천이 말한 준비가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미라주가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마다 자신들의 무서움을 각인시키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작전. 일종의 쇼케이스였다.
“스카우트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지난번에 말한 인물 평가서는?”
“다시 분석해서 준비해 뒀습니다. 바로 올릴까요?”
“서류만 올리고, 자넨 파티를 준비해 두도록 해. 언제든 축포를 터트릴 수 있게.”
“스카우트는 역시, 직접 하실 생각입니까?”
“일반 조직원이라면 몰라도 재밌는 부분은 내가 직접 해야지.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구자천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툼한 서류철이 거실에 놓여졌다.
일루전은 서류철을 쭈욱 확인한 후 미소지었다.
‘여기도 제법 재밌는 재료가 많군.’
그는 어둑해져 가는 산속 풍경을 쳐다봤다.
황혼이 지고 있었다.
‘인류의 운명도 저것과 같지. 이 모든 것이 허상인 것을. 자신들이 어떤 무대 위에 올려져 있는지 모르는 가엾은 자들. 부, 명예, 권력 모든 게 허무할 터인데. 발버둥 쳐봤자 그것 앞에 우린 한낱 미물에 불과한데…….’
일루전의 얼굴에도 땅거미가 졌다.
“어째서 그걸 아는 자가 나밖에 없는가.”
* * *
“단장님, 이걸 한 번 봐 주십시오.”
관홍이 보낸 파일을 확인한 강무혁은 태블릿으로 전체적인 내용을 훑어봤다.
“양이 많네요? 미라주의 테러 시나리오가 이렇게 많습니까?”
“일단 다른 국가에서 벌였던 파티들, 아? 그쪽에선 테러를 파티라고 한다더군요. 아무튼, 타국에서 저지른 테러들을 기반으로 해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구색 갖추기 말고, 관홍 부장님이 생각하는 가장 확률 높은 시나리오만 골라서 브리핑 해주시죠.”
강무혁이 판을 깔아주자 관홍은 단장실 한쪽 면을 차지한 태블릿 칠판으로 가서 화면을 두드렸다.
칠판이 밝아지며 PPT 문서가 떴다. 관홍은 첫 장으로 바로 넘어갔다. 강무혁은 첫 페이지 대제목을 보는 순간 눈을 샐쭉하게 떴다.
관홍이 말했다.
“단장님이 생각하시는 최악의 게이트 사건은 무엇인 것 같습니까?”
“거기 적힌 대로 당연히 블랙 게이트죠.”
“맞습니다. 블랙 게이트가 열리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죠. 하지만 역사상 블랙 게이트가 생성된 적은 몇 번 없으니 이건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최악은 뭘까요?”
“대도시에서의 게이트 폭발 아닙니까?”
“맞습니다. 게이트 폭발로 인한 EMP현상. 도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될 사건이죠.”
관홍은 화면을 터치해 다음 장으로 넘겼다.
화면엔 과거 외국의 사례를 들어 마나 EMP 현상이 남긴 참극을 정리하고 있었다.
“단장님도 아시겠지만, 도시 내에 생성된 게이트에 대해서 각국 정부와 길드가 기를 쓰고 공략하는 건 바로 게이트 공략에 실패해서 폭발시켜야 하는 상황을 막으려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엔 공략에 실패할 경우엔 차라리 게이트가 열리도록 내버려 두고 있죠. 밖에서 싸우더라도 EMP에 의한 도시 기능 마비를 피하는 게 나으니까. 그렇게 하면 인명 피해가 클 텐데도, 사람들은 도시를 포기 못 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군요.”
“단장님 같은 분이야 무조건 사람 먼저겠지만, 중국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그게 더 싸게 먹힌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죠.”
강무혁도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서울만 예로 들어도 충분했다.
인구 1천만의 대도시. 이곳에 갑자기 전기, 수도, 가스가 끊긴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도 움직이지 못하고, 병원도 업무가 마비되고,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은행도 이용하지 못하고, 주식 시장까지 멈추면 또 어떻게 될 것인가.
당장 죽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천천히 말라 죽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어쩌면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와 죽이는 사람들보다 많은 희생자가 생길 수도 있었다.
강무혁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게이트와 몬스터를 증오했다.
강무혁은 치솟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최대한 이성적으로 상황을 살피고 말했다.
“그런데 게이트 폭발은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게이트를 폭발시키는 건 최소한 대도시와 수도권에서는 불가능하죠.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미라주가 활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텐데요?”
“그래서 미라주는 게이트 폭발의 단점을 상쇄한 물건을 만들었죠.”
“개폐기…….”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게이트가 도시 한복판에서 열리면 어떻게 될까요?”
강무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