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407)
제407화
#407. 어차피 반반이야.
백귀는 아직 한국에서 자신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대륙에 남겨놓은 세력을 수습해 한국 내로 들일 속셈으로 조용히 지냈으나 관홍이 황룡 길드에서 내쳐지면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관홍 일은 관홍대로 풀리지 않고, 모습은 모습대로 드러냈다는 것.
결과는 최악이었다.
관홍은 아이언윌의 품에 안겼고, 강무혁은 백귀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개입하진 않았으나 슬레이어에게 그 정체를 흘림으로써 쥐죽은 듯 조용히 지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성선제가 부상으로 요양을 한다고 발표하길래 한숨 돌리나 했더니
대신 온 놈은 한술 더 뜨는 놈일 줄이야.’
백귀는 최도유라는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자 당황했다. 그만큼 압박이 심했다. 그는 뒤늦게 최도유에 대해 정보망을 가동했다.
하지만 정보원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반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목을 잘라버릴 기세가 백귀의 세력 도처에 깔려있었다. 대의나 명분은 개나 줘버리라는 식의 위협은 처음이었다.
그제야 백귀는 최도유라는 인물이 어떤 자인지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성선제와는 완전히 다르군. 과격해. 하지만 충분히 계산된 과격함이다.’
진짜 앞뒤 안 가리고 목을 벨 생각이었으면, 그냥 기습을 했을 터였다.
즉, 이것은 위협.
얌전히 숨만 쉬고 살라는 경고였다.
백귀는 심복인 도대철을 불러들였다.
“조직 전체에 명한다. 당분간 봉문 하겠다. 얌전히 지내라고 해.”
“예? 봉문을… 말입니까?”
“우릴 겨누고 있는 슬레이어의 칼날이 너무 날카롭다. 이럴 땐 몸을 사려야지.”
“하지만 그래선 다시 세력을 넓힐 때 지금보다 몇 배로 힘들 겁니다.”
도대철은 오른팔로서 마땅히 해야 할 우려를 표했으나 백귀는 단호했다.
“경고가 안 먹히면 망설이지 않고 칼을 뺄 거다. 아직은 우리가 나설 때가 아닌 거야.”
“그럼, 봉문은 어느 선까지 진행할까요?”
“정보 라인까지 전부. 숨만 쉬고 있으라고 해.”
“개문할 땐 더욱 힘들어지겠군요.”
“대신 정보는 다크 사이드를 이용하지. 헤드라인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의뢰하도록 해. 슬레이어라도 거긴 못 건드릴 테니까.”
“헤드라인이라면… 대가를 돈이 아닌 정보로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장사 방식이니까요.”
“필요하면 내주는 것도 있어야지. 욕심부려선 얻지 못하는 것 또한 이 바닥의 생리니까.”
백귀가 생각을 굳혔다는 걸 느낀 도대철이 고개를 조아리며 복창했다.
“명을 받들어 봉문을 준비하겠습니다.”
도대철이 나가고 백귀는 매일 보아왔던 서울의 경관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땅이 작으니 숨을 곳도 별로 없군. 중국에서 황룡 길드를 상대할 때보다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
더해서 만만찮은 인물들이 너무 몰려 있었다.
강무혁, 성선제, 관홍. 그리고 이젠 최도유까지.
‘한국에 돌아온 걸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일이 복잡하고 귀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조금 전까지 짜증이 왈칵 치밀었던 백귀의 표정은 이내 흥미로 가득 찼다.
“하기야 한 나라를 먹는 게 쉬우면, 그건 그것대로 김빠질 일이겠지.”
* * *
“선제, 오랜만이네.”
최도유는 햇살이 내리쬐는 창 아래 침대에 누운 성선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는 침대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와 등받이를 앞으로 두고 걸터앉았다.
게이트 의학의 발전으로 성선제는 식물인간 상태임에도 혈색이 밝았다. 불그스름하게 윤기가 도는 볼은 당장에라도 깨어날 듯했다.
최도유는 물끄러미 성선제를 보다가 그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최도유의 손가락이 경동맥을 살며시 눌렀다. 맥동하는 혈관이 불뚝불뚝 솟았다 가라앉았다.
최도유는 씨익 웃으며 손을 뗐다.
“건강해 보이는군. 그렇지 않나?”
최도유는 병실 바깥에 대고 물었고,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대답이 들려왔다.
“성 팀장님은 금세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최도유는 어깨너머로 자신의 등 뒤에 선 남자를 쳐다봤다.
허리에 매고 있는 청홍쌍성검의 손잡이가 좌우로 삐져나와 있었다. 남자는 그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감우영이라고 했던가?”
“예, 부길마님.”
“부길마라고 불러주긴 하는군. 날 대하는 태도는 전혀 아닌데 말이야.”
“글쎄요. 전 예전에도 이런 식이었는데, 누구도 제 태도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만.”
감우영이 삐딱하게 대꾸했지만, 최도유는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설마 내가 선제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설마 제가 부길마님께 검이라도 뽑을까 봐요?”
