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441)
제441화
#441.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하는군요.
헌터마다 개인차가 있으나 통상적으로 메시지 스킬의 사용 거리는 5㎞ 내외.
간혹 10㎞가 넘어가는 사례가 있긴 했으나 이는 정말 보기 드문 경우였다.
한 연구진은 헌터 별로 이런 거리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헌터 간 마나 파장의 동기화율 차이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단순히 파장이 비슷한 문제가 아니라 조각 퍼즐처럼 아귀가 들어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황룡 길드의 협상단이 머무는 호텔과 강무혁 일행의 리조트 사이 거리는 약 7㎞로 메시지 스킬 사용 거리 바깥이었고, 토마스와 나머지 두 헌터의 파장도 그리 좋진 않았다.
토마스가 임의로 파장을 변형할 수 있긴 했으나 그 둘과 직접 맞춰본 적이 없기에 의미가 없었다.
강무혁이 차량을 운전하는 동안 토마스는 계속 통화를 시도하던 스마트폰을 귓가에서 뗐다.
“전화도 꺼진 상태입니다.”
“이건 작전 중에 방해받지 않겠다는 건데.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전투 준비를 할까요?”
“베네치아에서요? 글로리아 길드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겨우 마련한 협상 자리가 날아갈 겁니다. 자기 도시에서 싸웠다는 이유로 추방당할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아무리 대공이라도 감싸주기 힘들 겁니다.”
“명분이 중요한 사람이니까요?”
토마스는 살짝 비꼬는 투로 말했다. 그는 전 소속인 이타카 길드를 통해 대형 길드의 부조리를 겪은 헌터였다. 자신들의 기준에 세상을 맞추려는 오만함은 때론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했었다.
토마스가 보기엔 에도아르도의 고지식함이나 대형 길드의 원칙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강무혁은 그런 속내를 읽고 에도아르도를 변호했다.
“답답해 보이긴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신념을 지키는 헌터도 드뭅니다. 세상이 혼란할수록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 있어야죠. 글로리아가 유럽 굴지의 길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에도아르도 헌터가 균형을 잡아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헌터란 게 심성보다 힘에 휘둘리는 존재니까요. 남들도 힘을 먼저 보죠. 그러다 보면 원래 자기 기준이 모호해지더군요. 저만 해도 요즘은 힘으로 해결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입니다.”
“압도적인 힘만 있으면 확실히 편하긴 합니다. 남을 설득하고 조율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힘으로 남 위에 서는 것만으로는 게이트 시대를 종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작 이 시대의 비극은 사라졌겠죠. 한 개인, 한 세력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힘을 어떻게 써서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가 될 겁니다. 그건 확고한 기준이 섰을 때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마스는 강무혁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기준이 모호해진다고 말했지만, 원래 나는 기준이 없었다.’
헌터였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었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준비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이타카에서의 토마스는 마나 중독증으로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헌터였다. 그랬던 자신이 강무혁을 만나 병을 치료할 수 있었고, S랭크 헌터가 됐다.
갑자기 큰 힘을 얻은 탓에 그는 이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방황하거나 방종하거나 혹은 방탕하지 않았다.
바로 곁에 지침과 같은 사람이 있던 까닭이었다.
‘과연 이 사람은 따를 만하다. 매일 새로 배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지.’
병의 부작용인지 토마스는 자신의 감정조차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해도 길을 잃기 일쑤였다.
반면에 강무혁은 자신과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길을 잃지 않았다.
그것이 강무혁이 말하는 확고한 기준 덕인지도 몰랐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았기에 근래 토마스 또한 그 기준이라는 게 선명해지고 있었다.
계기는 게이트 폭발 때였다.
그 당시 토마스는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속내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 느꼈던 게이트와 몬스터에 대한 분노. 그것이 내가 헌터로서 가져야 할 기준점이다. 이 사람을 따라가자. 그 끝이 해피 엔딩이든, 새드 엔딩이든, 최소한 후회하진 않겠지.’
