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398)
제398화
#398. 빚을 갚는 겁니다.
강무혁은 슬레이어의 구조반에 껴서 북악산 게이트로 향했다.
마지막 통신에서 공격대가 게이트 폭발 직전임을 보고했기에 헌터들 역시 무사하지 못하리라 판단한 도진산 부팀장이 바로 팀을 파견한 것이었다.
강무혁은 도진산의 이름을 빌려 현장에 나갔고,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정상으로부터 4할가량이 사라진 북악산 아래로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주변의 식목은 죄다 불타거나 꺾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덕분에 헬기가 착륙하는 데는 수월했으나 현장의 헌터들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강무혁은 헬기 아래로 펼쳐진 현장을 확인하곤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게이트 폭심지가 생각보다 작아. 도중에 막힌 거야. 토마스 헌터가 한 건가?’
게이트가 폭발했음에도 EMP가 발생하지 않은 것만 봐도 토마스의 수단이 통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강무혁은 헬기가 착륙하기 무섭게 주변을 돌며 아이언윌 헌터들의 흔적을 찾았다.
다행히 서대치 파티는 전원 무사했다. 폭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에 있었던 탓에 폭발을 직격으로 맞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포션으로 치료하던 중 강무혁을 알아본 서대치가 보고했다.
“대체로 몸이 엉망이지만 파티원 모두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강무혁은 서대치를 비롯해 경수혁과 백솔을 살폈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았고, 화상을 입은 자국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 중상이라 할 만한 건 백솔의 팔뼈가 부러졌다는 정도였는데, 구조반이 당장 급한 환자들을 먼저 처치하느라 바쁜 탓에 경상으로 분류돼 치료 순번이 밀린 상태였다.
강무혁이 그녀의 부상을 살피니 부러진 뼈가 살갗을 뚫고 나와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바로 병원에 실려 갔어야 했지만, 헌터인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압박 붕대로 출혈만 막고 있었다.
강무혁이 부상을 유심히 살피자 백솔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별것 아니니까 저놈이나 어떻게 해주세요. 저 정도로 죽을 놈은 아니지만, 이번엔 꽤 심각하게 다쳤으니까.”
백솔이 가리킨 곳엔 숯덩이가 누워 있었다. 전신이 검게 타버린 백성빈이었다.
토마스가 염려돼 급히 찾아 나서려던 참이었지만, 백성빈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강무혁은 서대치에게 상황을 물었다.
“왜 저렇게 된 겁니까? 이곳에 화염 마법 사용자가 있었습니까?”
“뭣 때문인진 몰라도 게이트가 폭발하기 직전에 눈빛이 돌아오더군요. 폭발이 덮칠 때 저 녀석이 방패가 되어줬습니다.”
경수혁이야 탱커이기에 방패로 폭발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나머지 둘은 몸으로 때워야 했다.
게이트 폭발은 원소 저항력이 높지 않은 이상 헌터라도 버티기 힘든 파괴력이었다.
폭심지와의 거리로 보건대, 탱커도 아닌 딜러 두 사람이 겨우 이 정도 부상으로 끝난 건 말도 안 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백성빈이 뭔가 했다는 뜻이었다. 서대치와 백솔은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때 그을음 낀 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단, 장님…….”
강무혁은 토마스에 대한 조급함을 겨우 내리누르고 백성빈에게 다가갔다. 알아볼 것이 있었다.
백성빈의 눌어붙은 얼굴이 보였다. 뜯긴 복부 한쪽은 거품이 일며 재생을 거듭하고 있었다. 힐링팩터의 능력이 이 상처에 집중하는 듯 화상은 아직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무혁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를 대했다.
“정신이 듭니까?‘
“악몽을 꿨습니다.”
“악몽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럼, 전 죄를 지었겠군요.”
백성빈의 정신을 지배했던 무언가가 폭발의 충격에 날아간 것인지, 아니면 그를 홀렸던 주체인 일루전의 안위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 순 없었지만, 일단 우려했던 세뇌가 풀린 듯 보였다.
강무혁은 전자라고 생각했다.
시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풀리는 스킬이었다면, 일루전이 전투에 직접 나서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런 세뇌 능력으로 기껏 만들어놓은 조직이 한순간의 전투로 인해 물거품이 되는 것만큼 아까울 일은 없을 테니까.
그동안 일루전의 행적이 말해주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S랭크들과 여러 차례 충돌한 전적이 있었다.
‘게이트 폭발은 마나가 극심하게 요동치게 했어. 모든 스킬은 마나의 영향을 받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야. 게다가 게이트 폭발을 가까이서 겪은 사례가 없어. 일루전도 이런 상황은 고려하지 못했을 거야.’
강무혁이 대꾸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내려다보고 있자 백성빈은 견디지 못하게 입을 열었다.
