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387)
제387화
#387.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서울숲 게이트에 급파되던 슬레이어의 대응반 공격대장 정대형은 대원들에게 새로운 오더를 하달한 뒤 현장용 지휘 차량에 올라탔다.
지휘 차량에는 현장 전문 오퍼레이터들이 바쁘게 상황을 체크 하며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다.
정대형은 차량 운전석 뒤에 마련된 차량 오피스 문을 노크했다. 안쪽에서 기척이 느껴지자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피스엔 한 사람만이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정대형은 살며시 문을 닫으며 그에게 고개를 깊이 숙인 후 보고했다.
“팀장님, 상황실에서 오더가 떨어졌습니다. 게이트에 접근하지 않고 대기하랍니다.”
“서울숲을 고립시키고 몬스터 저지선을 만들라는 건가?”
“예. 팀장님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피스의 주인은 성선제였다. 그는 문경새재에 가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었다.
“도진산 부팀장에게 귀띔해두길 잘했군. 강무혁 단장 얘기를 잘 들으라고 했지. 열린 게이트를 앞에 두고 멈추는 건 부팀장 방식이 아니야. 강무혁의 입김이 한몫했을 거야.”
“예. 도 부팀장도 차후 책임을 질 일을 피하려고 그랬는지, 제게 그리 말하더군요. 강무혁 단장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역시 잘 구슬렸나 보군. 그라면 부팀장의 성향을 단번에 파악했겠지. 책임 소재만 명확히 해주면 된다는 걸 말이야.”
성선제는 쓰게 웃었다. 그가 부팀장에서 느끼는 아쉬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도진산은 상황 파악과 행동력이 좋고, 작전 능력도 우수한데, 결단력이 부족했다.
자신이 여태 전략팀장 자리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였다. 마땅한 후임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어딜 가서든 한자리할 능력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슬레이어의 기준은 더욱 높은 곳을 두고 평가해야 해.’
물론 성선제 자신이 길드 마스터에 취임하더라도 전략팀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진 않을 터였다. 적당한 인재를 추려 참모 본부처럼 꾸려도 됐다.
하지만 강무혁과 일하고 난 뒤로 그 어떤 인재도 눈에 차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주세아 길마가 복 받은 거지. 아깝군. 눈여겨보지만 말고 진작 잡을 걸 그랬나?’
성선제는 진한 아쉬움을 집어삼켰다. 이런 모습을 휘하 단원에게 보일 순 없었다. 같은 길드원보다 다른 길드 단장을 더 신뢰한다는 건 어떻게 보아도 좋은 태도가 아니었다.
‘도진산 부팀장 자리는 보전해주겠지만, 내가 위로 올라가면 어떻게든 교통정리가 필요하겠어. 생각해둔 인사가 있으니 아예 새롭게 전략팀을 꾸려도 좋을 것 같고.’
성선제는 순식간에 슬레이어의 미래 체제를 정리했을 때, 정대형이 말했다.
“그나저나 팀장님은 어떻게 일루전이 미라주의 부하들을 버리고 서울로 오리란 걸 아셨습니까? 게이트 두 군데를 연다는 게 최악의 테러라곤 해도 이미 여섯 개나 열어서인지 크게 위협적이라는 느낌이 없는 작전인데 말입니다.”
“자네 말은 일루전이 직접 나설 일은 아니란 뜻이겠지? 한국에 침투한 전력을 모조리 날리는 비효율적인 작전에서 말이야.”
“예. 앞서 열린 게이트에서도 일루전의 모습은 코빼기도 안 보였으니까요.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라는 상징성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가장 강력한 헌터 전력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루전이란 존재를 제외하고 보면 오히려 뒤늦게 발견한 제주도 게이트보다 피해가 적을 겁니다.”
정대형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미라주가 한국 진출을 한 마당에 굳이 무리하면서 테러를 저지를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본거지를 지켜낸 뒤 역습하거나 숨어서 힘을 기르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테러야 제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언제든 다시 저지를 수 있었다.