토마스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차량의 속도는 빨라졌다.
강무혁은 거침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운전대를 돌렸다. 그는 백미러로 후방을 살폈다. 토마스의 경고로 차 뒤에 다시 미행이 붙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떼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뒤쪽은 진짜 그냥 내버려 둡니까?”
“예. 따돌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중국 쪽과 부딪치면 나쁜 인상만 줄 텐데요?”
“상관없습니다. 여차하면 이용할 생각입니다.”
“하긴 글로리아가 있으면 중국 헌터들도 섣불리 행동하긴 어렵겠군요.”
“거리는요?”
토마스는 강무혁의 말을 알아듣곤 메시지 스킬을 사용했다. 그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듯 한참 집중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현정건 헌터와 연결됐습니다. 상황은 이해했고, 무슨 의도인지도 파악했습니다.”
“왜 거길 갔다고 합니까?”
토마스에게 질문하면서 강무혁은 현정건과 미스터 조가 중국 협상단이 기거하는 호텔에 간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렸다.
두 사람 모두 잠입과 첩보에 능한 헌터이니 정보를 빼내려고 간 것이라고 여겼다.
혹은 적진에 혼선을 주기 위해 정보 조작을 가하려는 의도이거나.
‘두 사람 실력은 믿을 수 있지만, 의외성은 장담하지 못하지.’
현재 아이언윌 길드엔 그런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일단 길마인 주세아 본인이 그러했고, 최고 유망주이자 미래의 에이스랄 수 있는 아이돌 광팬 고을지, 지금은 사라진 전 타이탄 소속 암살자인 현정건, 한국 최고의 길드인 슬레이어에 잠입할 정도로 대담한 스파이인 미스터 조, 우중도 출신으로 아이언윌과 일본 헌터계의 앞잡이 사이에서 이중 스파이로 암약한 노송린, 평소에는 진중하지만 빌런만 보면 이를 드러내는 장득구와 거인으로 변신하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염수형…….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최고의 길드를 만들기 위해 특색 있는 헌터들을 모았을 뿐인데.
심지어 얼마 전엔 미라주의 마수에 당한 백성빈도 있었다.
일단 개인의 안타까움은 차치하더라도 누군가 문제 삼으면 골치 아플 사건·사고를 달고 사는 헌터들이었다.
최강 헌터 집단과 콩가루 길드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인 상황.
강무혁은 자신의 선택이 삐끗하지 않길 기도하며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머릿속으로 빛살과 같은 상념들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토마스는 현정건에게서 들은 상황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현정건 헌터가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하는군요.”
“어떤 메시지죠?”
“이번 일은 미스터 조가 꼬셨답니다.”
“…….”
“자신은 정말 무고하다고. 원하오와 샤오잔이 있는 줄 알았으면 절대 안 왔을 거라면서. 죄가 있다면 미스터 조에게 속은 죄밖에 없다더군요.”
“…….”
순간 강무혁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될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 * *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요.”
자오커지가 말했다.
현정건은 로비 카페로 자릴 옮겨 그를 맞이한 상태.
자오커지의 뒤쪽에선 원하오와 샤오잔이 매서운 눈길로 자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황룡 길드의 거목을 만난 탓에 긴장을 했나 봅니다.”
현정건은 커피로 바싹 마른 목을 축였다. 그의 말처럼 자오커지를 만나 긴장한 탓이 아니었다. 토마스의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단장한테도 걸렸겠군. 여길 오고 있다고? 이걸 어떻게 넘어가지? 잔소리는 싫은데.’
현정건은 자오커지와 대화하면서 틈틈이 곤란한 상황을 타개할 변명을 토마스에게 보냈다.
현정건의 칭찬이 인사치레라는 걸 알면서도 자오커지는 들뜬 기분이 되었다.
