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425)
제425화
#425. 이곳에 해결책이 있습니다.
“이건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그게 최악이 아니라고요?”
누군가 당황하여 반문했다. 강무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 지도는 그나마 헌터 전력을 유지했을 때의 이야기죠. 지난번처럼 무턱대고 토벌을 나가 헌터들이 죽도록 했다간 내륙의 게이트를 해결할 전력이 부족해 더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단말마 같은 신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이어서 묵직한 한숨이 들렸다. 너무나 충격적인 시나리오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겨우 1년 만에 한반도의 바다가 나가에게 넘어간다는 건 국가 경제가 파탄 나는 문제를 넘어서 아예 생명줄을 끊어버리는 일이었다.
당연히 이를 부정하는 시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대신해 나온 안보실장은 화면을 손가락질하며 따지는 투로 말했다.
“너무 비관적인 전망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년 만에 저렇게 된다고요? 솔직히 전 이 자료가 단장님이 의도하고 만든 게 아닌가 의심이 가는군요.”
“어떤 의도 말입니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재료죠. 공포를 심어주고 판단을 흐리게 해서 따르게 하려는.”
의심 어린 시선과 노골적인 적의가 동시에 풍겼다.
강무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불안을 유발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유효한 협상 전략이긴 하죠. 인정합니다. 그런 의도가 맞습니다.”
“거봐요. 내 말이 맞지?”
안보실장이 거들먹거리며 주변 사람들을 돌아봤다.
강무혁은 일부러 그의 말과 겹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실제 비슷한 사례가 있는 자료입니다.”
“실제 사례?”
“쿠바,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 푸에르토리코, 자메이카 등등 여기 있는 국가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중남미?”
“예. 정확히는 카리브해의 해양 국가들이죠. 일본처럼 섬으로 된 국가들입니다.”
강무혁은 손에 든 컨트롤러를 눌러 화면을 조작했다. 다음 장엔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한 지도가 펼쳐졌다.
“대전쟁 시기의 카리브해 섬 국가들은 지중해의 나가와 비슷한 성향의 해양 몬스터인 머맨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강무혁이 컨트롤러를 누를 때마다 머맨에 관한 정보가 화면에 떴다.
“머맨은 나가와 달리 땅을 밟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괴멸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바다가 완전히 봉쇄된 상태에서 내륙의 몬스터와 싸우느라 피해국들은 인구의 절반이 아사했죠. 아직도 그때의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몬스터와 공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반도 상황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상황 직전인 겁니다.”
마지막엔 앞서 강무혁이 말했던 국가들의 인구 현황이 나오면서 끝맺음했다.
다시 좌중은 침묵했다.
안보실장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다 오판하여 때 이른 레임덕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일개 길드의 단장에게마저 우습게 보일 순 없었다. 그는 발악하듯 한마디 던졌다.
“수십 년 전 사례 아닙니까? 당시와 지금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안보실장이 주변에 동의를 구했으나 누구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강무혁이 말했다.
“어떤 상황이 다르다는 겁니까?”
“그… 헌터의 실력이라든가, 장비 수준이라든가. 그래! 국가의 지원 역량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것 아닙니까? 한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강국입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물속에서의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것만큼은 그때와 같습니다. 오히려 머맨이 바닷길을 단순히 봉쇄했던 상황보다 안 좋습니다. 나가는 언제든 기습적으로 땅에 올라와 물고기를 잡듯 사람들을 먹이로 잡아가니까요. 실장님께 묻겠습니다. 우린 이 땅의 모든 해안선을 지킬 수 있습니까?”
“그건…….”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헌터를 모조리 동원하면 감시 정도는 할 수 있을 테지만, 곳곳에 생겨나는 게이트의 공략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완전히 기세가 꺾였음에도 안보실장은 억지를 부렸다.
“아무리 그래도 나라 하나를 완전히 봉쇄할 만큼 많은 나가가 어디서 나온다는 건지…. 이번 사태 때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도 공격당했다면서요? 거기서 죽은 나가도 많다던데. 그만큼 나가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나가가 나온 게이트를 찾아 닫는다면, 더욱 수월하게 토벌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강무혁이 웃으며 PPT의 다음 장을 펼쳤다.