게다가 미라주는 해외에도 많은 거점을 두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한국에 언제든 새로운 전력을 수급할 수 있었다.
그런 여력이 있는 만큼 극단적인 전략을 취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성선제의 생각은 달랐다.
“미라주가 건재하다곤 하지만, 그 세력이 전성기 때보다 한풀 꺾인 것만은 사실이지. 너무 설쳤어, 그놈들. 그 바람에 세계 각국 헌터 조직에게 쫓겨서 숨어 살았지. 그런데 이번만큼은 움직임이 달라. 이를테면, 이번 한국 진출은 미라주의 복귀전이랄까. 밀려났던 챔피언이 복귀전마저 패배하면, 남은 건 추락뿐이지. 어떻게든 자신들의 건재함을 알리고 싶었을 거야.”
그 첫 단추가 바로 서울에 일으킬 아웃 브레이킹이고.
“어?”
“왜 그러십니까, 팀장님?”
“잠깐, 뭔가가…….”
성선제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군. 미라주와 일루전의 복귀전치고 너무 규모가 작아. 물론 전국 곳곳에서 연 게이트가 지금까지 수습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재앙이 됐겠지만, 다른 곳은 막히고 이제 서울만 남은 상태에서 그마저도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어. 주세아 길마가 존재하는 한 일루전에게 맞설 수단도 충분하고. 그런데 정말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테러를 일으킬 필요가 있을까?’
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굉음이 거리를 뒤흔들었다. 지휘 차량 아래 도로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심상찮은 기운 탓에 성선제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의심이 끊겼다.
그의 곁에 있던 정대형이 입술을 질끈 씹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설마…….”
“시작됐나 보군. 나도 슬슬 움직여야겠어.”
성선제가 일어섰다. 그는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가 모습을 비추자 오퍼레이터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긴박한 신호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지만, 모두 일손을 멈추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성선제를 배웅했다.
성선제가 가볍게 손을 휘저어 호응하자 오퍼레이터들은 다시 제자리에 앉아 임무를 이어갔다.
정대형은 지휘차 밖으로 나가는 성선제의 뒤를 쫓았다.
차량 주변엔 오퍼레이터를 호위하는 최소한의 헌터만이 자릴 지키고 있었다.
그들도 성선제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있었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왕이 행차한 듯 엄숙한 광경이었다.
성선제가 뒤돌아 정대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대형은 그 손을 맞잡고 조심스럽게 악수했다.
“공격대장 덕분에 편하게 기다릴 수 있었네. 소상엽 대장이나 길마님에게 말하지 않고 날 따라줘서 고마웠어.”
“길마님께 들키면 저 죽습니다. 그러니 부디 S랭크가 되어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정대형의 말에 성선제는 이채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알고 있었나?”
“소상엽 대장이 얼핏 흘린 적은 있었죠. 길마님과 소 대장 몰래 움직이시는 일이라면 위험을 무릅써야 할 일이라는 것쯤은 눈치로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현장에 복귀하신 것도 그렇고, 이 모든 주세아 길마가 S랭크가 된 이후이니 짐작했을 뿐입니다.”
“자네 보기완 다르게 응큼한 구석이 있었군. 나중에 술 한잔하면서 나머지 얘길 하자고.”
성선제의 술 약속이 단순히 유흥을 즐기자는 얘기가 아님을 눈치챈 정대형은 깊숙이 고개를 숙여 배웅했다.
‘이제야말로 전략팀장이 아닌 헌터로 부딪칠 수 있겠군.’
성선제는 서울숲으로 향하며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10년 넘는 세월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이제 뒤는 없다. 죽거나 벽을 넘거나.”
* * *
“본사로부터 연락이다. 서울숲, 용산공원. 두 군데 게이트가 열렸단다. 서울숲엔 길마님이 대응 중이니 우린 용산공원 일대에서 백성빈을 찾으라는데?”
