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406)
제406화
#406. 아마 지금쯤 여기저기서 얼쩡거리고 있을 겁니다.
“아, 안녕하세요. 하하… 또 뵙네요.”
한가람은 다시 마주한 노송린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노송린은 뚱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더니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면접관은 내가 아니라 우리 단장님이다.”
한가람이 긴장으로 삐거덕거리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면접 부스의 상석엔 강무혁이 앉아 있었다.
강무혁은 그를 보지 않고 노송린에게 말을 걸었다.
“면접 아닙니다. 합의 봐야죠, 노송린 헌터.”
“아니, 그건 단장님이 대신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제가 노송린 헌터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건 사후 처리입니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직접 해야죠.”
강무혁이 웃으면서 말하자 노송린은 비장의 수를 꺼내기로 했다.
“길드와 계약한 헌터는 임무 수행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법적, 행정적 책임을 길드에 일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두둥!
‘뭐지? 내 귀에 효과음 환청이…….’
한가람은 강무혁과 노송린 사이에 갑자기 숨 막히는 분위기가 연출되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강무혁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길드 내규를 언제 파악한 겁니까?”
“후훗, 단장님과 함께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아는 게 힘이더군요. 모르면 당한다는 거. 덕분에 오랜만에 공부했습니다.”
강무혁은 턱을 문지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오늘 일은 게이트 공략이나 헌팅이 아닌데, 헌터의 임무 수행이라고 하기엔 좀 어폐가 있지 않을까요?”
“예전이라면 그 지적에 움찔했겠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습니다. 임무 수행에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란 것 알고 있습니다. 단장님의 공식 일정을 수행하는 역할 역시 포함됩니다.”
“겉핥기로 공부한 게 아니군요. 하지만 전 단장입니다. 기본 태성 길드 내규를 그대로 이어받은 현 아이언윌 내규엔 단장의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죠.”
“개정판이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단장님의 지위는 예전 부길마의 지위를 계승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죠. 더 하실 겁니까? 얼마든지 상대해드리겠습니다. 후후훗!”
노송린은 자신이 있었다.
강무혁을 수행하면서 그동안 김명준의 스파이라는 굴레에 갇혀 얼마나 구박을 받았던가. 그 굴레는 단순히 회개한다고 해서 단숨에 벗겨질 과오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왔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단장님은 이성적으로 상대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충성하는지 증명한다든가 하는 감성적인 호소는 크게 먹히지 않아.’
그렇게 시작한 게 일단 길드 내규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규를 먼저 들먹이면 그간 쌓아온 내 충성심이 의심받을 수 있지. 이건 마지막에 써야 한다. 하지만 쓸 수 있다는 걸 한 번쯤 어필하는 게 좋겠지.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 그리 큰 사건도 아니고, 가벼운 해프닝 선에서 마무리 지어야 해.’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노송린은 서당개가 아니기에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전략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강무혁에 한해서만.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강무혁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노송린의 표정을 읽어냈다.
전력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해도 부족할 마당에 입가를 실룩이면서 웃음을 참고 있으니 그 속내가 뻔했다.
‘그렇더라도 참 감탄스럽네. 공부까지 하고. 처음엔 그냥 깡패 같았는데. 이 기회에 약점 잡아서 계약을 좀 갱신할까 싶었는데, 안 먹히겠군. 그럼, 나도 이쯤에서 적당히 마무리 지을까?’
강무혁은 또 다른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번 일을 끝맺음하려고 했다.
그때 옆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한가람이 조심스레 손을 들며 말했다.
“저기요. 저… 면접은 안 보나요?”
노송린은 어이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위압적인 표정을 지었다.
“면접이 아니라 아까 사건을 합의하려고 부른 거다. 어이, 신입! 아까 전 일은 적당히 퉁 치자고. 돈이 필요하나? 그래, 프리로 뛰면 장비를 맞춰야 할 테니 돈이 있어야겠지. 합의금은 넉넉하게 주마. 합의서 작성은 여기 단장님과 얘기하면…….”
“합격.”
“합격증을 줄 거… 잉?”
노송린은 화들짝 놀라 강무혁을 돌아보며 되물었다.
“합겨억?”
“네. 면접을 봤으니까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말해줘야죠.”
강무혁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노송린은 어버버하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
“지금 면접이 아니라 합의를 하려고…….”
“귀찮게 뭘 합의를 봅니까? 같은 식구로 만들면 편한데. 한가람 헌터.”
“예? 예.”
“아이언윌 길드에 입단하시겠습니까?”
“예? 예. 옛!”
한가람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강무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한가람은 저도 모르게 굽실거리며 두 손으로 맞잡았다.
“아이언윌 입단을 환영합니다.”