“쪽팔리네요. 이런 모습…. 모두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자의가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지른 짓에 대한 죗값은 치러야 할 겁니다. 옛정을 생각해서 피를 보는 식의 보복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중도에서 형량 치르고 나와서 봅시다. 상당히 긴 시간이 되겠지만.”
“관대한 처분 감사 드립… 크흡. 흐흑… 흐으윽. 제 헌터 인생은 끝난 거군요. 전 이제 빌런인 겁니까? 으흐훅… 전 이제 몬스터를 잡지 못하는 겁니까?”
강무혁은 백성빈의 상실감을 이해했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헌터가 된 남자. 이 업계에선 흔한 사연이었으나 각자가 겪은 슬픔과 분노는 결코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만큼 각오도 남달랐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몬스터와 싸우겠다는 신념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강자의 지배로 인해 무너졌으니, 얼마나 비참하고 정신적으로 무너졌는지 알 만했다.
강무혁은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몬스터에 대한 복수로 점철된 인생에서 헌팅을 빼면 나는 누구인가?
그는 마나중독증에 걸려 더는 길드에서 일할 수 없게 됐을 때의 좌절을 겪은 바 있었으나 여전히 막막함은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 순간 몸을 던져 동료들을 구했잖습니까. 세상에 그런 빌런은 없습니다.”
강무혁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뿐이었다.
* * *
강무혁은 길드협력처로부터 토마스에 대한 연락을 받고 청와대로 향했다.
토마스가 추락한 곳은 청와대 정문 검문소 근처였다.
서울에서 터진 게이트 경보로 인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인원은 대부분 비밀 보호시설로 옮겨진 상태였으나 여전히 남아서 청와대를 지키던 경비대가 시설 내부에 주둔 중이었다.
그곳에 헌터로 보이는 토마스가 떨어지자 경비대가 바로 길드협력처에 연락을 취한 것이다.
다행히 토마스는 아이언윌의 로고가 박힌 아머 코트를 입고 있었고, 아이언윌은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인기 길드였다.
덕분에 연락에서부터 만남까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토마스는 경비대 내 의료실에 누워 있었다.
게이트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 헌터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 주세아 소속 길드라는 이름값 때문인지 의료실은 텅 비어있었다.
강무혁은 백발이 된 토마스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표정 변화는 없었으나 눈동자 속엔 많은 질문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먼저 묻진 않았다. 강무혁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기척을 느꼈는지 이내 토마스는 부스럭거리는 소릴 내며 정신이 들었다. 그는 강무혁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눈을 감은 채로 입을 열었다.
“강 단장님입니까?”
“눈을 감고도 보입니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많으니까요.”
“저인지 알았으면서 그런데 왜 계속 감고 있습니까? 혹시 눈에 무슨 이상이라도…….”
“이상이라면 이상이겠죠. 혹시 제 눈에 여전히 금빛이 돌고 있습니까?”
토마스가 어슴푸레 눈꺼풀을 올렸다가 닫았다.
강무혁은 토마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눈치챘다.
“금안의 지배자를 만났습니까?”
“만나진 않고, 힘만 살짝 빌려 썼습니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폭발하는 게이트를 막으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시는 어떻게 됐습니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은데.”
“무사합니다. 덕분에.”
“다행이군요.”
“몸에 불편한 건 없습니까?”
“글쎄요. 졸린 것 빼곤 딱히.”
“한숨 자세요.”
“이제부터 정신없을 텐데 누워 있을 순 없죠. 일루전도 남아 있고.”
“그건 길드장님이 알아서 해결하실 겁니다. 토마스 헌터는 쉬세요.”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금안의 지배자는 어째서 힘을 빌려줬는지. 다시 볼 수 없을 것처럼 말하던 존재가 왜 토마스의 부름에 응했는지 등등.
백발이 된 것도 묻고 싶었고, 내친김에 파주로 보내 아버지에게 몸을 봐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친 토마스의 얼굴을 보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필요하면 언제든 부르십시오.”
“그러죠.”
강무혁은 토마스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젠 서울숲의 결과를 확인할 때였다.
‘위기는 지났다. 이젠 벌을 받아야 할 자가 벌을 받아야 할 때다.’
* * *
일루전은 걸쭉한 검은 핏물을 입에서 게워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옆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도리스…….”
“오시지 않아서 찾아왔습니다.”
“밖엔 슬레이어 놈들이 지키고 있었을 텐데?”
도리스는 금속종이로 된 스크롤을 흔들어 보였다.
일루전은 헛웃음을 지었다.
“오늘 조직 예산을 3할 가까이 날려 먹겠군.”
“문경새재에서 부바글라가 한 장,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또 한 장 더 써야 할 테니 7할은 버린 셈이죠.”