경수혁의 말에 서대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게이트하고 백성빈하고 무슨 상관이길래 거길 가라는 거지?”
“글쎄. 거기까진 나도 잘 모르겠는걸? 뭐 정보 출처가 단장님 쪽인 것 같은데, 이 양반은 바깥에서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일단 믿을 만한 정보니까 그쪽을 확인해야… 잠깐만! 정보팀에서 무슨 메시지를 보냈는데? 확인 좀 하고.”
지급받은 작전용 단말기를 확인한 경수혁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조수석에 있던 백솔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정보팀에서 교통 CCTV로 백성빈이 이동한 경로를 알려줬는데…. 이놈 광화문 쪽으로 움직였네?”
강무혁이 전한 정보와 다른 내용이었다.
평소라면 본사 정보망을 통해 공유되었을 정보였겠지만, 통신망을 부순 백성빈 탓에 외부 연락이 제한된 터라 정보의 시차가 발생한 듯했다.
“정보대로라면 광화문에 가야 하는데, 오더는 용산이야. 어떻게 할래, 서대치? 네가 파티장이잖아.”
경수혁이 운전석을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서대치는 약간 망설이더니 운전대를 돌렸다.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이 크게 유턴을 그리고 있었다.
“광화문으로 간다.”
“이거 본사 연락이지만, 사실상 단장 오더야. 괜찮겠어?”
“현장은 현장에서 판단해야지. 상황실에서 모든 걸 알 순 없어.”
“맞는 말이긴 한데…. 좋아. 네 결정에 따를게. 대신 만약을 대비해서 본사에 알려둘게. 단장님도 알고 있도록 말이야.”
* * *
강무혁은 정보팀에서 관홍에게로, 다시 관홍에게서 자신에게로 전해진 서대치 파티의 진로 변경에 대한 보고를 듣곤 미간을 찡그렸다.
서대치가 오더를 어긴 것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대로 판단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다만, 그가 신경 쓰인 지점은 백성빈이 왜 광화문으로 갔느냐는 점이었다.
‘증거는 없지만, 백성빈은 미라주와 관련됐다고 의심 중이지. 주세아 길드장님과 아이언윌에 혼선을 주기 위해 백성빈의 배신을 꾸몄다면, 실행 직후 백성빈은 용산공원에 합류하는 게 당연한 흐름이었어.’
서울숲은 일루전이 있을 테니, B+랭크 헌터가 가봤자 도움이 될 일은 없을 터.
용상공원은 현재 몬스터와 일루전의 심복을 위시한 미라주의 잔당들이 혼재되어 티어 길드의 정예들과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그곳 사정을 확인해 본 결과 아직까지 백성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듯했다.
그 사이 미스터 조의 정보팀으로부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백성빈의 움직임을 포착했으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고랭크도 아니고, 홀로 움직인다고? 고작 B+랭크가 뭘 할 수 있다고?’
힐링 팩터 특성을 가진 헌터이니 어디서든 난장을 부릴 수는 있겠으나 한계가 명확했다.
전략적으로든, 전술적으로든 하등 쓸모없는 움직임이었다.
‘단순히 몸을 숨기려 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이 정도에서 끝낼 거였으면 본사를 공격하지 말았어야 했다.’
강무혁 자신이 일루전이었다면, 백성빈은 나중에 쓰일 패로 남겨뒀을 것이다.
그럼에도 백성빈이 지금 이 순간에 따로 움직인다는 건.
‘우리 쪽에서 전혀 마크하지 못한 다른 계획이 있는 건가?’
일루전과 미라주를 궁지로 몰아넣으면서도 전부터 계속 느껴졌던 찝찝한 예감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았다.
몇 가지 안 좋은 시뮬레이션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열린 두 개의 게이트 외에 또 다른 개폐기가 존재한다는 가정에서부터 혹시나 청와대를 치려는 건 아닌가 하는 계획까지.