* * *
한가람이 환호성을 지르며 면접 부스를 나간 뒤 노송린은 어리둥절해하며 강무혁에게 물었다.
“아니, 단장님. 저 녀석하고 합의하라고 부른 거 아니었습니까?”
“생각해보니까 여기 온 김에 한두 명은 뽑아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참가한 거긴 한데, 아예 영입 실적이 없으면 괜한 오해를 사겠다 싶어서요.”
“애초에 오해하라고 여기 온 것이잖습니까?”
노송린의 말에 강무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노송린 헌터 말대로이긴 한데…….’
강무혁은 2차 드래프트에 참가한 이유를 떠올렸다.
‘최근 아이언윌의 급성장을 경계하는 자들이 많아졌어. 이 시선을 희석시킬 필요가 있었지.’
그렇지 않아도 아이언윌은 단장이라는 직책을 부활시키면서 업계에 미운털이 박힌 길드였다.
그랬던 것이 동북면 방어전에서 통합 공격대를 부활시키면서 누그러졌었다. 결과적으로 대형 길드들의 입김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것.
길드의 영향력이 강해졌다는 건 반대로 정부의 고삐가 약해졌다는 뜻이었다. 아이언윌은 정부에게 은연중에 미움을 받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타깃이 됐다는 것이지만. 나 때문에 대형 길드에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니까.’
현재 세계에서 정경 유착 못지않게 끈끈한 게 정부와 길드의 관계였다. 특히, 사회가 안정된 국가일수록 그 유착의 강도가 강했다.
길드 입장에선 독재자가 될 생각이 아닌 이상 안락한 부와 사치를 누리기 위해선 안정된 국가가 필수였고, 국가 입장에선 언제라도 힘으로 나라를 뒤엎을 수 있는 헌터들을 달랠 시스템이 필요했으니까.
그 와중에 떨어지는 떡고물은 필요악이었다.
그런데 그 떡고물이 길드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줄어들고 있었다.
미움을 받는 게 당연했다.
물론 주세아가 대한민국 유일의 S랭크 헌터이기에 대놓고 반목하진 못했으나 원했던 법률 처리를 계속 뒤로 미룬다든가, 행정 처리를 더디게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견제하고 있었다.
그 탓에 한참 전에 통과가 돼야 했을 S랭크 헌터에 대한 법안이나 연고지 관련 개정안이 아직도 국회 헌터특별위원회에 계류 중이었다.
‘통합 공격대 때 손을 잡았던 정우수 위원장이 힘쓰고 있긴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겠지.’
강무혁은 법안이 통과되는 것 자체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방해가 있더라도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게 정계의 셈법이기도 했다.
아이언윌이 국민 길드로 떠오르고 있는 이때 다음 선거를 위해서도 마냥 반대만을 외칠 수 없는 게 현재 실정이었다.
‘문제는 이런 압박이 단순히 정부나 국회 쪽 견제만이 아니란 거지.’
이어진 노송린의 말에 강무혁의 상념이 깨졌다.
“대형 길드들이 요즘 노골적으로 딴지를 걸어서 실력 좋은 헌터 수급이 안 된다고 하셨잖습니까. 그 어려움을 보이려고 2차 드래프트에도 나오신 거고요. 그리고 원래 계획은 헌터를 뽑지 않아서 헌터 보충에 실패한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게 계획 아니었습니까?”
“그랬죠.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길드장님이 나서서 영업하는 모양새를 만들려는 게 계획이었죠.”
“그런데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신 겁니까? 혹시 진짜 저 때문에……?”
노송린이 기대에 차서 물었다. 강무혁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즉흥적으로 재밌는 그림이 떠올라서요.”
“재밌는 계획이요?”
노송린은 실망감과 호기심, 불안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아까 조익준 팀장 기억나죠?”
“오전에 봤던 그 태극 길드 사람이요?”
“예. 조 팀장이 절 의심하는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왜 제가 여길 왔을까?”
“그렇겠죠. 어지간한 대형 길드는 2차 드래프트에 신경도 안 쓰니까.”
“그런데 아이언윌은 대형 길드가 아니죠. 명목상으로는.”
“대신 주세아 길마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S랭크의 존재감은 티어 길드 이상이니까요.”
“그런 시선이 있죠. 그래서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는 건 좀 얘기가 단순해진달까요?”
“단순이요?”
“기왕 하려면 상대가 골치 아픈 게 보기 좋으니까.”
노송린은 강무혁의 악취미가 또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강무혁이 이어 말했다.
“원래 계획대로 다른 길드들한테 길드장님이 앓는 소리 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강무혁의 계획은 간단했다.
아이언윌의 약세를 내보이면서 티어 길드들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약점이 훤히 보이니 티어 길드의 견제나 의심도 조금쯤은 느슨해질 터.
그때 당근을 제시한다.