질문에 대답 대신 반문하는 당돌한 태도였다. 최소한 상급자에겐 내보일 자세가 아니었다.
최도유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슬레이어 길드 원정대의 차기 에이스답군. 우리 길드 에이스 계보가 위아래 가리지 않고 들이받는 재주가 있더랬지. 선제도 그렇고, 상엽이도 그랬어. 아? 그중 최고는 역시 주세아였고. 이젠 일부러 그런 애들만 뽑는가 싶어. 감우영, 너도 그런가?”
성선제, 소상엽, 주세아로 이어졌던 원정대의 에이스 계보는 현재 하혜성 그리고 차기 감우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앞서 세 사람의 이력이 너무 대단해 가려졌을 뿐, 하혜성과 감우영 역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실력자들이었다.
최도유는 완곡하게 돌려 재주라고 표현했으나 실제로는 경고를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감우영은 움찔하는 기색 하나 없이 받아쳤다.
“제가 실력은 좀 떨어져도 싸가지는 세아 누님을 닮았다는 소릴 많이 듣습니다. 별로 달갑진 않아도 부정하진 못하겠더군요.”
다른 선배 원정대원들이 들었다면, 몰래 무거운 한숨을 흘렸을 법한 도전적인 말투였다.
그만큼 그들은 최도유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혹여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감우영의 귀에 인이 박이게 잔소리를 늘어놓았었다.
절대 최도유와 부딪치지 말라고.
감우영도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성선제와 최도유의 악연을 듣고 나니 둘만 있는 자리에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일부러 그러라고 날 데려온 것인지도 모르지.’
아이러니하게도 성선제의 병문안에 감우영을 함께 데려온 건 최도유였다.
감우영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세를 내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최도유 부길마를 실각시킨 건 성선제 팀장님이었다. 악감정이 없을 수가 없어.’
감우영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최도유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가 그까짓 경쟁에 져서 밀려났다고 식구를 해할 것 같나? 나에 대해 뭘 들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난 그런 쓰레기는 아니야. 오히려 난 선제한테 감탄하고 있지. 배울 게 많은 친구였어. 특히 사람을 쓰는 법 같은 거? 녀석과 나를 가른 건 주세아를 발탁하느냐, 배제하느냐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것이었어. 결과적으로 이 녀석이 옳았고, 난 졌다. 이게 전부야. 내 선택에 내가 책임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난 이 녀석에게 원한도, 불만도 없다.”
“…….”
“그리고 지금 선제가 이렇게 누워있는 것 역시 이 녀석의 선택에서 비롯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겠지.”
감우영은 최도유의 말에 어떤 한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다. 실제로도 성선제에게 살기 하나 비치지 않았으니까. 그저 들은 소문에 의해 감우영이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이었다.
감우영은 최도유에게 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이 실각하기 직전에 나는 이제 막 길드에 들어왔던 때였지. 내가 직접 겪은 사람은 아니니 뭐라 할 순 없지만, 소문이 괜히 날 리는 없어. 그렇더라도 남의 말만 믿고 가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고.’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몇 마디 말을 섞은 것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감우영은 최도유가 껄끄러워졌다. 그는 평소에도 답답한 속을 숨기는 법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부길마님이 절 여기 데려온 이유가 뭡니까?”
“병문안에 이유가 있나? 그냥 자네가 선제와 평소 가까웠다니까 나 혼자 오기 민망해서 데려온 거지. 갑자기 깨어나거나 하면 서로 어색할 게 아닌가.”
“성 팀장님이 갑자기 깨어나는 건 상당히 낮은 확률 아닙니까? 그런 낮은 확률을 핑계로 대실 분 같진 않으신데요?”
“확률이 낮다고 생각하나? 선제가 깨어나는 게?”
“그건… 그게 아니라…….”
“어차피 반반이야. 깨어나거나 그대로 영원히 자거나. 근데 난 전자일 것 같단 말이지.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결국, 감우영은 잠자코 듣는 신세가 되어 최도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네 그거 아나? 슬레이어 길드의 역사 속에 있는 수많은 헌터 중에서도 내가 아는 최고는 단 두 명뿐이었어. 아니, 대전쟁 시기를 제외한 대한민국 헌터사를 통틀어서 둘이지. 그게 성선제고, 나머진 주세아야. 난 이 둘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네. 혹시 아나? 선제가 깨어나고 보니 S랭크일지.”
“성 팀장님이 S랭크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주세아가 S랭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차세대 S랭크 후보라고 불리긴 했지만, 그 이전에도 수많은 S랭크 후보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주게. 말했다시피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헌터들이니까.”
감우영은 최도유가 성선제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성선제는 그만한 칭찬을 들을 헌터인 건 맞았다. 하지만 최도유가 실각하는 과정에서 성선제가 맡은 역할을 고려하면, 이런 칭찬은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성격상 피곤한 머리싸움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감우영도 성선제를 보고 배운 게 있었기에 이쪽 눈치 또한 빨랐다.
그는 최도유의 자비 넘치는 언행에 넘어가지 않고 재차 물었다.