황룡 길드 내에선 실패하면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목이었지만, 적어도 바깥에서 보기엔 전략팀장 다음가는 실권자로 보일 터였다.
현재 황룡 길드의 전략팀장은 관홍 이후 공석이었기에 길마와 부길마를 비롯한 주요 수뇌부를 제외하면 자오커지의 서열은 첫손에 꼽을 수 있었다.
이런 권력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오커지를 더없이 만족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헌터이기 앞서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이었기에 짐짓 겸양을 떨며 말했다.
“신의주에서 관홍의 계략을 무참히 박살 낸 주역인 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저야 그냥 곁다리로 낀 거죠.”
뒤편에서 웃으면서 대화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원하오는 기가 막힌 듯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둘 다 어울리지 않은 겸손이군.’
자오커지야 원래 오만한 자였고, 현정건은 남이 듣기 좋은 소릴 진심 없이 말하는 인간이었다.
특히 현정건이 입에 꿀을 바를 땐 주의해야 했다. 검은 속을 감추고 음모를 꾸미려는 수작이니까.
신의주에서 오랫동안 현정건을 상대해온 원하오로서는 더욱 경계심을 끌어올릴 만한 모습이었다.
“샤오잔에게 대충 얘긴 들었습니다. 먼저 일본을 밀어내자고요?”
“저흰 둘을 동시에 상대할 힘이 없습니다. 하나라도 제거해 둬야 승률이 올라갈 것 아닙니까?”
“호오, 그건 우릴 상대로는 자신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자신은 없지만, 최소한 우릴 괴롭혀오던 놈들한테 엿을 먹일 순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운 좋으면 글로리아와의 거래도 따낼 수 있을 거고?”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자오커지는 실실 웃으면서 거래하려는 현정건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언뜻 듣기엔 노려봄 직한 방법이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는 말이지.’
게다가 상대는 책임자도 아니었다. 자오커지가 알기로 한국의 책임자는 강무혁이었다.
‘미라주에게 납치된 관홍을 구해냈다지? 그것도 모자라 영입하기까지 했고.’
황룡 길드의 전략팀장이었던 관홍의 자부심을 떠올리면, 반도의 저등급 길드에 들어간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물론 S랭크 헌터인 주세아가 있는 길드라는 점은 고려해야 했으나 황룡 길드라는 거대한 방파에 몸담았던 자가 있기엔 아이언윌 길드는 너무나도 작았다.
‘강무혁…. 관홍을 입단시켰다는 것만으로도 경계할 만한 자다. 그리고 비원쥔 부길마와 관홍 관련해서 합의했다는 것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지.’
그런 자가 직접 나서지 않고 휘하 수하 하나를 덜렁 보냈다는 건 어쩐지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인 것 같았다.
자오커지는 무릎 위에 손가락을 올려 퉁퉁 튕겼다. 고민이 깊어졌다.
한국과 손잡을까, 일본을 끌어들일까? 아니면 둘 다 배제하고 가야 하나.
세계 헌터계의 위세로 보나, 힘과 영향력으로 보나, 일본을 경계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으나 최근 황룡 길드의 실패가 강무혁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고려하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위험을 배제하려면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다.’
자오커지는 자세한 협상 내용을 주고받기도 전에 거절할 생각을 했다.
말이 섞이면 마음이 동하게 되고 귀가 솔깃해질 수도 있었다. 감언이설에 넘어가 일을 망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가만히 있어도 가장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건 자신들이었으니까.
그가 거절 의사를 밝히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였다.
“부장님! 제가 배신자를 잡아 왔습니다!”
휘하 헌터 중 하나가 또 다른 부하 하나를 바닥에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쉬카이?! 왕허디는 또 무슨 일이고?”
샤오잔이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쉬카이라 불린 헌터는 기절한 채 잡혀 있는 왕허디를 가리키며 분에 차서 외쳤다.
“스파이입니다! 이놈이 일본 놈들한테 협상단 자료를 넘기려 했습니다!”