무려 S랭크가 게이트에 지원 나갈 테니, 더딘 공략 진행도를 끌어올리는 게 어떻겠냐며. 대신 아이언윌의 원정대를 포함시켜 달라.
‘연고지 길드가 연고지 외 게이트 공략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경험을 쌓으려면, 이 방법뿐이다.’
물론 지금처럼 연기까지 하면서 복잡하게 진행하지 않고 그냥 제안해도 받아들일 곳은 받아들일 터였다.
하지만 원정대의 게이트 공략 노하우는 외부에 함부로 노출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무조건 거부하거나 단체 행동에 나서길 촉구하는 길드도 분명 있을 터였다.
예전처럼 슬레이어 길드와의 연계가 어려운 마당에 이런 견제는 피하는 게 좋았다.
‘성선제 팀장는 얻을 게 있으면 내주는 사람이었지. 하지만 다른 길드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아.’
얻을 게 있어도 내줄 게 아쉬운 자들.
그런 사람들 앞에서 확실한 약자 혹은 강자지만 약점이 있다는 걸 꾸준히 보여야 했다.
이쪽이 강하다는 걸 보이기만 해선 협력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원래 강무혁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세아는 세도 아이언윌은 약해요.’, ‘아이언윌은 헌터 인력난이 심해요.’ 코스프레를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동시에 썩 내키지 않은 방법이기도 했다. 헌터 인력풀이 작은 한국 시장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에 불과하달까.
최대한 견제를 피하면서 야금야금 영역을 확장하려는 계획.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아.’
강무혁의 계획을 알고 있는 노송린은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헌터들을 더 뽑을 겁니까? 원래는 단장이 직접 나섰음에도 쓸만한 헌터를 구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려는 거였잖습니까.”
“아니요. 한가람 헌터만 뽑을 건데요?”
“왜 한 놈만 뽑습니까?”
“한 명만 뽑아야 있어 보이니까요?”
“그게 무슨……?”
“적당히 양념 좀 칩시다. 단장이 와서 그를 뽑은 게 아니라 그를 뽑으려고 온 거라고. 아? 제가 아니라 길드장님 픽이라고 하면 더 좋겠네요.”
“그건 또 무슨……?”
“기왕 판을 키우는 김에 크게 갑시다. 아주 크게.”
마지막에 강무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처음엔 우연히 만난 조익준과 노송린의 사건 때문에 즉흥적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생각이 더해질수록 현재 아이언윌이 처한 상황과 맞춰 계획들이 사방으로 줄기를 뻗기 시작했다.
“약하게 나가서 적당히 해먹을 게 아니라 블러핑 제대로 해서 크게 먹죠.”
“그건 도박이잖습니까.”
“도박 맞습니다. 어차피 이 바닥은 정배로 살면 영원히 밑바닥이니까. 역배를 노려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그래도 우린 조커 카드라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두 장이나.”
노송린은 두 장의 조커 카드가 S랭크임을 눈치챘다.
“설마 토마스까지 공개하려는 겁니까?”
“최대한 숨길 때까진 숨길 겁니다. 하지만 S랭크가 숨긴다고 숨겨지는 건 아니죠. 게이트 폭발 건도 있고. 아마 지금쯤 여기저기서 얼쩡거리고 있을 겁니다.”
* * *
최근 백귀, 표해주는 심기가 많이 불편한 상태였다.
‘관홍이 아이언윌에 둥지를 텄다. 그런데 황룡 길드가 잠자코 있어.’
처음엔 황룡 길드 내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관홍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낌새였다.
하지만 미라주의 잔당이 잡혀 넘긴 황룡 길드에의 공작 정보가 중국 관영매체에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황룡 길드가 피해자 행세를 하기 시작했지. 세계헌터연맹에서 미라주의 테러리스트로 구자천을 지목하면서 증언에 힘이 실렸고.’
반면에 황룡 길드를 공격하던 세력들의 발언에 기운이 쫙 빠졌다.
백귀는 이 일련의 사태 뒤에 황룡 길드와 아이언윌이 있으리라 여겼다.
‘그중에서도 강무혁. 분명 그자가 주도한 일일 거다.’
백귀가 생각하기에도 관홍에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를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룡과 백귀 자신에게 칼끝을 겨누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게다가 신의주를 통해 마경 진출을 모색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관홍의 존재는 큰 힘이 될 터였다.
‘문제는 내 불편함이 관홍 때문이 아니라는 거야.’
백귀는 스마트폰으로 슬레이어 길드 관련 기사를 보고 있었다.
그 기사의 대제목에는 낯익은 동시에 낯선 특별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부길마 최도유…….”
성선제의 부재를 메울 슬레이어의 구원투수.
“내 주변이 불편해진 건 이 자 때문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