“그래서요? 절 여기 데려온 진짜 이유가 뭔지 아직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전 이만 병문안 마치겠습니다.”
“자네도 귀여운 편은 아니군.”
“아까 말했다시피 성질머리는 주세아라서요.”
“참 주세아가 애들 여럿 망쳤다니까.”
“S랭크 헌터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은 아니죠.”
“조만간 길드 내 공격대 개편이 있을 거야.”
돌연 최도유의 목소리가 변했다. 조금 전까지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닌 사무적이고 딱딱한 음성이었다.
감우영은 말없이 그가 하는 말에 집중했다.
“성선제 팀장이 일어나길 기다리기만 해선 길드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해.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마경이 열리고, 미라주가 들어오고, 다음엔 일본, 중국, 러시아. 어느 쪽이지? 슬레이어는 다음 단계로 돌입해야 한다. 그러려면 길드를 내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어떤가? 내 직속으로 들어오는 게.”
혹할 조건 제시나 칭찬 하나 없는 회유, 직설적인 제안.
성선제에 비해 세련되지 않았으나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담긴 목소리였다.
감우영은 제법 긴 시간 동안 입을 굳게 다물었다. 최도유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마침내 감우영의 입술이 떨어졌다.
“저는…….”
* * *
막 정찰 근무를 끝낸 김수정은 페어 파트너인 유성주와 함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 그 유치원 아저씨다.”
김수정은 아이언윌 본사 건물에서 나오고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유성주가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돌아봤다.
“유치원 아저씨? 아아, 누군지 알겠다. 그때 그 형사님 맞지? 우리가 남포천 유치원에 들어온 오크 잡을 때 봤었던.”
“어, 맞아. 오크한테 공격받고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사람이라 기억하고 있어. 오랜만에 보니까 추억 돋네.”
“추억? 그때 그 사건 때문에 단장님한테 잡혀서 스카웃 됐는데?”
유성주는 남포천에 오크 정찰대가 침입했던 사건을 되새김질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이언일 입단 이후 오크 전쟁부터 시작해 동북부 방어전 그리고 백성빈 사건까지 목숨이 간당간당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녔다.
덕분에 랭크가 올라 B-랭크를 바라보고 있긴 했으나 가늘고 길게 사는 게 인생 목표였던 그에겐 아이언윌이 썩 달갑지 않은 자리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가 다시 한번 푸념했다.
“그때 그 영입 제안이 복인지 벌이지 아직도 헷갈린단 말이야.”
“죽지 않고 잘 먹고 잘살고 있으면 된 거지 뭐.”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저 아저씨 이름이 뭐더라?”
“애초에 물어보지도 않아서 모르잖아?”
“아, 맞다. 그냥 얼굴만 좀 보고 말았었지? 근데 저 아저씨가 여긴 왜 있지?”
김수정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유성주가 성의 없이 답했다.
“왜 왔겠어? 이번에 사람 뽑잖아. 거기 지원했나 보지. 여튼, 그때 오크하고 엮였던 사람은 죄다 아이언윌에 취업하는구만. 형사였으니까 보안 쪽이겠네.”
“일반인이 보안 쪽 들어와서 뭐 하게? 여기가 그냥 일반 길드도 아니고 특활지 안에 있는 길드인데. 상대할 게 헌터랑 몬스터 밖에 더 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정 뭣하면 가서 물어보든지.”
“그럴까?”
김수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성주가 그녀를 붙잡으며 물었다.
“진짜 가게?
“저 형사 아저씨하곤 몹연으로 묶였잖아. 반가운데 인사라도 해야지.”
“몹연은 또 뭐야?”
“몹연도 몰라? 혈연, 지연, 학연, 몹연. 몬스터 때문에 엮인 인연 말이야. 그러고 보면 넌 나보다도 어린 게 요즘 말 하나도 모르더라?”
“누나하고 나하고 두 살 차이밖에 안 나거든. 오히려 어린애들 말 아는 누나가 필요 이상으로 어려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닐까?”
“그 말의 의미는? 내가 늙었다는 거?”
“요즘 말 아니라도 잘 알아듣… 쿠헐헉! 이, 이거 놓고 말해. 숨 막힌다고.”
“죽으면 놓아주지.”
김수정은 유성주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워 넣고 헤드락 자세로 압박을 걸다가 멈칫했다. 유성주도 고통에 겨워 그녀의 팔에 탭을 치는 자세로 몸이 얼어붙었다.
이게 모두 그들 곁을 지나가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야, 서대치 지나간다.”
“알았으니까. 이거 놔봐.”
둘은 슬그머니 자세를 풀고 벤치에 얌전히 앉아 서대치와 시선을 피하며 소곤댔다.
“원래 인상 더러운데 요즘엔 더 더러워.”
“백성빈 처리한 게 서대치라는 소문이 돌던데? 살기 좔좔 흐르는 것 좀 봐. 소문이 가짜라도 믿겠어.”
“결국, 백성빈은 서대치한테 갔구나?”
그렇게 서대치가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저기…….”
그들이 알아봤던 형사가 서대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