이번엔 세계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나가는 번식이 빠릅니다. 성체가 되는 기간도 짧죠. 이만한 규모의 나가는 게이트가 열려서 나올 규모가 아닙니다. 게이트 안의 한정된 먹이로는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저는 나가가 어디서 왔는지 추적해봤습니다. 다행히 자료가 많아 그리 어렵진 않더군요.”
세계 지도에서 유럽이 확대됐다. 그리곤 지중해 연안이 강조됐다. 그중 이탈리아 반도 위에 말풍선이 떴다. 그 안엔 나가와 베네치아의 전경이 떠올랐다. 큰 전투를 치른 듯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른 사진이었다.
“작년 11월, ‘무로 디 테라’라고 불리는 베네치아 방벽 공성전 사건입니다. 나가의 대규모 기습으로 시작해 지중해 연안의 여러 도시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나는군.”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한병구가 추임새를 넣자 강무혁은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이번엔 아프리카 북부였다. 여러 곳에 이탈리아와 같은 현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집트. 수에즈 운하의 홍해 방면에서 나가가 출몰했다는 기사입니다. 크게 다뤄지진 않았으나 여러 곳에서 나가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죠.”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를 지나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홍해로 화면이 옮겨갔다.
“이어서 아덴만과 아라비아해에서도 비슷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도. 이쪽은 아예 한 마을이 나가의 공격을 받아 많은 사람이 실종됐다는 기사입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없어졌으나 워낙 인구가 많은 데다가 게이트 시대 이후 인명 경시 풍조가 완연했던 인도였기에 간혹 일어나는 재앙 정도로 마무리돼 크게 이슈가 되진 못했다.
“다음은 동남아 쪽입니다. 여기선 아예 대놓고 사람들을 습격했습니다. 고온다습한 날씨에 비도 많이 내리고 사방이 섬과 해안가인 데다가 인구도 많은 곳. 헌터 전력도 주요 도시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변방의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하죠. 나가에겐 최적의 서식지입니다. 널린 게 식량이니까요.”
“지금까지 강 단장님 얘길 들어보니 지중해의 나가가 동북아까지 흘러들어왔다는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소?”
한병구가 미리 약속된 질문을 던졌다. 공식 석상이기에 그는 강무혁에게 격식을 갖추고 대우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왜 나가가 동남아에 자릴 잡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겁니까? 혹시 동남아부터 동북아까지 모조리 나가의 영역으로 만들려는 속셈은 아니겠죠? 한 개 종이 그만한 규모의 영역을 차지하는 건 대전쟁 때도 없던 일입니다만.”
“그건, 여길 한 번 봐주십시오.”
강무혁은 동남아 지도를 확대했다.
말레이시아 반도와 인도네시아 사이. 정확히는 수마트라섬 사이의 좁은 바닷길이었다.
“말라카 해협입니다. 말라카하면 떠오르시는 게 있을 겁니다.”
“말라카의 히드라…….”
“맞습니다. 머리 아홉 달린 용족 몬스터. 과거 동남아 헌터들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혔던 괴물이죠. 당시 아홉 개중 여덟 개의 머리를 잃고 동면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위에 봉인의 마법사가 결계를 쳐 히드라가 깨어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나가는 뱀의 모습을 한 파충류고 넓은 의미로 용족의 최하위 종입니다. 진짜 용족의 영역에선 다른 몬스터도 기를 펴지 못합니다. 하물며 그곳에 같은 카테고리의 하위 종이 서식할 순 없다는 건 몬스터학의 상식이죠.”
“더는 활동하지 않고 동면하는 용족 때문에 나가가 떠났단 말입니까?”
국방부 장관이었나?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나? 다부진 몸집에 눈매를 보니 국방부 쪽인 듯했다.
강무혁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몬스터들은 마나를 체취로 여깁니다. 용족의 마나는 특별하죠. 수십 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히드라의 체취가 곳곳에 묻어있는 영역에서 그 최하위종인 나가가 마음 편히 지낼 순 없을 겁니다. 나가는 상당히 사회화가 된 몬스터이기에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평소엔 각 부족끼리도 단결하지 못하죠. 용족은 자기 영역 안의 몬스터를 지배하고 부리는 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드래곤 레어’입니다. 동남아가 최적의 서식지이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잠깐만요. 방금 뭉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단장님? 그렇다면 단일 부족이라는 뜻인데. 단일 부족으로 이만한 숫자가 가능한 겁니까?”