전 세계적인 테러 조직 미라주는 그 명성만큼이나 불법적인 사업에도 많이 손을 대고 있었다. 조직을 운영하려면 결국 돈이 관건이니 돈 되는 일엔 죄다 기웃거렸다.
세금도 없는 불법이니만큼 어지간한 티어 길드 예산은 가뿐히 넘는 천문학적인 돈이 오갔으니 순간 이동 스크롤의 가격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일루전은 핼쑥해진 얼굴로 주세아가 날아간 곳을 노려봤다. 그의 눈길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를 눈치챈 도리스가 물었다.
“끝장내고 싶으신 겁니까?”
“솔직히 또 만나기 무섭다. 여기서 끝맺음 짓는 게 낫겠지.”
“포기하시죠. 저쪽 기운은 여전히 왕성합니다.”
“나도 안다. 다만 움직이지 못해 이쪽을 공격하지 않을 뿐인 것도.”
“일루전 님이 숱한 전투를 치르면서도 여전히 건재하신 이유이죠. 무모한 도전은 피하는 게 낫습니다.”
“여긴 한동안, 아니 앞으로도 계속 돌아보기도 싫은 나라다.”
일루전의 말은 실상 한국 진출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도리스가 말했다.
“탈출 루트는 마련해놨습니다. 프랑스로 돌아가시겠습니까?”
“한국에서의 일이 알려지면 유럽에서도 눈이 벌게져 날 찾을 거다. 아프리카로 간다.”
“예. 그럼, 모시겠습니다.”
이윽고 도리스는 일루전을 부축한 채로 스크롤을 찢었고, 이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 뒤로 슬레이어의 공격대 일부가 서울숲이었던 곳에 진입했다.
“성선제 팀장님과 주세아 길마를 찾는다. 조심히 살피고 구호반 불러.”
* * *
주세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앞으로 성선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의 손길이 성선제의 이마와 심장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은은한 마나가 손바닥을 통해 성선제에게 전해졌다. 성선제는 온전히 주세아의 마나에 기대 미약한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표범희 팀장의 마나를 다뤄본 게 도움이 됐어. 남의 마나를 움직인 경험이 없었다면, 성 팀장 목숨을 유지하기 벅찼을 거야.’
문제는 성선제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포션은 이미 먹여뒀다. 슬레이어 길드의 포션은 최상급이니 치유 효과가 부족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전혀 차도가 없는 것을 보면 단순히 부상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나보고 항상 뭐라고 하더니. 무모하긴 나 못지않네. 겁 없이 S랭크한테 덤빌 생각을 하고.”
성선제의 심정은 이해가 갔다. 자신도 겪었으니까.
잡힐 듯 말 듯 한 S랭크의 실마리. 넘을 듯 말 듯 넘지 못하는 벽. 참으로 사람 미치게 하는 경계선이었다. 자칫 심마가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조급함을 느꼈을 터였다.
주세아는 이때 태성 길드에 취임하는 일이 겹치면서 더더욱 마음고생을 했었다.
당시 그녀는 이를 그냥 포기해버림으로써 겨우 피할 수 있었다. S랭크? 언젠가는 되겠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렇게 포기했더니 모든 게 순식간에 찾아왔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폭군과 싸우면서 급격한 반전을 이루게 됐다.
‘내 사례를 참고했을 거야. 헌터는 위기 속에서 랭크업을 한다. S랭크가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S랭크와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 신중한 성선제가 얼마나 조급함을 느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수많은 헌터들이 S랭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심상을 본 헌터들이 이 조급증 때문에 무리하다가 파멸했다.
성선제도 그 유혹을 참기 어려웠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오랜 세월을 참고 보냈기에 더는 참을성이 남아있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이 사람이 S랭크가 되면, 슬레이어 길드를 세계에서 손꼽는 길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10년 이상 앞당겼을 거야.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내가 길드를 나갈 때도 그냥 보내줬다. 아깝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슬레이어의 길마인 사문혁조차 어떻게든 주세아를 잡으려고 발악했었다. 그런 면에서 주세아는 성선제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그 빚을 갚는 겁니다, 성 팀장님. 무사히 깨어나서 S랭크가 되는 것으로 갚아요.”
주세아가 일루전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것조차 포기하고 성선제에게 붙어 그의 목숨을 붙잡고 있는 이유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중으로 헬기 로터 소음이 울려 퍼졌고, 아침 해는 높이 떠 주세아와 성선제의 그림자를 기울였다.
여전히 멀쩡한 게이트에선 간혹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고 있었으나 헌터들이 가세해 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이젠 정말 끝난 것 같았다.
주세아는 성선제를 내려다보곤 조금 전 사라진 일루전이 있던 곳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쪽 빚은 나중에 청산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