어느 쪽이든 대한민국에 해가 되는 여러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확신이 필요해.”
강무혁은 상황실을 빠져나와 관홍에게로 전화했다. 공두리가 힘쓴 덕에 유일하게 복구한 통신 회선이었다.
“접니다. 강무혁.”
-예. 단장님.
“안지일 팀장, 구조됐습니까?”
-예. 조금 전에 C창고 뚫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다친 곳은요.”
-멀쩡하다고 합니다.
“잘됐네요. 안지일 팀장에게 전하세요. 유니온 프로젝트 물건, 서울숲 게이트로 보내라고요. 미완성인 건 알지만, 당장 필요하니까 작동만 되면 괜찮다고 하세요. 헬기로 나르고 장치 풀면 제게 연락하라고 하세요.”
* * *
주세아의 주먹이 일루전의 관자놀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서울 숲의 작은 동산을 날려버렸다.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이 폭발에 휘말렸다. 동산 대시 거대한 몬스터의 봉분이 만들어졌다.
일루전은 주세아로부터 거리를 벌리며 고함을 질렀다.
“검을 꺼내더니 펀치를 날려?! 속임수가 네 싸움 방식인가?!”
“남이사 주먹으로 치든, 검으로 찌르든. 너만 잡으면 되잖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좋아.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싸움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자, 그럼! 이번엔 발차기나 먹고 떨어져!”
“칼 휘두를 거면서 거짓말을…….”
“또 주먹인데?”
콰아아앙!
몬스터들의 무덤마저 사라지고 아예 평지가 되어버린 서울숲은 이젠 아예 숲이란 단어를 붙이기도 어려운 폐허가 되어 버렸다.
주세아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일루전의 대응도 거칠어졌고.
이내 그 파장은 넓은 서울숲 부지를 넘어 그 일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도심 도로가 뒤집히고, 전시관이 날아가고, 인공호수와 연못이 흙더미로 메워졌다.
근처에 있던 중고등학교는 담벼락이 무너져 더는 학생들이 몰래 이용할 개구멍이 필요 없어졌다.
그나마 주세아가 일루전의 공격을 상가와 주택가 반대편으로 유도하고 있었기에 이쯤에서 피해가 그친 것이었다.
‘이거 마경에서처럼 마음껏 싸우질 못하니 힘드네?’
주세아는 일루전을 도발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으나 내심 피해가 민간에 번질까 우려하고 있었다.
끝내 강변북로 근방에까지 밀리면서 도로가 완전히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도로를 따라 설치된 가로등이 모조리 뽑혀 나갔다. 전격을 뿜어내자 주변 도심이 정전돼 어둑해졌다.
일루전의 전격 특성은 그야말로 도시 파괴에 최적화된 능력이었다.
하지만 도시는 부술 수 있어도 주세아는 부술 수 없었다.
물리 방어력, 원소 저항에 최적화된 그녀의 신체는 일루전과 극상성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세아가 일루전을 단숨에 제압하기도 어려웠다.
일루전은 단순히 전격을 뿌려댈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한 초고속 이동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서로 치명타를 주기 어려운 가운데 전투는 장기전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응?”
주세아의 귓속에 붙여뒀던 게이트용 통신기로부터 신호가 들어왔다.
게이트가 열릴 때 발생하는 마나 폭풍으로 인해 근거리 통신망을 제외하곤 아직 사용이 불가능한 통신기가 울린 것이다.
주세아는 일루전의 공격을 피하며 귓불 뒤를 두드려 연락을 수신했다.
-길드장님, 강무혁입니다. 바쁘십니까?
“농담해요? 당연히 바쁘죠!”
-이젠 제 농담을 구분하시는군요. 역시 꾸준히 밀었더니 통하는…….
“옥상에서 확 밀어버리기 전에 용건만!”
잠시 정적이 지난 뒤 강무혁이 말했다.
-일루전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통신기를 넘겨주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