회의실의 말석에 자리하고 있어 얌전히 있던 차길주가 손을 들고 말했다. 이 역시 준비된 질문이었다.
“처장님 말씀대로 단일 부족으로는 어림도 없는 숫자죠.”
“그렇다는 건…….”
“나가의 모든 부족을 통일한 존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나가의 왕이 탄생한 겁니다. 대전쟁 시대 이후 처음으로. 모두 아실 겁니다. 그때 나가의 왕이 유럽에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과거의 재앙이 동북아에 재현될 수 있습니다.”
또다시 침묵.
이제야 그들은 강무혁이 서두에서 꺼냈던 국가 멸망 시나리오가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회의 내내 대거리를 벌이던 안보실장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혀, 협회장님 말씀으로는, 강 단장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할 복안을 가지고 계시다고…….”
강무혁은 세계 지도를 다시 유럽으로 되돌렸다.
“답은 간단합니다. 문제의 시작점. 유럽. 이곳에 해결책이 있습니다.”
“유럽에? 아? 설마 이탈리아의…….”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유럽을 나가의 행패에서 벗어나게 해준 비장의 무기. 그건 바로.”
강무혁은 마침내 PPT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마지막 장에 뜬 사진은…. 몬스터였다.
“플라잉 씨홀스. 세계 유일 수중 탑승 몬스터. 이걸, 받아 와야죠.”
* * *
일본 길드단체연합회.
요시무라는 눈앞에 앉아 차를 홀짝이는 친우를 쳐다봤다.
‘친구라 부르기 민망하군. 나이 차도 있는데. 전우가 나으려나?’
키신 타케루.
산속에 은둔한 채 일본 헌터계를 주무르는 S랭크 헌터.
그는 위험한 게이트를 공략할 때를 제외하곤 어지간해선 속세에 직접 모습을 비추는 일이 없었다.
그런 점이 더욱 신성화 되어 이젠 일본 국민들에게 ‘열도의 수호신’으로 불리고 있었다.
80대의 요시무라와는 20년 가까이 나이 차가 있었으나 대전쟁과 소전쟁을 함께 치른 덕에 사적인 자리에선 여전히 ‘키신 군’이라고 불렀다.
젊어서 S랭크가 된 덕인지 키신은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어 요시무라의 호칭이 썩 어울다.
요시무라의 불만 어린 시선이 거슬렸던지 키신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길단련 본부까지 왕림한 용건을 말했다.
“요시무라 봉공. 나가 문제로 골머리를 썩인다지요?”
“남의 일 말하듯 하는군.”
“왜 그렇게 가시가 돋쳤습니까?? 그 문제를 해결해주러 온 사람한테.”
“해결?”
“나가가 동북아까지 흘러들어온 연유는 몰라도 그놈들이 기를 펴지 못하게 했던 게 뭔지는 알고 있죠.”
“플라잉 씨홀스를 말하는 건가?”
“역시 알고 있었군요.”
요시무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플라잉 씨홀스를 도입하라는 건가 본데.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나?”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법이죠.”
“여태껏 유럽 바깥으로는 한 번도 팔린 적이 없는 탈 것이 바로 플라잉 씨홀스일세. 심지어 유럽의 동맹국인 미국에도 넘긴 적이 없지. 유럽 몬스터 안보를 우선해서 그동안 나가를 상대한다는 이유로 전략 물자 취급당했네. 그런 걸 일본에 판다고?”
키신은 차를 한 모금 더 입에 머금어 천천히 맛을 음미해 마시곤 말했다.
“제가 아는 협상가를 이미 이탈리아로 보냈습니다. 이번엔 돈을 아끼지 말라고 했어. 돈에 장사 없는 법이네. 자네는 정부에 말해 예산이나 편성해달라고 해주십시오.”
“돈으로 될 일이면 미국이 진작에 해냈겠지.”
“그렇다고 놀고 있을 수 있습니까? 뭐든 해봐야지. 협상가로 보낸 녀석이 좀 천박하긴 해도 제법 수완이 좋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 볼 것입니다. 일단 다른 방법도 강구하되 글로리아 길드와의 협상도 계속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